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의 휴일 프롤로그 https://arca.live/b/finalgear/34614734

마가렛의 휴일 1화 https://arca.live/b/finalgear/34660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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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아, 하아, 게흑, 허윽...!"


 오른쪽 허벅지에서 피를 흘리고, 이완제 탓에 방광까지 풀린 탓에 피가 아닌 액체까지 줄줄 흘리면서도, 상체의 옷이 절반 이상 타들어가 밑가슴을 다 드러낸 비참한 모양으로, 비틀거리며 쇼핑센터 안을 걷고 있는 여자가 있다.


 게하의 반역자,

 기사 마가렛이다.


 그는 대걸레자루를 지팡이삼아 짚고 성한 다리에 힘을 주고 간신히, 간신히 멈춘 에스컬레이터를 밟고, 윗층으로 올라간다. 마가렛이 목표로 하고 있는 곳은 쇼핑센터 중간에 위치한 고급 여성복 코너.


 나오미의 시체를 뒤져 찾아낸 해독제를 먹었지만 앞으로 한시간 동안은 제대로 움직일 수 없으리라.


 "테이시아, 크래프트라고?"


 그럼에도 마가렛에게는 지금 움직여야 할 이유가 있었다. 지금 자신을 노리는 암살자들은 마가렛을 테이시아로 오해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던 테이시아가 위험한 암살자들에게 노려지고 있는 것이다.


 게하에 미련은 없다.

 하지만 친구가 위험에 빠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그렇기에 마가렛은 비틀거리며 귀족 여성복 코너를 배회한다. 가능한 고귀한 귀족 여성을 연상시키는 옷이 쌓여있는 곳을 찾아. 물론 관광객 대상의 서민 쇼핑센터에 진짜 '귀족' 여성복이 있을리 없다. 그럼에도 '귀족'스러워 보이는 드레스는 찾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눈속임은 되겠어."


 아무도 없는 쇼핑몰이다. 마가렛은 아무 거리낌없이 타들어가 넝마가 된 옷을 거의 찢다시피 벗어내린다. 스타킹을 집어 들어 허벅지의 상처를 꽈악 묶어 지혈하고, 프릴과 레이스가 잔뜩 달린 드레스를 걸친다.


 진짜 '귀족' 드레스가 아닌게 다행이었다.

 진짜는 혼자서는 절대로 못입으니까. 어디까지나 귀족의 겉모습만을 흉내내 만든 서민용 드레스였기에, 다친 마가렛 혼자서도 손쉽게 입을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서민용 드레스의 짧은 치마가 거슬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움직이기 편하니 고마울 정도다. 마가렛은 벽에 걸린 장식용 검을 집어 발도한다.


 "역시, 날이 없군."


 검신은 번쩍번쩍한 스틸강이었지만 칼날이 전혀 벼려있지 않다. 하지만 칼날을 벼려둔 느낌이 나도록 갈아진 무늬는 있었기 때문에, 마가렛의 목적을 달성하기에는 딱이었다. 깨진 거울 앞에서 마가렛은 검을 들고 자세를 취한다.


 "안녕하십니까, 테이시아 크래프트라고 합니다."


 귀족적인 드레스를 입고, 검을 들고 있는 여자.

 게하 최고의 검술명가, 크래프트 가문의 공녀.

 시선을 내려 드레스의 앞트임 부분을 본 순간 파핫, 마가렛은 헛웃음소리를 냈다.


 "테이시아를 본 사람이라면 바로 알아채겠지요."


 암살 대상에 대한 정보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어설픈 암살자들. 그럼에도 그들은 위협적이었다. 마가렛은 불법 개조한 전신 스턴건을 이용해 적을 쓰러트렸지만, 만약 자신이 아니라 테이시아가 나오미의 함정에 걸렸다면, 결말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게하 기사들은 전신 스턴건 같은 비열한 무장을 하지 않으니까.

 오히려 자신이 테이시아 크래프트라고 믿었기에, 그런 비열한 호신구를 숨기고 있지 않을거라고, 암살자는 믿어버린 것이다. 기왕 이렇게 된 이상, 이쪽에서 적극적으로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위장하는 편이 그들을 대적하기에 유리하다. 마가렛은 그렇게 판단했다.


 왼손으로는 대걸레 자루를 쥐고, 오른손으로는 날없는 검을 들고, 마가렛은 비틀, 비틀, 쇼핑센터를 걷는다. 귀에 신경을 집중하고, 주위를 살피며 최대한 사각이 없는 곳을 향해 움직인다. 언제 어디에서 암살자가 나타나도 대응할 수 있도록. 테이시아를 노릴 정도의 암살자가 한명 뿐일 리는 없으니까.


