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와나카지마 전투에 대해서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기 전에 우선 카와나카지마 전투에 대해 널리 알려진 내용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신겐 군'과 '겐신 군'은 혼동의 여지가 큰 만큼 '다케다 군'과 '우에스기 군'으로 호칭하고 신겐과 겐신도 성을 붙여서 표기하기로 하겠다.)


다케다군과 우에스기군이 카와나카지마에서 격돌한 것은 다케다 신겐이 계속 북쪽으로 세력을 뻗어서 시나노까지 확장해왔기 때문이다. 카와나카지마가 완전히 다케다군의 수중에 들어가면 우에스기군의 본거지인 에치고가 다케다군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으므로 시나노 북부의 호족들이 구원요청을 하면 우에스기 겐신은 당연히 출동하게 되고, 다케다 신겐도 확장을 포기할 생각이 없으니 필연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그래서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은 카와나카지마에서 5번의 전투를 벌였지만, 4차를 제외한 나머지 4번은 정면 충돌은 서로 피하고 다케다군이 카와나카지마 지역을 공격하는데 우에스기군이 출동해서 대치하다가 서로 군을 물리는 양상이었다. 따라서 "카와나카지마 전투"라고 하면 대체로 4차 카와나카지마 전투를 의미한다.


이 전투는 우에스기 겐신이 다른 곳에 원정을 나간 동안 다케다군이 카와나카지마에 가이즈성을 세우고 카와나카지마 지역을 제압한데서 시작되었다. 우에스기 겐신은 돌아온 후 대략 1만3천명의 군을 이끌고 가이즈성 인근의 사이죠산에 진영을 세우고 가이즈성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직접 공성전에 나서지는 않고 다케다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 보고를 받은 다케다 신겐은 2만명의 부대를 이끌고 전진해서 우에스기군의 북쪽, 즉 우에스기군의 후방에 진을 친다. 우에스기군은 가이즈성과 다케다군 사이에 끼인 형세가 되어 불안해하고 있었지만, 우에스기 겐신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다케다군 역시 우에스기군과 우에스기군의 본거지인 가스가산성 사이에 끼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우에스기군을 동요하게 만들어서 움직임을 유도할 생각이었지만, 우에스기군이 움직이지 않으니 다케다군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이에 다케다군의 군사인 야마모토 간스케는 "딱따구리 전법"에 따른 작전을 구상한다. 딱따구리 전법이란 "딱따구리는 나무 주위를 쪼아서 벌레가 나오게 유도해서 잡아 먹는다"는 개념에서 나온 것으로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간스케의 작전은 1만2천명 (혹은 1만명)의 별동대가 산 뒤쪽으로 돌아서 남쪽으로부터 우에스기군의 후방을 공격하고, 그대로 우에스기군을 산 아래로 몰고 나오면 대기하고 있던 본대가 협공으로 우에스기군을 격파한다는 내용이었다. 


다케다군은 다음날의 전투를 대비해서 도시락을 싸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양의 밥을 지었다. 다케다군을 살피던 우에스기 겐신은 밥 짓는 연기가 늘어난 것을 알아차리고 다케다군이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예상, 선수를 치기로 한다. 우에스기군은 진영에 병사들이있는 것으로 위장하고 한밤중에 전군을 조용히 움직여 다케다군 진영 쪽으로 이동했다. 우에스기군은 그날 밤에 다케다군 척후 17명을 모두 죽였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케다군은 우에스기군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에스기군은 새벽의 안개 속에서 이제 별동대가 우에스기군을 몰고 내려올 것을 예상하고 기다리던 다케다군을 급습했다. 느긋하게 기다리던 다케다군 본대는 느닷없이 우에스기군이 공격해오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우에스기 군은 다케다군의 우측을 비스듬히 찌를 수 있는 방향에서 공격해왔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다케다군 본대는 큰 피해를 입는다.  수많은 무장들이 전사했고, 신겐의 참모이자 카게무샤였던 동생인 다케다 덴큐 노부시게까지 전사했을 정도였다. (실화인지는 의심스럽지만) 다케다 신겐 본인이 다름아닌 우에스기 겐신의 공격을 받아 군바이(지휘용 부채)로 급히 막아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작전을 입안한 야마모토 간스케도 책임을 지기 위해 적진에 뛰어들어 사망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케다군 본대는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다케다군 별동대는 산을 빙 돌아서 뒤늦게 적진에 돌입했다가 적진이 텅 빈 것을 보고 경악해서 본대 쪽으로 달려왔고, 그대로 우에스기군의 후방을 공격한다. 이 때문에 우에스기군 역시 혼란에 빠졌고, 오후까지 난전을 벌인 후 우에스기군과 다케다군 모두 전장에서 물러났다. 그 중에서 후퇴한 것은 우에스기군 쪽으로, 우에스기군은 처음에는 질서정연하게 퇴각했지만 다케다군의 추격을 받아 강을 건널 때 많은 병사들이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양쪽 모두 피해가 컸다. 사상자의 숫자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우에스기군은 72%, 다케다군은 88%의 사상자를 냈다고 하며 다케다군은 유력한 가신들이 사망했지만 우에스기군의 손실은 거의 병졸들만이었으므로 다케다군의 손실이 더 컸다. 하지만 전투의 결과로 다케다군이 카와나카지마 지역을 장악했으므로 승패 자체는 다케다군의 승리로 볼 수 있다. 전투 이후 양군 모두 자기들의 승리를 선언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투 과정에 대한 설명을 "통설"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전투의 진행과정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

