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의 휴일 프롤로그 https://arca.live/b/finalgear/3461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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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켈베로 분쟁지대.

 한때는 게하였지만, 곳곳에서 일어나는 무력충돌로 이제는 게하 '밖'이 된 지역. 파괴된 삶의 흔적만이 남은 폐허가 된 소도시.


 성신교의 검은 수녀복을 걸친 여자가 그 마을을 걷고 있다. 수녀복에 달린 후드를 푸욱 눌러써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다만 후드 아래 드러난 긴 금발 머리카락과, 굴곡없이 매끄러운 목선을 보았을 때 여성으로 추정된다. 그는 후드에 덮힌 귀를 손바닥으로 덮어, 어떤 장치를 조작했다. 그러자 치직거리는 소리가 나며 귓가에서 음성이 울려퍼진다.


 "무슨 일이신가요, 마가렛. 치직.

 전파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걸 보니 도착한 모양이군요."

 "확실히 여기가 맞아, 베로니카?


 베로니카는 마가렛과 친하게 지내는 한 용병부대의 정보부장이다.

 마가렛은 베로니카로부터 그녀의 전용기 '홀리보우'가 분쟁지대에 폐기될 것이라는 정보를 받아, 알려준 좌표까지 찾아온 것이다.


 "여기 내 전용기가 있을거 같진 않은데."

 "글쎄요. 어디까지나 치직 저는 신뢰성있는 정보를 전달해드린 것 뿐이니까요. 정보의 출처를 치직 고려해보았을 때 치지직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치직."

 "여기가 파이널 기어의 잔해가 쌓인 쓰레기장이라면, 그 정보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말야."


 마가렛은 후드를 아래로 벗어내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포탄을 맞아 무너진 건물과 다리, 말라죽은 가로수들, 성한 창문이 거의 보이지 않는, 한때는 켈베로 운석 관광지로 사람들이 북적였을 거리. 마가렛은 깨진 쇼 윈도 앞에 선다. 이 분쟁지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드레스를 입은 마네킹이 벽에 비스듬하게 머리를 대고 기울어져있다.


 "폐허가 된 관광도시에 홀리 보우를 폐기했다니. 그건 너무 이상하지 않아?"

 "폐허가 된 관광도시라고요? 치직... 쓰레기장이 아니라? 음? 하지만 GPS 상으로는 그곳에는 아무것도... 치직... 치지직..."

 "베로니카? 여보세요? 베로니카?"


 이제는 치직거리는 잡음도 들리지 않는다. 삐이, 하고 전파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리는 연결불가음만이 흘러나올 뿐. 귀를 찌르는 듯한 그 소리에 마가렛은 어깨를 움추리며, 통신기의 전원을 끈다.


 "하아. 뭐어, 분쟁지대의 GPS가 어긋나는 건 자주 있는 일이니까. 어느 정도 오차는 감안해야겠지. 오히려 운이 좋은 편인가. 이 도시를 거점으로 주변을 찾아보면 되려나. 일단은 물을 확보해두고 싶은데."


 혼잣말은 마가렛의 버릇이다.

 게하에서 반역자로 몰린 뒤, 오랜 도피생활을 하며 혼자 스스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해야 했기에 자신과 대화하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그는 천장 유리가 다 깨진 쇼핑거리를 걸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 저 간판. 어릴 때 봤던 영화인데.

 여기서도 인기있었구나."

 

 게하의 거리를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았던 어린 시절.

 이 도시는 그 시절 그 풍경의 편린을 간직하고 있었다. 전부 다 무너진 황량한 풍경이지만, 어쩐지 마음의 갈증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와, 이 옷 봐! 내가 애기 때 입었던 브랜드잖아! 완전 촌스러워!"


 마치 정상적인 마을을 산책하는 것처럼, 마가렛은 여기저기 가게를 기웃거리며 낡아서 제대로 쓸 수도 없는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추억을 회상한다. 게하를 떠난 이후, 마가렛은 이미 혼자놀기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주위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을 정도로 고독은, 마가렛의 일부가 되어 있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알아채지 못했다.

