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졸본성 시대 - ? 오녀산성과 관계가 있는 평지성이 아직도 재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오녀산성 내부에도 이렇다할 궁궐 유적이 발굴된 바가 없다. 때문에 앞으로도 오랫동안 졸본시기 고구려 정궁은 밝혀질 일은 없을 것이다.

고구려 국내성 시대 - 환도성 궁궐터?

사실 환도성은 국내성과 세트인 산성이라서 여기가 정궁은 아닐것이다. 다만 고구려는 전시상황에는 산성으로 모든 행정을 옮기는 이성체제를 고수했으니 전시상황에는 사실상 정궁역할을 했을것이라는게 현재로서는 정론이다. 참고로 저 대형 건물지는 무려 입면이 90m로 경복궁 근정전의 3배다. 아직까지 평성으로 사용하던 국내성의 정궁은 발견된 적이 없다.

전기 평양성 - 안학궁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하고 지은 궁궐. 전체 둘레 2488m에 면적 380,000m²을 자랑하는 거대한 궁궐이었다. 당시 전성기를 맞이했던 고구려의 강력한 국력을 알 수 있는 부분.

후기 평양성 - ?

장안성이라고도 불리는 후기 평양성은 고구려가 기울어질때 쯤 평원왕이 천도한 현재의 평양성을 말한다. 다만 이 시기 후기 평양성 내부에 지은 고구려의 궁궐의 위치와 구조는 아직까지도 밝혀진 바가 없다. 평양은 고구려 이후로도 주요 도시로서 자주 개발되어 고구려 시대의 흔적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실상 사라졌기 때문.

한성백제 - 풍납토성 내부 어딘가?

현재 학계의 정설은 백제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이성체제를 활용한 수도 개발을 한것이 정설로 판단되며, 따라서 한성백제의 정궁은 평성이었던 풍납토성 내부 어딘가에 있었을것으로 추정되지만 알다시피 풍납토성 내부는 발굴하기 심히 난감해진게 현실이다.

웅진백제 - 공산성 내 추정 왕궁지

사실 초창기 이 건물지가 발굴되었을때는 궁궐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규모 때문에 궁궐이 아니라 절터가 아닌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왕궁지 주변에서 문을 건설한 흔적 등의 대규모 토목공사의 흔적도 함께 발굴되어 점점 이곳이 웅진백제 시기 왕궁이 맞았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비 백제 - 관북리 유적, 쌍북리 유적(추정)

부여 나성, 부소산성 과의 지리적 연관성과 위치, 대형건물지의 존재를 통해 이 두 곳이 사비백제의 정궁 사비궁이거나 아니면 사비성 내 궁궐 유적으로 추정된다. 다만 아직 발굴이 완벽히 끝난 것이 아니라서 추정에만 그치는중.

신라 - 경주 월성

탈해 이사금 시기에 꾀를 부려서 호공의 집을 빼았아 지은 궁궐로 전해지는 신라의 정궁으로, 신라가 멸망할때 까지 꾸준히 신라의 정궁 자리를 지켰다. 다른 삼국시대 궁궐과 기타 한반도 왕조의 궁궐과 비교해도 유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정궁으로 쓰였던 궁궐. 다만 현재 발굴조사로 알게된 자료와 지하 레이더 조사 결과 저렇게 거대한 건물은 없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