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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람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나면 성격이 변한다고 한다.

그럼 나는 오늘 열번도 넘게 성격이 바뀌었어야 했다. 

낮에는 생명의 위협에 이어 밤에는 정조의 위협이라니!

나는 내 몸위에 밀착해 있는 아스널에게 애원하듯 말했지만 돌아오는 그녀의 대답은 냉정했


“저..저기..아스널..첫 만남부터 이런건....”


“후후, 분명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나는 거미줄에 걸린 가련한 날파리의 심정으로 날개를 파닥거려 봤지만 집요한 그녀의 거미줄은 나를 더더욱 옭아맬 뿐이었다. 흑흑,


“후후..”


잔뜩 흥분한 채로 나를 온몸으로 짓누르는 아스널, 그리고 칠흑같이 캄캄한 사령관실, 누가 날 좀 구해줘!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정확히 2시간 전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

.

.




쾅!


[삐- 삐- 삐- 삐-]


“으헉, 뭐야?!”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에 벌떡 일어나자 온 세상이 빨갛게 변해있다. 

아니, 자세히 보니 그냥 지휘 콘솔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던 거였군, 


“사령관! 사령관님! 지금 완전 큰일났거든?”


쾅 소리는 포츈이 문을 여는 소리였나. 

헝클어진 머리, 땀과 기름에 젖은 작업복은 포츈이 이곳으로 굉장히 급하게 달려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으, 한시간도 못 잔거 같은데….


멍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포츈이 급히 소리쳤다.


“철충! 엄청난 수의 철충의 습격이야! 당장 지휘가 필요하거든!?”


철충! 그 한마디에 잠이 확 깨는게 느껴진다. 

급히 콘솔을 잡자 빨간 점 같은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오르카 호로 돌진하고 있는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이게 다 철충이라고? 


손에 땀이 확 오르며 가슴이 두근두근하는게 느껴진다. 

오르카호에 싸울수 있는 바이오로이드가 얼마나 되는거지? 부대 편성은 된건가? 

여긴 바다 한복판인데 저놈들은 어떻게 여길 오고 있는거야?? 

망할!!! 난 여기 온지 하루도 안되었다고!


“사령관! 어서 지시를..!”


“으.. 에밀리를 전열..아니 후열에 두고…”


이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바다 위라 스틸라인은 힘을 쓰지 못할 거고….

그나마 쓸 수 있는건 각 부대의 저격수들과 스카이나이츠. 캐노니어, 둠브링어 정도인가? 

수능을 볼때보다 머리가 더 빠르게 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명쾌한 답은 떠오르지 않는다. 

뭐 읽어본 병법서라곤 삼국지가 전부니 당연한 것이겠지만서도.


내가 우물쭈물거리자 포츈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진다. 안돼, 이대로라면…


쾅!


“힉!”


그때 , 문이 부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약간 구겨진 문으로 누군가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사령관! 최강의 포병대를 앞에 두고 뭘 망설이고 있는건가!”


사상 초유의 비상사태에도 전혀 굴하지 않는 호탕한 여장부의 목소리, 

나는 이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아스널?!”


“하하, 내 이름을 기억해주다니, 고맙군! 그대에게 내가 필요할 것 같아 찾아왔다네!”


그녀는 들어온 기세만큼이나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팡팡 두들겼다. 

조금 불안한 면이 있기는 하지만 한 부대를 이끄는 그녀라면 믿고 맡길수 있겠지.

슬쩍 지휘콘솔을 내밀자 그녀는 곧바로 내 옆으로 다가와 능숙한 솜씨로 그것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음, 여기선 이렇게 하는것이 좋지, 하하, 싹 쓸어버려!”


 평소의 이미지와 다르게 더 없이 진지한 모습에 솔직히..조금 감탄했다. 

보자마자 야스를 외칠줄 알았는데… 잠시 그녀가 지휘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사이

화면을 가득 매웠던 붉은 점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음,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군, 그대에게도 지휘 경험이 필요할테니.”


그렇게 말한 아스널은 콘솔에서 비켜섰다. 다행히 아까만큼 철충의 수가 많지 않아 몇번의 조작만으로 쉽게 전투에서 우승할 수 있었다.


