프로게이머 네모 자서전 

굳게 믿는 힘(思い込む力)


전편 링크

서문 [0]

1장  [1] [2]

2장  [3] [4] [5] [6]

3장  [7] [8] [9] [10]




사회인의 강점을 살린 스폰서 획득법

몇 번이나 되는 의견 교환 끝에 드디어 에일리언 웨어에게 서포트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 일이 가능했던 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죠.

먼저 에일리언 웨어가 추구하는 조건에 제가 적합했던 점입니다. 회사 측에서 개인으로 활동하는 e스포츠 플레이어를 구하고 있었던 겁니다.

e스포츠에는 팀을 구성해 싸우는 팀전 형식의 타이틀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FPS 같은 슈팅 게임이 있죠. 그리고 개인전 형식인 격투게임 타이틀이라도 여럿이 동일한 팀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저는 그 중 어느 쪽도 아니었죠.

의견을 조율하고 있을 때는 몰랐지만, 에일리언 웨어 담당자는 미국 본사에서 "일본에서도 e스포츠에 주력하라"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합니다. 다만 담당자로서도 e스포츠 분야에서 일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 갑자기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팀으로 계약하기에는 불안함이 있었던 것이죠. 그 점에서 혼자서 활동하는 플레이어라면 커뮤니케이션도 수월하고 일을 진행하기 쉬울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던 겁니다. 저에게 사회인 경험이 있기에 발언이나 태도 등 리스크 매니지먼트 측면에서 안정감을 줄 수 있었던 것도 플러스가 되었죠.

그리고 또 한 가지 요인은, 제가 회사에 제안했던 내용이 에일리언 웨어의 사업 측면에서도 납득이 갔기 때문입니다.

제가 에일리언 웨어와 접촉했던 것은, '스트리트 파이터 5'를 시작으로 몇 가지 게임에서 PS4와 PC 간의 크로스 플랫폼 대전이 가능해진 타이밍이었습니다.1) 거기서 제가 에일리언 웨어측에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 게이밍 노트북 시장의 장래성이었죠.

격투 게이머 중에는 시합에 나갈 때, 연습용으로 자신의 플레이 환경을 대회장이나 주변 호텔에 그대로 옮겨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환경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PS4와 디스플레이, 그리고 아케이드 스틱 등이죠. 대회에 따라서는 대회장에 연습용 기재를 준비해 두는 케이스도 있지만, 그런 기기에 크게 의존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도 거기에 의존하지 않는 편이고요. 예전에 참가한 어떤 대회에서 준비된 연습용 기재가 무척이나 적어 선수들끼리 다툼이 벌어져, 결국 아무 연습도 못 한 채로 본 경기에 임하게 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실력에 자신을 가지고 있던 시기였음에도, 실력과 상관없이 준비 부족으로 지고 말았던 것에 후회가 남았습니다. 그 이후로 연습 환경은 스스로 준비하고 있죠.

다만 PS4와 디스플레이, 스틱을 전부 가지고 다니면 짐이 너무 많아지는 게 문제입니다. 만약 고성능에 화면이 큰 게이밍 노트북이 보급된다면, PS4와 디스플레이를 게이밍 노트북 하나로 대체할 수 있어 기재 운반이 무척이나 편해집니다. 언제나 충분한 환경에서 연습할 수 있다는 점은 대회 성적에도 좋은 영향을 주죠. 그 부분을 어필한다면 지금까지 PS4로만 플레이하던 유저층에게도 노트북을 시작으로 게이밍 PC 자체를 향한 수요가 높아질 것이라며, 제 경험을 더해 회사 측에 전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스폰서 계약이 체결되었을 경우 제가 회사 측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도 제안했습니다. 프로게이머는 게임 커뮤니티에서 동경의 대상이라는 점, 들고 다닐 수 있는 게이밍 PC가 국내외의 대회를 왕래하는 데 얼마나 편리한지를 어필할 수 있다는 점, 특히 '사회인 게이머'로서 업무와 게임을 양립하는 저만이 어필할 수 있는 제품의 실제 사용례나 이미지가 있다는 점을 주장하면서 활동을 서포트해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죠.

이런 프레젠테이션이 성공한 것은 PS4 게임이 차례로 크로스 플랫폼을 지원하던 타이밍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스트리트 파이터 4' 대회는 PS4로 치러졌기 때문에, 예전이라면 에일리언 웨어 같은 PC 메이커에게 얘기를 꺼내는 건 어려웠을 테죠. 또한 게이밍 PC가 아직 일반화되어 있지 않던 시기에, 고성능 노트북은 게임에도, 업무에도 사용 가능하다는 점을 사회인 게이머가 직접 주장할 수 있었던 점도 제 강점이었을 겁니다.

