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니 붉은 독수리 이야기나 해보려고. 게임 내에서 유용한 정보는 아니지만 얘네 모티브가 상당히 별난 새거든.

붉은 독수리의 모티브는 이전에도 설명했듯 수염수리(Beared vulture)야. 머리깃이 풍성하지만 Vulture 라는 이름처럼 이 새는 머리에 깃털이 없는 대머리수리들과 더 가까운 종이야. 이 새를 칭하는 다른 단어로는 lammergeier 가 있는데, 읽을 때는 '레머가이어' 라 읽고 독일어로 양을 뜻하는 lamm과 대머리수리를 뜻하는 geier의 합성어야. 이 새가 양을 잡아먹는다는 속설에서 기원한 이름이지.

인게임에서도 붉은 독수리라 부르는 만큼 실제 수염수리도 붉은빛 깃털로 유명하지만 이건 실제 깃털색이 아니라 모래 목욕을 하거나 물을 마실 때 흙이나 물 속 미네랄이 축적되어 붉게 보이는 거라고 추정하고 있어. 더불어 이 새들은 붉은빛 진흙을 깃털에 바르는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이 화장하는 것처럼 아마 피부나 깃털을 보호하거나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 아닐까 싶어.

원신에서 얘네들이 사막 출신이 아니라 언급되는데 실제로도 수염수리는 사막에 살지 않아. 대신 중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북부와 최남단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데, 최대 7300m 높이에서 비행하는 것이 관찰되기도 했어. 사람이 그 높이에서 격렬한 움직임을 했다간 바로 쓰러지겠지만 새들은 기낭이라는 공기주머니가 허파에 연결되어 있어서 기체 교환을 더 활발히 할 수 있기 때문에 고산병에 걸리지 않아.

사진으로는 수염수리의 크기를 체감하기 힘든데 수염수리는 대략 4.5~7.8kg 이나 되는 거대한 새야. 


특히 날개를 펼첬을 때 2.3~2.8m 정도 되는데, 날개 한 쪽이 어린이만하다 생각하면 돼. 수염수리는 이렇게 덩치가 커서 날개짓을 하면서 날기보단 상승기류를 타고 비행하는 것을 선호해.

인게임에서도 그렇고 흔히 매체에서 매나 독수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얘들도 덩치가 큰 새라서 실제로 지표면에서 가열된 공기가 상승할 때 발생하는 기류를 타는 거야.

수염수리는 양을 사냥한다는 lammergeier 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먹이의 9할이 동물의 뼈야. 더 정확히는 죽은 동물의 뼈 안에 있는 골수인데 작은 뼛조각은 그냥 삼켜버릴 만큼 목의 신축성이 좋아. 삼킨 뼈는 강력한 위산에 녹아버려서 소화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아. 더 큰 뼈를 먹고 싶을 때는 뼈를 들고 날아올라서 절벽에 내던져서 박살내는데, 최대 5kg 정도 되는 무거운 뼈도 들고 날 수 있어. 흔히 맹금들이 아이를 잡아간다는 소문이 있는데, 맹금류는 아무리 기상 조건이 좋아도 자기 몸무게보다 무거운 물체는 들 수 없어. 대신 더 큰 동물을 그 자리에서 죽이고 먹는 건 가능하지만 어차피 맹금들은 사람을 매우 두려워해서 보호자가 근처에 있다면 걱정할 필요 없어.

아무튼 수염수리의 독특한 먹이 먹는 방법에 대한 썰이 있는데, 수염수리가 뼈만 먹기 질렸는지 어느날 거북이를 잡아먹으려 했어. 너무 느려서 도망이야 못 가지만 등갑이 너무 단단해서 깰 수도 없고 통째로 삼키기엔 너무 커서 평소 뼈를 먹던 방식으로 거북을 잡고 날아올라 절벽에서 떨어뜨렸어. 근데 그 밑에 그리스의 작가 아이스킬로스는 이렇게 수염수리가 내던진 거북이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라는 다소 어이 없는 기록이 존재해.


수염수리가 그의 대머리를 바위로 착각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이건 믿기 어렵지만 실제로 수염수리는 먹이가 없을 때 도마뱀, 토끼, 거북 심지어 염소나 산양까지 사냥하기도 하는데 발톱으로 먹이를 죽이기 어려워서 높은 곳에서 떨어뜨린 후 먹는 모습이 괸찰된 적도 있어. 염소나 산양은 들고 날 수가 없으니까 절벽으로 끌어내 죽이는데, 검독수리 역시 이러한 행동으로 유명하지,

수염수리는 20~45년 정도 살 수 있는데 한번 짝을 맺으면 그 짝과 평생 사는 새 중 하나야. 물론 예외적으로 암컷 한 마리가 수컷 두 마리와 같이 사는 특이한 개체들도 발견되고 있어. 알은 보통 1~2개 정도 낳고 새끼는 최대 2년까지 부모의 보살핌을 받고 독립해.

수염수리는 멸종위기종은 아니지만 장래에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은 위험 근접종(Near threatened)이야. 원래는 심각한 멸종위기종이었다가 사람들의 노력으로 개체수가 많이 늘어났지만 전깃줄과의 충돌, 서식지 파괴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많아. 특히 이 새가 위험한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수염수리는 죽은 동물 뿐 아니라 그 속의 병균까지 전부 먹어버려서 전염병의 확산을 예방하는 종 중 하나야. 원신에서도 불길한 새로 나왔지만 실제 수염수리는 엄청 독특하고 멋진 새라는 걸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