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1화 2화


 아침을 알리는 시끄러운 전자음이 울렸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몸을 뒤척였다. 얀순이를 재우느라 늦게 잔 탓에 눈꺼풀이 무거웠다. 억지로 일어나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적셨다. 인생 마지막 세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드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아침 식사를 운반하는 덤웨이터가 움직였다. 늘 칼같이 정확한 시간이었다. 나는 내 식사는 제쳐 두고 얀순이를 위한 쇠고기가 담긴 접시를 집어 들었다. 모니터 너머로 본 그녀는 아직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나는 철문을 열고 그녀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어제 잠그지 않은 철창을 몸으로 밀며 나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잠든 그녀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조용히 숨을 쉬며 잠에 빠진 그 모습은 조금 사랑스러워 보였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온몸을 가득 채웠다. 어젯밤 그녀의 아픔을 알았기 때문일까, 더 이상 그녀가 공포의 대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이런 아이에게 최후를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얀순아, 일어나.”


 나는 얀순이의 몸을 살짝 흔들어 깨웠다. 그녀는 더 자고 싶다는 듯 앓는 소리를 내었다. 나는 쇠고기가 담긴 접시를 그녀의 옆에 내려놓았다. 굳이 억지로 그녀를 깨우고 싶지 않았다. 돌아서려는 찰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얀붕아……?”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얀순이가 한 손으로 눈을 비비며, 다른 한 손으로는 내게 다가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잠에서 깬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렸다.


 “자, 잘 잤어?”

 “어? 응.”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다. 어쩐지 그녀의 볼이 살짝 붉게 물든 것처럼 보였다. 나 역시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할 수 없었다. 그녀를 만난 순간부터 다짐했었다고는 해도, 원초적인 공포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고통스럽지 않게 잡아먹힐 수 있는 것인지. 죽고 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생각은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녀가 가엾은 존재라는 걸 인식한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일이었다.


 “배고프겠다. 어서 아침 먹어.”


 그러나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자존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얀순이에게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 죽음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인간을 먹어야 하는 그녀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설마, 나는 얀순이를…….’

 “얀붕아.”


 갑자기 얀순이가 말을 걸어 나는 화들짝 놀랐다. 어느덧 그녀의 표정은 굳은 결심을 한 것처럼 진지해 보였다. 고기 따위는 필요 없으니 어서 몸을 내놓으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 그녀가 천천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서로의 고동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잠시 시간이 멈춘 듯한 그때 얀순이가 입을 열었다.


 “우리, 외출하자.”


***


 그녀를 데리고 외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보안실에 구비된 연락책을 통해 얀순이의 의사를 전달하자, 곧이어 덤웨이터를 통해 목걸이 하나가 도착했다. 나는 동봉된 메모지를 집어 들었다.


 ‘외출 시에는 반드시 이 초커를 실험체에 착용시킬 것.’


 나는 그들의 철저함에 혀를 내둘렀다. 표면 상 위치 추적을 위함이었지만, 통제를 위한 고문 도구일 거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초커를 매어 주는 것도 나의 일이었기에, 나는 외출 준비를 마친 뒤 그녀에게 향했다. 그녀는 익숙한 듯 얌전히 눈을 감고 기다렸다. 마치 산책하러 나가기 전 강아지에게 목줄을 채우는 것 같았다.


 “얀붕아. 관리자가 모두 일주일 만에 죽은 건 아니야.”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얀순이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신을 대신할 다른 희생양을 찾기만 하면 돼.”


 엘리베이터의 소음 가운데에서도, ‘희생양’이라는 말은 또렷이 들렸다.


 “난 널 죽이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찾으러 가자.”


 나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실은 아니었다. 그녀가 무기로써 이용된 것은 1년도 훨씬 넘었지만, 역대 관리자의 수는 53명에 한참 미치지 못했으니까. 그렇기에 내 대답도 이미 정해져 있었다.


 “알았어. 대신 부탁 하나만 들어줘.”


 얀순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미소로 응답했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원하는 것이 생겼다. 나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랑 같이 시간 좀 보내주라.”