 무너진 쇼핑센터의 천장, 철제 골조물 위,

 누군가가 그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삐, 삐, 삐, 금발, 젊은 여자, 수녀복, 기사의 걸음걸이."


 천제 골조물 밖으로 비죽 튀어나온 더듬이.

 그것이 흔들리며 작은 속삭임이 들려왔다.


 "삐, 삐, 삐, 테이시아 크래프트 발견했다삐!"



 

     ※※※※※※※※※※



 켈베로 운석지대 인근에 있는 이 작은 관광도시.

 상점가 중심에 위치한 백화점 지하 격납고에는, 조명이 켜져있었다. 하이라이트같은 조명을 받고 있는 거대한 파이널 기어. 게하 특유의 새하얀 도장과, 두껍지만 투박하지는 않은 유려한 곡선을 지닌, 거대한 망치를 지닌 기체.


 반역자, 마가렛의 전용기.

 홀리 보우다.


 홀리 보우가 백화점 지하에 옮겨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이주일 전의 일이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불이 켜져있다는 건, 이곳에 이주일 동안 홀리 보우를 옮겨온 자들이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다.


 하이라이트 바깥에서 다섯명의 실루엣이 서 있다.

 그들이 홀리 보우를 옮겨온 자들이다.


 그 중, 누가 보아도 완벽하게 이형의 실루엣인 자가 있다. 머리 옆으로 길고 굵은, 기괴한 절지생물과 같은 실루엣을 매달고 있는 자. 그는 손에 든 무엇인가를 으적으적 씹어먹으며 말한다.


 "삐삐, 니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도착했다는 모양이다. 도적단이 홀리보우를 약탈했다는 거짓정보를 믿었나보다."


 툭, 투둑, 으적으적 씹고 있는 것이 바닥으로 흘러 떨어진다.

 어둠 속이라서 그가 무엇을 먹고 있는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퇴색해져가는 일상에 중독된, 어리석은 자유의 노예가 나타났군."


 그렇게 말한 건 격납고 벽에 등을 기대고 있는 실루엣이다.

 격납고 안이 침묵으로 가득 찬다. 벽에 등을 기댄 실루엣은 조금 멈칫하다 다시 입을 뗀다.


 "이게 이 세상의 진실이지만..."

 "거기까지 하자, 나오미."


 나오미라 불린 자를 제지한 것은, 두터운 베레모와 목도리를 두른 것 같은, 마치 눈사람을 연상시키는 실루엣이었다. 아무래도 그 자가 나오미보다 더 서열이 높은지, 나오미는 곧바로 입을 다문다.


 "파괴마녀는 지금 어디있지?"


 파괴마녀, 솔라를 언급한건 몸에 착 달라붙는 슈트를 입고 있는 여인의 실루엣이다. 그녀는 마치 혼자 진영이 다른 사람처럼 다른 실루엣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서 있다. 우적우적, 무엇인가를 계속 집어먹는 실루엣이 그 실루엣을 바라본다.


 "삐삐, 솔라는 게하의 기사와 분쟁이 벌어진 모양이다.

 그쪽 사람이 문제를 일으킨거같다. 어서 물려줬으면 좋겠는데."

 "게하 기사가? 에스메랄다인가? 당분간 군사 행동을 금하라고 압박을 넣어놨을텐데. 기다려봐. 햅닉 백작에게 연락해서 처리하지."

 "에스메랄다 아니다. 베르나데트라는 이름이다."

 "와, 씨발! 거기서 베르나데트가!?"


 슈트를 입은 실루엣이 자신의 앞머리를 쥐어뜯듯 움켜쥔다.


 "미치겠네, 그새끼는 사람새끼가 아니라서 말로 컨트롤이 안되는데! 진짜로 베르나데트래?"

 "솔라가 보기에도 사람새끼는 아닌거 같다니까 맞는거같다."

 "돌아버리겠구만!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죽여야 하는데! 파괴마녀 없으면 그거 잡을 수나 있겠냐!"


