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네모 자서전 

굳게 믿는 힘(思い込む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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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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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3] [4] [5] [6]

3장  [7] [8] [9] [10] [11]

4장  [12] [13]




첫 업무는 카페 프로모션

몇 번의 회의에 나가보고 제가 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업무는 카페 프로모션이었습니다. "프로게이머가 게임회사에 들어갔는데 맡은 일이 카페 프로모션?"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당시 이케부쿠로에 있던 타이토의 어뮤즈먼트 시설 '타이토 스테이션' 위에 'STORIA(스토리아)'라는 카페 겸 식당이 있었습니다. 해당 점포에서는 게임과 연계된 컨텐츠 상영이나 이벤트를 개최하여 게임을 즐기면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컨셉트로 운영중이었고, 그 점포의 기획과 프로듀스를 제가 소속된 사업부가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스토리아는 결혼정보지에 광고를 내고 있었습니다. 결혼식 피로연 등 파티 회장으로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노린 광고였죠. "하지만, 이왕이면 그보다 조금 더 게임 회사에 프로듀스하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 유니크한 프로모션을 할 수는 없을까?" 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바로 그 때, 프로게이머인 도구라 선수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아직 식을 올리지는 않은 상태였기에 도구라에게 "결혼식은 스토리아에서 하지 않을래?"라고 권유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메하라 선수에게는 "우메하라 선수의 인터넷 방송 채널에서 그걸 중계해 보죠"라고 제안했죠.

스토리아 입장에서는 결혼식 회장으로의 실적을 쌓음과 동시에 화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도구라 선수는 결혼식을 올릴 수 있으며, 유명한 프로게이머가 다수 참석할 것이기에 우메하라 선수는 채널 컨텐츠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니 모두에게 플러스라는 생각이었죠. 여기까지 계획해둔 다음 도구라 선수를 통해 그쪽 스폰서와도 상담을 거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비용이 맞는다면"이라는 조건 하에 "한번 해 보죠"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참가자에게는 축의금이 아니라 참가비를 받고, 우메하라 선수의 채널에서는 영어 음성을 붙여 해외에도 방송하며 도네이션을 받기로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부금이죠. 이렇게 비용을 충당하면 부족한 비용을 상당 부분 부담할 수 있을 터. 돈이 남는다면 그건 도구라 선수에게 축의금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제 계획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기부도 일반화되었지만, 이 무렵 일본에서는 아직 '쪼잔하다'든가 '치사하다'는 인상이 남아있을 때여서 인터넷 방송인들도 기부금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도네이션 문화가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해외의 격투게임 팬에게서는 충분히 기부금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긴 것이죠. 거기에 더해 일본인 시청자들도, 다른 것도 아니라 결혼을 축하하는 자리라면 저항감 없이 기부를 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최종적으로 방송에서는 약 6000달러 가량의 기부금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예상 이상의 금액이었죠. 게다가 그 대부분이 해외가 아니라 국내의 시청자에게서 받은 금액이었습니다. 기부금 문화가 거의 없던 때였는데도, 축복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모두 선뜻 돈을 건네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굉장히 인상에 강하게 남은 기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서번트 오브 스론즈'에 빠져 운영에 참가

정례회의에 나가는 것과 같이, 소속 부서가 담당하고 있는 게임도 되는대로 플레이해 보았습니다. 스퀘어 에닉스는 게임 타이틀마다 프로젝트 팀이 편성되어 있고, 그 팀 멤버가 개발이나 PR등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일반적인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당시 제 소속 부서는 아케이드 기기부터 모바일, 플레이스테이션4 등 가정용 콘솔 게임기 등 다양한 플랫폼에 대응 가능한 게임을 운영하는 데에 더해 앞에서 적은 카페 프로모션까지 폭넓은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죠.