***


 “저기, 지금 뭐 하는 거야?”

 “응?”


 얀순이가 조금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핏자국과 거무튀튀한 때가 모두 사라진 뽀얀 얼굴. 단정하게 정리된 찰랑거리는 머릿결. 타이밍 좋게 열린 시장에서 비싼 돈을 주고 구매한 옷과 리본 장식까지. 그녀를 이렇게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이 들었지만, 몰라볼 정도로 달라진 그녀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몇 번이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네 부탁이라는 게, 이런 거였어?”

 “응.”

 “바보 아냐? 나한테 잘해줘서 무슨 득이 있다고…….”


 퉁명스러운 어조였지만 얀순이도 아예 싫어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도 생각했지만, 역시 갈고 닦으니 그녀의 외모는 더더욱 빛났다. 가슴이 살짝 울리듯 뛰었다. 이것이 그녀에 대한 이름 모를 감정 때문인지,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공포 때문인지, 현재의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냥, 해 주고 싶었어.”


 나는 멋쩍게 웃었다. 얀순이는 고개를 돌린 채 내가 사준 옷과 리본을 매만졌다. 이제 그녀가 생체 병기라는 사실을 믿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자신할 수 있었다. 목에 달린 초커만 아니었더라면.


 “이제 마지막이야.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잠깐, 우리 원래 목적은……!”

 “알았으니까 잠자코 따라와.”


 거리는 인파로 가득했다. 나는 군에 있던 시절 내가 자주 가던 식당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얀순이가 뒤를 졸졸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멸망 직전의 세계에서도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물론 이계종의 침입으로부터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는 상층민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의 온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긍정적인 감정은, 낯익은 얼굴을 보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뭐야. 오랜만이다?”


 익숙한 목소리에 저절로 표정이 굳었다. 군에 있던 시절 나의 상관이었다. 여전히 대하기 싫은 인상이었다. 곧이어 뒤따라온 얀순이가 우물쭈물하며 나와 그 사람을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잘 지내냐? 다리는 어떻고?”

 “괜찮습니다.”

 “옆에는 누구지? 여동생? 아, 죽었댔지? 실례.”


 나도, 얀순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언제나 묘하게 신경을 긁는 말투였다. 무시당하는 것은 익숙한 듯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관리자로 배정됐다고 들었는데. 설마……?”


 그는 얀순이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느끼는 쪽은 내가 아닌데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불쾌한 감정이 일었다. 적당히 그에게 한마디 하려던 그때, 얀순이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저는 2급 기밀 이계종 특수 처리부대 소속 실험체 X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철저하게 훈육된 것처럼 건조한 목소리였다. 이런 얀순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애써 놀란 표정을 감추었다. 상관은 그 특유의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이런……설마 네가 이런 악취미를 가지고 있을 줄은.”


 그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얀순이의 가슴팍을 쿡쿡 찔렀다. 얀순이는 저항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분노로 주먹이 떨렸다. 당장이라도 그 흉측한 턱주가리를 한 대 갈기고 싶었다.


 “실험체를 데리고 데이트라니. 여자에 관심 없는 척이랑 척은 다 하더니만,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잖아?”


 킬킬대는 목소리가 고막을 긁었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무리 내가 아직 군에 소속된 입장이라고 한들, 어차피 오늘 죽기로 맹세한 목숨이었다. 나를 변태 취급하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단지 그녀를 계속해서 실험체라고 부르는 것이 거슬렸을 뿐이었다. 주먹을 치켜들려던 순간, 얀순이가 내 손을 조금 강하게 붙잡았다.


 “죄송합니다. 현재 임무 중에 있음으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먼저 자리를 떠나겠습니다.”

 “아……그래. 임무. 중요하지. 반 이계종과의 섹스, 정말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임무가 되겠어.”

 “……그럼 이만.”

 “자, 잠깐……!”