 바스락.

 마가렛의 뒤쪽에서 인기척이 난다.


 "누구냐!"


 마가렛은 검을 높이 들어올리며 뒤를 돌아본다.


 "기사, 테이시아 크래프트!

 도전은 거절하지 않습니다!

 모습을 드러내십시오!"


 그리고, 등 뒤에 있는 자를 본 순간,

 마가렛의 동공이 작게 줄어들었다.


 "워우, 워우, 얘야. 여전히 난폭하구나.

 좀 예의발라질 수는 없겠니?"


 반백의 머리카락을 지닌 초로의 남성이 양손을 들고 미소짓고 있었다. 그 곁에는 젊은 시절의 미모가 쉽게 상상되는,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장년의 여인이 서 있다. 마가렛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엄마,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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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S 미나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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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안돼! 엄마와 아빠는 이미...!"


 마가렛은 뒷말을 잇지 못했다.

 당연하다. 눈 앞에 엄마와 아빠가, 자신이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큭!"


 마가렛은 검을 겨눈 채 뒤로 물러난다.


 "다가오지마요! 당신들은 가짜에요!"


 또 독에 당한건가? 환각제? 아니면 증강현실로 구현한 홀로그램? 마가렛은 여러가지 가능성을 검토해본다. 마가렛이 우물쭈물하고 있던 그때, 마가렛의 아버지가 저벅, 저벅, 마가렛에게 다가온다.


 마가렛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뒤로 물러난다. 아니, 물러나려 했다. 베여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허벅지 때문에 바닥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기 때문이다.


 "얘야, 조심해야지!"


 마가렛의 어머니가, 마가렛에게 다가온다.


 "히익!?"


 마가렛이 성한 발로 바닥의 타일을 밀며, 앉은 채 뒤로 도망치려 한다.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거지? 이게 환각이라면 현실의 내 주변은 대체 어떻게 되어있는거지?


 "얘야! 너, 다리에 상처가 났잖니?"


 마가렛의 아버지가 마가렛의 다리를 만진다.

 허벅지에 닿는 거친 남자의 손.


 그것은, 따뜻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아버지의 온기였다.


 "여보, 애가 많이 놀랐나봐요."

 "그래. 저렇게 큰 사슴은 나도 처음 봤어. 놀랄 법도 하지."

 "사슴?"


 마가렛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가렛의 아버지가 손을 들어 어깨 너머를 가리킨다.


 "어?"


 깨닫고보니 주변은 숲이었다. 하인이 둘이나 달라붙어 거대한 사슴을 짊어메고 있었다. 마가렛의 어머니가, 마가렛을 향해 손을 내민다.


 "일어날 수 있겠니?"


 마가렛의 아버지가 핀잔을 주듯 말한다.


 "얘는 내 뒤를 이어 무인이 되어야 할 아이니 너무 응석을 받아주진마요. 나뭇가지엔 다리가 살짝 까진거 뿐이니, 이 정도는 당연히 스스로 일어설 수 있어야지."


 다리가 살짝 까진것 뿐이라고?

 마가렛은 자신의 허벅지를 내려다본다. 그곳에는 나오미의 나이프에 베인 깊은 상처가 없다. 정말로 나뭇가지에 스친 생채기만이 있을 뿐이었다.


 진짜인가?

 마가렛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비틀거리지도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어떤 지지대도 없이 마가렛은 두발로 설 수 있었다.


 "아프지... 않아?"

 "그래, 그래. 그 정도는 아프지 않아."


 아버지의 손이 마가렛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어? 어어? 이게, 대체 무슨?"


 혼란스럽다.

 자신은 분명 방금 전까지 헥셀의 암살자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참이다. 이완제에 중독되어 소변조차 제대로 참을 수 없었고, 다리를 깊게 베여 마대자루 없이는 걸을 수도 없었다.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는 듯 자신의 몸에는 그 어떤 고통도, 그 어떤 이상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가렛은 잎사귀를 따본다.

 작은 잎사귀를 손 안에서 짓이기고, 냄새 맡아보고, 입 안에 집어넣어 씁쓸한 맛을 보고, 퉤, 하고 뱉어낸다. 


 가상현실이나 환각을 구분하는 방법.

