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네모 자서전 

굳게 믿는 힘(思い込む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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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18]




커뮤니티는 스스로도 만들 수 있다

프로게이머가 된 지금도 정보 수집과 연습을 하는 방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온라인 대전이 당연해지고 대부분의 플레이어와 관계를 트게 되었기에 게임 센터에는 자주 가지 않게 되었지만, 게임 센터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변함없이 의견 교환과 정보 공유, 그리고 대전을 하고 있죠.

예를 들면 도쿄 아키하바라에 있는 e스포츠 시설이나 다른 플레이어의 집에 직접 가는 식입니다. 토키도, 마고, 본짱 등의 플레이어가 소속된 'TOPANGA' 사무소에서 같이 연습하기도 하죠. 동료들과 만나는 장소는 달라져도 커뮤니티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여전합니다. 따라서 그곳에 있는 플레이어와의 정보 교환이나 대전이 실력을 갈고닦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생각 역시 변함이 없죠.

변한 점이라고 한다면 SNS나 인터넷 방송이 일반화되어 커뮤니티라는 개념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겠네요. 게임이 업데이트되면 프로게이머뿐만 아니라 일반 플레이어도 스스로 조사한 내용을 SNS에 업로드합니다. 콤보 영상을 올리는 사람이나 캐릭터 대책을 굉장히 상세하게 작성하는 사람도 있죠. 이런 의견을 보고 본인 나름대로 분석해서, "그러면 이렇게 캐릭터 대책을 만들자"라는 식으로 이미지하고 실제로 시도해 보는 분도 많이 계실 겁니다.

저는 유튜브와 트위치에 제 채널을 만들고 게임 플레이 영상을 방송하고 있는데, 방송 도중 시청자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수많은 코멘트 역시 참고가 됩니다. 방송에서 대전하며 "이 기술은 까다롭네"라고 중얼거리면, 코멘트로 이에 대한 대책을 상세하게 제안해 주시는 분이나, "이런 콤보를 만들어 봤는데, 한번 써 보시죠?"라고 가르쳐주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는 전문 분석가가 없는 격투 게임 플레이어에게 무척 큰 도움이 됩니다. e스포츠 타이틀 중 슈팅 게임이나 전략 게임에서는 팀에 전문 분석관이 있는 경우도 있지만, 격투 게임은 기본적으로 개인전이기 때문에 개인이 정보를 수집, 분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에서 적었듯 게임이나 캐릭터 정보 외에 대전 상대의 정보도 필요하고, 그와 동시에 직접 게임을 플레이할 시간도 확보해야 하니, 정보 수집의 효율화는 늘 고민되는 과제입니다. SNS나 방송은 제가 팬을 향해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팬에게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통로로도 기능하는 셈이죠.

프로게이머와 일반 플레이어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격투 게임 세계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프로게이머가 되신 분 중에는 "좋아하는 게임을 계속하고 있었더니, e스포츠가 열기를 더해가면서 어쩌다 보니 프로가 되었다"라는 느낌으로 프로가 된 분도 많으니까요. 앞으로 상금 액수가 늘어나거나, 프로 리그가 좀 더 성숙해진다면 양자 사이에 차이가 좀 더 커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같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의 멤버"라는 의미에서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프로게이머의 의견이든 일반 플레이어의 의견이든 똑같이 참고하고 있죠.

요즘에는 스스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도 도전해 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 것이 게임에 특화된 커뮤니케이션 툴 '디스코드'입니다. 이미 알고 계시는 분도 많겠지만, 디스코드는 '서버'라고 부르는 그룹을 만들어 유저들끼리 텍스트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영상 통화, 음성 통화가 가능한 것이 특징이죠.

이렇게 서버 안에서 '대전상대 모집'이나 '질문,' '대회 정보' '잡담' 등 다양한 채널을 만들고 저를 포함한 여러 유저들끼리 '스트리트 파이터 V' 대전 상대를 모집하거나, 모르는 것을 질문하거나, 대회 정보를 공유하곤 합니다. 저 스스로의 활동이나 스폰서 기업의 상품에 관한 정보도 전달하긴 하지만, 메인은 어디까지나 유저 간의 교류죠. "격투 게임을 시작하고 싶다" "격투 게임에 관심이 있다"라고 생각하며 새로 입문하는 분들이 먼저 무엇부터 해야 좋을지, 누구에게 상담해야 좋을지 모를 때 여기 들어와 주신다면 좋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부디 제 팬이나 방송을 봐주시는 분들을 넘어 여러 게임 초보자 분들께서도 참가해 주시면 좋겠네요.

