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네모 자서전 

굳게 믿는 힘(思い込む力)


전편 링크

서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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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3] [4] [5] [6]

3장  [7] [8] [9] [10] [11]




제4장 : 프로게이머와 회사 업무, 양립의 나날



프로가 되었기에 생긴 딜레마

'지금의 회사에 근무하면서 스폰서를 얻어 프로게이머가 된다.' 이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스폰서 탐색은, 난관도 있었지만 결국 에일리언 웨어와 계약 성공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겸업 프로게이머로서의 생활이 시작된 것이죠.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이 길을 고른 것에는 "게임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것 외에도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습니다. 인사 면담 때 상사에게 들었던 "하지만 언제까지고 게임을 계속할 수 있을 거라 여기진 않는 편이 좋겠네"라는 말. 그 말에 납득이 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하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른이 되면 게임은 그만두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인식이라기보다는 압력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게임은 아이들 놀이"라는 편견이 근거에 깔려 있던 거죠. 이는 어쩌면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된 인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나 게임이 엔터테인먼트로 정착된 현재에, 그것도 세계적인 게임 개발사가 다수 존재하는 일본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은 너무 일방적인 편견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어른이 되어 직업을 가지게 되면, 그때부터는 계속 게임을 할 수는 없는 걸까? 상사의 말을 계기로 고민한 끝에, "그럴 리가 없어. 사회인이 되어도 게임은 계속할 수 있어"라는 사실을 직접 증명하고 싶다는 결의가 용솟음쳤습니다. 제가 그 인식을 바꿔 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에일리언 웨어도 저의 그런 의도를 이해해 주었습니다. 사회인이라도 게임을 즐기는 사람, 게임의 세계에서 노력하는 사람을 응원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었기에, 겸업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길을 선택한 저를 서포트해 주신 것이겠죠.

다만, 겸업 프로게이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자 곤란한 일도 일어났습니다. 3장에서도 적었듯, 제가 주된 전장으로 삼았던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가장 큰 대회가 '캡콤컵'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개최되는 '캡콤 프로투어' 인증 대회에 출전하여 포인트를 쌓아, 최종적으로는 포인트 랭킹 상위에 들어간 선수가 출전할 수 있는 방식이죠. 포인트를 얻기 위해선 당연히 해외 대회에 출전하는 횟수가 많을수록 유리합니다. 하지만 회사업무와 양립해야 하는 저는 아무래도 출전 횟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죠.

에일리언 웨어와 계약을 맺은 것은 2016년 7월. 그때부터 겸업 프로게이머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그해에 출전한 해외 대회는 'EVO 2016'과 싱가포르에서 열린 대회 두 개뿐이었습니다. 이래서는 캡콤컵 본선에 출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인 상황이었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서 새로운 딜레마가 발생했습니다.

게이머로서 꾸준히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스폰서를 찾아다니고 바람대로 에일리언 웨어와 계약을 성사할 수 있었지만, 이는 다시 말하면 프로로서 결과를 내면서 스폰서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에일리언 웨어측에서 사회인 게이머이니 어느 정도 활동에 제한이 있다는 것을 양해해주기는 했지만, 저는 "스폰서가 붙었으니 프로 신에서 더욱 활약하고 싶다"라는 의욕을 불태우게 되었죠.

게다가 '스트리트 파이터' 종목에서 겨루는 프로게이머의 입장에서도, 그 정점을 정하는 캡콤컵은 누구나 동경하는 무대. 그곳에 나갈 수 없게 되면 커뮤니티에서 잊혀지고 마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역시 지금 회사에서는 게이머 활동을 계속할 수 없어. 좀 더 게임에 힘을 쏟을 수 있는 회사로 옮겨야지". 겸업 프로게이머가 된 이후에야 다시금 현재 처한 상황의 한계와 이직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환경을 바꿀 수 밖에 없다

근무하고 있던 회사의 인사 면담을 계기로 "사회인이 되어도 계임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그 방법을 고민하고, 상사와 취업규칙을 확인까지 해본 끝에 걷기 시작한 겸업 프로게이머라는 길. 이 길을 걸어본 후 내린 결론이 '이직'이라는 건 얄궂은 일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대로 같은 회사에 계속 머무른다면 아마 그리 멀지 않은 타이밍에 이동 명령을 받아 게임에 온전히 힘을 쏟을 수 없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에 겸업 프로게이머를 선택한 계기가 되었던 것은 나이나 사내 커리어를 고려했을 때 저의 인사이동이 조만간 다가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스폰서를 찾아 회사 사람들이 프로게이머 활동을 이해해 주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의 인정을 받은 것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업무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의 활동이라면 묵인한다"라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죠. 실제로 유급휴가를 써서 해외대회에 나가는 건 한 해에 고작 두 번 뿐인 상황. 이미 적었던 것처럼 합병에 따라 회사의 규모가 확대된 후의 사내 조직 재편도 거의 정리가 되었을 무렵이었기에, 슬슬 이동을 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 보았을 때, 이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제 마음속에서 다시금 강해졌죠.

