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각국에선 엘스리드에 축하사절을 파견했고,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엘스리드의 수도곳곳에는 꽃이 내걸리고




거리는 축제분위기가 넘실대기 시작했다.








"루인님께서 여태 선정을 베푸셨는데 왕위를 물려준다는 사실이 좀 아쉽기도 해."




"하지만 황태자님께서도 훌륭하신분인걸."




"하하하, 그건 그렇지."








루인이 왕위를 물려준다는 사실에 그의 선정아래 태평성대를 즐겼던 많은 시민들은




저마다 아쉬움을 토로하면서도 루인 못지않게 올곧은 성품을 지닌 채




마족과의 전투에서 수없는 전공을 남긴 황태자가 왕위를 물려받는다는 사실에 저마다 들떠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 수도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엘스리드의 왕성에서




루인은 턱을 괸 채 평안한 얼굴로 왁자지껄한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폐하, 황태자께서 드셨사옵니다."




"아아, 들라해라."








지금쯤이라면 황태자가 한창 연무장에서 무예를 연마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아왔다는 사실에 루인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황태자의 방문을 허락하며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 드릴 말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




"긴히 말씀드릴 일이니, 혹 시녀를 물러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황태자의 눈에 맺힌 결연한 태도를 읽은 루인은, 이내 한 손을 휘휘 저어




살짝 고개숙이고 있던 시녀를 손짓으로 내보낸 채




자신앞에 무릎꿇은 황태자를 부드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와는 이리 어려운 사이가 아닐진데 어찌 그러느냐. 편히 말하거라."




"......"




"하하하, 평소라면 다소 가시돋친 말도 서슴없이 하던 네가 왜 그런지 모르겠구나."




"어머니께...어머니께 모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황태자의 입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나오자, 부정(父情)을 부드럽게 품고있던




루인의 눈동자가 이내 크게 흔들렸다.








"그게, 그게 무슨 소리냐?"




"......"








황태자는 이내 루인의 앞에 깊게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그 누구보다 강인했던 황태자의 등줄기가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순간 루인은 탄식했다. 저 아이도 모든것을 알게 되었구나.




평생 묻었어도 될 일을, 내가 애써 외면하고 침묵을 지켰던 일을




냉정한 어미가 양심을 저버린것이 못내 힘들어




그 무거운 짐을 제 아들에게 옮겨 지게 했구나.








"죄송합니다. 아버지, 아니 폐하..."




"네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그러느냐."




"그것이......"








고개를 든 황태자의 눈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어릴적 승마술을 배우다 말에서 떨어져도, 검술사범의 실수로




어깻죽지가 부러졌을때도 눈물 한방울 보이지 않던 황태자가




자신앞에서 아들이 아님을 고백하며 눈물을 방울방울 흘리고 있었다.








"내가 몰랐겠느냐."




"......폐하......"




"게다가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문제삼고자 했었다면 진즉 했을 터였다.




허나, 난 네게 나라를 물려주려고까지 마음먹은 몸이다."




"......!"




"나는 네 갓난아기 시절부터 지금까지 널 아들로 대해왔것만




넌 나를 아비로 생각치 않는 것이냐?"




"아버지......"








모든것을 각오하고 황태자의 직위마저 내려놓은 채




방랑기사의 길까지 각오했던 그였다.




그러나 모든 사실을 고백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아들이라 칭하며




부드럽게 다가오는 루인의 태도에




황태자는 루인을 끌어안고 오열하고 말았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명심했다. 내게 아버지는 오직 하나라고.




자신의 어미가 말한 그 누군가가 아닌, 오직 루인만이 자신의 아버지라고.


































































엘스리드의 하루 남은 왕위 계승식을 축원하기라도 하듯




눈부시게 흰 은하수가 하늘을 메운 밤,




손짓으로 왕성 꼭대기를 지키는 경비들마저 내려보낸 채




그곳에 주저앉아 울부짖는 사내가 있었다.




타오르는 별보다 뜨겁게 오열하는 사내가 있었다.








그간 지켜왔던 엘스리드의 적통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수십년간 간신히 잊었던 아픔을 다시 상기해낸 고통 때문에




몸부림치며 성벽위를 구르는 사내가 있었다.








알음알음 황태자가 자신의 진짜 자식이 아닐거라는 호사가들의 말쯤은




귓등으로 흘려넘길정도로 강해진 줄 알았는데,




굳은살처럼 단단해진 마음속에 다시금 균열이 생기자




그 아픔은 무엇에 댈 수 없을만큼 그를 괴롭게 하였다.








그렇기에 울었다.




사내이기에 울었다.




사랑하던 여인이 타인의 손길위에 놀아났음에 울었다.




그녀가 잉태한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님에 울었다.




그 아이가 자신이 친아들이 아님을 고백하며 울기에 자신도 울었다.








그렇게 밤하늘 위로 처절하게 울려퍼지는 통곡의 목소리가 아련히 울리자




왕성의 경비를 서던 경비병들도 제각기 눈물을 훔쳤다.




길거리의 시민들이라면 모를까, 수십년을 왕성에서 근무했던 그들이 어찌 모르랴.




왕의 고뇌를, 주군의 슬픔을, 한 사내의 비애를.




그렇기에 그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군주의 치부를 입밖으로 내진 않아도




저마다 그 슬픔을 공유하며 가슴끓게 함께 울었다.




그들도 남자였기에.




그와 동시에 그들의 가슴속 충심은 슬픔과 반비례하며 불꽃처럼 끓었다.




나라를 위해 사내의 자존심마저 포기한 자신들의 왕을 어찌 저버릴 것이냐.






















































왕위 계승식을 수시간 앞둔 엘스리드의 밤,




하얗게 빛을 발하며 술꾼들의 주정과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수도거리를 가득 채울 적,




왕성 꼭대기에선 한 사내와 그를 따르는 충직한 이들의 슬픔이 밤하늘을 메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