몇 번이나 계속된 회의 끝에, 에일리언 웨어 담당자가 "감사합니다. 그 내용으로 본사에 제안해 보죠"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에일리언 웨어의 사업 전략과 제 노림수가 맞아떨어져 스폰서 계약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겁니다.

1) 역주 : 원문에는 'ストリートファイターⅣ(스트리트 파이터 4)'라고 되어 있는데, 네모가 에일리언 웨어와 계약한 시점이 2016년 7월이니 시기상의 문제와 크로스 플레이 가능 여부를 따지자면 아마 '스트리트 파이터 5(2016년 2월 발매)'의 오기일거라 생각하여 임의로 수정함.


드디어 에일리언 웨어와 계약

에일리언 웨어의 담당자분께 "본사의 답장이 올 때까지 당분간 기다려 주십시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몇 번이나 개선을 거듭하여 담당자도 자신있게 "제안할 수 있겠습니다"라며 말씀해 주신 자료였으니 계약이 성사될 거란 강한 확신이 있었죠. 남은 건 희소식을 기다리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2개월가량 지났을 무렵, 담당자에게서 "죄송합니다! 본사에서 NG가 떨어졌습니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라? 어째서?! 이유를 물어보니 본사의 의향은 "개인과는 계약할 수 없다"는 것.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가 직접 법인을 세우거나, 다른 법인에 소속되거나, 아니면 신용이 충분한 대리인을 세우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어느 쪽도 제가 바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니었기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죠.

돌파구는 생각지도 못하던 곳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 우메하라 선수와 곧잘 연습하곤 했는데, 연습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얘기를 나누던 중 "네모는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라고 우메하라 선수가 먼저 말을 꺼내주셨던 겁니다.

저는 에일리언 웨어와 계약이 고작 한 발짝 남은 상태에서 좌초되었다는 것,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앞서 말한 세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것, 대리인이 되어 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러자 우메하라 선수는 본인의 매니저인 시노씨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우메하라 선수는 샌프란시스코를 거점으로 e스포츠 선수 에이전트 업무를 담당하는 기업인 쿠퍼스타운 엔터테인먼트(Cooperstown Entertainment)에 매니지먼트를 전담하고 있었고, 시노씨도 그곳의 사원이었습니다. 시노씨와도 상담해 본 결과, 쿠퍼스타운이 새로 임명한 일본 담당자가 제 매니저를, 쿠퍼스타운이 대리인을 맡아주기로 되었습니다.

쿠퍼스타운이 대리인으로 정해지자, 델 본사에서 'NG' 선언을 들었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순조롭게 계약이 진행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에일리언 웨어에게서 계약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시점이 2016년 7월, 상사와 면담을 거쳐 "회사에 근무하는 동시에 스폰서를 붙여도 좋다"는 얘기를 들은 이후 약 9개월이 지났던 때의 일이었죠.

저는 '드디어'라는 감격하는 동시에, 스폰서 기업이 정해졌다는 것과 "이러한 계약을 맺으려 하고 있습니다"는 것을 상사에게 전하자, 세 번째 면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사 입장에서는 거의 잊어버렸을 시기였죠. "그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 일을 성사시켰나"라는 놀라움도 느꼈을 겁니다. 이번에는 저번 면담에도 참여했던 소속 부서 부장님, 같은 부서의 다른 부장님, 그리고 총무부장님을 상대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총무부장님은 "회사 입장에서 선뜻 인정할 수는 없으니, 나는 듣지 않은 걸로 하겠네"라며 결석하시고, 저는 남은 두 분의 상사와 계약서를 보면서 제가 놓여 있는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부장님 한 분은 "이런 계약은 말도 안 되네"라면서 꽤 강한 어조로 반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계약서의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신 건 아닐 테고, 아마도 저를 다른 부서로 이동하여 경험을 쌓아 인재로 활용하고 싶은 생각에 게이머로서의 겸업 자체를 반대하시는 모양새였습니다.

거기에 반론을 해 주셨던 게 다른 한 분, 저번 면담에서 상담을 받아주셨던 소속 부서 부장님입니다. 이전 면담에서 나왔던 가게를 경영하는 사원의 케이스 등을 거론하면서, "이런 전례도 있고, 취업 규정에도 위반되는 사례가 없으니, 네모토도 계약을 진행해 보게"라며 등을 밀어주셨죠.

회사 측 설명으로는 계약 상대가 에일리언 웨어, 즉 델이었던 것도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합니다. 델은 소비자 대상의 PC뿐만 아니라 기업 대상의 서버 쪽으로도 사업을 진행하는 회사이니,  따로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거의 없었죠. 난항을 겪었던 스폰서 탐색이었지만, 일이 마무리되자 결국 델이라는 대기업과의 계약할 수 있었으니 처음 예상을 뛰어넘은 성과를 거두게 된 겁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꽤 많은 행운과 우연이 따라준 시기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