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네모 자서전 

굳게 믿는 힘(思い込む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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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은 철저한 준비로 극복한다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며 들은 질문 중에는 “대회에 나갈 때 긴장하시지는 않나요?”라는 물음도 있었습니다. 얼굴에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 탓인지, 남들에게 긴장을 안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얘길 자주 듣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나 잔뜩 긴장하고 있습니다. 시합은 물론이고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도 마찬가지죠.


그러면 이런 긴장에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요? 스스로도 긴장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후회하지 않도록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제 방법입니다. 준비를 하면서 자신이 생기면 긴장을 극복하기 쉬워지기 때문이죠.


대회에 나갈 때 사전에 분석과 연습을 철저히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의외의 복병으로 작용하는 게 대회 당일에 대한 준비입니다. 예를 들어 ‘울트라 스트리트 파이터 4’ 종목에 출전했던 캡콤컵 2015 때가 그랬죠. 많은 대회에서는 선수들 연습용으로 기자재를 대회장에 준비해 두는데, 당시에는 지금처럼 충분한 양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대기실 구석에 몇 대가 놓여 있는 게 다였습니다. 시합 전에는 선수들끼리 자리다툼이 일어나 결국 아무런 연습도 하지 못한 채로 실전에 나갈 수밖에 없었죠. 그 탓에 스스로는 꽤 물이 오른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회에서는 별 성적을 내지 못하고 끝나버렸습니다. 지금은 연습용 기자재가 소형화되었기에 어느 대회에 나가더라도 장비를 스스로 챙겨 다니고 있지만, 당시에는 그러기 힘든 환경이었기 때문에 충분한 준비를 할 수가 없었죠.


2016년에 에일리언웨어가 스폰서가 된 후 처음으로 출전한 EVO2016에서도 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그때에는 제 컨디션도 좋았고 그 덕에 8강에도 진출했지만, 대회장이었던 라스베이거스의 만달레이 베이 리조트 앤 카지노의 냉방이 너무 과도해서 무척이나 추웠던 게 문제였죠. 대회 당시에는 에일리언에어 유니폼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로고가 들어간 셔츠를 즉석에서 만들어서 시합에 참가한 상태였습니다. 경기 사이에는 외투를 걸치고 있었지만, 시합 중에는 로고가 들어간 셔츠를 보여줘야만 했죠. 그 탓에 추워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셔츠 아래에 껴입을 수 있는 걸 준비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이러한 경험을 통해, 게임 플레이 이외에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통감했습니다.


스스로 만전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느낄 때는 당연히 긴장도 하고, 실패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실패하고 후회한 경험은, 나중에도 미련으로 남게 되죠.


이는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스스로가 이야기를 잘하지 못하고, 애드리브에도 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프레젠테이션이나 취재를 할 때는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미리 정리해 둡니다. 앞에서도 적었듯,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확실히 준비해 두는 것도 이런 준비의 일환이죠. 시합에 나가든 업무에 임하든, 납득이 갈 때까지 준비를 하고 나면 긴장도 극복할 수 있고 좋은 결과를 남길 수도 있게 되는 법입니다.



‘패배’를 넘어서는 법, ‘승리’를 살리는 법


그 밖에도 자주 듣는 얘기는 “시합에 졌을 때는 어떻게 마음가짐을 바로잡으시나요?”라는 질문입니다. 준비를 확실히 하고서도 지고 만다면 그때는 “어쩔 수 없지”라면서 깔끔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는 건 당연히 싫고, 지금도 지고 난 후에는 무척이나 분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승부는 앞으로도 계속될 테니 깔끔하게 인정하고, 마음가짐을 고쳐먹고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말해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격투 게이머란 결국 패배를 거듭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요. 토너먼트 전일 경우, 끝까지 계속해서 승리하는 사람은 우승자 한 명밖에 없습니다. 그 이외에는 아무리 강한 플레이어라도 패배를 경험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 “분하다”라면서 멈춰 서 있기보다는, 오히려 스스로에게 “분하면 어쩔건데?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라고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을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이렇게 기본적으로는 실패를 거듭하면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실패하거나 패배를 경험하면서, 내가 부족한 게 무엇인지, 그리고 다음에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처음 깨닫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강해지는 거죠. 이는 게임뿐만 아니라 스폰서를 찾아다닐 때나 스퀘어 에닉스에 제안한 기획이 통과되지 않았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거꾸로, 이겼을 때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남들에게 얘기할 수 있도록 언어화하는 것도 제가 늘 중요시하는 부분입니다. 이겼을 때의 기사가 미디어에 나오거나 가족이나 회사 사람들에게 보고할 때면, 평소 응원해주시는 분들은 무척 기뻐해 주십니다. “잘 됐다”는 말을 들을 때, 저의 언어로 직접 승부에 관해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만, 승부라고는 해도 제가 플레이하는 것이 게임이나 e스포츠이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솔직히 있습니다. 앞에도 적었지만, 게임이 특수한 점은 업데이트가 있다는 것입니다. 업데이트로 제가 쓰는 캐릭터가 약해졌다고 느낄 때는 눈물을 삼킬 때도 있지만, 거꾸로 강해졌다고 느낄 때도 있죠. 이는 기분 전환하는 데 꽤 플러스가 됩니다. 패배가 이어질 때도 “지금 버전에서는 약하지만, 다음 업데이트에서 강해질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이길 수도 있겠지”라고 깔끔하게 받아들이며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만약 실제 스포츠였다면 어땠을지…. 레슬링 선수인 요시다 사오리 씨가 현역이었던 시대처럼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승리만 거듭하는 강한 선수가 있다면, 그렇지 못한 저는 더 이상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에 빠져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요소도 제가 모티베이션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팀전에서는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자


제대로 준비했는데도 시합에 지고 말았다면, 기본적으로는 “어쩔 수 없었어”라고 깔끔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드물게 패배의 원인에 사로잡혀 악순환에 빠지고 마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경우엔 그 전형적인 예가 2020년이었죠.


