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렛의 휴일 프롤로그 https://arca.live/b/finalgear/34614734

마가렛의 휴일 1화 https://arca.live/b/finalgear/34660791

마가렛의 휴일 2 https://arca.live/b/finalgear/34687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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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화점 지하 격납고.

 절지동물과 같은 굵은 촉수를 머리에서 드리운 소녀.

 니아의 손에서 그녀가 씹고 있던 마리오네트의 머리가 떨어진다.


 떨어진 농익은 열매처럼, 뇌수와 피가 니아의 발치에 팟, 하고 붉은 왕관과 같은 무늬를 만들며 퍼진다.


 "...? ??? ??? ???"


 니아는 마치 올빼미처럼,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방향으로 머리를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굴린다. 머리 양옆에 돋아난 굵은 촉수들이 채찍처럼 허공을 가르며 공기 찢는 소리를 낸다.


 "뭐, 뭐야? 무슨 일인데?"


 니아의 이상을 알아챈 건 피닉스였다.

 니아가 우뚝 멈춰선다. 표정은 언제나와 같이 동그란 눈망울을 크게 뜨고 옅게 미소짓고 있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지만, 촉수는 실의에 빠진 개의 꼬리처럼 축 늘어진다.


 "미나즈키가 당했다."


 이제 격납고 안을 채우는 건 침묵이라는 수준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부를 짓이겨버릴 듯한 비통, 그 자체가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는 듯했다.


 "외계인의 정신조작도, 테이시아에게는, 먹히지 않는다고?"


 테이시아 크래프트.

 게하 최강의 검사. 검의 승부에서 테이시아를 쓰러트릴 수 있는 자는 게하 안에서도 단 한명, 오로지 쿠죠 아야 한명 뿐이라고 한다. 


 "정말로 인간 맞나... 그건..."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니다. 피닉스는 목격한 적이 있다. 다크매터의 침투를 맨몸으로 버텨내는 인간을. 다크매터로 강화된 마리오네트들을 오로지 정권 하나로 처부수는 분쟁지대의 괴인을. 테이시아가 그와 같은 종류의 기술을 익히고 있다면, 그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리라.


 그래서 피닉스는 믿고 말았다.

 미나즈키가 테이시아에게 당했다는 착각을.


 피닉스의 반응을 보고 니아도 믿고 말았다.

 미나즈키가 테이시아에게 당했다는 착각을.


 "하하하..."


 격납고 안을 허탈한 웃음소리가 채운다.

 그 웃음소리를 낸 건 피닉스가 아니다. 피닉스가 아무리 무례하다고 해도, 중요한 전력을 둘이나 잃은 사업파트너의 슬픔을 웃음거리로 삼지는 않는다.


 "그래서, 미나즈키를, 보내지말라고, 내가 그랬잖아요."


 웃음소리를 낸 건 제노비아다.

 제노비아는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니아의 앞에 다가가, 새하얀 원피스의 목깃자락을 움켜쥐고, 니아를 들어올린다.


 "그래서 내가 가겠다고 했잖아요!

 미나즈키는 얼마 없는 당신 동포였잖아요!

 미나즈키까지 죽었다고요!"

 "미나즈키의 수명은 어차피 오래 남지 않았었다고 니아는 말한다. 삼백년도 지나기 전에 수명을 다했을 연약한 개체였다고 니아는 말한다."

 "내일 죽을 사람이면 오늘 죽어도 된다?

 그게, 동포가 죽었는데 할말입니까, 당신은!"


 제노비아가 니아의 머리를 붙잡고 벽에 찍듯이 처박는다.

 니아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축 늘어진 채 제노비아의 화풀이를 받아들인다. 쿠웅, 쿠웅, 쿠웅, 제노비아가 니아의 머리를 벽에 찍어대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피닉스가 말리듯이 제노비아에게 다가간다.


 "어이, 그만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그러나 피닉스가 제노비아의 어깨를 붙잡으려 한 순간, 철썩, 하고 니아의 촉수가 빠르게 움직여 피닉스의 손을 쳐낸다. 


 "큭."

 "제노비아를 내버려둬라고 니아는 말한다.

 제노비아는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거라고, 니아는 이해한다."


 그 말에 제노비아는 깨닫는다.

