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돌이





얀순이는 막 화려하게 생긴 애는 아님. 올망졸망하고 키도 작고 체구도 작고 마르고 다람쥐같이 생긴 귀염상. 성격도 존나 소심함



근데 이런 애들이 뭔가 만만해 보이고 다가가기 쉬워보이는 이미지가 있잖아? 그래서 대학 입학하고 술모임같은 거 하면


남자들이 조온나 치근덕거리는데 얀순이는 그게 존나 싫었음. (남자인 내가 봐도 해보려는 티가 존나 나더라 발정난 신입생새기들)


얀순이는 여고출신이었는데 숨덕이었거든. 


조용히 공부만 하고, 여자애들 막 아이돌얘기 하거나 페미니즘 얘기하거나 이런 데도 전혀 어울리지 못했고,


BL소설 얘기하고 만화얘기하고 이런 씹덕 여자애들 무리에도 끼지를 못했어.



얀순이는 지브리랑 미애니 덕후였거든. 카테고리가 안맞는거야.


그래서 살짝 은따느낌?


대학에선 좀 달라져야겠다고 유튜브 보면서 좀 꾸며봤는데 발정난 사내새끼들이 티나게 달려드는 거 말고는 여자들 무리에 끼어들기 어려운 건 똑같더라고?


쉬펄 인생조깥네 하면서 맥주마시면서 집에서 어드벤쳐타임 이딴 거나 보면서 시간 때우는게 여가였어.


근데 지브리 애니가 ost가 좋잖아? 유튜브에서 지브리 피아노 치는 동영상보니까 자기도 그런 걸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근처 성인 피아노학원에 등록해. 



근데 거기가 얀붕이도 다니는 피아노 학원이었던 거야.


얀붕이는 근처 헬스장도 다니는데 헬스장이랑 피아노학원이랑 제휴를 맺어서 할인을 해주길래, 취미로 성인 피아노반에 다니고 있었어.



얀붕이는 배구선수처럼 키도크고 팔도 길고 볼륨있는 여자를 좋아했어. 이상형을 만족을 못해도 사귄다면 좀 활달한 여자?



근데 피아노학원에서 가끔 회원끼리 연주회하고 회식할 때가 있거든. 그때 우연히 얀순이랑 만나게 된 거야. 




아 쒸 얘랑 모 할 얘기가 있나 저기 누나랑 놀고 싶은데 자리배치 왜이럼 에효 자리 안바꾸나 이러고 있는데




얀순이가 핸드폰 케이스에 그려진 캐릭터가 마녀배달부 키키인걸 알아봤어. 




그래서 오ㅋㅋㅋ 이얘기나 하면서 시간 때워야지 하면서




와! 키키! 님 키키 아시는구나 하면서, 사실 자기 열쇠고리도 키키라고, 일본여행갔을때 사온 키키열쇠고리를 딱 보여준 거야. 




사실 열쇠고리에 주인공인 마녀 여자애가 있으면 너무 씹덕같았겠지만, 키키랑 같이 다니는 고양이 열쇠고리여서 모르는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는 그런 거였지.




얀순이 얼굴이 확 밝아졌지.




그래서 둘이 지브리 영화 중에 뭘 좋아하고 어느 여캐가 좋고 무슨 장면이 좋고 이런 얘기를 신나게 했어.




오, 근데 얘기하다보니까 같은 학교네? 




사실 학교 옆에 있는 피아노학원이니까 같은학교인건 당연한 건데 둘이서 반갑다고 학교얘기도 존나 함.



 그랬더니 옆에서 다른 회원들이 오오 얀붕 얀순씨 분위기 좋은데? 둘이서 따로 2차가!! 이렇게 분위기를 잡는거지.



얀붕이는 '아ㅋㅋㅋ 에바지. 난 저 누나랑 술먹으려고 왔다고!' 하고 생각하면서 아니에요 ㅎㅎ 하고 그냥 회원들이랑 2차 가



2차에서 얀순이랑은 자리가 멀어져 버렸지.




근데.... 얀순이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어. 



같은 테이블에 잘생기고 덩치큰 남자애가 앉길래 좀 무서웠는데 



얘는 자기한테 막 들이대고 번호내놓으라 그러지도 않고 매너도 좋아.(얀붕이는 그냥 얘한테 이성적 매력을 못느껴서 그런건데)



나는 키키 폰 케이스, 쟤는 키키랑 같이 다니는 지지 열쇠고리, 키키랑 지지랑 같이 다니니까



나도 쟤랑 같이 다녀야한다는 그런 운명이 아닐까?