2020년은 정말로 힘든 해였습니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확대되어 격투 게임 대회가 온라인이 주체가 되었지만 동시에 스퀘어 에닉스에서의 업무 부담이 무척이나 높아졌던 시기로, 언제나 업무 생각을 머릿속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죠. 재택근무가 메인이 되면서 매일매일 온라인 회의가 4~5시간이나 이어져, 늦어질 때는 업무가 끝나는 시간이 오후 10시를 넘길 때도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연습을 시작하긴 했지만, 연습중에도 스마트폰에는 업무 연락이 울릴 때가 많았죠. 그런 연락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가는 것도 있었지만, 만약 제 앞으로 온 연락을 제때 확인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작업에 지장을 줄 수도 있었습니다. “이게 끝나면 바로 연락해야지”라는 생각에, 게임 연습을 할 때도 시합을 할 때도 직장 업무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게임에 집중할 수가 없었죠.


겸업으로 활동하는 이상 이런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후회는 남았습니다. 짜증이 났던 부분은 지고 난 후에 후회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진 원인이 제 실력 이외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런 생각을 한 자신마저 싫어지게 되는 식이었습니다. 완전히 악순환에 빠져들고 말았던 거죠.


그런 악순환에 한 줄기 빛이 내려왔던 게 “스트리트 파이터 리그 Pro-JP 2020(SFL Pro-JP 2020)”에서 우승했을 때였습니다. 그 해에 SFL Pro-JP 2020에서 ‘네모 오로라’라는 팀을 구성해 출전한 상태였죠. 제가 리더고, 팀원은 사코 선수, 가치쿤 선수, 키치파무 선수. 팀 전원이 사회인 경험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들이었습니다. 그런 사정 덕에 “업무가 바빠지면, 미안하지만 서포트를 좀 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사전에 솔직히 말해두었습니다. 다른 멤버들도 “그럴 땐 신경 쓰지 말고 말해줘”라고 얘기해줘서 마음가짐 측면에서 무척이나 도움이 되었죠.


실제로 리그 도중에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 탓에 제가 담당할 캐릭터를 정해서 “이 캐릭터만큼은 책임지고 공략해 둘게”라고 얘기해 두고, 나머지는 다른 멤버들에게 맡겼죠. 우승할 수 있었던 건 전략이 잘 먹혀들었기 때문도 있지만, 역시 팀워크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팀으로서 이길 수 있었던 게 무엇보다도 기뻤습니다. 


오랫동안 격투 게임 신에서 싸워 오면서 느낀 점은, 강한 사람, 실력이 좋은 사람과 엮이지 않으면 제대로 실력을 쌓을 수 없다는 점입니다. 특히 팀전이 그렇죠. 그에 더해 상대에게 자기 마음을 솔직히 전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으면 이해를 거듭하면서 목표로 삼을 방향을 정할 수 있고, 신뢰 관계도 쌓을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각자가 가진 힘을 최대한 발휘하거나 보충해 줄 수 있게 되는 셈이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전 해에 정반대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2019년에 치러진 ‘스트리트 파이터 리그 Pro-JP 2019’에서 팀을 짠 인원은 키치파무 선수와 타케우치 존 선수, 그리고 저였습니다. 팀 성적은 2위를 거둬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된 결승 대회인 ‘스트리트 파이터 리그 월드 챔피언십 2019’에 출전하게 되었죠. 이 대회에선 시합 전에 서로 상대 팀의 사용 불가 캐릭터를 최대 둘까지 지정할 수 있는 캐릭터 밴과 밴을 무효로 할 수 있는 실드라는 룰을 채용하고 있었습니다.


누구의 어떤 캐릭터를 밴할지, 어떤 캐릭터를 실드로 지킬지는 팀 전략의 핵심입니다. 저는 2019년 당시 꽤 실적이 좋았기 때문에 당연히 제 캐릭터가 밴 될 거라고 여겼습니다. 한편으로 이 당시 키치파무 선수는 아직 장기에프밖에 쓰지 않았기에 직전에 있던 ‘캡콤컴 2019’에서도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죠. 하지만 키치파무 선수에게 “자신 있어?”라고 물었을 때 “자신 있습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기에 “그러면 믿고 있을게”라는 말을 건네고 실드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그 예상이 빗나가 시합에서 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진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죠. 문제는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다는 점입니다. 시합 후에 식사하여 얘기를 나눴을 때, 키치파무 선수에게서 “요즘 대회에서 이기지 못해서 자신이 없어지고 있어요”라는 진심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때 “이런, 내가 좀 더 커뮤니케이션을 했어야 했는데”라면서 후회했죠. 시합 직전이 되어서야 제가 “어떻게 할래?”라고 물어봤으니, 아마 솔직히 대답할 수가 없었던 거겠죠. 그게 2019년의 패인이었습니다.


이 경험이 2020년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반대로 제가 자신이 없는 입장이었지만, 이 얘기를 멤버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회 1개월 가량 전부터 멤버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확실히 작전을 세우고 담당 캐릭터를 정해, 그 캐릭터만을 집중적으로 담당해 줬으면 좋겠다고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그 결과로 우승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지금까지의 격투 게임 인생에서 가장 기뻤다고 해도 될만한 경험이었습니다. 게임에서도 업무에서도, 동료에게는 자신의 상황이나 기분을 솔직히 이야기할 것. 이 점을 지금도 늘 마음에 새겨두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