 니아의 머리를 벽에 찧고 있는 이 분풀이는, 니아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고 있지 못하단 것을. 니아의 이마는 벽의 콘크리트 가루가 묻어 더러워졌지만 그 외의 상처는 전혀 없다. 니아는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순진무구한 미소를 짓고 있다.


 "흐, 으흑, 아흐윽, 어흐으으윽! 미나즈키!"


 제노비아의 손에서 힘이 빠진다.

 니아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균형을 잃고 넘어질 것 같은 자세였지만 니아는 바닥에 닿은 발끝만으로 간단히 균형을 잡고 선다.


 "이제, 이제... 괜찮은거죠? 히트베리를 출격시켜도?"


 제노비아는 니아의 어깨를 꽈악 붙잡고 내려다본다. 소녀를 의태하고 있는 니아의 작은 몸이 제노비아의 그림자에 덮힌다. 니아의 두 눈만이 동그랗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니아의 형형한 눈동자가 눈꺼풀에 덮힌다.


 "니아는 판단할 수 없다.

 지휘관인 솔라를 기다려야 한다고 니아는 판단한다."

 "솔라님이 부재할 때는 니아님이 지휘관이잖아요!

 결정을 내려야 할 책임을 지라고요!"


 바로 그때였다.


 "부외자지만, 출격은 좋지 않다고 본다."


 이의를 제기한 건 피닉스였다.


 "어째서죠."


 피닉스를 등진 채 제노비아가 묻는다.

 피닉스가 머리를 난폭하게 긁는다.


 "이제 테이시아 암살작전에 관한 정보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나오미라면 몰라도, 미나즈키를 테이시아가 쓰러트렸다는 건 그쪽도 그쪽 나름대로 완전한 채비를 하고 왔다는 뜻이야. 그렇다면 이 도시 밖에 그것도 숨겨놨다고 봐야 한다."


 피닉스가 또박또박 말한다.


 "공방일체의 검막, 아라미스가 있을거란 말이다."

 "바라는바에요! 제 히트베리는 오직 아라미스에 대항하기 위한 사양이에요! 아라미스의 약점은 빠른 속도를 추구하기 위해 무기의 무게를 낮추고, 공격에 써야 할 충격력을 상완 파츠 피스톤의 진퇴력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것! 아라미스의 일격은 충격력에서 진퇴력을 뺀 수준 밖에 되지 않아요!"


 제노비아가 어둠의 장막에 덮힌 붉은 기체를 올려다보며 양 팔을 벌린다.


 "게다가 아라미스는 속도를 추구한 경량기! 말이 좋아 공방일체의 검막이지 결국 그 검막은 일격 일격의 모임에 불과해요! 그 일격을 튕겨낼 수 있는 방어력과 내구도! 그거 하나면 검막을 간단히 뚫을 수 있다고요!"

 "아라미스가 무서운 건 기체의 능력 때문이 아니다.

 그 기체를 조종하는 자가 테이시아 크래프트이기 때문이다. 린베르가 개량한 켄타로우스 개조기조차, 테이시아라는 최종 테스트 관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저 히트베리가 켄타로우스보다 방어와 내구가 뛰어날 거 같진 않은데?"

 "아라미스의 공격을 무효화하는데 과도한 방어와 내구는 필요없어요."


 제노비아가 고개를 돌려 씨익 웃는다.


 "필요한 건 순발력이지요."

 "순발력?"

 "아라미스의 검끝에 노려지는 약점을 빠르게 개폐하여 덮을 수 있는 이동식 경량 방패 시스템. 아라미스의 공격속도보다도 더 빠르게 공격을 튕겨내면 해결되는 문제에요."

 "......어깨와 각반에 달린 저건가. 조작난이도가 꽤 있어보이는데. 말해두겠는데, 공격보다는 방어가 더 어려운 기술이다. 일인기로 그런 섬세한 조작이 가능할리가,"

 "전 할 수 있어요! 할 수 있다고요!"


 제노비아와 눈이 마주친 피닉스는 깨닫는다.


 '이녀석, 기뻐하고 있군.'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니아는, 깨닫지 못한 모양이다.


 '의외로 이런 부류의 인간은 흔한 법이지.'


 동료가 죽어서 슬픈 건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의 실력이 인정받을 기회가 와서 기쁘다.


 사촌이 밭을 사면 배가 아프다.

 불구경을 하고 나면 잠이 잘 온다.


