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작품의 어느 일본인의 시각으로 바라본 20세기를 설명하는 작입니다.
* 본 작품의 사상/이념은 의도치 않은 우연으로 일치하더라도 작가 본인의 시각과는 무관합니다.
* 본 작품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 허구입니다.


1910년
나는 요요기에 사는 스기무라 신타로. 1889년생. 도쿄제국대학에서 경영학 전공.
아버지는 상당한 규모의 방산업을 하신다. 몇달 전 확장성이 크고 임금이 싼 조선으로 사업을 확장하셨다고.
어머니는 문학작가이시며 한참 전에 몰락했지만 다이묘 집안 출신이라 하셨다.
말하자면 화족도, 그렇게 잘난 집안도 아니지만, 적어도 배에 힘은 주고 다니는 정도.
일노전쟁에서 정부 수주를 타서 상당한 양의 부를 축적했지만, 전쟁이 좋은 건 아니지.
하지만 황국에 영광이 있다면야, 러시아 놈들 코를 꺾어놓았으니 나야 좋다.
단지 승리에 비해 협상 과정과 끝말이 조금 아쉬울 뿐이지.



1913년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되었나, 군 입대를 했다. 계획했던 대로 해군 수병으로 들어갔다. 짜피 3년이면 끝이잖아.

영국에서 건조해, 몇주 전에 취역한 따끈따끈한 순양전함 공고에 배치받았다.

일노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난 자연스레 해군에 관심이 많아졌다.
아버지가 방산업을 하시니 정보를 얻기도 상대적으로 쉬운 것일수도.
어쨌던 간에, 나는 해군에 입대하여 3년간 황국을 지킨한다.



1914년
내 팔자도 참, 입대했을 때 전쟁이라니… 칭다오에서 독일 놈들을 몰아내라고 한다. 내가 몸을 맡긴 공고도 이 공세에 합세한다고 한다.
아는 바에 따르면 칭다오에 있는 독일 제국해군은 잔당이니, 공고는 항구를 봉쇄하고 지원사격을 조금씩 한 거 외 임무는 없겠지.
하지만 황국의 영광과 함께한다는 것에 기쁨을 표하지 않을 수가 없지.



1919년
유럽에서 전쟁이 끝났다고 한다. 편을 가르지 않고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방산업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불리하지만, 더 이상 사람이 죽지 않으니까 전쟁이 끝난 것은 좋은 일이지.
이 전쟁으로 황국은 식민지를 추가로 얻었다. 일본 제국 만세!

그런데, 러시아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불고 있다고 한다. 공산주의자들이 설치고 다닌다고 한다.
그들은 부호와 왕의 목을 요구한다. 내 사업, 아니 사업은 물론 황국에 악영향을 끼칠까 걱정된다.
물론, 그럴 때는 하늘의 가호를 받은 황군이 그들을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1923년
모든 것이 순조롭다. 돈은 넘치고, 사람들은 행복하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 경제가 더더욱 활발해져서 신민들의 삶은 더더욱 순조로워진다.

대학가와 정부가 시끄러워진다는데 알 게 뭐야. 모두가 행복하고 배부른데.

내 사업은 승승장구하는 중이다. 일본 방방곳곳에 공장이 있는 동시에 경성, 부산, 평양 등 조선에도 공장을 지었다.

제대하자마자 입대 전부터 사귀던 아키구모 사오리와 결혼하고, 아들 히로시를 얻었다.


어제는 큰 수주를 따내어 기분으로 전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었다.
개중에는 우리 공장이건 아니건, 조선에서 일하다 본사로 상경한 조선인들도 많다.
그들은 내 덕에 가족이 먹고 산다고 한다며, 몇몇은 전에 그들이 일했던 공장의 조선인 사장보다 내가 더 착하다고 고마워한다.
이런 말을 들으니 괜히 뿌듯하다. 조선인 일본인, 다를 것이 뭐야. 다 똑같은 사람이다. 다 똑같게 대해줘야지.
오늘은 딱히 업무가 없기에, 긴자에서 라멘 한 그릇 먹고 가족이 입을 겨울 옷을 구경하는 주…




내… 내 목이 붙어있나? 방금 그건 지진이었지? 가족은 괜찮으려나? 빨리 집으로 돌아갔다.
천만다행으로, 집사람도, 아직 소학교도 안 들어간 금쪽같은 아들도 무사하다. 공원에 있어서 무사했다고.
하지만 집은 뼈대만 남은 채 주저앉았다. 다행히 가보들은 상당수 온전하다.
다행히 공장들은 대부분 온전히 남아있어서 수익은 계속 돌아오고 집은 다시 지을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가족이 모두 안전한 게 다행이다.

