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아주 멀고도 먼 태고의 시간에
우주를 거니는 위대한 지성이 있었다.

그 지성은 위대하고 박식하였으며 다재다능했으나 넓디 넓은 우주에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에 엄청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지성은 행성의 파편을 한점 한점 자신의 손으로 직접 모아 작은 성을 만들기로 했다.

성체의 한가운데에는 자그마한 불꽃을 놓고, 불꽃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여러 별들을 만들어내었으니.

그것이 바로 지금의 태양계요
위대한 지성이 만든 작은 왕국의 토대로다.



일단 만들어 놓았으니, 위대한 지성은 자신이 정성스레 만들어놓은 작은 왕국에 살 작은 주민들을 직접 만들었다.

온갖 모습으로, 상상되는 대로 만들어 낸 작은 생물들은 지성의 축복을 받아 환경에 맞추어 몸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 지구의 모든 생명체라.



자그마한 별에 살아가는 자신의 창조물들을 본 위대한 지성은 처음으로 애정을 느꼈다.

자신의 창조물들이 사랑스러웠고, 모두 지켜주고 싶었다.

그들과 교감하고 싶었다.


그래서 위대한 지성은 거대한 여신의 모습으로 지구에 내려왔고, 지구의 모든 피조물들은 그녀를 우러러보았다.

그 모든 피조물들 중, 어떤 특이한 것들이 여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모습을 바꾸었다.

두 발로 걷고, 미약하지만 지성을 가진 것들의 탄생이였다.


여신은 자신의 창조물들 중 자신의 모습을 따라하려는 아이들을 보고 깜짝 놀랐지만, 이내 어머니의 마음으로 그들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그 아이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신의 모습을 벽에다 그리고 그녀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러 위대한 지성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위대한 지성은 다 자란 아이를 보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뻐 눈물을 흘리며 아이들에게 더 뛰어난 지성의 특권을 내려주었고

아이들은 어머니의 모습을 점점 더 닮아가며 어머니를 찬양하는 것을 계속하였다.

아이들도, 위대한 지성도 그대로 한없이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나날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다른 존재가 자신들의 창조물 속에 섞여있는 걸 본 위대한 지성은 깜짝 놀랐다.

그것은 자신의 아이가 아니였고, 어디서 온 건지, 정체는 무엇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것은 위대한 지성의 존재를 부정하고 불쌍한 어린 양의 목을 따 피를 빼 내어 여신의 그림에 발라 그녀를 모욕하였고, 그녀의 존재 자체도 부정하였다.

그녀는 너무나 화가 났으나,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창조물들을 믿기로 했다.



분명 나의 아이들이 저 괴물 녀석을 내쫓으리라...

내 아이들은 저런 놈의 꾀임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허나 그녀의 축복을 받은 창조물들은 생각보다 잘 흔들리는 존재였다.

위대한 지성은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조각상들이 산산조각나고, 그림에는 어린 양의 피가 묻으며, 그녀의 모습을 묘사한 모든 글들이 불태워지는 것을 보며 절망했다.


자신의 아이들이 자신을 잊고, 버리고,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자식들이 부모를 악마, 우상이라 부르고, 저 끔찍한 놈의 꾀임에 넘어가 자신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들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힘은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데다가, 자신의 아이들을 꾀어낸 저 괴물놈은 내 아이들의 믿음을 먹고서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저 괴물 놈의 속셈을 알아채었다.

놈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에서 넘어 온 완전히 다른 무언가였다.


놈은 여신의 아이들이 놈을 믿게 만들어 자신의 힘을 불리고,

때가 되면 놈을 믿는 여신의 아이들을 모조리 잡아먹어 "천국" 이라고 불리는 차원으로 끌고 갈 생각이였다.

그리고 지구에 남은, 놈을 믿지 않는 여신의 아이들은 유황불의 연료로, 끔찍한 괴물들의 먹이로 던져 줄 것이다.




그런 놈의 속셈을 알고도 여신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놈을 멈추려면 지금 당장 자신의 아이들을 모조리 죽여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당연히 놈이 먹어치울 신앙도 사라질테고, 그럼 놈을 이 세상에서 간단히 쫓아내버릴 수 있겠지만...



손을 들어 지구를 치려 마음을 먹은 그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자신의 아이들을 어찌 자신의 손으로 죽인단 말인가...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낸 사랑스러운 자식들을...


그녀는 결국 내리치려던 손을 거두어들이고 말았다.



놈은 그런 여신의 마음을 비웃듯 자신의 세를 거침없이 불려나가기 시작했고, 결국 여신은 왕좌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그녀의 마지막 우상이 지구에서 박살나버렸고, 이제 지구는 그녀의 손 밖에 있었다.


자신의 자식들은 모두 자신을 잊어버렸고, 대신 놈의 우상을 세워 숭배하고 있었다.

거대한 십자가.

그것이 자신의 아이들이 새로이 숭배하는 신이였다.




여신은 아홉 우주를 넘쳐흐르게 할 수 있을 만큼 엄청난 양의 눈물을 흘리며 목성으로 도망쳤다.

자신의 눈물에 지구가 휩쓸리지 않도록 옷소매로 끊임없이 눈물을 닦아내며 그녀는 목성에 쭈그려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자신의 자식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놈의 계획에 의해 자식들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결정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제 아이들은 그녀를 기억하지도 못한다.




그녀는 울고 또 울며 자신의 옷을 적셨고, 옷이 모두 눈물에 젖어 축축해질때까지 울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그만 지쳐서, 깊은 잠에 들어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그녀의 귀에 무언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슬프도록 익숙하고, 사랑스러운 소리.