 그건 가상현실의 목적과 무관해보이는 가장 디테일한 부분의 감각을 확인해보는 것이다. 작은 잎사귀에는 촉감도, 후감도, 미감도 존재했다.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존재하는 환각이라면, 이렇게 디테일하게까지 재현했을 리 없다.


 따라서 이것은 현실.

 ...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해도, 괜찮은거죠?"


 마가렛은 울먹이며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마가렛의 아버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응? 뭐가 말이니?"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가렛은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내며 씨익 웃는다.


 "사슴고기, 바베큐가 먹고 싶어요!"


 그렇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죽은 것도,

 자신이 홀로 당주가 된 것도,

 자신이 반역자로 몰린 것도,

 릴리안 여왕이 자신을 함정에 빠트린 것도,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이 방랑하게 된 것도,


 전부 현실이 아니다.

 이것이 현실이었던 것이다.


 활짝 웃는 마가렛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은 틀림없이 기쁨의 눈물이었다.



※※※※※※※※※※※※※



 백화점 지하 격납고.

 피닉스는 방해전파로 먹통이 된 단말기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며 앓는 소리를 낸다.


 "아, 파멸마녀는 왜 이렇게 안오는거야.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여기 있는데."

 "광견을 묶어두지 못한 건 그쪽의 과실이다.

 솔라에게는 잘못없다고 니아는 말한다."

 

 니아는 마치 중력을 거스르는 존재처럼 벽에 맨발을 딛고 서 있다.

 자세히보면 머리에서 돋아난, 절지동물같은 굵은 촉수를 콘크리트 벽에 박아넣어 서 있는 것이다. 니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진한 얼굴로, 지나치게 순진해서 인간의 순진함을 의태하고 있음이 분명한 얼굴로 피닉스를 바라본다.


 "윽."


 피닉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 눈을 피한다.


 "이쪽 책임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어."

 "무슨 책임?"

 "그쪽 팀에 피해가 간거 말야. 그러니까 여왕에게 건의해볼게. 헥셀 쪽의 운석채굴권을 조금 더 인정해주면 안되겠냐고 말야."


 홀리 보우 앞에서 훌쩍훌쩍 흐느끼고 있던 제노비아가 고개를 들었다.


 "나오미가 죽었는데, 운석채굴권이 다 무슨 소용이에요!"

 "정말로 그건, 유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유감이든 말든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요!"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아니다.

 피닉스는 고개를 푹 숙이고 푸념한다.


 "하아. 썩을 변형자년이랑 손을 잡는게 더 나았겠구만. 이래서 애새끼들이 진짜 싫다니까. 저딴 멘탈로 무슨 암살을 한다고."

 "피닉스."


 니아가 홱, 고개를 돌린다.

 우득, 하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니아의 머리는 틀림없이 꺾여서는 안되는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전히 순진한 미소를 지은 채로, 니아는 피닉스를 바라보고 있다.


 호러다.

 완전히 호러다.


 "어, 왜, 왜 그래?"

 "만약 피닉스가 통속에 담긴 뇌라면?

 어떤 미친 외계인이 그 뇌를 실험하고 있는거라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너!?"


 니아가 벽에 매달린채로, 진자처럼 몸을 까닥까닥 흔든다.

 피닉스가 있는 위치에서 보면 몸이 흔들리는데도 머리는 계속 같은 곳에 고정되어 있다. 니아의 목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닉스는 금새라도 니아가 목을 길게 늘려, 자신의 머리를 뜯어먹을까봐 겁에 질리고 만다.


 "워우, 워우, 진정해! 필요하면 다른 녀석들의 뇌를 줄테니까!

 내 뇌는 절대로 안돼!"

 "무슨 소리? 니아는 피닉스가 하는 말을 이해 못하겠다."

 "내 뇌를 실험하고 싶다고 말한거 아냐!?"


 바로 그때였다.


 "미나즈키의 능력."


 미친 여자처럼 흐느끼고 있던 제노비아가 고개를 돌려 피닉스를 바라보았다. 머리카락이 눈물에 젖어 한쪽 눈을 덮어 완전히 가리고 있다. 더 이상 퍼낼 슬픔조차 남지 않은걸까, 히죽, 히죽 웃으면서 피닉스를 바라본다.


 "미나즈키는 어떤 사람이든 통속의 뇌로 만들 수 있어요."

 "인간을, 통속의 뇌로 만든다고?"


 피닉스의 머릿속에 끔찍한 상상이 떠오른다.

 어깨를 부르르 떨며 전율하는 그를 니아는 지긋이 바라본다.


 "미나즈키는 우리 가운데서도, 매우 특별하다고 니아는 말한다.