하지만 큰 문제가 있다. 조선인을 상대로 루머가 퍼지고 있고, 그 여파로 조선인들을 죽인다고 한다.
인력의 대부분이라고 할 정도로 공장에서 일하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많은데 어쩌지?
회사의 조선인들은 모두 착하고 성실하다. 적어도 그들은 우물에 독을 팔 사람들은 아니다.
최대한 빨리 그들을 모아서 내 공장 안에서 생활하게 해주었다.
교통망이 망가진 바람에 물품을 만들 원자재가 없으니 이렇게라도 써야지.
주변 사람들은 소문을 들었냐며 조선인들을 해고하라고 나를 닥달한다. 나는 당연히 무시한다.
그들이 나쁘다고? 아니다. 그들 외에 지금 나를 위해 일해줄 사람이 있냐고? 아니지.



1926년
요시히토... 아니 다이쇼님이 승하하셨다고 한다. 이 일 때문에 오늘은 직원들과 추모주를 마셨다.
다음 천황은 폐하의 아드님 히로히토님이신가. 잘 모르겠지만, 다이쇼님의 아드님데, 우리를 잘 이끌어 주시겠지.

15년 가까이 함께 한 정겨운 태양이 지는 일본 제국에는 쇼와라는 새로운 태양이 뜬다. 새로운 일본 제국 만세.



1932년
살기 너무 힘들다. 경제도, 사람들의 마음도 얼어붙은 거 같다. 정겹던 이웃들도 요즘 사이에 쌀쌀맞아졌다.
미국에서 시작한 대공황의 여파는 일본도 벗어날 수 없었다. 아내와 아들, 어린 딸 쿄코도 있건만. 하필 이럴 때에...
대지진 이후로도 쭉 살기 힘들었긴 하지만 지금은 일전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들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사업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이다.
다이쇼님이 다스리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히로히토님은 이 상황을 타파하실 수 있을까?

처음으로 폐하의 능력에 의문이 든다. 너무 이른 시기에 왕위에 오르신 것인가?
그런데, 친구들이 정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한다. 힘든 요 사이 정권을 잡은 군부 놈들이 막나간다고 한다.
무서운 것은 히로히토님의 입지마저 줄어든다고 한다. 군부 놈들이 천황 폐하를 무시하고 폭주한다면 그들도, 황국도 무사하지 않을 텐데.



1937년
오늘도 황국의 영광은 계속된다. 중국의 수도 난징을 우리가 점령했다고 한다. 저항하는 중국군은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이 기세로 이어간다면 중국 대륙의 점령은 눈앞이다. 이렇게 된다면 일본은 미국, 영국, 독일과도 어깨를 견주는 대국이 될 것이다.
제국의 식민지는 매일매일 늘어만 간다. 난징으로 사업을 확장할 계획을 세워야겠다.
아버지가 조선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과 같은 성공을 할수만 있다면 나는 죽어서도 아버지를 뵐 면목이 있겠지.



1942년
황국 만세! 진주만 기지의 공습이 너무나도 성공적이였다고 한다. 미군 전력 대부분이 와해되었다고 한다. 황국의 영광은 어디에서 끝날까?
바야흐로 대동아전쟁이 막을 올렸다. 이제 미국이 우리의 영광에 무릎을 꿇고 굴욕스러운 화평을 맺을 일만 남았다.
흠... 배웅차 이자카야에서 육군 장성인 친구와 사케 좀 많이 들이마시고 서로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생각나네.
“미국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하다. 절대 일본이 이길 수 없는 상대이다”