그 담당 게임들 중에 제가 빠졌던 게 '서번트 오브 스론즈'라는 스마트폰 대상 리얼 타임 카드 배틀 게임이었습니다.(2019년 4월에 서비스 종료) 너무 열중한 탓에 그걸 본 상사에게 "그렇게 좋아할 정도면, 그 게임을 직접 담당해보겠나?"라는 권유까지 받아 운영에 참가하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보니 이 역시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었다"라는 말의 또 하나의 예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 말을 꺼내신 상사가 '드래그 온 드라군'이나 '로드 오브 버밀리온' 등으로 유명하고, 나중에 '드래곤 퀘스트 워크'도 담당하신 프로듀서 시바 타카마사씨였습니다. 시바씨의 부서는 제가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하기 전에 우메하라 선수를 인플루엔서로 기용하여 아케이드 게임 '건슬링거 스트라토스'의 프로모션을 진행한 적이 있었기에, 그걸 계기로 다양한 격투 게이머와 연이 생겼다고 합니다. 격투는 아니지만, 스스로 대전 게임을 담당했기에 'EVO 2017'을 보러 라스베가스까지 관전하러 갈 정도로 격투 게이머 커뮤니티와도 친밀한 관계셨죠.

참고로 '건슬링거 스트라토스' 관련 이벤트를 업무 위탁이라는 형식으로 소개했던 것 역시 저를 스퀘어 에닉스에 소개해주신 TOPANGA의 토요타씨였습니다. 제가 프로게이머로서 활동을 넓혀가기 위해 이직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을 안 토요타씨가 "시바씨라면 무언가 맡겨주실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연을 이어주셨던 거죠.

스퀘어 에닉스에 근무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입니다만, 제 입사가 결정되었던 것도 시바씨가 "회사 근무 경험이 있으니까"라면서 밀어주셨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시바씨가 저를 입사 전부터 알고 계셨던 게 이직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겠네요.

덧붙여 EVO 2017에는 시바씨뿐만 아니라 스퀘어 에닉스의 마츠다 요스케 사장님도 와 계셨습니다. 이 시기에 스퀘어 에닉스가 e스포츠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얘기니까, 몇 번이고 말하지만 타이밍이 참 잘 맞아떨어졌던 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이렇게 돌이켜보니, 인연은 정말로 중요하다는 사실이 실감됩니다. EVO등에서 시바씨를 만났을 무렵에는 설마 그 후에 이직을 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으니 말이죠. 어쩌다보니 이어진 인연과 저의 사회인, 게이머로서의 경험, 스퀘어 에닉스측의 타이밍 중 어느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이직에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팀 리퀴드와의 계약으로 한 순간에 바뀐 생활

제가 처음에 들어간 회사를 퇴사한 것이 2017년 7월 말. 그리고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한 것은 그 3개월 후인 10월. 어디까지나 회사원으로서의 이직이었지만, 우연히도 이 시기에 저의 겸업 프로게이머 활동에도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2018년 3월에 세계적인 프로 e스포츠 팀 중 한 곳인 팀 리퀴드와 계약하게 되었던 겁니다.

2016년부터 저를 서포트해주고 있던 에일리언 웨어는 팀 리퀴드의 스폰서이기도 했습니다. 팀 리퀴드가 아시아에서의 전개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정했을 때 떠올린 것이 당시 열기가 오르고 있던 일본 격투게임 신이었죠. 그리하여 당시 다양한 대회에서 기세를 올리던 저를 주목했다고 합니다. 팀 리퀴드에게서 스폰서인 에일리언 웨어 담당자를 통해 "팀 리퀴드에 가입하시지 않겠습니까?"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와 동시에 타케우치 존 선수도 팀 리퀴드에 가입하게 되어, 도쿄 아키바하라에 있는 '에일리언 웨어 스토어 아키바'에서 계약 발표회도 진행했습니다.  이 발표회에서는 에일리언 웨어의 마케팅 매니저가 제 활동을 소개하며 "격투게임 팬 사이에서 에일리언 웨어라는 브랜드를 침투시켰다"라는 평가를 받아 무척이나 기뻤던 것이 기억나네요.