 그 순간, 격납고가 침묵으로 가득 찬다.

 아니, 침묵으로 가득 찬 것이 아니다.

 슈트를 입은 여자, 그 여자를 향한 매서운 시선으로 가득 찬다. 어둠 속이었지만, 자신을 향해 꽂히는 날카롭고 형형한 눈빛만큼은 똑똑히 볼 수 있었으니까. 


 "니아를 무시했다."


 우적, 우적, 손에 든 것을 씹어먹고 있는 실루엣.

 슈트를 입은 여자의 목소리가 떨린다.


 "아냐, 아냐, 아냐! 너희를 무시한 건 아니야!"

 "니아를 무시하는 사람은 무사할 수 없다."

 "그, 그렇지! 그거 맘에 들었어? 하나 더 줄게!"

 "세개 더 주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다."

 "알겠어! 세개 줄게, 세개!"


 슈트를 입은 여자가 딱 하고 엄지와 중지를 부딪혀 소리를 낸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인간의 실루엣 셋이 일어난다. 그것은 비틀비틀,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걸으며 절지동물같은 머리를 지닌 실루엣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절지동물같은 존재는 그 인형을 붙잡아 지익, 머리를 뜯어내고 우적우적, 또다시 씹기 시작한다.

 

 "우욱."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나오미라는 실루엣이 손으로 입가를 가린다.

 눈사람 같은 실루엣이 자신의 가슴 위에 손을 얹었다.


 "피닉스님, 파괴 마녀가 없어서 불안해하시는 마음은 알겠습니다. 저희는 어디까지나 마녀분들을 보좌하는 견습 파일럿들이니까요. 하지만 저희의 실력까지 무시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게다가 이곳에는 테이시아를 확실하게 막아낼 수 있는 저의 자신작이 있으니까요."


 눈사람 실루엣이 어둠 속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아라미스전 결전병기 히트베리가 말이에요!"


 그곳에는 붉은 빛이 감도는 거대한 기계의 실루엣이 보인다.


 "스모라 선생님께서 개조해주신 저의 전용기는 테이시아 크래프트라도 부술 수 없어요. 만에 하나 테이시아가 아라미스를 꺼냈을 경우에는 이걸로..."

 "진정해, 제노비아. 히트베리를 쓰는건 우리의 청운에 어둠에 다크가 감도는 최악의 경우일 때다."

 

 나오미가 벽에서 등을 떼어낸다.

 저벅저벅, 지하격납고의 출구 쪽으로 걸어간다. 


 "이봐, 어딜 가는거지?"


 피닉스의 질문에 나오미가 씨익, 웃으며 출구를 열었다.


 "어떤 식으로든 죽이면 되는거잖아, 테이시아 크래프트."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암살하기 위해 파견된 헥셀 국립 아카데미 파일럿 연구부. 그들은 아직까지 자신들이 사람을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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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vs 나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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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핑센터 2층, 마가렛은 매대가 다 쓰러진 편의점에 들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텅빈 도시는 도적단과 용병단의 거점으로 이용되는 일도 많았으리라. 그러니 잡화라면 몰라도 식료품이라면 남아있지 않을텐데.


 난장판이 된 편의점 입구에 박스가 놓여있다.

 콜라와 통조림이 들어있는 박스다. 마치 아무나 먹으라고 잘 보이는 곳에 누군가 놔둔 거 같은 모양새다.


 "...수상해."


 마가렛은 통조림을 들어 브랜드를 살펴본다. 


 [BJ샤디티의 배빵받고 생일빵 통조림]

 [에기&페기의 한끼든든 곱창볶음]

 [엘리자베스의 참치마요참지마요샐러드]

 

 "너무 최신 제품들 아냐?"


 소비자를 유혹하는 최신 인기연예인 상품들이지만, 10년 전에 폐허가 된 이 도시에 있을만한 상품은 아니다. 마가렛은 통조림 뚜껑을 검지로 긁어본다. 손끝에는 먼지하나 묻어나지 않는다.


 "누군가, 있는건가."