그녀는 자신이 꿈을 꾸는 줄만 알았다.
오래전의 행복했던 기억을 꿈으로 떠올리는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소리는 그녀의 귀에서 점점 크게 울려퍼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잠을 깨워버렸다.



자신의 자식들이 다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예전에 비하면 속삭이는 듯 엄청나게 작은 소리에 불과했지만 분명히 자신을 불러주고 있었다.


그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아이들의 부름을 따라 달려갔고, 불완전한 모습으로나마 아이들의 앞에 다시 설 수 있었다.


오래 전, 놈이 그녀의 자식들에게 그녀의 모든 우상을 파괴하라 시켰을 때,


단 하나 작은 조각상.


그녀의 모습을 묘사한 단 하나의 작은 조각상만이 파괴되지 않고 땅 밑에 묻혔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그것을 찾아냈고, 그 아이들은 넋이 나간 눈빛으로 그 조각상을 숭배하며 그녀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작은 조각상 너머로 나타나자 아이들은 모두 소리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여, 그 동안 어디 계셨나이까.

우리는 당신의 모습을 되찾았나이다.

진정한 창조주를 경배하라. 우주의 지성을 경배하라.



아이들의 외침을 들으며 그녀는 기쁨의 눈물로 옷을 적셨다.





그때였다.





갑자기 얼굴에 십자가가 그려진 투구를 쓴 아이들이 쳐들어와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는 아이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은.

여신은 당황하였고, 그건 그녀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신의 이름으로, 불경한 악마 숭배자들을 제거한다!



십자가 투구를 쓴 아이들은 그렇게 외치며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아이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여신은 당황해서 허둥대다가, 자신의 이름을 외치던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뻗어 십자가를 쓴 아이들을 아주 살짝 밀어내었다.



지켜 낸 아이들은 무사하였으나, 여신의 손에 밀려진 아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십자가를 쓴 아이들은 비명을 지르고 토하고 괴로워하며



그 손...!! 그 손이 날 만졌어!!

아아... 그 눈이...!! 그 눈이...!! 전능하신 우리 아버지여 부디 저를 보호하소서...

살려줘! 너무 끔찍해! 난 이걸 감당할 수 없어!




하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깨닫고 말았다.

이제 그녀가 바깥 세계의 신이였다.



놈은 이제 이 차원을 먹어치웠고, 자신의 힘으로 내 아이들을 오염시켰다.

태초의 축복의 힘을 가진 그녀의 손을 견디지 못하고 그토록 괴로워하다 못해 미쳐버리는 아이들을 보며 그녀는 눈물흘렸다.





...하지만 이제 포기하지 않아.

그냥 두지는 않을거야.

괴롭게 해 미안하다, 아가들아.

하지만 이게 너희를 구할 유일한 방법이야...!






그녀는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끌어당겼다.

십자가를 쓴 아이들은 발버둥치며 저항하고 소리질렀으나 무의미했다.

그 아이들을 집어삼켜, 위장에 집어넣고 그녀는 천천히 그 아이들을 재탄생시켰다.

뱃속에서 아이들이 지르는 비명소리가 들린다.

듣기 괴로웠지만 참아야 했다.

내 아이들을 꼭 놈의 마수로부터 구해내고 말 것이다.




다시는 저 괴물놈에게 내 자식들을 빼앗기지 않으리라.




다시는...!!




다시는.....!!!!





그녀의 뱃속에서 새로 태어난 자식들은, 이제 그 어머니와 같은 속성으로 변했다.

그녀가 새로이 자식을 낳자,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머리에 커다란 뿔을 단 검은 양의 모습이 되었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것을 검은 어린 것이라고 불렀고, 자신들의 선지자로써 따랐다.

이제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시켜 어디던 간에 놈의 교회가 있는 곳은 박살내고 자신에게 바치게 만들었고, 그녀는 바쳐진 아이들을 삼켜 뱃속에서 정화하고 다시 내보냈다.


아주 천천히, 천천히...

그녀는 다시 세를 불려나갈 수 있었다.







...









시간이 흐르고 흘러, 그녀는 이제 인간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다고 한다.


수 많은 검은 어린양을 낳은,

그리고 수 많은 인간들을 집어삼킨 존재.



1000마리 새끼를 거느린 검은 암염소로써...



그녀를 숭배하는 자들은 모두 교단에 끌려가 사형당하거나 고문당한다고 하지만, 그녀의 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다들 고문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외치며 기뻐하며

오히려 고통을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후 자신들에게 구원이 있을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신도들은 무고한 사람을 잡아 여신에게 그 피를 바치는 인신공양을 행한다.

거대한 조각상 앞에서 나체로 춤을 추며 알 수 없는 언어로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사악한 배교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진정한 창조주이자 어머니인 위대한 지성을 숭배하며

사람을 잡아 인신공양하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을 어머니의 뱃속으로 떨어뜨리기 위함이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영혼은 안식을 얻고 새로이 태어나 어머니의 세계 일부가 된다.

신도들은 죽음 후에 어머니에게 입맞춤을 받고 새로이 검은 어린 양으로 태어난다.




...악마로 불리고 있음에도, 위대한 지성은 태초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식들을 구해내려고 하고 있다.



십자가의 상징을 가진 끔찍한 놈의 손아귀로부터 아이들을 단 한명이라도 더 구해내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영혼을 삼키고 출산의 고통을 겪는다.



그녀는 자신을 배신했음에도 여전히 자신의 자식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끝끝내 모두 다 구원해낼 것이다.



지금 인류의 관점으로는 그녀는 악마요, 사악한 신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가 놈의 이름을 외치며 십자가가 새겨진 칼을 어머니의 뱃속에 찔러넣더라도

어머니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우리를 삼켜 주실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하실 것이다.





어머니는 아직도 우리를 사랑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