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네모 자서전 

굳게 믿는 힘(思い込む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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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12]




지금까지 이어지는 인생의 과제를 깨닫다

1장에서 저는 e스포츠 선수의 은퇴 후 진로 문제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적었는데,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실은 이 무렵이었습니다.

은퇴 후 진로라고 하면 일반적으로는 은퇴 후의 인생, 첫 번째 직업이나 커리어를 끝마친 후의 두번째 인생이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축구나 야구 등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도 은퇴 후 진로 문제는 자주 얘기에 오르지만, 이 역시 은퇴 후의 이야기. 제가 고른 것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동시에 회사 업무를 하는 방식이었으니, 엄밀하게 말하면 은퇴 후 진로라기보다는 부업이나 겸업에 가까웠죠. 실제로 저는 '겸업 프로게이머'라고 불리고 있었습니까요.

하지만, 깊게 생각해보니 결국 프로게이머만으로 생계가 성립되지 않는 장래, 즉 은퇴 후 진로를 향한 불안을 떨칠 수 없었기에 저는 원래 직업을 그만둘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게다가 이건 저만이 하고 있는 고민이 아니었죠. 제 경우에는 마침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그 후에 프로게이머로서의 길이 열렸던 경우였기에 "일을 그만둘지 아닐지"가 분기점이 되었습니다만, 앞으로는 좀 더 어릴 때부터 프로게이머가 되는 사람도 생길 터였습니다. 일반적인 직업을 얻기 전에 프로게이머가 된다면, 그 경우엔 당연히 은퇴 후 진로 문제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을테죠.

실업팀 형식을 모색했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때때로 했는데, 게이머 활동을 어떻게 계속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도중에 기성 스포츠의 사례도 다수 참고했습니다. 육상경기나 구기종목 등, 회사 업무를 하면서 경기를 계속하는 실업팀은 일본에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았고 그 사례들 모두 참고가 되었지만, 어떤 종목이든 똑같이 은퇴 후 생활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업팀 선수는 아무리 회사원이라고 해도 사내 업무에 종사하는 비중이 낮으면 은퇴 후에 회사에서 업무를 계속하기 어려운 케이스가 많다는 것, 회사가 사원의 직무를 제대로 마련하고 있더라도 은퇴한 선수가 자신의 기술 부족이나 "스포츠밖에 못 한다"라는 주변의 평가를 견뎌내지 못해 일을 그만두는 케이스가 많다는 등의 사실이었죠.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좋아하는 일, 잘 하는 일을 하면서 수입을 얻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라는 사실만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게임에는 특수한 사정까지 있었죠. 그 첫 번째는 역사가 짧다는 것입니다. e스포츠라는 용어가 퍼지기 시작한지 아직 몇 년밖에 되지 않은 일본에서, e스포츠나 프로게이머라는 활동에 대해 충분한 이해를 얻기란 무척이나 힘듭니다. "게임은 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어른이 되면 그만두는 것"이라는 편견 또한 강하게 뿌리내려 있죠.

두 번째는 장르가 세분화되어 있다는 것. e스포츠라는 단어는 '스포츠'와 같이 지칭하는 범위가 무척이나 넓은 단어로, 실제로는 세세하게 나뉘어 있습니다. 격투게임이라는 카테고리만 든다고 해도 타이틀에 따라 전혀 다르죠. 예를 들어, 저는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를 중심으로 몇 가지 격투게임에도 자신이 있습니다만, '철권' 시리즈는 거의 플레이해본 적이 없습니다. 타이틀에 따라 전문성이 강하고, 요구되는 능력이나 지식이 전혀 다른 겁니다.

거기에 더해 패치가 있다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같은 타이틀이라도 패치에 따라 지금까지의 이론이 전혀 통용되지 않게 되는 사례는 흔하고, 같은 시리즈에서조차 신작이 나오면 상황이 완전히 변합니다. 애초에 게임은 게임 개발사가 소유한 IP를 베이스로 한 경기인 이상, 상황의 변화에 따라 한순간에 프로 경기로 성립되지 않게 되는 사례도 생길 수 있습니다. 다른 스포츠가 안고 있는 연령 등 개인의 문제에 더해서, 게임에는 이러한 경기로서의 특수성까지 추가로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만으로 생계를 꾸린다는 것은 상당히 리스크가 높은 선택입니다. 대회 상금액수가 높아지고, e스포츠를 향한 관심이 높아진 현재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죠. 하지만 앞으로 e스포츠가 산업으로서 더욱 성장하고 성숙해져 경기로서의 타이틀도 안정되게 된다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자체는 좀 더 고르기 편한 선택지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역시 은퇴 후 진로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플레이어들 앞에서 사라질 수는 없겠죠.

결국 이 문제는 일을 그만두고 전업 프로게이머가 된 지금도 정답을 내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게 된 것은 이직을 고민할 이 무렵이었죠. 그러니 다음에 근무할 회사에서는 프로게이머로서 좀 더 활동하는 한편, 그런 자신에게 어떤 업무 방식이 존재하는가, 어떤 진로 선택지가 존재하는가, 그것을 직접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이직처는 스퀘어 에닉스

새로운 직장과의 만남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게임 대회나 이벤트의 기획, 운영을 담당하는 TOPANGA의 대표이사인 토요타 후스케(역주 : 냥시)씨가 스퀘어 에닉스를 소개해주신거죠. 제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고 어떤 생각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고 있는지를 알고 계신 상태에서, 스퀘어 에닉스와 다리를 놓아 주신 겁니다.