 그 기쁨이 저급하고 저열하고 저질스럽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기에, 슬픔을 과도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왜 저렇게까지 슬퍼하는가. 주변 사람들이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느낄 정도로. 자신이 기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자신이 고결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피닉스."


 니아가 피닉스를 바라본다.


 "우리가 히트베리를 출격시켜 아라미스를 쓰러트리면 뒷처리를 할 수 있겠냐고 니아는 묻는다."

 "확실하게 말해두겠는데, 그런 짓을 했다간 헥셀이 파이널기어로 게하를 침략한 꼴이 되어버린다. 여왕이야 이득을 보겠지. 테이시아라는 희생양도 생겼고, 헥셀을 침공할 명분도 생기니까. 헥셀이 얻는 이득은 단 하나도 없어."


 피닉스는 냉정하게 손익을 평가한다.

 게하측의 인간으로 왔다고 해서 헥셀을 속이지 않는다.


 장수의 비결.

 정직함. 아군이 얻을 이득 때문에 적과의 신뢰를 깨트리는 어리석은 거짓말을, 피닉스는 하지 않는다.


 니아가 천천히 눈을 뜬다.


 "니아, 전투하겠다."


 히트베리와 아라미스.

 단 일국의 파이널기어만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분쟁이라는 말로 덮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양국의 파이널기어가 직접 충돌하면 그건 정말로 전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나오미와 미나즈키.

 그리고 제노비아의 슬픔. 그것을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니아는 말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겠다고. 자신이 직접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죽이겠다고. 그것이 니아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네가 직접?"



 피닉스는 놀란듯 말하고 있지만 표정은 말투와 달리 덤덤했다. 그 이외의 결정은 내릴 수 없을거라 이미 예상했기 때문이다.


 "테이시아 크래프트는, 입은 대미지로 보았을 때 아직 이 백화점 쇼핑센터 안에 있을거라고 니아는 판단한다. 하지만 미나즈키가 없는 지금, 테이시아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피닉스가 확인해주길 바란다."


 피닉스는 왼팔에 차고 있는 디바이스 장비의 버튼을 누르려다 망설인다.


 "...CCTV를 켜서 확인할 수는 있는데. 이것도 다른 전선과 억지로 이어붙여 간신히 살려둔거거든. 카메라를 작동시키면 백화점 전체에 불이 들어올텐데, 괜찮겠어? 이제부터 덮치러 가겠다고 광고하는 꼴이 될거야."

 "상관없다고 니아는 판단한다."


 니아의 새하얀 맨발이, 발끝부터 검은 경질로 덮히기 시작한다. 변화가 일어난 건 발끝만이 아니다. 손가락 끝도 다크매터와 흡사해보이는 검은 윤기가 나는 껍질로 뒤덮힌다.


 덮힌다?

 아니, 덮히는게 아니다.


 벗겨지는 것이다.

 신체의 끝부분부터 의태하고 있던 피부가 벗겨져나가고, 그 아래 숨겨져있던 진짜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 작은 소녀의 모습이 괴물로 변화하는 그 모습에 피닉스는 원초적인 공포를 느낀다. 그는 디바이스 장비에 비치는 CCTV를 체크하며 니아를 외면한다.


 "...찾았다."


 고급스러워보이는 드레스를 걸치고, 푸른 피가 흥건하게 묻은 칼날을 쥐고 있는 금발머리의 여자. 그 여자가 스타킹으로 묶어 지혈한 다리를 절뚝거리며, 쇼핑센터 1층 로비를 걷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카메라 위치 때문에 뒷모습 밖에 보이지 않지만 확실하겠지. 갑자기 팟 하고 전원이 들어오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바람에 몹시 놀란 듯, 이 건물 밖으로 빠르게 벗어나려고 하는 모양이다.


 "어디있지?"

 "어, 그러니까..."


 저벅 저벅, 피닉스는 격납고의 어둠 속으로 한참 걸어간다.

 검지를 세우고 자신의 머리 위를 가리킨다.


 "1층, 여기 쯤에 있다."

 "확인했다."


 니아는 아직 팔다리의 의태밖에 풀리지 않았고, 머리와 몸통은 어린 소녀의 모습 그대로다. 본모습으로 완전히 돌아온 것도 아닌데도, 더는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듯, 니아는 천정을 향해 뛰쳐오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외계인 소녀의 몸은 천장에 달라붙는다. 니아의 머리에서 돋아난 촉수가 천장에 박혀들어가고, 니아의 몸을 고정시킨다. 니아가 양손바닥을 콘크리트 천장에 붙이자, 일순간 격납고 안을 환하게 밝힐 정도의 섬광이 일며, 콘크리트가 뜨거운 용암으로 변해 뚝, 뚝, 바닥에 흘러내린다.