 자신의 전용기 홀리 보우를 폐기하러 온 게하군이 남기고 간 음식인걸까. 마가렛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곳에 음식을 버리고 가면 도적단과 용병단에게 보급을 주는 꼴이나 다름없다.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는 게하군이 그런 허술한 일을 벌일 리 없다.


 더군다나 [BJ샤디티의 배빵받고 생일빵 통조림].

 이것은 게하에서는 유통이 금지된 음식이다. BJ샤디티는 게하에 관한 가짜뉴스를 만들고 퍼트리는 일급 반역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 머물다 간 사람은 게하군은 아니다.


 "...괜찮겠지."


 게하군의 흔적이 아니라는 생각에 마가렛은 안도한다. 마가렛은 빵조림의 뚜껑을 딴다. 달콤한 크림 향기가 지난 일주일 동안 여행식만 먹은 마가렛의 코를 자극했다. 통조림에 동봉된 포크를 들어 크림범벅인 케이크를 잘라 입으로 옮겨넣는다.


 "달지 않아서 좋다."


 통조림 박스 앞에 쪼그려 앉아 크림 케이크를 퍼먹는 마가렛의 모습은, 마치 쓰레기통을 뒤져먹는 버려진 개처럼 보이리라. 마가렛은 자신이 귀족이었다는 것도 잊어버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빵을 집어먹는다. 상한 음식은 아닐까 걱정도 조금은 되었지만 문제는 없었다. 포크에 남은 크림을 날름날름 햩으며 마가렛은 다른 통조림에 손을 뻗는다.


 [에기&페기의 한끼든든 곱창볶음]


 마가렛이 먹은 여행식은 칼로리를 확보하기 위해 당분과 지방질을 농축한 블럭이다. 화이트초콜릿과 비슷한 물건이라고 해야 할까. 매운맛과 같이 독특한 맛에 굶주려 있던 마가렛은 곱창볶음 캔을 따고, 포크로 곱창을 찍어 휘젓는다.


 보기만 해도 매운 빨간 국물이 곱창의 안에 흠뻑 담기도록.

 곱창의 내부에 국물이 가득 담겼을 때, 빠르게 포크를 들어 입 안으로 옮긴다.


 "매워. 맛있다."


 달지 않은 크림이 지나간 혓바닥 위에 매운 소스가 덮히며 미각을 자극해온다. 담백한 고기의 맛이 매운 맛 위로 덮히며 곱창을 씹을 때마다 입 안의 맛이 변화를 일으킨다. 후하 후하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곱창을 집어먹던 마가렛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적어. 너무 맛있는데 적어."


 캔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는 마가렛의 눈에 캔이 하나 더 보인다. 


 [엘리자베스의 참치마요참지마요 샐러드]


 마가렛은 그것을 딴다. 포크로 참치마요를 살짝 찍어 입안에 넣고 곱씹는다. 그러다 참치마요를 한스푼 푹 퍼더니, 곱창캔안에 살짝 담궈 소스를 묻히고 입에 집어넣는다. 마가렛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이거다!"


 마가렛은 곱창캔의 국물을 참치마요 캔에 조금 흘려넣는다. 포크로 휘적휘적 참치마요를 잘 섞어, 주황색이 된 부드러운 덩어리를 입 안에 집어넣는다. 그것이 혀 위에 내려앉은 순간, 마가렛은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너무, 맛있어!"


 곱창전골소스의 매운 맛을 마요네즈의 기름기가 딱 좋은 느낌으로 잡아준다. 부담없이 쑥쑥 들어가면서도 질리지 않는 맛. 마가렛은 순식간에 참치마요 캔을 끝까지 비워버리고 만다.


 "하아, 오랜만에 사람같은 식사를 했네."


 참고로 이 여자, 일년 전까지만 해도 매 끼니마다 두꺼운 스테이크와 신선한 과일을 마음껏 먹었던 귀족영애다.


 "일용할 양식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미래에 광명이 있기를."