 이제 한계였다. 참다못해 상관을 한 대 때려 주려고 했지만, 얀순이는 그 무시무시한 힘으로 나를 억지로 이끌었다. 거친 숨을 내쉬던 나는 얀순이의 표정을 보고 화를 삭였다. 나는 경솔한 행동을 할 뻔했던 자신의 모습을 반성했다. 누가 가장 많이 화가 났을 지는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었다.


***


 조금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얀순이는 처음 보는 음식에 금세 기운을 되찾았다. 아무리 쇠고기가 귀한 재료라고 한들, 맛을 위해 조리된 음식은 아니었다. 그녀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맛이라며 좋아해 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인적이 없는 언덕으로 향했다. 도시의 황량한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오늘은 고마웠어.”


 붉게 물든 노을을 바라보며 얀순이가 말했다. 황혼으로 물든 그녀의 미소는 더없이 아름다웠다. 오늘은 그녀가 웃는 모습을 가장 많이 볼 수 있었던 날이었다.


 “자, 이제 희생양을 찾으러 가는 거지?”


 얀순이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았다. 작고 예쁜 손이었다. 그 손을 잡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


 앞으로 몇 시간 내에 인간을 먹지 않으면, 그녀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관리자의 처형 사유이기도 하다. 정해진 미래는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 역시……안 될 것 같아.”


 얀순이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칼이 차가운 바람에 흩날렸다.


 “이미 난 가족 대신 충분히 긴 인생을 살아왔어. 더는 나 대신 누군가가 죽는 게 싫어.”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의 인생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살고 싶지도 않았다. 더 하고 싶은 것도 없었다. 딱 한 가지 작은 미련이 남아 있었지만, 이젠 아무래도 좋았다.


 “그냥, 나를 먹어 줘. 그거면 됐어.”


 나는 눈을 감았다. 기왕 최후를 맞이할 거라면, 적어도 이 경치를 바라보며 죽고 싶었다. 처음 얀순이를 만났을 때처럼, 굉음과 함께 촉수가 내 몸을 삼키기를 기다렸다. 자신의 숨소리가 비정상적으로 크게 들렸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

 “응?”


 내 귀를 울린 것은 이계종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반짝이는 루비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는 한 소녀의 목소리였다.


 “네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아도 돼…….”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얀순이는 내게 작게 손을 흔들었다.


 “갈게. 다음에 또 봐.”

 “……어?”


 그녀의 움직임을 미처 눈으로 좇기도 전에, 얀순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어서, 한동안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


 그 뒤로, 얀순이도 찾을 수 없던 나는 연구실로 돌아가 조용히 처분을 기다렸다. 이상하게도 그들은 내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았다. 얀순이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지하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책을 통해 그녀의 행방을 물어보아도, 그들은 내게 대기하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할 뿐이었다.


 내가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 것은, 나를 처음으로 안내했던 연구원이 엘리베이터를 통해 나를 만나러 왔을 때였다.


 “첫 주를 무사히 보낸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죠.”


 무사히, 라는 말에 나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동시에 자연스러운 의문이 들었지만, 그 의문은 충격적일 정도로 쉽게 풀렸다.


 “그나저나 대단하시군요. 꽤 높은 직책의 군인이었는데, 어떻게 죽인 거요? 그것도 꽤나 잔인하게 죽였더군.”


 가슴이 철렁거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순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당신도 생각보다 할 땐 하는군요.”


 그의 말을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는 내가 화난 것으로 오해하기라도 한 듯 말을 덧붙였다.


 “아, 오해하진 마십쇼. 뭐라고 말할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잔혹함은 이 구역질 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가져야 할 덕목이니까요.”

 “야……실험체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실험체는 어제 곧바로 전장에 투입되었습니다. 며칠 간은 마음 놓고 쉬세요.”


 그가 또다시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아무래도 나를 살인자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부디 앞으로도,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시길. 그럼.”


 오히려 당부의 말을 건넨 후, 그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가 시끄럽게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내 가슴도 빠르게 뛰었다. 설마, 설마…….


 ‘아니야, 아닐 거야…….’


 현실을 부정하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날 상관의 장례식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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