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1화 - https://arca.live/b/yandere/8995992

2화 - https://arca.live/b/yandere/899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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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와 사귀게 된 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최악이다.


학교에서는 어찌어찌 같이 붙어 다니지만, 주말에는 콩쿨을 준비한다는 이유로 만나기는커녕 연락조차 힘들다.



'하늘이 였다면 하루종일 붙어 있어도 모자라 했을 텐데.'



겨울방학 때는 상황이 더욱 심해졌다.


오빠네 부모님께서 의심하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빠는 외출 금지.


말이 돼?


초등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말이야.



'하늘이 였다면...'



그래도 힘들게 설득해서 두 번 정도는 만났다.


그렇게 만났을 땐 내 기분 풀어주는 데 최선을 다하는 것 같길래 그냥 넘어가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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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게 춥기만 했던 겨울이 지나가고 개나리와 벚꽃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번 봄방학도 겨울방학 때처럼 보낼 수는 없기에 떼를 써서 주말에 오빠와 약속을 잡았다.


오랜만에 데이트이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신경 써서 꾸미고 밖으로 나섰다.


어제까지만 해도 맑았던 하늘과 달리 우중충한 날씨에 조금 실망했지만 나는 서둘러 약속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속장소에는 이미 오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잘생겼어.


그동안 이런저런 속상한 일이 많았는데 만나는 것만으로 속이 풀리는 얼굴이다.


우리는 대충 간식거리를 사들고 버스를 탔다.


하늘이와는 몇 번 와봤지만, 진짜 남자친구와는 처음 와보는 벚꽃축제.


벌써부터 설렌다.


피부는 항상 꾸준히 관리하고 비싸게 사들인 향수와 옷, 어젯밤부터 직접 준비한 도시락까지.


오늘의 나는 평소보다도 훨씬 완벽하다.


오늘이라면 오빠와 첫 키스를 할지도 몰라.


축제 장소에 도착한 우리는 벚꽃길을 따라 걷고 놀이기구를 타며 시간을 보냈다.


사진 하나 찍지 않는 오빠에게 조금 서운했지만, 괜찮아 아직 준비한 건 끝나지 않았으니깐.


조금 늦은 점심을 먹게 된 우리는 벤치에 앉아 내가 싸 온 도시락을 꺼내고 있었다.


김밥부터 샌드위치, 과일까지 온 정성을 다해 만들어온 도시락을 보고 오빠가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오빠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거친 발소리.


순간 철썩하고 마른 소리가 퍼졌다.


시끌벅적하던 주변이 순간 고요해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집중됐다.


처음 보는 여자가 나타나 내 오른쪽 뺨을 때렸다.



"뭐야 이년은?"



다짜고짜 공격적인 말을 내뱉는 여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던 내 눈에는 한껏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는 오빠가 보였다.



"누나, 그니깐 이게 무슨 상황이냐면.."



"넌 닥치고 있어. 야, 네가 말해봐. 둘이 뭐 하는 거야?"



"저.. 오빠랑 같이..."



"얘가! 얘가 하도 같이 가자 해서..! 난 싫다고 했는데 얘가 계속 질척대서 어쩔 수 없이 온 거야 누나..!"



내 말을 끊고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대는 오빠.


아직 상황정리가 안 된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허.. 넌 이따 나랑 얘기하고. 야, 너. 한 번만 더 내 눈에 보여봐 그땐 반 죽여놓을 거니깐. 쥐죽은 듯이 살아. 깝치지말고."



여자가 오빠를 데리고 멀어져간다.


순식간에 태풍이 지나갔다.


맞은 오른쪽 뺨은 아직도 후끈후끈하다.


주변 사람들이 가축 보듯이 나를 쳐다본다.


아닌데. 내 잘못이 아닌데.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다.


그 눈초리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온몸을 찔러댄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섬뜩한 기분.


너네들이 날 그렇게 볼 자격 따위는 없는데.


나는 누구보다 완벽한 사람이란 말이야.


우중충했던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금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아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늘이 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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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이 되고 새로운 반을 지정받았다.


학교에선 이미 임자 있는 선배를 건드린 걸레라는 소문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모두가 나에게 더러운 시선을 보내온다.


그것들이 역겹고 두렵기에 시선을 피해 교실을 뛰쳐나갔다.


나를 받아주는 곳.


나를 높여주는 곳.


나를 위해주는 곳.


그런 곳은 더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있다.


나만을 생각해주는 곳.


내가 돌아가야 하는 곳.


하늘이.


나는 하늘이네 반을 찾아 들어갔다.


있다. 하늘이야.


그새 친구를 사귀었는지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하늘이.


귀여워. 사랑스러워. 나만의 하늘이, 아니 이제 알았어.


지금까지 하늘이만 날 의지하던 게 아니었어.


나 역시 하늘이를 의지하고 있던 거야.


하늘이가 없었다면 난 아무것도 아니야.


난 하늘이 꺼야.


그런데도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다른 남자와 함께 있었다니.


난 더러워. 불순해.


맘 같아선 더러운 놈의 손을 잡은 이 두 손을 잘라내 버리고 싶지만 그럼 하늘이의 손을 못 잡잖아?


그건 안되지.


정화 시키자.


하늘이의 몸을 만져서 정화시키자.


난 하늘이 꺼라는걸 내 몸에 인식시키자.


더러워진 내 마음을 고치는 거야.



'사랑해 하늘아.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너무 사랑해. 나만을 소유해줘.'



어느새 하늘이 앞에 도착한 나는 하늘이를 꼭 껴안았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



그 순간 하늘이는 날 밀쳐냈다.


말로 설명 못 할 끔찍한 표정을 하고선 날 밀쳐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