“후...한숨 돌렸네, 고마워 아스널.”


“하하, 오늘 깨어났다고 들었네, 아직은 어려움이 많을테니 언제든 맡겨주라고, 도울 수 있는만큼 도와주지.”


호탕하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는 그녀, 멋지다! 아스널 최고다! 만만세! 

그녀의 멋진 모습에 매료된 나는 앞뒤 생각 없이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 외쳤다.


“정말 고마워 아스널! 보답으로 널 위해 뭐든지 해줄게.”


“...’뭐든지’ 라?”


아차, 실수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위험하게 빛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스널의 모습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철충들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포츈도 ‘누나는 이제 가서 망가진 걸 잔~뜩 수리해야 하거든? 어머? 여기 문도 고장났잖아?’ 라고 말하며 문 밖으로 사라진 상태여서, 

사령관실에 있는 것은 나와 아스널 단둘 뿐이었다.


“으..으응,내가 할수 있는거면..”


“호오.”


한 발짝, 178cm의 장신인 그녀가 발을 내딛자 넓게만 느껴졌던 사령관실이 갑자기 숨막힐 정도로 좁게 느껴진다. 


“아..아스널?”


“후후,그대가 뱉은 말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거야.”


또 한 발짝, 단 두 걸음만으로 지나치게 가까워진 그녀가 나와 코를 맞대고 속삭인다.

한참을 시끄럽게 울리던 경고음도 잦아들어 있었고, 불안하게 점멸하던 빛은 어느세 완전히 꺼져 사령관실은 완전한 어둠속에 잠겨있었다. 


‘망했다!’ 


아스널의 얼굴이 가까워짐에 따라 머릿속에 예의 비상등이 울리기 시작했다. 

물론 아스널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대쉬하는건 행운이다.

하지만 내 몸은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되어 있기는 커녕,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탓에 평균 체력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몸으로 ‘그’ 아스널과 밤을 보냈다간 비쩍 마른 오징어같이 변해버리고 말겠지. 


“저..저기..아스널..첫 만남부터 이런건....”


“후후, 분명 뭐든지 들어주겠다고 하지 않았나?”


아스널은 낮게 속삭이며 내 몸위로 올라탔다. 그녀의 몸매는 충분히 훌륭했고, 

따라서 내 남성이 반응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바이바이...내 예쁜 순결아..’


마음의 준비를 하고 그녀를 바라본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권속이여! 괜찮은가!"


나이스 타이밍 좌우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렇게까지 반갑게 들릴 줄이야. 


"이 사이클롭스 프린세스가 봉인을 풀고 세상을 덮은 어둠을 몰아내러 왔노라!!"


씩씩한 어린아이의 목소리를 들은 아스널이 짧은 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어둠이라니 무슨 말이지?


"하하, 나도 모르게 달아올랐군, 어린아이 앞에서 추태를 보일 순 없지."


아스널은 아쉬운 듯 천천히 내 몸 위에서 내려왔다. 이렇게 쉽게 포기한다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아스널을 바라보자 아스널은 호쾌하게 답했다.


"다음엔...각오를 단단히 해두는 것이 좋을거다."


...먹이를 노리는 암사자의 눈빛이였다.

오소소 돋아난 소름을 털어내고 사령관실 문을 열기위해 개폐 버튼을 눌렀다. 

버튼으로 열리는 자동철문이라니, 확실히 이런걸 보면 미래라는게 체감되는데 말이지.


[삑]


어라? 이거 왜 안 열려?


[삑삑]


이번엔 연속 두번, 소리만 날뿐 문은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설마….고장난건가?


[삑삑삑삑삑삑]


불길한 예감에 버튼을 연타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버튼을 내려놓고 직접 문을 두드리고 당겨도 열리지 않는다. 이거 설마…


"..갇힌 건가?"


"권속? 괜찮은가? 이 진조가 금방 봉인을 풀어주도록 하겠노라!!"


밖에서도 좌우좌가 끙끙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래도 완전히 갇혀버린 것 같은데….일단 불이라도 켜둘까? 


"...정전?"


벽을 더듬어 찾은 스위치를 올려도 방 안은 밝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혹시 강제로 문을 부수면 되지 않을까? 

