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족의 성씨에 대해 광범위한 오해가 있다. 소위 말하는 만주족의 "옛성(老姓)" 과 한족의 姓은 다른 개념이다. 만주족의 성은 할라(hala)로서 실제적으로는 하나의 씨족의 명칭이지, 가족의 성이 아니다. 하나의 씨족이 시간이 지나면서, 인구가 증가하면, 많은 분지가 생기고, 이 분지가 모체가 되는 씨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이러한 원래 씨족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씨족을 일컬어 "무쿤mukun"이라하여, 원래 할라로부터 명칭상의 변화가 생긴다.

예를 들어, 원래 씨족이 瓜尔佳인데, 그로부터 분화해간 무쿤은 "苏完瓜尔佳”, “长白瓜尔佳”, “乌苏瓜尔佳”등이 된다. 이것이 만주족에서 말하는 "출호出戶"풍속이다. 단, 할라이든 무쿤이든, 모두 씨족을 일컫는 것이지, 한 개인에게는 자신이 매우 자랑스럽게 그것을 내세우는 경우가 아니면 일반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만일 만주족에게 姓을 묻는다면, 만주족은 직접 자신의 이름만 말하지, 소위 말하는 옛성, 즉, 씨족명을 말하지 않는다. 만일, 상대방이 재차 당신은 어느 집안출신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만주족은 "나는 爱新觉罗...: 나는 纽古录...: 나는 索卓罗... 등등"으로 자신이 속한 씨족을 말한다.

만주족(여진족) 황실의 후손은 종종 자신의 씨족명을 이름 앞에 쓰기도 한다. 예를 들어 "爱新觉罗.XX;完颜.XX"...이 두 가문은 일종의 예외이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조상이 황족이기 때문에, 씨족명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자기 과시이다. 당연히, 비교적 겸손한 이는 이러한 과시를 하지 않고, 그저 자기 이름만 쓴다. 예를 들어, 유명한 启功선생은 결코 爱新觉罗라는 씨족명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만 썼다. 보통 만주족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씨족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 집안을 예를 들면,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어떤 서류에서도 씨족명을 쓴 적이 없다. 나도 또한 그렇게 한 적이 없다. 단지, 설날에 조상 앞에서 향을 피울 경우, 자신의 씨족명을 사용한다. 내가 아는 만주족은 모두 그러하다. 어떤 사람도 자기 씨족명을 사용하지 않는다. 원인은 간단하다. 이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해 왔던 것이 습관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만약, 叶赫那拉(서태후가 나온 씨족), 赫舍里, 郭络罗, 이런 성이 아직 있는가 묻는다면, 당연히, 아직 있다. 단, 이들이 외부에 자신의 씨족명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현재에는 이들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현대에 뿐만 아니라, 청왕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청왕조시대에 만주족 명인들의 이름을 본다면, 费英东,敖拜,巴海,何绅,福康安,明瑞,布尔塞,荣禄 등등...씨족명을 붙인 것이 없다. 만일 따로 조사하지 않으면, 그들의 씨족명이 무엇인지 알 도리가 없다.


만일 한족의 성씨의 개념에 따르자면,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손자에게 성씨가 전해져, 영원히 변하지 않는 혈연의 부호가 되지만, 만주족에게는 이러한 한족의 성씨가 없고, 단지 이름과 가족에 대한 칭호가 있을 뿐이다. 만주족이 오늘날 대다수 한족의 성을 차용하고 있고, 이를 代姓또는 假姓이라 한다. 최초에 청왕조 시절에는 한족과의 교제를 위해서, 편리를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대성은 일반적으로 고정적이지 않고, 씨족 중에 각종 다양한 대성이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乌拉那拉씨족에는 那、纳、陈、江、赵,弘、扈、茂, 등등의 한족 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몇 대가 지난 후에는 다른 성을 차용한다. 어떤 만주족 가정은 성씨의 변동이 잦다.

예를 들어, 章佳가족은 章과 车, 두 가지 성을 교대로 사용하는 관습을 지니고 있다. 처음 1대가 章이면 그 다음 대는 车, 다시 제 3대는 章으로, 제 4대는 车로 이런 식으로 순환한다. 남방에 거주하는 만주족 중 일부의 대성은 어쩔 수 없이 강요된 것이다. 신해혁명과 민국시기, 만주족은 박해에 시달렸고, 특히, 신해혁명시기 광주, 항주, 서안, 형주 등 4개 도시에서는 만주족이 혁명당 극단파의 학살을 경험하였다. 특히, 서안에서는 2만명의 만주족 중 300명에도 못 이르는 사람만이 살아 남았다.

이후에 60년대 문화혁명기에 다시 만주족은 박해에 시달렸다. 그러므로, 이런 화를 피하기 위해, 씨족명을 바꾸거나, 심지어는 민족조차 한족으로 바꾸었다. 오늘날 사실 많은 만주족 집안에 아직도 가계에 대한 족보가 있으나, 이러한 박해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으로, 엄격히 외부에는 이를 알리지 않고, 심지어 자손에게도 알리지 않는다. 단지, 임종시기, 족보를 자손의 손에 건네 준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만주족의 씨족명이 전하지 않거나, 보지 못하는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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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성씨를 '부족' 개념의 정체성으로 본관처럼 사용하거나 했기 때문에 한족의 그것과는 완전히 틀리다는 것.


그리고 청 멸망 이후 역사의 풍파와 문화대혁명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민족도 한족으로 바꾸고 성씨도 바꾸어서 지금까지 이렇게 산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