 미나즈키는 인간을 잘 이해하고 있다. 니아에게 인간은 재미있는 장난감이거나, 맛있는 먹을거리지만, 미나즈키에게는 다르다. 미나즈키에게 인간은 특별하다고 니아는 말한다."

 "인간을 통속의 뇌로 만드는게 잘 이해하는거야!?

 나도 나지만 너희 괴물들... 외계인의 감각은 정말 모르겠어!"


 제노비아가 키득, 키득 웃는다.


 "뇌를 꺼내서 무서운게 아니에요.

 미나즈키는, 뇌를 꺼내지 않고도, 인간의 뇌를 주무르지요."

 "무슨 소릴 하는거야, 너."

 "미나즈키는, 인간의 감각과 이성으로는 절대로 구분할 수 없는 환각을 만들어요. 피닉스씨.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을 구분하려면 당신은 어떻게 할건가요?"


 피닉스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새우를 먹어보겠어."

 "어째서죠?"

 "나는 새우에 알레르기가 있거든. 목이 퉁퉁 부으면 그건, 내가 현실 속에 있다는 증거겠지. 새우 알레르기처럼 사소한 체질까지 가상현실에서 구현해두진 않을테니까."

 "그럼 새우 알레르기가 구현된 가상현실이 있다면, 피닉스씨는 그 세계가 가짜라는 걸 절대로 알아채지 못하겠네요?"

 "어?"


 피닉스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니, 아니, 그래도 티가 나는 부분이 있을거 아냐?"

 "예를 들면요?"

 "예를 들어... 땅에 사탕을 떨어트려서 개미들이 몰려드는지 확인해본다거나. 가상현실에 개미가 있을 리 없으니까..."

 "만약 가상현실에 개미가 있다면요?"

 "말꼬리 잡기가 끝이 없네.

 넌 무슨 얘길 하고 싶은거냐?"


 니아가 불쑥 끼어든다.


 "미나즈키는 인간의 뇌에 자극을 줘서, 인간이 절대로 구별할 수 없는 가상현실을 만든다고 니아는 말한다."

 "인간이 절대로, 구별할 수 없는, 가상현실?"

 "새우 알레르기도, 개미도 있는 가상현실이라고 니아는 말한다."

 "그, 그런 것이 가능해?"


 피닉스가 당황한다.


 "아니, 현실과 똑같은 가상현실을 만드는 건 불가능하잖아. 가상현실 기계는 다루는 정보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물리적인 크기도 커져.

 지구 전체의 정보를 다루는 가상현실이 있다면, 그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기계는 아무리 작아도 지구 전체의 크기만큼 커지고 말아. 600년 전, 인류 가상화 계획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 그거라고, 그분한테 들었는데? 그분 말이 틀릴 리가 없는데?"


 제노비아가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아련한 얼굴을 하고 대화에 끼어든다.


 "헥셀 아카데미에 다닐 때 있던 일이에요. 

 지진이 일어나 학교 한가운데 거대한 균열이 생긴 적이 있었지요. 친구를 구하려던 나오미가 그 균열에 떨어져버려, 나오미를 구한다고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어요. 실험작이었던 히트베리를 구조용으로 빠르게 개조하여, 간신히, 간신히, 깊은 어둠 속에 빠진 나오미를 구해냈지요."


 또 나오미 이야기인가.

 피닉스는 입을 다물고 만다.


 "그런데 말이죠, 다음날이 되니 웬걸? 지진이 일어난 적은 없었어요. 학교 한가운데 난 균열도 없었지요. 나오미의 몸에는 생채기 하나 없었어요. 그렇게 깊은 곳에 떨어졌는데요. 그리고 나오미를 구하기 위해 제가 개조했던 히트베리도... 개조하기 전의 모습 그대로였지요.

 알고보니, 지진은 가상현실이었어요.

 미나즈키가 만들어낸 가상현실."


 피닉스는 입을 쩌억 벌린다.


 "학교 한가운데 지진으로 균열이 일어났고, 그 때문에 소동이 일어났다면 최소한 수백명이 그 가상현실의 영향을 받았단거 아냐?"

 "네, 그렇지요."


 수백명의 똑같은 가상현실을 보도록 최적화시키는 능력.

 아마 시공간을 초월하는 외계통신의 원리와 같은 것이리라. 멀리 떨어져있는데도 바로 곁에서 목소리를 듣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초과학적인 텔레파시.


 "그럼, 처음부터 미나즈키를 보내지 그랬어!?"