 "키에에에엑!"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마리오네트 몇마리가 용암에 맞아 비명을 지르며 타버린다. 니아는 마치 거미처럼 윗층을 향해 기어올라간다. 이 지하격납고는 지하 4층이니, 승강기를 쓰지 않고 저런 식으로 빠르게 1층까지 올라갈 속셈인게다.


 "날고 긴다는 테이시아 크래프트라고 해도, 규격 외의 괴물인 저 니아를 이길 수는 없겠지."


 이걸로 간신히 임무를 끝낼 수 있는건가.

 피닉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디바이스의 액정을 바라보았다.


 금발머리의 여자.

 그가 카메라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음?"


 카메라에 비친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피닉스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이녀석, 테이시아가 아니잖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놀라 엉겁결에 소리쳤지만, 곧 실수를 깨닫고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덮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피닉스, 지금 뭐라고 했어요?"


 제노비아가 굳은 얼굴로 피닉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악귀가 내려앉은 듯한 얼굴로, 피닉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좆됐다.

 진짜 곤경에 처한 것이 자신임을,

 피닉스는 이제서야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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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S 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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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의 존재가 바닥을 뚫고 올라온 것은 콰앙, 콰앙, 하고 아랫층에서 폭발음이 연쇄적으로 일어난 직후의 일이었다.


 "뭐, 뭐야, 꺄아아악!?"


 뚫고 올라왔다?

 아니다. 마가렛이 딛고 있던 바닥이 고온으로 무너져내린 것이다. 발 디딜 곳 없이 낙하하는 마가렛의 목덜미를 무엇인가가 잡아챈다.


 "테이시아 크래프트, 니아가 찾았다."


 새하얀 원피스를 걸친 소녀다. 팔다리는 윤기가 나는 검은 금속으로 뒤덮혀있다. 그 소녀는 공중에 뜬 채, 아래로 추락하던 마가렛의 멱살을 붙잡고 있었다.


 공중에 뜬 채로?

 아니다. 자세히 보면 머리에서 돋아난 절지동물 같은 굵은 촉수가 위로 솟아있다. 천장에 그 단단한 촉수를 박아넣어 매달려 있는 것이다.


 "왜, 저를 노리고 있는거지요."


 자신이 마가렛이라는 해명은 하지 않는다.

 마가렛은 여전히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가장하며 니아를 보려보았다.


 "테이시아 크래프트는 게하의 상징이기 때문이라고 니아는 들었다. 게하의 모든 미덕, 고결함, 아름다움, 도덕성, 그 모든 가치가 테이시아 크래프트에게 있다. 게하의 인간성, 그 자체를 상징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테이시아 크래프트는 죽어야 한다고, 니아는 판단한다."

 "상징, 하하? 상징은 여왕이지요. 타락하고, 추악하고, 사악하고, 비열한, 게하의 진실, 릴리안이야말로 진정한 게하의 상징 아닌가요? 테이시아 크래프트는 단지 그 괴물을 국민에게서 숨기기 위한 가면이 아닌가요?"


 마가렛을 노려보던 니아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예상 외의 말이 나왔다는 듯한 태도다.


 "제가,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게하의 뭘 상징한다는거지요?"


 니아가 마가렛의 멱살을 잡은 손을 놓는다.


 "....아?"


 마가렛의 몸이 아무런 지지대 없이 공중에서 바닥으로 추락한다. 추락하며 나이프에 베인 다리가 먼저 바닥에 닿은 바람에, 그 충격에 상처가 벌어지고 진물과 피가 튀어나온다.


 "아아아아아아악!"

 "니아, 알아챘다."


 후드드득, 콘크리트 조각이 쓰러진 마가렛의 앞에 떨어진다. 천장에서 촉수를 뽑아내고 니아가 사뿐하게 마가렛의 앞에 뛰어내린다.


 "너, 테이시아 크래프트 아니다.

 니아의 판단 정확한가?"


 으득, 마가렛은 이를 악물며 니아를 올려다본다.