에이 설마… 황국의 영광이 있지. 하지만 이번 건은 무언가 불안하다. 아버지를 따라 미국을 간 지 20년 전인가?
그때 본 뉴우요오크의 절경은 정말로 대단했다. 황국의 수도를 일개 소도시로 만들 미경으로, 그야말로 마천루의 숲이였다.
밤이 되면 도시 전체가 화려한 불꽃놀이처럼 보인다. 브로드웨이에서의 밤은 일생 기억에 남을 경험이었다.
정녕 아마테라스의 수호가 있더라도, 이런 나라와 전면전이라고? 내가 히로히토님이었다면 극구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폐하가 뜻이 있으시겠지.
그래도 윗층에서 명령을 내린 이상 낙장불입이다. 고민해봐야 뭐가 바뀌겠냐. 사업을 키울 생각이나 해야지.



1944년
어쩌다가 상황이 이렇게 나빠진 거지? 더 이상 황국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할수도. 아니, 솔직히 말하건데, 못할 것 같다.
아들이 전하길, 전황이 시간마다 불리해진다고 한다. 미군의 자원은 달아나갈 줄 모르고, 하루하루 밀려나간다고 한다.

무츠는 히로시마에서 성대하게 가라앉았고, 전력을 기울여 건조한 다이호는 미군 잠수함 어뢰 한 발에 폭발해 버렸다고 한다.

물론 언론에서 공식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소문이라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이제 필리핀에서도 퇴각해야 한다고 아들이 전했다. 퇴각하면 이오지마로 재배치 된다고 한다. 살아돌아오길.


아니, 주워들은 소식에 의하면 멀쩡한 비행기와 조종사를 미국 군함에 가져다가 박는다고 한다. 즉 자살공격이란 소리.
이런 말같지도 않은 전술을 기용하는 머저리 녀석들이 있다고? 그것도 우리 황군에?
언제부터 자랑스러운 황군이 그렇게 미친 놈들의 집합소이 되었다고?

내가 지금도 해군에 있었으면 그딴 소리 지껄인 녀석 모가지를 베었을 것이다.


1945년
소문에 의하면 이오지마마저 뚫린다고 한다. 더 이상 이 나라에는 희망이 없다. 군부 새끼들, 역시 거짓말쟁이였구나. 미친 새끼들…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그래도 히로히토님이 등용한 인재라고 믿었는데. 내가 우매한 것인지…

일단 미군들이 오면 그놈들부터 죽여야 하지. 아니면 그 전에 책임을 물고 할복하던가. 근데 그럴 놈들이었으면 이런 일을 저질렀을 리가.

차라리 사업도 정리하고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피신했으면 좋았을까?
박해야 차별이야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언제 굶어죽을지 맞아죽을지는 모르지는 않았을 것 아니야?


더 나쁜 소식은 아들이 이오지마에서 전사했다고 한다.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녀석이 아니란 말이다. 젠장…
아들이 돌아오면 나누자 고이 모셔둔 술을 착잡한 마음에 전부 마셔버렸다.

어차피 죽으면 술이고 뭐고... 녀석은 왜 이 애비보다 먼저 죽은 거인가...

내 아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것을 하늘은 모르는 건가, 봄이 오니까 요 며칠동안 하늘에서 이상한 찌라시가 떨어진다.
읽어보니 미국이 도쿄를 폭격한다고 한다. 당연히 하고도 남는다. 내가 그 직위에 있어도 그랬을 것이니까.
직감상 이건 예전의 폭격이 아니다. 눈덩이에 오줌 싸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라 작정한 것이다.
군부 놈들은 동요하지 말고 일을 계속하라고 하는데, 개소리에 속는 것도 한두번이지. 당장 갈 채비를 한다.
그래도 아는 친구 몇명에게 뇌물을 돌려서 가족이 피난을 갈수 있게 해놓았다.
아내와 딸은 어제 집안의 가보, 비상금과 아들의 유품과 기념품들 같은 가족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과 함께 니가타에 있는 사촌에게 보냈다.

나는 일을 모두 정리하고, 한 10일 오후 즈음에 니가타로 떠날 것이다. 그때까지만이라도 폭격기가 오지 말기를…



-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