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lastorigin/19288303 본글의 원작

본 글쟁이가 제일 먼저 서약하고 가장 좋아하는 라오 캐릭 5위 안에 들어가는 레오나가 혐성으로 굳어져서 안타까웠는데 이참에 레오나 애호 글 한 번 써봅니다. 다음 화도 빠른 시일 안에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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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를 완벽한 승리로 마치고 지휘관들은 작전 보고를 위해 한 곳에 모였다. ‘작전 회의실’ 이란 문패가 걸린 방에서 6명의 지휘관들이 각자 자리에 앉았다그녀들의 시선은 아직 공석인 자리에 쏠렸다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바로 정면에 있는 자리빈 자리 앞에 놓여 있는 사령관’ 이란 명패가 그 자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대신 나타내주고 있었다

 

 사령관이 조금 늦는군.” 

 

 칸이 말했다지휘관들이 모인지 어느덧 20분이 지났지만 사령관은 회의실에 나타나지 않았다사령관이 회의 시간이 늦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었다하지만 그것도 최대 5분까지였지 지금처럼 20분씩 모습을 보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사령관이 어째서 늦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휘관들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불편한 침묵이 이어졌다완벽한 승리와 상반되는 무거운 분위기아이러니하기 그지없었다. 5분 정도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문이 열렸다하지만 회의실에 들어온 이는 사령관이 아니었다회의실에 들어온 이는 사령관의 직속 메이드인 콘스탄챠였다콘스탄챠의 얼굴에는 근심이 한가득 이었다그녀는 머뭇거리며 힘들게 입을 열었다.

 

 주인님께서 오늘은 회의에 불참하시겠다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콘스탄챠는 사령관의 뜻을 전하고 다시 회의실을 나갔다사령관이 회의에 불참하겠다는 사실을 전했지만 지휘관들 중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그녀들은 이성적으로 사령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이번 작전은 그 누가 봐도 완벽한 승리였다그녀들에게 이식되어 있는 최고급 전투 모듈과 경험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단 한 가지가 이번 승리의 기쁨을 전부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다작전 수행 중 안타깝게도 오르카호에서 첫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고작 사망자가 겨우 한 명 나왔다고 해야 하는 게 옳겠다지금까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던 오르카호에 사망자가 나온 것은 불행이었지만 이것으로 사령관의 지휘능력을 의심할 수는 없었다아니 오히려 지휘관들로 하여금 사령관의 능력을 재평가하게 했다

 

 사령관이 오르카호의 지휘봉을 잡은 지 어느새 16개월이 흘렀다그 동안 수많은 전투가 있었고 얼마 전에는 별의 아이라는 미지의 적과도 싸웠다힘들었던 시기도 있었고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순간도 매번 있었다하지만 그때마다 사령관은 모든 전투에서 승리했다처음에는 많이 부족했던 지휘능력도 사령관의 경험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제는 지휘관들을 놀라게 할 정도로 훌륭한 전략전술을 세울 만큼 발전했다


  사령관의 성장은 말 그대로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 ‘잉어가 튀어오르더니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랐다’ 라는 비유가 사령관에게 가장 어울릴 것이다그의 됨됨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단 한 번의 패배도 없고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나오게 하지 않게 하는 지휘능력오만하지 않고 매번 정중하게 조언과 충고를 부탁해오는 자세바이오로이드을 향한 헌신적인 태도와 됨됨이지휘관들에게 사령관은 그야말로 능력과 인품을 전부 갖춘 그녀들이 오래 전부터 꿈꿔온 이상적인 사령관의 표본이었다하지만 그는 사령관으로서 너무나도 감성적이었다.


 사망자가 나온 것을 받아드릴 수 없나보군.”

 

 매번 성공만 하던 자에게 가장 큰 고난은 바로 첫 번째 실패를 했을 때다사령관은 매번 승리한 후에 똑같은 말을 반복했었다

 

 너희가 한 명도 죽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그런 말을 밥 먹듯이 했던 사령관인 만큼 어쩌면 이번 작전에서 나온 첫 번째 사망자는 그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큰 실패로 느껴질 수도 있다고 지휘관들은 생각했다지휘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레오나에게 향했다오늘 나온 사망자는 발할라 소속의 샌드걸이었다지휘관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레오나를 보았다죽음은 언제나 마음을 아프게 한다긴 수도 없이 많은 죽음을 눈을 목격해온 지휘관들이었고 복원된 개체라도 이식된 기억 모듈을 통해 그 고통을 잘 알고 있었다레오나의 군단인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는 이름답게 다른 군단들에 비해 대원들 간의 유대가 깊다대원들을 정말로 자매처럼 여기고 대했던 발할라 대원들이었고 도도한 레오나도 발할라 대원들에게는 큰언니와 같았다그런 발할라에서 오르카호 첫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는 사실이 안쓰러웠다