다른 한편으로는 이직처로 이상적인 기업을 찾을 가능성이 낮다는 생각 또한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프로게이머 활동을 이해해 주는 기업"이라는 말은 이전에 단념했던 "실업팀 같은 형식으로 업무를 보며 게임에 전념할 수 있는 기업"과 거의 같은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 그 길을 단념하고 회사에 남는 것을 선택한 후 스폰서를 개척하는 방향으로 전환한 적이 있으니, 이번이라고 제 형편에 맞는 기업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죠.

하지만, 이때는 결의가 조금 달랐습니다. "찾아내지 못할거야"가 아니라 "찾아낼 수밖에 없다"라는 마음가짐이었죠. "지금 있는 회사에 계속 재직해도 상황이 변하지는 않을 테니, 환경을 바꿀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은 "게임을 계속하고 싶다. 대회에 계속 나가고 싶다"는 일념으로 전직을 고려했던 저번보다도 더욱더 강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이직을 알아보고 있을 때, 처음에 상담했던 곳은 엔비디아였습니다. 엔비디아를 선택한 이유는 3장에서도 적은 것처럼 같은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저스틴 웡이 일본에서 말하는 실업팀 선수 같은 근무 형태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상담 도중 엔비디아의 일본 담당자에게 들은바, 역시 일본에 그런 사업부는 없고, 소속된다고 해도 미국 사업부와 계약하게 될 테니 영어가 필수라는 말에 스킬이나 경험 면에서 자신은 역부족이란 생각에 단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고려했던 곳은 게임이나 웹사이트 등의 품질관리나 디버그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기업이었습니다. 해당 회사는 당시에 제가 상상하던 실업팀 형식의 e스포츠 팀을 검토하고 있던 점도 있어 제가 이직을 생각하기 전부터 먼저 권유를 해주고 계셨죠. 품질관리나 디버그라는 업무는 제 스킬이나 성격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했지만, 상대측의 요구 조건은 "e스포츠에 전념할 것". 즉 전업 프로게이머 스타일이었습니다. 이 또한 당시의 제가 추구하던 방식과 달랐기 때문에 거절하기로 했죠.

"'이상적인 기업을 찾을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하던 주제에 고집이 세다"라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딴에는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죠. 한 번 포기했던 실업팀 형식의 업무 방식이지만, 저번 이직처 탐색 때와는 크게 달라진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에일리언 웨어라는 스폰서가 존재한다는 것이었죠.

제 이직에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은 사측이 게이머로서의 활동을 지원해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직 얘기를 꺼낼 때 스폰서가 붙어 있다는 실적은 교섭을 끌어나갈 때 큰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죠. 고쳐 말하자면, "그것을 무기로 이직처를 찾는다"라는 것이 제 노림수였던 겁니다.


그럼에도 전업 프로게이머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

"아예 이참에 전업 프로게이머가 되려는 생각은 안 해봤나?"

여기까지 읽어주신 분들은 아마 이런 의문을 품으셨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프로는 안 될 거야?" "프로가 되면 되잖아" 같은 말들을 여러 사람에게 들었습니다.  제가 이직으로 마음이 기울었을 무렵에는 우메하라 선수나 토키도 선수를 시작으로 몇몇 플레이어가 프로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해외 대회에서 활약하는 일본 플레이어도 눈에 띄게 늘기 시작했죠. 당장 저부터 에일리언 웨어라는 스폰서가 붙어 있기도 했으니까요. 남들이 보기에는 프로가 될 수 있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게 의문이었겠죠. 저에게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는 실력이 있다고 인정해 주시는 분이나 기대를 품으신 분일수록 더 답답하셨을 겁니다.

저 스스로도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는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점에서는 전업 프로게이머라는 길을 걸을 생각은 없었죠. 게임만으로 생계를 꾸릴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아서이기도 했고, 더욱이 그런 상태에서는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는 것은, 사회인이 되고 난 이후에도 저에게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대학생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신 걸 계기로 자신의 생활이나 취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얘기는 앞서 드린 바 있습니다만, 실은 이 시기에 아버지에게 두 번째 뇌출혈이 일어나 다시 수술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전신마비에 가까운 상태가 되어 어머니의 간호가 필수적이었죠. 그런 상황이었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게임으로 프로가 된다니… 생계는 유지할 수 있겠니?"라는 반응이 돌아오는 건 당연했습니다. 부모님으로서는 당연히 품을 수 있는 불안이죠.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니 "게임을 계속하고 싶다"라는 제 고집 하나만으로 미지의 길로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어쩌면 이는 게임뿐만 아니라 음악이나 그림, 스포츠 등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싶은 많은 사람이 품고 있는 고민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직업에 자신을 가지고 부모님께 말씀을 드릴 수 없다는 것은 무척이나 괴로운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