 "이제 와서 그런 소릴 하는것입니까? 

 제가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아니라면, 저는 누구입니까!"


 니아의 촉수가 마가렛의 다친 허벅지를 채찍처럼 내려친다.


 "커헉!"


 일순간 몰아치는 격통에 마가렛은 비명조차 제대로 토해내지 못하고 몸을 경련시킨다.


 "니아,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네가 누구인지 관심없다. 니아가 관심있는 것은 테이시아 크래프트다."

 "제가, 테이시아 크래프트라고요!"


 니아는 더 이상 마가렛의 말을 듣지 않는다.

 빙글, 몸을 돌려 자신이 뚫은 구멍으로 다가간다.


 "니아, 철수하겠다."

 "내가, 테이시아 크래프트라고 했잖아!"


 마가렛이 검을 들어 바닥에 늘어진 니아의 촉수를 찌른다. 날없는 검이었지만 예리한 모양이었기 때문에 찌르기의 위력만큼은 확실했다. 푸른 피가 뿜어져나와 마가렛의 새하얀 드레스를 뒤덮는다. 그러나 니아는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발을 앞으로 내밀어 구멍으로 뛰어들어간다. 당연히 검을 쥔 마가렛의 몸도 니아를 따라 함께 딸려간다.


 "어, 어어어어!?"


 마가렛의 몸이 니아가 뚫은 구멍을 따라, 추락한다. 지하 격납고의 바닥에 먼저 내려앉은 니아는 고개를 들어 떨어지는 마가렛을 바라본다. 눈은 동그랗게 뜨고 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웃는 얼굴이 아니다. 니아의 머리 위에 마가렛이 떨어지지 직전, 니아는 촉수를 휘둘러 마가렛의 몸을 쳐낸다.


 "커흐어억!"


 푸른 니아의 피에 물든 마가렛의 몸이 날아가, 홀리 보우의 거대한 다리까지 부딪혀 떨어진다.


 "콜록, 콜록, 콜록, 게흑, 쿠웨에엑!"


 이미 텅 빈 내장 안의 신물과 피거품을 토해내며 마가렛은 바닥에 누운 채 파들파들 떤다. 피닉스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니아에게 다가간다.


 "여, 역시 외계의 마녀야! 아무도 당해내지 못한 그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이렇게 간단히 사로잡았잖아!"


 제노비아의 눈치를 보고 있다.

 그들이 대적하고 있는 상대가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아니다. 그 피닉스가 내뱉은 순간, 제노비아는 허리춤에 찬 총을 뽑아 피닉스의 머리를 겨눈 것이다.


 "이것봐, 제노비아! 모두의 희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어! 이렇게 테이시아 크래프트를 붙잡았다고! 이건 다 너희 덕분이야!"


 지금도 제노비아가 들고 있는 총의 붉은 레이저 조준점이, 피닉스의 뒷통수를 노리고 있다. 물론 제노비아의 사격을 피해 그를 제압하는 건, 피닉스에게는 간단한 일이다.


 문제는 니아다.

 인외의 괴물인 니아를 상대로는, 마리오네트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피닉스조차 이길 자신이 없다. 하물며 이 좁은 지하 격납고 안에서는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으리라.


 '어떻게든 얼버무리고 이곳을 빠져나가야해.'


 니아는 피닉스를 바라본다.


 "저녀석, 테이시아 크래프트, 아니다."


 피닉스의 몸이 굳어버린다.


 "에, 에헷, 에헤헷, 헤,"


 웃어보이려 하지만 바보처럼 얼빠진 웃음소리만 나올 뿐이다.


 "무, 무슨 소릴 하는거야.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맞잖아! 금발에 새하얀 피부, 가느다란 몸! 그리고 저 화려한 드레스! 검도 들고 있네! 저게 테이시아가 아니면 누가 테이시아겠어?"

 "니아는 저녀석이 테이시아가 아니라고 판단한다."

 "테이시아를 실제로 본 적도 없는 주제에 네가 뭘 알아! 증거 있어? 저녀석이 테이시아가 아니라는 증거 있냐고!"

 "증거는 없다. 니아의 감이다."

 "그럼 내가 테이시아라면 테이시아인줄 알아!"


 피닉스가 쓰러진 마가렛에게 다가간다.

 마가렛 앞에 쪼그려앉아, 그의 앞머리를 잡아채 고개를 들어올린다.