 마가렛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콜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콜라 뚜껑을 비틀어 열었지만, 치직, 하는 시원한 김빠지는 소리는 전혀 없었다. 마치 누가 열었다 다시 닫아둔 콜라처럼. 하지만 마가렛은 그에 관해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통조림이 멀쩡했으니 콜라도 멀쩡할 것이다.

 마가렛은 페트병 입구에 주둥이를 대고 꿀꺽, 꿀꺽, 검은 내용물을 들이마신다. 한모금, 두모금, 세모금, 그리고 마가렛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흣!? 쿠, 쿠헉, 콜록, 우, 우욱!"


 마가렛은 자신의 입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넣는다. 억지로 목젖을 건드려 게흑, 구흑, 거리는 소리를 내며 토악질을 시작한다. 마가렛이 먹었던 음식이 다시 바닥으로 쏟아져나온다. 익히지 않은 피자처럼 뒤섞인 토사물들이 쏟아진다.


 "독...!"


 비틀, 마가렛의 무릎에 힘이 빠진다. 바로 토해낸 덕분에 완전히 몸에 흡수되는 건 피할 수 있었지만, 상당히 흡수가 빠른 즉효성의 독인 듯하다. 근육을 이완시키는 종류, 라는 것 밖에 모르겠다. 치명적인 종류인가? 아니면 제압할 때 쓰는 종류인가?


 "제, 제길..."


 마가렛은 벽에 손을 짚고 비틀거리며 도망친다. 통조림은 미끼였다. 진짜 독은 콜라에 들어있던 것이다.


 "노예, 상인의 덫인가."


 의식이 또렷한 것을 보면 치사성의 독은 아니다. 게하 노예 상인이 둔 덫일까. 아니, 그럴리 없다. 마가렛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노예 상인은 가난한 시골에서 사람을 납치한다. 이렇게 아무도 없는 폐허에서 납치를 시도하는 노예상이 있다면 멍청이다.


 그럼 대체?

 마가렛은 깨닫는다.


 "나를, 노리고 있는건가."

 "정답이야. 그건 전부 십자가에 매달릴 희생양을 위해 준비한 최후의 만찬이지."


 그 중얼거림에 화답하듯 마가렛의 앞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검은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헥셀풍의 캐주얼룩을 걸치고 있는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였다. 마가렛은 늘어진 턱에 간신히 힘을 주며 묻는다.


 "헥셀, 인간이 어째서, 나를."

 "헥셀과 게하는 운명적인 대립을 타고난 쌍둥이 자리. 적을 향한 그런 질문은 어리석은 자유의 노예들이나 하는 것이겠지."


 난해한 문장을 자랑스레 줄줄이 늘어놓는 여자, 나오미다.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못하겠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전시하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비참한 가축이구나."


 나오미는 허리춤에서 나이프를 꺼내들어 마가렛을 겨눈다.


 "네 야만적이고 아둔한 지능으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이제부터 쉽게 말해주지."


 난해하게 말한건 컨셉이었나보다.

 나오미가 선언한다.


 "넌 여기서 내 손에 죽는다, 테이시아 크래프트."


 마가렛의 두 눈이 크게 떠진다.

 나오미가 한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이시아, 크래프트?"

 "그래, 테이시아 크래프트."


 확실히.

 자신과 테이시아는 어린 시절부터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금발에 새하얀 피부, 마른 체격, 기사 가문 특유의 걸음걸이 등. 하지만 몇가지 특징들이 비슷할 뿐, 테이시아와 마가렛이 쌍둥이처럼 똑같이 생긴건 아니다.


 '이녀석은, 진짜 테이시아를 본 적이 없는 놈이로군.'


 마가렛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순식간에 이해했다. 눈 앞에 있는 이 헥셀 암살자는 자신을 테이시아 크래프트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하, 아하하핫! 도, 독같은, 비겁한 수단으로, 테이시아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허세부리는거 다 보이거든. 근육이완제 효과가 퍼지고 있잖아."