스퀘어 에닉스에서 퇴사하고 전업 프로게이머가 되려고 마음먹었을 때, 제가 상상하던 저의 역할 중 하나가 게임 플레이어 대표로 게임 커뮤니티에 공헌하는 것, 게임 커뮤니티와 기업이나 사회를 이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커뮤니티는 점점 고일 뿐이니까요. 격투 게임은 입문하기 어렵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 분이 많은데, 이렇게 초보자들의 입문 루트를 넓혀 점점 동료를 늘려나가는 것이 격투 게임의 저변을 넓혀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터넷 방송은 격투 게임 하나만으로 승부

디스코드로 커뮤니티를 만들게 된 데에는 저의 방송을 봐주시는 분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노림수도 물론 있었습니다. 비즈니스적으로 말하자면 팬 매니지먼트의 하나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인터넷 방송 자체는 2018년쯤부터 시작했지만, 진지하게 시작하게 된 것은 전업 프로게이머가 되기 조금 전인 2020년부터입니다. 처음에는 회사 업무가 바빠서 좀처럼 제대로 방송하기는 힘들었지만,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연말연시에 시간이 생겨 집중적으로 방송을 해 보니 꽤 많은 분께서 보러 와 주셨던 게 방송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또 하나의 이유는 역시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의 영향이 컸네요.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게임 대회나 이벤트는 죄다 연기나 중지, 그리고 일부로 온라인으로 바뀌게 되니 선수가 자기 PR을 할 수 있는 수단이 격감하고 말았던 거죠. "이러면 방송이라도 해야겠는걸"이라는 생각에 매주 주말 아침부터 방송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송에서는 제가 연습 중인 플레이를 보여드리기도 하지만 팬 분들께서 보내주시는 질문이나 상담에 답을 하거나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주며 상담받고 싶은 분들을 모집해 그 플레이 영상을 보며 조언하는 등의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방송을 시작하고 난 이후 "방송 채널 운영은 스마트폰 게임 운영과 약간 비슷하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스퀘어 에닉스에 재직하던 때 스마트폰 게임 운영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는 얘기는 앞서 드린 바 있습니다. 스마트폰 게임은 기본적으로는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고, 그중 일부 유저가 과금을 하는 식의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하고 있죠. 사실 인터넷 방송도 똑같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무료로 방송을 보실 수 있고, 그중 몇 분께서 도네이션을 보내주시거나 월 구독을 신청하여 채널을 서포트해 주시곤 합니다.

무료로도 즐길 수 있는 플랫폼에 어떻게 결제를 유도할 것인가. 제 채널 시청자 대부분은 제가 프로로서 격투 게임 세계에서 싸우는 모습을 즐기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그러니 대회 같은 곳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두면 "축하드려요" "수고하셨습니다"라며 기쁜 마음으로 도네이션을 해 주시죠. 현실의 인간관계에서도 타인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순간은 그 사람을 축하하거나 수고했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입니다.

그런 분들의 마음을 소중히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회가 끝난 후에 "축하드려요"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팬 분들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장소'를 준비해 둔다는 의미에서도 되도록 방송을 진행합니다.

어느 정도 정기적으로 방송을 하게 되고 매번 방송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이 늘면, 방송 중에 실시간 채팅으로 시청자끼리 사이가 좋아지는 케이스도 생기고, 이런 케이스도 채널에 플러스가 됩니다. 방송 자체는 제가 시청자에게 일방적으로 영상을 송출할 뿐이지만, 채널 내에서는 저와 시청자, 시청자와 시청자 간에 다양한 방향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합니다. 그렇게 하면 방송 전체의 분위기도 한층 좋아지게 되죠. 이런 분위기 조성은 시청자 여러분이 채널을 팔로우해 주시거나 구독을 해서 채널을 서포트해 주시는 동기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방송 자체의 분위기는 자유롭게 진행하고 있지만, 딱 한 가지 제 채널의 철칙으로 정해두고 있는 것이 오직 격투 게임만 방송한다는 점입니다. 스트리머 중에는 채널을 띄우기 위해 그때그때 인기 있는 게임을 하는 분, 시청자에게서 요청받은 게임을 하시는 분도 많습니다. 다른 장르의 게임 팬 분들이 보러 와 주시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평소와는 다른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팬도 즐거워하실 수도 있을 테죠. 이 또한 팬 서비스의 한 가지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방송 소재를 격투 게임 하나로 한정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저것 다양하게 다루게 되면 '격투 게임을 하는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떠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다른 게임을 계기로 새로운 시청자분들이 유입되더라도, 그분들이 격투 게임에 흥미가 없다면 결국 제 시청자로 정착될 일은 없을 테니까요.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시청자가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 저 스스로가 어떤 게임의 프로게이머인지 혼란스러워진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저는 격투 게임 프로게이머이고, 격투 게임 플레이로 팬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게 본업입니다. 방송은 그러기 위한 도구 중 하나에 불과하죠. 방송으로 얻는 수익은 물론 큰 도움이 됩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본업인 격투 게임 플레이로 응원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계속해서 남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