이미 에일리언 웨어를 스폰서로 두고 프로게이머 활동을 하고 있던 저였지만, 이 이후에는 팀 리퀴드 소속의 플레이어로서 에일리언 웨어의 서포트를 받는 형식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이후, 저의 프로게이머로서의 활동 폭도 한층 더 넓어지게 되었습니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에일리언 웨어와의 계약은 연봉제 계약이어서 해외 대회에 참가할 때에는 항공비 등을 스스로 마련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팀 리퀴드와 계약한 후에는 항공비는 물론이고 현지에 도착한 후 들어가는 비용까지 원정비용으로 하루 50달러 정도를 지원받게 되었죠. 그 외에도 추가로 팀에서 월급이 나왔으니, 행동의 자유도가 단숨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저에게 인상 깊었던 일이 아뮤즈와의 계약입니다. 팀 리퀴드와 계약하고 약 9개월 뒤인 2018년 12월, 아뮤즈와 팀 리퀴드가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여 아뮤즈가 제 매니지먼트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죠.

실은 아뮤즈와는 이 일 이전부터 의견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에일리언 웨어와의 계약시부터 신세를 지던 매니저가 개인 사정상 제 매니지먼트에서 손을 떼게 되어, 후임으로 아뮤즈를 소개해주셨죠. 한편으로 아뮤즈와 팀 리퀴드의 계약도 진행되어, 결국 팀 리퀴드 가입과 동시에 아뮤즈 소속이 되었습니다.

이 일로 기뻐하셨던 건 저희 부모님이셨습니다. 아뮤즈는 사잔 올 스타즈나 후쿠야마 마사하루 등 유명 아티스트가 다수 소속되어 있는 대형 사무소인 만큼 저희 부모님께서도 이름을 잘 알고 계시는 곳이었죠. 그 사무소와 계약하게 되면서, "게임 프로가 된다니 무슨 말이니?"라며 회의적이셨던 부모님께서도 한번에 안심하실 수 있게 된 겁니다. "게임만으로도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니?"라는 말까지 꺼내실 정도였죠. 저로서는 그때까지 항상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강했으니, 부모님께서 기뻐해주신 일로 저 역시 안심했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 "좀 더 일찍 이 이야기가 나왔으면, 전업 프로게이머가 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들긴 했습니다만, 실제로는 에일리언 웨어와의 계약이 있었기에 팀 리퀴드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기에 이 역시 타이밍이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일리언 웨어 입장에서는 저와 계약한 이후에야 e스포츠 관련 업무를 좀 더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했을테고, 그 일환으로 팀 리퀴드와도 계약하게 된 것임을 생각해본다면, 역시 에일리언 웨어와의 계약이 제게 있어서 가장 큰 전환점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네요.

덧붙여, 앞에도 적었듯 타케우치 존 선수도 저와 동시에 팀 리퀴드와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타케우치 선수는 2017년, 해외 게임 커뮤니티에 초대되어 참가한 대회 'First Attack 2016'에 우승해서 그걸 계기로 프로로 활동을 시작한 저보다 꽤나 어린 선수입니다. 타케우치 선수와는 팀 리퀴드와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부터 가끔씩 상담을 받거나 같이 해외 대회에 출전하곤 했습니다. 제가 전 직장에서 퇴사하고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하기 전까지 3개월 사이에 있었던 일이죠.

그 때 저는, 모처럼의 기회이니만큼 해외 대회에 몇 군데 나가보자며 일부러 휴식기를 만들어 해외를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타케우치 선수도 마침 그 때 'First Attack 2017'에 초대를 받았다고 하기에 미국 뉴욕에서 합류하고, 뉴욕이나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개최된 대회에 나가며 3주 가량을 같이 보냈습니다.

타케우치 선수는 그 당시 치른 일련의 대회에서 우승까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성적을 거두고, 2018년 일본에서 개최된 'EVO Japan 2018'에서는 준우승이라는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이런 성적을 옆에서 직접 보아왔기에, "젊은 선수를 육성하고 싶다"라는 의향이 있던 팀 리퀴드에 제가 직접 타케우치 선수를 추천하여 두 명 동시에 팀 리퀴드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