 나오미가 양손으로 나이프를 쥐고, 바닥을 박찬다. 마가렛은 그 찌르기를 피하려 황급히 몸을 틀었지만, 몸에 퍼진 이완제의 효과 때문에 반응이 늦어지고 만다. 마가렛의 새하얀 뺨에 붉은 선이 한줄기 그어진다. 피가 뺨을 따라 흘러내린다.


 "아아, 맞아. 말해두는거 까먹었는데."


 나오미가 나이프를 빙글빙글 돌리며 마가렛을 향해 몸을 돌린다.


 "네가 마신건 신경독이 아니라 근육이완제거든. 칼맞으면 아프다?"

 "그게, 어쨌다고."

 "이해 못했어?"


 히죽, 나오미가 미소를 짓는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피가 더 빨리 돌겠지? 그러면 이완제가 점점 더 근육 깊숙히 퍼지겠지? 결국 꼼짝도 못하고 쓰러지게 될거야. 그러면 나는 쓰러진 네 위에 올라타 칼을 쑤셔넣겠지. 그런데 반응이 없으니까 확실히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 알 수 없잖아?

 그러니까 쑤시고, 쑤시고, 쑤시고, 또 쑤실거야.

 배를 가르고 내장을 하나 하나 뽑아낼거야.

 네가 살아있던 말던 그렇게 해체할 예정이거든?"


 나오미가 나이프를 고쳐쥐고 마가렛을 겨눈다.


 "그러니까 입이 살아있을 때 할말을 해둬. 아픈건 싫으니까 가장 먼저 목부터 따달라고 하면, 그 정도 부탁은 들어줄게. 타인의 아픔에 공감 못하는 싸이코는 아니거든, 나."

 "싸이코, 같으니."


 마가렛이 쇼핑센터 벽에 기대있던 대걸레를 집어든다.

 나오미가 키득거리며 웃는다.


 "넌 걸레가 참 잘 어울리는구나?

 평생 걸레를 물고 사는 신분으로 태어났더라면 이렇게 비참하게 죽는 일은 없었을텐데. 어떻게 하겠어? 신분제 사회에서 태어난 이상 제 숙명이라 생각해야지."


 나오미가 나이프를 든 손을 휘두르며 마가렛을 향해 달려간다.


 "넌 귀족으로 태어난 죄로 죽는거야, 테이시아 크래프트!"


 마가렛이 대걸레자루를 휘둘러 나이프를 튕겨낸다. 검의 달인인 테이시아와 달리, 마가렛은 할버드와 같은 창의 달인이다.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지금쯤 나오미는 명치에 대걸레 자루를 맞고 일격에 기절했으리라.


 하지만 몸에 퍼진 근육이완제.

 걸레자루를 컨트롤 하는 것 이전에 발걸음을 떼는 것조차 힘들다.


 한번, 두번, 세번, 그리고 십여번, 나이프를 튕겨냈을 때, 

 마가렛의 턱에서는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깨도 이미 축 늘어져 대걸레자루를 손에 쥐고만 있을 뿐,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는 상태다. 나오미가 나이프를 든 손을 허리 뒤에 붙이고, 종종걸음으로 마가렛의 주위를 맴돈다.


 "이건 끝났네. 이완제가 완전히 퍼졌어.

 솔직히 말해 놀랐어. 열번이나 나이프를 받아쳐낼줄은 몰랐거든. 나, 손목이 망가진거 같아. 여기 퉁퉁 부은거 보이지? 안보여?"


 나오미가 마가렛의 코앞에 다가가 오른쪽 손목을 들이댄다. 나오미의 오른손목은 탈골되어 꺾여서는 안되는 모양으로 꺾여있다. 마가렛이 쳐내는 힘을 손목이 감당하지 못한 것이다. 나오미는 왼손으로 나이프를 쥐고, 칼날로 마가렛의 뺨을 톡톡 두드린다.


 "난 아픔을 잘 참는 성격이라 비명을 안질렀지만, 솔직히 말해 진짜 아프거든. 응, 이 아픔은 정말 견디기 힘드네. 그러니까 난, 네가 적이라 해도 아픔을 느끼지 않길 바래."