반사적으로 아스널을 돌아보았지만 그녀 역시 난감한 표정이었다.


"흠, 무장은 모두 두고왔네만."


..맞다, 나는 방문 앞에 달아둔 "무기 반입 금지" 푯말을 떠올리곤 머리를 짚었다.

완전 자승자박이잖아 이거.


"하하..망했네."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언제까지고 망가진 문을 둘수는 없었다. 철로 된 문은 밀고 당기는 것만으로는 열리지 않을 정도로 굉장히 견고해 보였다.


"으익…!! 좀!! 열리라고!!"


한참을 그렇게 문과 씨름하고 있던 찰나,


"권속이여! 그대를 도와줄 기사를 불러왔노라!!"


"폐하~앙~~ 샬럿이 지금 구해드리겠어요~"


쇠가 쇠를 긁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철문에 둥근 구멍이 생겼다.

구멍 사이로 뿌듯해하는 샬럿과 등대의 빛으로 어두운 복도를 밝히고 있는 좌우좌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종일 여기 갇혀있을 염려는 덜었군, 

나는 안겨오는 좌우좌를 쓰다듬으며 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니, 나가려고 했다. 


“..응?”


나가지 못하게 문을 막은 샬럿을 본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는게 느껴진다.

설마 내가 생각한 엔딩은 아니였으면 하는데..


“폐하를 위해 열심히 달려온 샬럿에게~ 상을 주시지 않겠어요?”


“잠깐! 애도 보고 있는데 뭘 하는거야!”


“으응.. LRL? 잠시..자리를 비켜주시겠어요?”


“뭐? 안돼! LRL! 가지말아줘!!”


그런 내 외침도 무색하게, 빠르게 나와 샬럿을 번갈아 바라보던 좌우좌는 그녀가 건내준 참치캔을 받고 ‘그럼 프린세스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다!’ 라는 말과 함께 저 멀리로 사라져 버렸다.


“돌아와아아아….”


이렇게 되면… 이이제이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나는 농밀하게 몸을 비벼오는 샬럿을 피하며 아스널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흐음, 난 둘도 나쁘지 않네만.”


아스널...이런 성격이었지...완전 체크메이트다. 

먹이를 노리는 짐승처럼 슬금슬금 다가오는 두 바이오로이드들을 피해 뒤로 물러섰지만, 차가운 벽의 감촉만이 등 뒤에 닿을 뿐이었다.

흑흑 엄마 미안해요, 난 여기까지 인가봐요. 

내가 할수 있는 마지막 저항은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 밖에 없었다.





.

.

.




“아고고..죽겠다…”


나는 삐걱거리는 허리를 두드리며 긴 오르카호의 복도를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리리스의 빠른 난입으로 부임 첫날부터 복상사로 죽은 얼간이 사령관으로 기록되는 불상사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좀 이상하단 말이지..”


오늘 있었던 일은 확실히 이상하다. 

일촉즉발의 상황이긴 했지만 오늘 처음 보았던 콘스탄챠는 나를 위해 라비아타에게 총을 겨누어 주었고, 

아스널과 샬럿 역시 첫 만남 치곤 묘하게 호감도가 높아보였다.


물론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인간에게 우호적이게 설계된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바이오로이드들은 그 이상으로 나에게 우호적이다. 마치 호감도가 처음부터 MAX인 것처럼.


“..설마?”


무언가를 깨달은 나는 시험삼아 내 옆을 지나가던 더치걸에게 인사를 건냈다.

 

"저기..안녕.더치걸?"


"앗..사령관님,안녕."


어색하게 손을 들어 우물우물 인사를 하자 더치걸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처음보는 사이인데도 나를 보자마자 안정감을 찾는 듯한 모습은 확실히 이질적이었다.


"으응, 하하 이거 받아."


"앗..고마워 사령관!"


나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 더치걸에게 쥐어주고 무언가를 확인하기 위해 닥터의 연구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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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생각 없이 시작한거라 스토리 그때그때 짜내느라 좀 늦을거 같다.

반응 괜찮아서 쓰긴 쓰는데.. 재미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라붕이들 새해 복 많이 받고 올 한해 좋은 일만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