 "그건 미나즈키에게 위험해요.

 그래서 나오미가 먼저 나선거에요."

 "어째서? 테이시아가 가상현실에 빠져있는 동안 현실에서 죽이면 되잖아!"

 "미나즈키의 가상현실은 개인에 특화된 가상현실이 아니에요. 집단환각을 보여주는 무차별적이고 범용인 가상현실이죠. 그렇기에, 미나즈키가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동안, 그 영향권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전부 같은 가상현실을 보게 되어요.

 그건 미나즈키 자신도 마찬가지지요. 미나즈키는 최대한 가상현실을 리얼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그 안의 등장인물을 철저하게 연기해야 해요. 자신조차 스스로가 누군지 잊어버릴 정도로 말이죠."

 "그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네. 현실에서는 죽일 수 없죠. 하지만 말이죠. 미나즈키가 만든 가상현실은, 미나즈키가 해제하지 않는 한 계속되어요. 만약 그 찰나의 환상을 수십년 동안 연장시킨다면요. 그래서 그 찰나의 환상 속에서 늙어죽으면요."


 히죽, 제노비아가 웃었다.


 "현실에서도 죽어요."


 그건 광기에 가득 찬,

 현실에 없을 것 같은 미소였다.



※※※※※※※※※※※※※



 마가렛은 기쁨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머니, 아버지. 저, 반드시 행복해질게요!"


 20살이 되어도 마가렛이 기사가 되는 일은 없었다.

 변방의 민란을 진압하러 갔다 반역자로 몰리는 일도 없었다.


 마가렛은 아버지의 일을 도와 기사단의 사무업무를 처리하고, 그러다 우연히 파견임무 중 블랙아크의 단장을 만났다. 많은 일이 있었다. 이블린과의 우정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려고 결심했던 순간도 있었다. 이블린과의 우정이 깨질까봐 괴로워하며 눈물흘렸던 날도 있었다.


 그런 고통을 극복하고 얻은 사랑의 결실.

 그 결실을 수확하는, 서약의 날이었다.


 서약식장에 모인 수많은 하객들.

 이블린, 베로니카, 레베카, 에스메랄다, 쿠죠 아야, 미로아, 브리트니, 린베르, 니지 등등. 기사 가문의 영애일 뿐인 자신에게는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소중하고도 소중한 사람들이 자리를 빛내고 있다.


 마가렛의 아버지가 마가렛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는 지금까지 내 딸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 딸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야 하겠구나."


 쓸쓸해하게 들리는 목소리.

 마가렛은 자신도 모르게 울먹였다.


 "...아버지, 자주 보러 올게요."


 아버지의 손이 마가렛의 어깨를 짚는다.


 "아니다. 네가 보고 싶은게 아니라면 억지로 오지 않아도 괜찮다. 넌 이제 블랙아크 단장의 아내가 될 사람이 아니냐. 용병단장의 아내라. 기사로 겪을 일보다 더 험난한 일들이 생기겠지."


 딸을 시집보내는 것이 아쉬운 듯, 평소보다 아버지는 말이 많았다.


 "남편을 도우느라 바빠질거다.

 그러니 내게 신경써라고 어떻게 말을 하겠니.

 그러니 나는, 이제부터 너를 딸이라 부르지 않겠다."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미소짓는다.


 "남편에게 가보거라, 테이시아 크래프트."


 이 순간, 마가렛의 얼굴이 굳어버리고 만다.


 "네?"

 "보렴, 남편이 기다리고 있지 않니?"

 "아뇨, 저기, 아버지. 저를 뭐라고 부르셨어요?"


 아버지는 다정하고도 근엄한 목소리로 말한다.


 "이제 너는 내 딸이 아니다.

 테이시아 크래프트로 살아가는 것이다."


 마가렛의 손에서 부케가 떨어진다.


 "아아, 테이시아도 참! 부케를 떨어트리면 어떻게 해?"


 하객 중에서 곱게 차려입은 여자가 뛰쳐나온다.


 "이건 바닥에 떨어트리면 안되지!

 나에게 던져주란 말야!

 네 제일 친한 친구가 나니까!

 자, 받아! 테이시아!"


 바닥에 떨어진 부케를 집어 마가렛에게 쥐여준 여자.

 그건, 


 "나잖아..."


 마가렛이었다.


 "응? 왜 그래, 테이시아?"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한 여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부케를 내민다. 마가렛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다. 서약드레스를 손끝으로 잡아 들고, 높은 힐이 벗겨질 정도로 달려간다. 신랑대기실로. 대기실의 문을 열고 외친다.