 히죽, 나오미가 눈웃음을 짓는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


 나오미의 나이프가 마가렛의 오른쪽 허벅지를 찍어내린다.


 "!!!!!!!!!!!!!!!!!"


 마가렛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휘청, 자리에서 쓰러지고 만다. 고통 때문에 저절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온다.


 "응? 별로 깊이 박은건 아냐. 신경이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했거든."


 나오미가 자신의 부어오른 오른손목을 보란듯이 흔든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 위험하잖아?"

 "흐윽, 으, 흐윽...!"


 마가렛은 엎어진 채, 바닥에서 허우적거리며, 나오미에게서 떨어지려 한다. 하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는 꼴이 될 뿐이다.


 콱.

 나오미가 부츠발로 마가렛을 걷어찬다.


 "커흑!"


 마가렛의 몸이 천장을 보도록 뒤집어진다. 


 "일류 검객님, 그러면 안되잖아?"


 나오미가 마가렛의 배 위에 올라탄다.


 "적의 칼 끝은 똑바로 봐라고 안배웠어?"


 피에 물든 나이프를 역수로 들고 마가렛의 턱을 붙잡는다.

 고개를 돌리지 못하도록. 그때였다.


 "며, 며치..."

 "어?"


 입술을 간신히 더듬거리며, 풀어진 혀를 안간힘을 써 굴리며, 마가렛이 중얼거린다.


 "며, 며치, 때혀주세혀..."

 "명치를 때려달라고?"

 "네, 네헤..."


 나오미는 얼굴을 굳힌다.


 "그렇구나. 아픈건 싫고, 죽는 것도 싫으니까. 한방에 기절시킨 다음에 끝내달라 이거지? 응, 이해해. 나도 네가 고통을 겪길 원하지 않으니까 최선을 다해 네 마지막 부탁을 들어줄게... 하지만..."


 나오미는 왼손 주먹을 꽈악 쥔다.


 "나, 왼손에는 별로 힘이 없거든."


 그는 히죽하고 그 기분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까 몇대를 맞아야 기절하게 될지는 나도 몰라!"


 나오미의 주먹이 마가렛의 명치를 내려찍는다.

 마가렛이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서린 건 바로 그때였다.


 "에?"


 무언가가, 잘못되었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기도 이전에, 나오미의 주먹이 마가렛의 명치를 때린 그 순간, 마가렛의 명치 바로 위에서 무엇인가가 파직, 하고 깨진 순간, 


 "하, 아, 하갸캬하아아아악! 악! 악! 악악악!"


 나오미의 왼손을 타고, 고압의 전류가 전신을 관통했다.


 "스, 스턴, 건, 이, 이런걸, 몸에 붙이고, 쓰면, 자기도, 죽을텐데...!?"


 나오미가 입고 있던 합성섬유 옷은 고압전류에 불타 연기를 뿜으며 녹아내린다. 그의 온몸에도 붉고 검은 화상이 가득하다. 파들파들 떨던 나오미의 눈동자가 마가렛의 가슴 사이를 바라본다.


 전류에 타들어간 수녀복 아래 드러난 마가렛의 가슴, 그 사이에 있는 고압전류 발생장치. 그러나 단순한 스턴건은 아니었다. 스턴건 회로의 한 중심에 있는, 푸른 삼각형의 칩을 본 나오미의 동공은 경악으로 수축한다.


 "에, 에너지, 실드...!"


 마가렛의 피부는 불그스름한 광택을 띄는 플라즈마 실드에 덮혀있었다. 나오미의 주먹이 명치에 가한 충격으로, 스턴건이 작동한 순간, 플라즈마 실드 또한 동시에 작동하여 마가렛에게 흘러들어가야 할 전류를 바깥으로 튕겨낸 것이다.


 그 바깥이 '나오미'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통상적인 불법개조스턴건의 두배 위력.

 이것을 맞고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나오미의 동공이 눈꺼풀 위로 올라간다. 새하얀 흰자를 드러낸 채, 옷이 다 타버려 화상을 입은 온 몸을 드러낸 채, 나오미는 털썩, 옆으로 쓰러지고 만다.