 

 먼저 일어나볼게.”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레오나는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령관이 참석하지 않더라고 회의가 끝날 때까지 회의실에 있어야 하는 게 지휘관들의 암묵적인 규칙이었지만 지휘관들은 그녀를 배려해주었다레오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회의실을 나갔다레오나는 회의실을 나가자마자 곧바로 사령관의 침실로 향했다사령관은 아마 침대에 누워 엉엉 울고 있을 거다너무나도 마음이 여린 사람이니까지금 사령관에게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닌 자신이라고 레오나는 확신했다레오나의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의 빛이 오늘따라 밝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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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켜.”

 

 사령관의 침실에 도착한 레오나는 침실 출입구를 막고 있는 리리스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철혈이라는 이명을 가진 그녀답게 극지방의 눈보라처럼 차가운 시선이었지만 리리스도 당연히 그녀에게 밀리지 않았다전투가 끝난 직후 리리스가 본 사령관은 너무 지쳐보였다얼굴은 혈색을 잃어 시멘트처럼 탁했고 총명함을 잃지 않았던 두 눈에서 쉴새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리리스는 사령관이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지금 주인님은 누구를 만날 상황이 아닙니다부디 돌아가 주십시오.”

 

 그녀답지 않은 정중한 부탁이었다과거의 리리스였다면 온갖 욕을 섞으며 그녀를 대했을 것이다그리고 만약 레오나가 리리스의 말을 듣지 않을 기미를 보인다면 지체 없이 권총을 꺼내 강제로 돌아가게 했을 거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변했다레오나의 왼손 약지에 끼워져 있는 반지가 레오나와 리리스의 높이 차이를 여실히 나타내주었다

 

 내가 달링을 만나겠다는데 고작 경호대장이 막아서?”

 

 레오나는 현재 오르카호에서 사령관에게 선택을 받은 유일한 바이오로이드이다원래부터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의 지휘관으로서 오르카에서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그녀였지만 사령관과 서약을 하면서 오르카의 안주인으로서 사령관 다음 가는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마음만 먹으면 오르카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치와 그럴 능력이 있음에도 레오나는 본래의 역할이었던 지휘관으로서의 사명을 다했다레오나는 사랑하는 사령관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녀도 오르카의 정당한 주인은 사령관임을 잘 알고 있었다군인으로서의 레오나는 예전과 다를 게 없었다다른 지휘관들처럼 작전을 짜고 전투의 승리와 책임을 다른 지휘관들과 공평하게 나누었다하지만 사령관의 아래로서의 레오나는 얘기가 달랐다.

 

 달링의 아내인 내가 너에게 내리는 명령이야비켜.”

 

 리리스는 더 이상 그녀를 막을 수 없었다명분이 없었다사령관의 아내인 그녀의 명령을 거부하면 그것은 곧 사령관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리리스는 입술을 세게 깨문 채 레오나에게 길을 비켜주었다레오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침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버튼을 누르려 했다.

 

 제발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주인님을 탓하지 말아주세요.”

 

 버튼을 누르기 직전 리리스가 한 말은 레오나의 가슴에 묵직하게 스며들었다레오나는 출입구 옆에 있는 리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나도 달링을 탓하러 온 게 아니야.”

 

 레오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리리스를 보았다리리스는 레오나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는 걸 보고 안심하며 그녀를 들여보내 주었다레오나는 마음을 다잡고 침실 문을 열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의 남편이 보였다사령관의 두 눈은 심하게 충혈 된 상태였고 눈가는 퉁퉁 부어 있었다사망자가 나왔다는 말을 들은 후 계속 울고 있었겠지

 

 레오나...?”

 

 레오나를 본 사령관의 목소리는 심하게 털리고 있었다두려움미안함슬픔자괴감후회 등 온갖 종류의 감정들이 사령관의 말에 담겨 있었다레오나가 한 걸음 다가가자 사령관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사령관의 두 눈은 갈 곳을 잃어 어쩔 줄 몰랐다사령관은 겁에 질려 있었다

 

 레오나......내가...미안해......나 때문에...샌드걸이...”

 

 사령관은 말을 있지 못했다레오나는 말없이 사령관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주었다

 

 아무 말도 안 해도 돼괜찮아 달링.”

 

 어린 아이 달래듯 레오나는 사령관을 끌어안고 그의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둘은 잠시 동안 그렇게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