카와나카지마 전투는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의 정면대결이자 일본 역사 전체를 봐도 길이 남을 혈전이며 상당히 박진감 넘치는 진행과정을 자랑하는 만큼 많은 전국시대 팬들에게 인기가 있다. 하지만 통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1) 다케다군의 작전 개념과 작전 계획의 불일치

야마모토 간스케가 말한 '딱따구리 전법'은 성동격서의 일본 전국시대 버전으로, 적군의 움직임을 유도한 후 그 움직임을 이용한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간스케가 제시한 작전 내용이 과연 성동격서인가?


정작 작전의 내용을 보면 다케다군 별동대가 우에스기군을 산 아래쪽까지 몰고내려온다는 것이다. 이건 다케다군이 힘으로 우에스기군을 밀어붙이는 것이지 우에스기군의 행동을 유도했다고 볼 수 없다. 이게 딱따구리 전법이 되려면 다케다군 별동대가 짐짓 공격하는 척을 하면 우에스기군이 화들짝 놀라서 산 아래로 도주하기라도 해야 할 것인데,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2) 다케다군 작전 계획의 무모함

다케다군 별동대가 우에스기군을 산 아래로 몰아붙이기 위해서는 다케다군 별동대의 전력이 우에스기군보다 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다케다군 별동대는 1만2천 혹은 1만, 우에스기군은 1만3천으로 오히려 우에스기군의 전력이 앞선다. 야습을 하는 쪽이 유리해서 괜찮을까? 하지만 그 정도로 유리하다면 1만2천이 아니라 2만명으로 진작에 야습을 걸어서 우에스기군을 격파하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다케다군 본대는 이제쯤 우에스기군을 몰고 내려오려나 하고 기다렸다고 하는데, 그것은 우에스기군과 다케다군 별동대의 전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다케다군 별동대가 숫자로도 불리하고 진영을 갖춘 상대를 공격해야 하는 만큼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갈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는데, 다케다군 본대가 그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면 치명적이다. 별동대 측에서 전령을 보내거나 우에스기군이 계속 내려오지 않으면 다케다군 본대가 움직일 수는 있지만, 과연 너무 늦기 전에 구원할 수 있을지는 예상하기 어렵다. 만약 우에스기군이 별동대를 먼저 처리하고 이어서 다케다군 본대를 공격한다면 오히려 각개격파의 훌륭한 표본이 되어 버린다.


(3) 다케다군은 왜 기습을 당했는가?

흔히 우에스기군이 안개 속에서 돌격해온 장면을 박진감있게 묘사하는 것으로 다케다군이 기습당한 것을 정당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다케다군은 전투를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격을 받은 게 아니다. 오히려 조만간 우에스기군이 나타날 것일 예상하고 있었던 만큼 지휘부와 병사들 모두 전투준비를 마친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우에스기군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당황했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지휘부는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상황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기습으로 허를 찔려서 수뇌부가 줄줄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는 결과에 걸맞는 상황이 아니다.


여기에 대한 설명으로 우에스기군이 다케다군의 정면으로 온 게 아니라 비스듬이 공격하는 형태였다고 덧붙이기도 하지만, 다케다군의 원래 작전대로라도 우에스기군이 어디에서 나타날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만큼 정면만을 대비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므로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애당초 다케다군이 우에스기군을 발견하지 못한 것부터가 이상하다. 다케다군은 우에스기군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당연히 척후를 풀어서 우에스기군을 찾고 있었을 것이다. 반면 우에스기군은 안개가 걷히기 전에 급히 이동해서 다케다군을 공격해야 했다. 정찰을 목적으로 하는 소수의 척후를 우에스기군이 발견하는 것보다 1만3천명의 대군이 움직이는 것을 다케다군 척후가 알아차리는 게 먼저일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대체 어떻게 우에스기군이 다케다군에게 발견되지 않을 수 있었을까? 통설에서는 우에스기군 다케다군 척후를 모두 처리해서 다케다군이 우에스기군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아무리 우에스기 겐신이 훌륭한 장수라도 안개 속에서 레이더를 켜고 있는 것도 아닐 텐데, 훌륭한 장수라는 이유로 척후를 한 명도 빠짐없이 먼저 발견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4) 별동대의 이상한 움직임