 

 "살았...다."


 마가렛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




 백화점 지하 격납고.

 절지동물과 같은 실루엣을 지닌 여자.

 니아가 고개를 들었다.


 "삐삐. 니아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오미가 당했다."


 격납고 안을 무거운 침묵이 채운다.

 그 침묵을 깨트린 건 헥셀인들과 거리를 두고 있던 한 사람.

 슈트를 입은 여자, 피닉스였다.


 "그것봐, 테이시아 크래프트는 만만한 녀석이 아니라니까.

 그녀석은 게하 검술대회 우승자야. 육탄전에서 그녀석을 이길 수 있는 상대는, 내가 아는 한 쿠죠 아야 정도라고."


 눈사람과 같은 실루엣을 지닌 여자가 니아를 바라본다.


 "나, 나오미는, 나오미는 그럼 어떻게 된거죠?"

 "타버렸다. 유감이다, 제노비아."

 "아, 아악! 안돼! 나오미! 나오미!"


 제노비아가 무릎을 꿇고 오열한다.

 그러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


 "히트베리를 출격시키겠어요. 허락해주세요, 니아님!"

 "안된다. 니아는 거절한다."

 "어째서요! 테이시아가, 테이시아 그년이 나오미를 죽였다고요!"

 "이곳은 분쟁지대지만 게하의 영역이다. 파이널 기어를 출전시키면 게하에게 꼬투리를 잡히게 된다. 히트베리는 정말로 최후의 수단이다."

 "테이시아를 죽여달라고 한 건 릴리안이잖아요!"

 "암살을 부탁했지, 전쟁을 부탁한건 아니다. 냉정해져라, 제노비아."


 그 순간, 제노비아의 귓가에 메아리치는 듯한 신비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제노비아는 조금 쉬게 하는게 좋겠다삐."

 "미나즈키?"


 제노비아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피닉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니아를 바라본다.


 "정말이지, 외계통신은 봐도 봐도 익숙해지질 않는다니까. 전파방해기 때문에 보통 통신방법은 쓸 수 없다고 하지만."


 미나즈키의 목소리가 니아와 제노비아의 뇌리에 울려퍼진다.


 "아무 걱정도 하지마라, 제노비아!

 나오미의 복수는 이 미나즈키가 갚겠다, 삐삐!"


 제노비아가 놀란 얼굴을 하고 허공을 바라본다.

 마치 거기에 미나즈키가 있기라도 한것처럼.


 "섵부르게 행동하지마, 미나즈키! 상대는 테이시아 크래프트야! 절대로 얕봐서는 안되는 자야! 일단 돌아와서 작전을 짜자!"

 "그랬다간 테이시아가 도망칠거다삐. 테이시아는 이미 나오미가 드랍한 해독제까지 마셨다삐. 앞으로 한시간 안에 결판을 내지 않으면 우리의 승산은 줄어들거다삐."


 제노비아가 니아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니아님! 히트베리 출격을 허락해주세요! 제발!"


 니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테이시아는 미나즈키에게 맡기겠다."

 "라저, 삐삐!"

 

 제노비아가 분한 나머지 울음을 터트린다.


 "어째서요, 니아님!"

 "미나즈키는 테이시아의 실력과 강함을 바로 곁에서 목격해 보고하고 있다. 테이시아에 대해 더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건, 제노비아 네가 아니다."


 니아는 또박 또박 강조해 말한다.


 "미나즈키다."

 "하지만 미나즈키까지 잃는다면, 저는..."

 "나오미가 죽은 탓에 네 상상 속의 테이시아는 괴물이 되었다. 하지만 테이시아 크래프트도 결국은 인간."


 니아는 히죽, 미소를 지으며 손에 든 덩어리를 와직 씹어먹었다.


 "진짜 괴물인 미나즈키를 상대로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제노비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굴을 양손에 묻고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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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아의 캐릭성이 묘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말았어!


일단 한명은 처리.

앞으로 두명남았다.


다음화는

마가렛 vs미나즈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