 "여어, 테이시아 크래프트. 오랜만이야.

 참, 그쪽은 날 처음 볼테니까, 처음 뵙겠습니다가 맞으려나?"

 "누, 누구."

 "누구인지는 알거없고."


 콰악.

 피닉스가 마가렛의 머리를 바닥에 찧는다. 마가렛의 이마가 찢어져 피가 흘러나온다.


 "커흑!"


 마가렛이 피닉스의 손목을 붙잡는다.

 피닉스가 씨익 웃는다.


 "아직 쌩쌩하네, 테이시아.

 맞아. 네가 지은 죄에 대해 좀 알려줘야 할거같거든."


 피닉스가 마가렛의 고개를 들게 하고, 손목을 움직여 니아와 제노비아를 바라보도록 한다.


 "네가 맨 처음 죽인 녀석의 이름은 나오미."

 "나오...미?"

 "저기 있는 제노비아의 학교 친구다.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였겠지. 너는 제노비아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를 죽였다."

 "나, 나를, 죽이려, 했으니까."

 "딱히 죽이려 한건 아냐! 너한테 쓴 건 근육이완제 뿐이잖아! 치명적인 독이 아니었단 건 지금 살아있는 너 자신이 증명하고 있잖아? 과잉방어 해버린거 아냐? 기사님이니까 법 잘 알지?"


 거짓말이다.

 나오미는 자신을 죽이려 했다.

 마가렛이 항변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인다. 그 움직임을 본 순간 피닉스가 다시 콱, 마가렛의 머리를 콘크리트 바닥에 찧어내렸다 들어올린다.


 "크흑!"

 "그리고 넌 미나즈키도 죽였지! 따라해봐, 미나즈키!"

 "미, 미나즈, 키..."


 고통과 혼란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따라하고 말았다.


 "그래, 미나즈키! 미나즈키 또한 제노비아의 소중한 친구였지! 그리고 헥셀의 마녀후보인 니아의 동포였어! 하지만 미나즈키는 저기 저 니아와는 다르지. 인류와 외계를 잇는 소중한 연결고리, 평화의 상징 그 자체인 존재였다고! 넌 그런 보물을 죽인거야!"


 콱, 피닉스가 마가렛의 머리를 바닥에 찧는다.

 고통에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파닥파닥, 마가렛이 피닉스의 손목을 때린다. 눈물과 콧물, 타액, 피와 먼지로 얼룩진 마가렛의 얼굴. 피닉스는 다시 마가렛의 얼굴을 들어올린다.


 "이봐, 테이시아.

 우리가 너에게 원하는 건 게하의 정보야. 딱히 너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다고. 너, 게하에 충성할 이유도 없잖아? 사실은 게하를 미워하고 있잖아? 게하가 완전히 무너지는 꼴을 보면 기분좋을거같잖아? 그러니까 말해. 테이시아 크래프트로써 알고 있는 걸 전부 말하라고. 안그러면 말야, 너 여기서 죽어."


 마가렛은 깨달았다.

 피닉스는 자신이 테이시아 크래프트가 아니란걸 알고 있다. 그렇구나. 전부 이녀석이 꾸민 짓이었구나. 틀림없이 곤란해졌겠지. 자신이 테이시아가 아니라서. 자신을 테이시아라고 착각해서.

 피닉스가 마가렛의 귀에 속삭인다.


 "그럼 먼저 간단한 질문으로 시작해볼까?

 네 이름은 뭐지, 테이시아 크래프트?"

 "내 이름은..."


 마가렛의 입술이 달싹인다.

 피닉스, 니아, 제노비아, 세사람의 시선이 마가렛을 바라보고 있다.


 "내 이름은..."


 히죽, 완전히 피폐해진 얼굴로 마가렛이 웃었다.


 "마가렛이다."


 피닉스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다.

 그는 비명같은 고함을 지르며 마가렛의 머리를 바닥에 찍어내린다.


 "이 썅년이! 살아날 방법을 알려줘도 못처먹네!"


 더 이상 피닉스는 마가렛을 공격하지 않는다. 그는 마가렛의 피와 눈물이 묻은 손을, 슥슥, 마가렛의 머리카락에 닦아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천천히 몸을 돌리고, 양손을 들어올려 머리 뒤에 붙인다.


 "우리, 이러지 맙시다. 문명인답게 대화로 해결하자고요."


