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아버지로 말할 것 같으면 이상한 사람이었다.


 아니,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하면 조금 완곡하게 표현하는 것이고, 진솔하게 표현하면 '기괴한 사람'이었음에 틀림 없다.


 내가 다섯살 정도였을까. 우리 집은 썩 잘 사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할아버지도 우리 가족과 같은 집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방에서 스스로 나오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다만 엄마가 밥 먹으러 나오라고 할 때에나 죽다 만 시체처럼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거나, 음식을 들고 방으로 들어갔을 뿐이었다.


 하루에 다 합해서 5분. 그 동안만 할아버지는 우리 집에서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그다지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쾌쾌한 냄새와, 다 벗겨진 머리, 퀭한 눈과 굽은 등 같은 것뿐이었다.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걸 싫어하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그 무엇도 모르는 미지의 괴물. 그게 나의 할아버지에 대한 소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치매가 들었는지 할아버지는 음산한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는 했다. 나는 무서워했고 부모님은 싫어하셨다.


 아마도 쌓인 게 많으셨을 것이다. 내게 과자도 사주실 겸 아파트 1층 구석에서 담배를 피실 때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뒷담을 했다.


 어쩌다 할머니가 할아버지와 결혼하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자신에게 결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그런데도 왜 우리 부모님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걸까. 나는 그게 못내 궁금했다.


 그런 할아버지의 죽음은 돌연히 찾아왔다. 나무도 메마르는 겨울날. 아버지께서 외근에 가신 사이 할아버지는 방에서 나오지 않게 됐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거르고, 저녁을 걸렀다. 특유의 갈라지는 목소리로 웅얼거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확인하러 들어가지 않았다. 어쩌면 좀 더 확실히 하려고 하셨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끝내고 싶다. 끝났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


 그렇게 다음날 아침이 되고 나서야 어머니는 방문을 열었고, 10분 정도 지나자 119가 왔다.


 어머니는 끝까지 담담한 표정이셨다. 의외로 아버지는 외근을 하다 말고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셨다.


 나는…왜일까. 나는 조금 안도해버렸다.


 장례식에는 부모님의 지인 정도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반길 사람도, 슬퍼할 사람도 없었나보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 조용한 장례식 내내 아버지는 그저 복잡한 표정이었지만, 시체가 화장되는 순간까지도 울지는 않으셨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고립된 사람이었나보다. 친구에게도, 지인에게도, 혈육에게도.


 그렇게 우리 가족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원래대로 돌아갔다. 할아버지가 쓰던 낡은 방을 청소하고 냄새를 뺐다. 그 방은 아무도 쓴 적이 없었던 것처럼 돌아갔다.


 마치 할아버지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런데 왜일까. 할아버지의 제사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우리 집 앞으로 갑자기 택배가 왔다.


 처음에는 잘못 온 택배인줄 알았다. 이름을 더듬어 읽어보고, 성씨가 나와 아버지와 같다는 걸 알고 나서야 잠시 더 고민을 했다.


 그 후에야 간신히 나는 수령인의 이름이 장례식 때에야 처음 알게 된 할아버지의 이름과 일치하단 걸 눈치챌 수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만큼 가벼운 존재였다. 누군가에게 10년이나 뒤에 택배를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일이 끝나고 돌아온 아버지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앞으로 택배가 왔다고.


 아버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택배 상자를 보고, 수령인의 이름을 본 다음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버려버려라. 그 한 마디를 남기고 아버지는 안방으로 들어갔다. 상자를 열어보지도 않은 채.


 버리는 건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가 '버리는 게 아까울 만큼의 귀중품'을 누군가에게 받을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이걸 버리면 할아버지는 다시 없었던 존재가 되는 것이고, 우리 가족은 어제처럼 오롯한 가족으로 있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신경이 쓰였다. 대체 그 할아버지에게, 10년이나 지나서 물건을 보낸 사람은 누구일까. 무엇을 보냈을까.


 나는 바깥에 상자를 버리는 척 들고 나갔다가 몰래 다시 들어왔고, 아버지도 그걸 철저하게 확인하거나 하시진 않으셨다.


 내 방에 들어와 문을 잠그고 커터칼을 꺼내들었다. 끽해야 노트북 하나 포장할 만한 작은 크기의 상자.


 커터칼이 부드럽게 테이프를 갈랐고, 마침내 나는 상자를 열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 온갖 비밀이 들어 있었을 것만 같았던 기대와 달리, 의외로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단지 한 권의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들고서 제목을 살펴봤다.


 "원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