다케다군 별동대는 우에스기군 진영에 도착한 후 진영이 텅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하며 급히 돌아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전에 이미 우에스기군과 다케타군 본대가 격돌하고 있었다. 산 때문에 소리가 막히고 주변에 숲까지 있으면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수는 있지만, 총병력 2만명이 넘는 군대가 격돌하고 있는데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우에스기군 진영으로 그대로 진격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것도 정면으로도 아니고 산을 빙 둘러서 갈 수 있는 거리인데?


자기도 전투중이었다면 다른 곳의 전투 소음을 알아차리지 못할 수는 있다. 하지만 다케다군 별동대는 야습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던 만큼 자신들의 소리는 최대한 억제했을 것이며, 동시에 우에스기군의 동향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었을 것이다. 전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개인적인 의문에 대한 개인적인 해결책

이렇게 카와나카지마 전투의 진행 과정에 대한 통설에 대한 의문점들을 정리해보았다. 그렇다면 통설의 내용을 민담으로 간주하고 전부 폐기하거나 전면적으로 수정해야 할까? 그것도 가능한 선택이기는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단 하나의 요소만을 수정하면 모든 게 이치에 들어맞게 변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다케다군 본대의 위치다. 다케다군 본대가 원래의 진영에서 기다린 게 아니라 다케다군 본대 역시 별동대와 함께 우에스기군을 앞뒤로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고, 그렇게 이동하던 도중에 우에스기군에게 기습당했다고 하면 모든 게 앞뒤가 맞는다. 즉 다케다군의 작전은 별동대가 먼저 후방에서 우에스기군을 기습하고, 우에스기군이 당황하며 후방의 별동대에 집중할 때 다케다군 본대가 다시 우에스기군을 반대쪽에서 공격하려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이 설명을 '통설'에 맞서는 '새로운 설명'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이런 새로운 설명에는 사료상의 근거가 없다. 순전히 개인적인 추측일 뿐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설명에 따르면 위의 네 가지 의문점이 모두 자연스럽게 해소된다.


(1) 새로운 설명에서는 다케다군 별동대는 자기 힘으로 우에스기군을 산 아래로 몰고내려오는 게 아니라, 우에스기군을 기습해서 우에스기군이 별동대에 집중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성동격서의 개념에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2) 새로운 설명에서는 다케다군 별동대는 우에스기군을 산 아래로 몰고내려가는 무리한 작전계획을 실행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별동대와 본대 모두 같은 우에스기군을 양쪽에서 공격하고 있으므로, 한 쪽이 위기에 빠지더라도 다른 쪽이 직접 구원을 가거나 우에스기군을 더 격렬하게 공격함으로써 간접적으로 구원할 수 있다.


(3) 새로운 설명에서는 다케다군은 이동중이었으며, 해가 완전히 떠올라서 안개와 어둠이 걷히기 전에 우에스기군을 공격해야 했으므로 다소 서두르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갑작스러운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통설과는 반대로 다케다군은 서둘러서 움직이고 있었고 우에스기군은 매복한 채 기다리고 있었던 만큼, 우에스기군이 다케다군을 먼저 발견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4) 새로운 설명에서는 다케다군 별동대가 전투의 소리를 들었더라도 단순히 다케다군 본대가 (원래 계획과는 달리) 먼저 전투에 돌입했다고만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본대의 장수들이 호승심이 앞서거나 본대가 우에스기군에 발견되는 등의 이유로 먼저 전투에 돌입하는 정도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범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별동대는 원래 계획대로 우에스기군 진영으로 그대로 진격했을 것이며, 우에스기군 전영에 도달한 후 우에스기군의 진영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는 것도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또한 위의 4가지 의문점만 아니라, 의문점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다소 부자연스러운 사항들도 보다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다.


(5) 우에스기 겐신의 예상과 대응

통설에서 우에스기 겐신이 다케다군의 밥 짓는 연기를 보고 다케다군이 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는 부분은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대응이다. 우에스기 겐신은 왜 다케다군 진영을 공격했을까?


만약 다케다군이 전군을 몰고 별동대의 길로 야습을 갔다면, 우에스기군은 텅빈 다케다 진영을 발견하게 될 뿐이다. 만약 다케다군이 전군을 몰고 정면으로 야습을 갔다면, 우에스기군과 중간에서 만나게 되는데, 이 경우 우에스기군이 딱히 우세하다고 할 수 없으며 진영을 굳게 지키며 대기하는 것보다 유리하다고 볼 이유가 없다. 다케다군 별동대가 정면으로 와서 우에스기군과 중관에 마주치더라도 역시 자기 진영까지 끌어들여서 공격하는 것보다 유리할 이유가 없다. 다케다군의 작전이 야습이 아닌 더 늦은 시간에 움직이는 것이었다면 우에스기군은 다케다군 작전을 알았는지와 관계없이 단순히 다케다군 진영을 공격했을 뿐인 것이 된다.