 "단장! 단장님! 제 이름을, 불러주실 수는 없나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 파들파들 떨고 있는 마가렛.

 그를 본 단장이 깜짝 놀라 달려온다. 언제나와 같은 다정하고 큰 품으로 마가렛을 끌어안는다. 마가렛은 눈물을 흘리며 그 품에 끌어안겼다. 단장이 말했다.


 "무슨 일이야, 테이시아.

 왜 이렇게 떨고 있어?"


 이 순간, 마가렛의 안에서 무엇인가가 깨져나갔다.


 "아, 아아..."


 깨달았다.

 모두가 자신을 테이시아 크래프트로 대하고 있었다는 것을. 기사가 되지 않은 바람에, 언제나 '아가씨'라고 불리는 바람에, 이름을 불릴 기회가 없던 탓에 수년 동안 이 어긋남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게, 무슨 짓을 저지른거야..."


 마가렛은 단장의 품을 손바닥으로 밀어낸다.


 "...단장, 당신같이 멋진 남자를... 친구로 둬서, 정말 영광이었어요."


 마가렛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테이시아?

 친구라니!? 우리는 서약하기로 한 사이잖아?"

 "죄송해요, 단장. 저는, 단장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마가렛은 눈물을 흘리며 대기실 밖으로 뛰쳐나온다.


 "테이시아!"


 단장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뒤도 보지 않고 달린다. 새하얀 스타킹만으로 감싸인 맨발로, 돌과 검불에 연약해진 발이 피투성이가 되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달리고 달린다. 어딜 향해 달리는 건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고, 마가렛은 그저 도망쳤다.


 "하아, 하아, 하아, 전부, 전부, 가짜였어..."


 숲 한가운데서 마가렛은 털썩, 주저앉았다.


 "내 삶은 전부, 가짜였다고!"


 마가렛은 절규했다.

 그때였다.


 "테이시아! 하아, 하아, 간신히 따라잡았다!

 멋대로 서약장에서 도망치면 어떻게 해? 지금 다 난리났어!"


 마가렛을 뒤쫓아온 것은,


 "......넌 누구야."


 마가렛이었다.

 기사 마가렛이 부케를 들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다.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자신의 얼굴로.


 마가렛은 나뭇가지를 쥔다.


 "넌 누구냐고!"

 "누구냐니, 마가렛이잖아.

 테이시아의 가장 친한 친구."

 "마가렛은 나야! 내가 마가렛이라고!"


 마가렛이 일어나 나뭇가지를 쥔 손을 들어올린다.

 그 순간, 마가렛과 똑같은 모습을 한 여자는, 무엇인가 깨달은 듯 경악한 표정을 짓는다.


 "뭐, 라고삐?"


 말투가 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마가렛의 다리에서, 나이프에 베인 듯한 격통이 올라왔다. 마가렛이 손에 쥐고 있는 건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가게를 장식할 때나 쓸 법한, 무겁기만 하고 날이 전혀 서 있지 않은 장식용 검이었다. 마가렛과 똑같이 생긴 여자의 모습은, 형광색 도료를 끼얹은 듯한 작고 갸냘픈 소녀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그 소녀의 이름이 미나즈키라는 건, 마가렛은 모른다.

 미나즈키가 경악에 찬 눈을 뜨고 외친다.


 "네가 마가렛이라면, 테이시아는!?"


 대답을 할 여유도, 대답을 들을 유예도 없었다.

 날이 서지 않은 칼날이 미나즈키의 이마에 닿은 순간, 빠각 하고 속이 가득찬 단단한 것이 부서지는 진동이 칼날을 타고 마가렛의 손까지 전해졌다.


 미나즈키는 최후의 순간,

 자신들이 사람을 착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깨달음을 동료에게 전할 기회도 없이 푸른 피를 쏟으며 절명했다.

 

 "아아, 아... 아..."


 미나즈키의 가상현실에서 빠져나온 마가렛.

 그런 마가렛의 주위를 감싸고 있는 건 폐허가 된 쇼핑센터였다. 허벅지가 베인 지독한 고통이었다. 자신의 주위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고독감이 마가렛을 덮쳐왔다. 아니, 남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털썩, 주저앉은 마가렛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악! 아아아아악!"


 마가렛이 비명을 지르며 오열했다.

 영혼이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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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화 VS제노비아 (전편) 

 전용기는 최종화인 VS제노비아 (후편)에서 탈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