 니아의 촉수가 늘어난 채 피닉스의 몸 주변을 맴돌고 있다. 촉수 끝은 마치 인두처럼 붉게 달아올라 금새라도 피닉스를 덮칠 것처럼 그 끝을 겨누고 있었다.


 "그 여자, 테이시아 크래프트 아니다.

 마가렛이라고 자기 입으로 말했다."


 제노비아는 총을 떨어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파들파들 손을 떤다.


 "마가렛... 마가렛... 마가렛이 누구에요...? 우린 여기서 뭘 하고 있던거에요? 나오미와 미나즈키는, 무엇을 위해서, 대체..."

 "정말 유감입니다. 하지만 저라고 알 수 있었겠어요. 외계생물의 전파방해 때문에 마리오네트의 조작범위도 제한되고, 드론도 띄울 수 없는데. 따지고 보면 저도 당신들의 삽질에 휘말린 피해자랍니다."


 피닉스는 이를 악물며, 슬쩍, 손을 미끄러트려 자신의 귀를 틀어막는다. 마치 발 뒤꿈치가 가려운 사람처럼, 한쪽 발을 들어 다른쪽 부츠 뒷꿈치를 긁듯이 두드린 순간. 딸깍, 하고 스위치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지워버린건, 직후 피닉스의 부츠 안에서 뿜어져나온 요란스러운 파열음이었다.


 "!!!!!!!!!!!!!!!!!!!!!!!!?"

 "꺄아아아아아악!?"



 니아의 촉수는 소리가 일으킨 충격파에 닿자 물 밖으로 튀어나온 생선처럼 정신없이 펄떡이기 시작한다. 니아가 처음으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제노비아가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숙인다. 어찌나 강한 음파인지 지하격납고의 전등이 하나 하나 팡, 팡, 팡, 깨져나가기 시작한다. 격납고는 순식간에 어둠에 잠기고 만다.

 어둠 속에서 피닉스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이건 그 누구도 책임질 필요없는 작은 사고였을 뿐이니까.

 따지고 보면 너희 실력이 부족한 탓이지! 실망이다! 테이시아 암살 거래는 없던 일로 하고, 앞으로 다시 만나지 말자고!"


 음파가 사라지자 작고 희미한 비상등이 하나둘씩 팟, 팟, 팟, 켜져 지하격납고를 밝힌다. 그곳에 더 이상 피닉스의 모습은 없었다. 피닉스가 이끌고 있던 마리오네트의 모습도 없었다. 어둠을 틈타 탈출한 것이다.


 "니아, 놓치지 않는다."


 소녀의 얼굴이 분노로 물들어 일그러진다. 아니,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물리적으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얼굴을 덮고 있던 가죽이 찢겨나가며 검은 금속으로 덮힌 기괴한 머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인간형이 남아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빠른 속도로 니아는 천장을 파괴하고, 격납고를 빠져나간다.


 "......"

 "......"


 격납고에 남겨진 건 마가렛과 제노비아 뿐이다. 


 "으흑, 흐윽, 으흐흐흑, 아흐으흑흑! 나오미! 미나즈키!"


 제노비아가 우는 소리만이 격납고 안에서 메아리친다.

 마가렛은 엎어진 채 꼼짝도 못하고 있을 뿐이다.


 얼마나 흐느끼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을까.


 "인간의 죽음에, 의미가 없어서는 안돼요."


 울음소리가 끊어졌다.

 비틀, 비틀, 제노비아가 권총을 주워들고 마가렛에게 다가간다.


 "당신은, 테이시아 크래프트여야만 해요."


 제노비아가 부츠발로 마가렛의 머리를 콰직, 밟는다.

 타앙, 하고 마가렛의 귀를 찢어놓을 듯한 총성이 울려퍼진다. 진짜로 마가렛의 귀가 찢어진건 아니다. 단지 귀 바로 옆, 콘크리트 바닥에 총알자국이 난 것 뿐이다.


 철컥.

 제노비아가 권총의 경첩을 울리자 탄피가 바닥에 떨어지며 영롱한 소리를 냈다.


 "당신은 테이시아 크래프트죠?

 그렇죠? 제발요, 솔직히 말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제노비아는 마가렛의 오른손등 위에 총구를 겨누었다.


 "당신을 편하게 만들어줄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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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가 최종화 VS제노비아.

드디어 로봇에 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