즉 우에스기군이 다케다군 진영을 공격한다는 것은 다케다군이 별동대를 정면이 아닌 뒷길로 보내는 한편 본대는 원래의 진영에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에만 말이 되는 작전이다. 통설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되었으니 우에스기 겐신은 역시 명장! 이라고 하고 넘어가지만, 과연 이게 명장이라면 밥 짓는 연기만 보고 예측할 수 있는 내용인가? 그리고 그렇게 정확하게 예측했으면서, 정작 다케다군 별동대가 돌아와서 후방에서 공격하는 것은 대비를 하지 않아서 전투에서 패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물론 전쟁에서 확실한 것은 없으니 우에스기 겐신도 자신의 감을 믿고 일종의 도박을 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별동대의 존재를 알고 있었더라도 전방의 전투가 너무 치열해서 미처 후방을 돌볼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설명을 하려면 못 할 건 없다. 하지만 이런저런 가정을 붙여야 한다.


새로운 설명에 따르면, 우에스기 겐신은 다케다군의 밥 짓는 연기를 보고 다케다군이 야습을 할 것을 예상해서, 길목에 대기하고 있다가 기습한다는 결정을 했다. 예상한 내용도 상식적이고, 대응도 정석적이다. 그리고 전면에 있는 적군이 다케다군 전체라고 생각하고 공격하다가 후방에서 다케다군 별동대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도 특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6) 야마모토 간스케의 자살 돌격

야마모토 간스케는 우에스기군에게 다케다군 본진이 기습을 받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적진에 뛰어들어 싸우다 전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통설에서 야마모토 간스케가 대단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있는 것일까?


통설에 따르면 다케다군 본대는 진영에 그대로 있다가 공격을 받았을 뿐인데, 야마모토 간스케의 작전이 없었더라도 본대는 같은 자리에서 공격을 받았을 것이다. 물론 부대의 절반 이상이 별동대로 빠져나갔으니 숫적으로 불리해지기는 했다. 하지만 본대의 숫자는 1만명 혹은 8천명으로 그렇게까지 부족하지는 않다. 8천명으로 계산하면 적군이 62% 남짓 많은 셈이니 당연히 불리함은 면할 수 없겠지만, 원래 다케다군이 우에스기군보다 54% 가량 많았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케다군이 우에스기군에 선뜻 성공을 걸지 못하고 계속 대치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적어도 공격을 당하자마자 수뇌부가 줄줄이 죽어나갈 수준의 차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별동대가 돌아올 것이므로 오래 버텨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별동대가 돌아올 것을 다케다군 전원이 알고 있으므로 숫적인 열세 때문에 사기가 떨어질 이유도 없다. 어느모로 봐도 전투 상황은 야마모토 간스케가 세운 작전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


물론 현대인, 그것도 외국인의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일본 전국시대의 무사가 목숨을 던질 정도로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인지를 논하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당시에도 본인이 책임을 느꼈다는 것이지 남들이 책임을 물은 것도 아니기는 하다. 하지만 다소 설명이 필요한 면은 있다.


새로운 설명에 따르면 바로 다케다군이 이동하던 도중에 기습을 당했으므로 수뇌부가 적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는 사태가 벌어졌고, 따라서 이 상황은 명백하게 작전 자체가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제대로 진형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지휘부가 공격을 받았으므로, 지휘관들은 다른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피신하거나 다른 병사들을 급히 불러와서 방어 혹은 반격을 해야 한다. 즉 시간을 벌어야 할 급박한 이유가 있다. 별동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면 적진에 뛰어들어서 전사하는 짧은 시간이 큰 의미가 있다고 하기 어렵지만, 지휘부가 피신하거나 병사들을 불러올 시간을 버는 데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야마모토 간스케의 돌격은 단순히 "책임을 지기 위한 자살돌격"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전술적으로 절실하게 필요하지만 목숨을 던져야 하는 역할"을 한 것이 된다.


따라서 새로운 설명 쪽에서는 야마모토 간스케의 책임감이나 그 행동에 더 설득력이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건 정말로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군사이자 사무라이인 사람이 책임을 지는 방법으로 이보다 적합한 행동은 없을 것이다.


이상의 이유로 나는 다케다군 본대가 우에스기군을 공격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하지만, 사료상의 근거가 없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래도 가능성의 하나로 생각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