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네모 자서전 

굳게 믿는 힘(思い込む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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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하며


다시금, 게임이 있어 다행이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 즐거움에 눈을 뜬 이후로, 제 인생에는 계속 게임이 있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에 열중해 게임 센터에서 발걸음이 멀어졌던 때도 있었지만, 결국은 게임으로 돌아왔죠. 취직을 해도 “게임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에 진로를 선택할 결과 프로게이머까지 되었지만, 이번에 책을 쓰게 되면서 과거를 돌아보니 당시에는 지금 같은 미래가 올 거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테죠.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을까요? 돌아보자면 역시 고등학생 때 게임 대회에 처음 나갔던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게임 세계에 지인이 잔뜩 생겼죠. 고등학교, 대학교, 취직, 이직과 그 후에도 인생의 전환점은 있었지만, 이 때 넓어지기 시작한 게임에서의 인연이 없었다면, 애초에 지금의 제 인생은 없었을 겁니다. 지금까지 오랜 시간 동안 계속해서 게임에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다른 무언가 빠질만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을지도 미지수니까요.


인생을 살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격려를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길티기어 이그젝스’ 전국대회에 출전해보라고 강하게 권유를 해 주셨던 sana씨. 예선 장소에 가기는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제 순서를 기다리는 게 귀찮아져서 돌아와버린 저에게 “재능이 있는데 아깝다. 한 번 더 참가해 봐”라며 열심히 설득해 주셨던 그 전화가 없었다면, 저는 그 후로 게임 대회에 참가할 일이 없었을 겁니다.


그 다음은 신입 채용으로 시스템 엔지니어로 근무하게 된 회사의 상사. 정말로 자신의 일인 것처럼 충고를 해 주셨습니다. e스포츠라는 단어가 널리 퍼지기 전이었던 그 시절, 부하가 갑자기 게이머로 활동하며 스폰서를 얻고 싶다고 얘기한다면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라고 반응하는 게 일반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전례도 없던 그 시절, 그 분은 제 활동을 이해해주시고 협력까지 해 주셨죠.


그 직장에서는 승진보다도 밴드 활동을 우선하는 등, 다양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도 제 선택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취직한 직후, 회사원이 된 이상 어떻게 업무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한 저에게, 회사 일이나 업무 방식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다시금 저에게 게임이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만이 반복되었다면, 재미없는 인생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회사 일을 하면서도 같은 일에 열중하는 동료들과 매주 만나고,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게임을 하는 건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충실한 매일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취직 등 환경이 바뀌어도 계속 함께하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은 인생에 무척이나 소중한 경험입니다.



회사원을 경험했기에 보인 것들


만약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취직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요즘 같은 시대라면 곧바로 프로게이머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사회적인 인식도 환경도 꽤 많이 안정되었으니까요. 어쩌면 좀 더 제대로 공부를 하면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드네요. 역시 사회에 나와보니 공부를 좀 더 해둘걸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학력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렇지만, 업무 자료를 정리하는 작업을 할 때도 좀 더 제대로 배웠다면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인생에 대해, 쓸데없이 먼 길을 돌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학생 때 아버지가 쓰러지시고 처음으로 제 인생을 제대로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취미로 게임을 하면서 유급까지 하고, 미래는 생각도 안 한채로 좋아하는 일을 하기만 했을 뿐이었지만, 제 장래를 확실히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치자, 프로게이머가 되는 일에 대해서도 ‘프로’ 생활을 마무리한 후의 일도 고려하며 생활해야겠다고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고, 이후로는 그때마다 최선이라고 생각한 판단을 해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회사원을 경험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것이 많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대학생까지는 인간관계도 가치관도 게임 센터에서 만들어졌던 것이기에 게임 이외에는 별 흥미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는 주변의 권유도 대부분 거절하면서 다녔죠. 하지만 회사원이 되고 난 후에는 업무상의 지인들과 술을 마시러 가기도 하고, 그때까지 흥미가 없었던 것들에도 흥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남들과 관계를 맺는 법이나 사회적인 상식은 물론이고, 직업이 되면 싫은 일이라도 해야만 한다는 것이나 조직의 구성, 자금의 흐름도 알아야만 한다⁠⁠⁠⁠…. 이러한 내용들을 배웠죠.


거꾸로 게임으로 체감했던 것들을 직장에서도 살릴 수 있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와 무언가를 합치면 다른 무언가가 나올 수 있다는 발상. 게임에서는 이 파츠와 다른 파츠를 조합해서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낸다던가, 이 기술과 다른 기술을 조합해서 효과가 올라가는지 시험해보는 등, 비슷한 상황이 많았습니다. 이건 비즈니스에서도 똑같아서, 이 기업과 다른 기업을 연결한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다른 기업이 하던 이 마케팅 방법을 우리도 적용해볼까 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는 이 사실을 게임의 발상이나 감각을 응용해서 이해해곤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회사원으로 일했던 경험, 프로게이머로 활동한 경험을 저울질해보고 프로게이머로 사는 미래를 선택했습니다. 프로게이머로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명확해졌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긴 했지만, 회사원과 겸업을 하는 방식의 한계가 보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시기에는 코로나 사태로 게임 대회가 온라인으로 개최하게 되고 업무도 재택근무를 하게 되었지만, 코로나 사태가 수습되면 다시 해외 원정이 늘어날 건 당연했고, 스트리트 파이터 리그도 2021년 이후로 평일 개최가 중심이 될 거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게임에서도 그렇지만, 팀전에서는 서로 “이 사람이라면 믿고 맏길 수 있다”라는 신뢰관계가 있어야 멤버가 각자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저는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는 데 더해 회사의 일원으로서 주위 사람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작업이 과연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을 때, 이대로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게 될 거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습니다. 2021년에 전업 프로게이머로 전향한 것은, 겸업 게이머로 할 수 있는 영역까지는 최대한 했다는 자신과 각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회사원이 되고 13년, 스폰서를 얻어 프로 활동을 시작한지 5년, 드디어 저는 전업 프로게이머가 되었습니다.지금 돌아본다고 해도 직장과 게이머 활동을 양립하는 건 무척 힘들었고, 직장 일이 바빠져 충분히 연습하지 못한 채로 대회가 나가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로 마무리한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게임에 전념하고 싶다는 마음과 장래에 대한 불안 사이에서 계속 흔들렸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런 나날들 속에서 발버둥치고 고민하며 나름대로 궁리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죠.


“드디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라는 이 책의 부제는 그런 제 생각을 담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만난 다양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시금 감사를 표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회사원과 프로게이머, 양 쪽 경험을 가진 저이기에 가능한 커리어를 쌓아가려고 합니다. 이 책이 자신의 커리어로 고민하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참고가 된다면 기쁘겠네요.



2022년 9월, 네모(네모토 나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