생각할수록 운명인 거 같아. 같은 피아노학원, 같은 애니 캐릭터 악세서리, 같은 학교. 이런 우연이 겹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존나 적지! 


이렇게 생각해버린 거야.



집에 오면서 몇학번이랬더라,, 무슨 과랬더라....이름이 뭐랬지... 이런걸 되뇌이면서 집에와서 다 적어놓기까지 했어.



다음 학기에 얀붕이는 교양 수업에서 얀순이를 만나게 돼. 얀붕이는 아는 사람 보이는데 못본척같은 거 안하거든. 그래서 오 얀순씨 ㅎㅇ



우연이네여 독강이었는데 다행이다. 좀 도와주셈 ㅎㅎ 아 번호 모르나? 번호도 교환해요. 이러면서 



새학기에 대충 수업에서 아는 사람 만나면 괜히 과장되게 친한척하는 그런 심리 있잖아? 협력관계 조성인거지.



근데 얀순한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어.



운명적인 인연을 만났다고 생각했지. 사실 대충 얀붕이가 이 교양수업을 듣겠다고 한 건 기억했는데, 이 교양수업 분반이 2개거든.


50%확률인데 적중이면, 운명아냐? 운명이지!



얀붕이는 근데 학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쎄함을 느껴. 왜 이 저 다람쥐년은... 내가 가는 데마다 있지?



교양수업 같이들으면서 혹시 수업빠지면 대충 필기도 좀 보여달라고 하고 좀 적당히 친하게 지낼 생각이었는데



점점 이상한거야.



기분탓인가. 필통도 자기랑 같은 필통으로 바뀐 것 같고, 펜도 꼭 자기가 즐겨쓰는 제트스트림.... 아니야 제트스트림은 다들 쓰는건데 우연이겠지.



근데... 오늘은 학식갈까 싶어서 학식가면 곧 걔가 '얀붕오빠 우연이네여'



버거킹 갈까 싶어서 버거킹 가면 '얀붕오빠 우연이네여'


친구랑 약속잡고 근처 돈가스집이라도 가면 거기서도 '얀붕오빠 우연이네여'



먼가 존나 이상한거야. 얀붕이가 혼밥중이면 같이먹겠다고 옆에 앉고, 얀붕이가 친구랑 먹고 있어도 쪼르르 와서 '얀붕 하이~' 이러고 근처에 앉아서 흘긋흘긋 보고




아 속이 더부룩하네 밥 안먹고 과방에서 잠이나 쳐자야지 하고 자다가 깨보니까... 얀순이가 있네? '잘잤어요? 얀붕 하이~'




오... 쉬펄.




우연이야? 이게 우연이라고? 



조심스럽게 농담삼아 '얀순아ㅋㅋ 너 혹시 나 따라다니는 거 아니지? 되게 자주 만난다ㅋㅋ' 이래봤는데


얀순이가 존나 의미심장하게 '그러게요! 운명인가봐요.. ㅎㅎ' 이러는 거여 시벌.



친구한테 얘기해보니까 여자가 남자 스토킹하는 경우가 어딨냐? 설령 스토킹이라도 니가 당한게 없어서 신고 불가함. 걍 귀여운 수준인데 머.



어차피 과도 다른데 담학기부터 만날 일도 없을거자너~ 하고 참으래.




이제 얀순이랑 같이 듣는 교양시간은 공포의 시간임. 혹시나 해서 얀붕이가 필기구 다른거로 바꾸면




다음시간엔 얀순이 필기구도 달라져있는거야.




후 시발 한학기만 참자 한학기만 시발.




그런데 얀붕이는 몰랐지. 얀붕이는 고고대 경영학과. 얀순이는 고고대 사회학과. 얀붕이가 군대갔다와서 학년은 같았거든?




얀순이가... 경영학과 이중전공 신청을 해버렸네? 이제 전공도 같이듣게 된다 엌




게다가 심지어 3월 신학기에, 자취방 옆방에 새로 들어올 사람이 누군지 상상도 못할걸? 엌



얀붕이에게 공포의 시간이 찾아온다! 




얀붕이는 얀순이의 마수를 물리치고 과연 이상형인 배구선수같은 여자와 캠퍼스 커플이 될 수 있을까?




라는 내용을 생각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