아직 e스포츠라는 단어도 생소하던 시기였으니 프로로서 게임을 하기 위해 이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무척 이상해보였을테죠. 스퀘어 에닉스에서 "흥미로운 얘기로군요. 일단 면접을 보러 오시지 않겠습니까?"라는 연락을 받았고, 결국 2017년 10월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스퀘어 에닉스에 이직할 수 있었던 건 토요타씨가 소개해주신 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 무렵부터 다양한 일들이 잘 맞물리기 시작한 덕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실적은 프로게이머로서 선전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2016년 2월에 '스트리트 파이터 5(스파5)'가 플레이스테이션4와 PC로 동시 발매되었고, 그 이후 '스트리트 파이터' 공식 대회는 '스파5'로 치러지게 되었습니다. 2016년은 '꼬챙이', 2017년에 들어서부터는 '유리안'으로 사용 캐릭터를 바꿔가며 대회에 출전했죠. 그리고 '레드불 쿠미테 2017'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습니다. 특히 레드불 쿠미테 2017 결과는 신문에까지 실릴 정도였죠.

또 한 가지, 친누나가 응원해주었던 것도 무척 기뻤습니다. 이 무렵에 저희 누나는 "동생이 프로게이머가 됐다고 했었지"라는 느낌으로 저의 게이머 활동에 흥미를 가져 주었습니다. 도쿄 게임쇼에 오거나 해외 대회 방송을 챙겨보면서, "나오키, 열심히 하고 있더라"라면서 부모님께 자주 얘기를 해주었던 겁니다. 그 덕에 부모님도 서서히 저의 프로게이머 활동을 이해해주시기 시작했죠.

스퀘어 에닉스로의 이직은 이런 다양한 사건의 결실이기도 했던 겁니다.


'게이머로서도 활동하겠다' 교섭은 요구사항을 전하는 것부터

해외대회에 더 적극적으로 출전하고 싶다, 프로게이머로서 좀 더 활동하고 싶다…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할 때는 이직의 목적이 확실하게 있었기에, 처음부터 회사에 제 요구사항을 얘기했습니다. 이상적으로는 실업팀 소속 스포츠 선수처럼, 업무를 하면서도 연습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다는 것, 대회가 가까워지면 어느 정도 일찍 퇴근을 하고 싶다는 것, 해외대회에 원정 나가는 것을 인정해주었으면 한다는 것 등의 사항을 말이죠.

교섭을 진행할 때는 특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확실히 하고,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얘기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학 졸업 후 바로 회사에 입사했을 때, 면접에서 "게임이 취미입니다"라고 확실히 말해두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속으로 숨기지 말고 미리 말해두는 쪽이 나중에 트러블이 생길 가능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에는 제 요구사항을 전제로 둔 상태에서, 제가 사원으로서 진행해야 할 직무를 회사에게 배정받았죠.

고용 형태는 계약직 사원. 원래 스퀘어 에닉스는 중도채용일 경우, 계약직부터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합니다. 실적을 쌓은 후 원한다면 정사원이 될 수 있다고도 하지만, 제 경우에는 프로게이머 활동을 중시하고 싶었기 때문에 퇴사할 때까지 계약직인 상태로 재량노동제1)를 통해 근무하게 되었죠.

입사할 무렵에는 회사 업무와 프로게이머 활동을 양립하는 문제에 대해 회사와 의견을 나누고, 대회에 참가할 때의 조건 등을 정했습니다. 다만, 각각의 내용을 반드시 엄밀하게 정해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사로서는 "재미있을 것 같고, 회사에 그런 사원이 있어도 괜찮지 않나?"라며 채용한 면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재미있을 것 같다"라는 것에 더해 이전 직장에서 정사원으로 시스템 엔지니어로 근무한 경험이 평가받은 것도 있을테죠. 회사원 경험은 여기에서도 플러스로 작용했습니다.

게임 회사의 경우엔 재량노동제로 근무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일러스트나 음악, 프로그래밍 등 자신이 맡은 업무를 확실히 처리하기만 한다면 어느정도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다는 점을 중시하는 사람에게는 적절한 업무 방식이니까요. 다만, 제 경우엔 프로게이머 활동을 하고 싶다며 입사한 것도 있는 만큼, 조금 특수한 케이스였을 겁니다.

입사한 시점에는 명확한 업무가 정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전 직장에서는 어디까지나 게임과 관계 없는 시스템 엔지니어로 근무한 것이었으니, 게임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솔직히 잘 모르고 있었던 거죠.

처음에는 소속 부서의 다양한 정례회의에 아무튼 참여했습니다. 다양한 회의에 참여함으로써 부서의 과제를 알 수 있고, 그 중에는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 역주 : 한국의 포괄임금제와 비슷한 근무제도. 미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을 수 있어 의역하지 않고 원문대로 적어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