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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시점을 좀 바꿔서 써야 매끄럽게 플룻이 이어질 거 같다. 써놓고 보니 무슨 후회물 됬네 싯파

맨날 보고서만 끄적이던 글솜씨로 문학 같은 거 쓰려니까 되려 머리가 더 아픈 거 같다. 대화를 매끄럽게 쓴다는게 이렇게 힘든 거였구나.

문붕이들 어케 썼냐 여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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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ay 121. PM 04:25

 

또각-또각-

 

 무적의 용은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오르카함의 복도를 걸으며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녀가 처음 이곳을 찾아 왔을 때 오르카함은 언제나 시끌벅적했다. 복도를 걷는 바이오로이드들은 항상 목소리에 활기가 가득 차 있었으며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브라우니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양파가 좋다네~튀긴 양파가 좋다네~’라고 노래를 부르면 옆에 있던 분대장 레프리콘들은 웃으며 그녀들을 말렸고 알비스들은 탄약집에서 초코바를 꺼내며 베라들의 눈을 피해 해바라기 씨를 먹는 햄스터마냥 초코바 한 개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워울프들은 밥을 먹고 나서는 다 같이 흡연실로 이동하며 어제 본 서부영화에 대해서 떠들었고 호라이즌 대원들 역시 테티스의 장난으로 화를 내는 운디네와 도망치는 테티스를 보며 웃고 있었다. 무적의 용은 그 모습이 참 좋았고 그들의 웃음을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를 품었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왁자지껄함이 전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있었던 대규모 작전으로 인해 전투원들 대다수가 피곤해서 또는 병실에 입원해서가 아니었다. 무적의 용은 이제는 쌀쌀함마저 느껴지는 복도를 걸어 어느 한 대형 개폐문 앞에 섰다.

 

 문의 상단에는 ‘오르카함 AGS 공방’이라는 문패가 걸려 있었고 무적의 용은 문에 달려 있는 인터폰을 눌렀다. 이내 외부 스피커를 통해 퉁명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지금 바쁘니까 급한 용무가 아니라면 나중에...”

 

“호라이즌 총 지휘관, 무적의 용이오. 닥터.”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던 목소리 역시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이내 한숨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고 공방의 육중한 문이 열렸다.

 

“고맙소. 잠시 실례하겠소,”

 

 무적의 용은 무표정한 얼굴로 감사를 전한 뒤 공방 내에 들어섰다. 공방의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다수의 드론들이 부품을 들고 벽면에 설치된 수리 기계로 옮기고 있는 장면이었다. 램파트, 기간테스. 포트리스 등 다수의 AGS들이 자동 수리 기계에 들려져 파손당한 부위를 수리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공방 안은 바깥과는 달리 용접으로 인한 치직 거리는 소음과 AGS들을 들고 있는 기계들이 내는 소음으로 인해 귀가 아플 정도로 시끄러웠다.

 

 무적의 용이 공방 중앙으로 걸어가자 대형 스크린 앞에 앉아 계속해서 뭔가를 두들기는 갈색 머리 소녀의 등이 보였다. 이 함 내에서 가장 유식하기로 유명한 닥터였다.

 

“그래서 언니가 여기 찾아온 이유가 뭐야?”

 

 닥터는 등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무적의 용에게 물었다. 엄연히 계급상으로는 자신이 한참 위인데도 불구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이는 닥터에게 무적의 용은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대신에 자신이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묻기로 하고 입을 열었다.

 

“그대가 주군의 바이탈 체크를 확인했다는 소리를 들어서 말이오. 혹 주군께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확인 차에 들렸다오.”

 

 무적의 용이 주군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자 닥터는 쉴새 없이 화면을 두들기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닥터는 몸을 돌려 무적의 용을 쳐다보았다.

 

“..지금 오빠가 걱정돼서 날 찾아 왔다 이거야?”

 

“그렇소.”

 

 무적의 용은 뭔가를 더 말하고 싶었으나 닥터의 얼굴을 보고 이내 말을 삼켰다. 앳된 소녀의 얼굴에는 근심과 짜증, 피곤함이 묻어 나왔고 뺨에는 기름때 자국이 번져 있었다. 그러나 닥터의 눈은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진짜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닐 텐데, 언니?”

 

“...”

 

 자신의 속마음을 읽어내는 듯한 닥터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무적의 용은 이내 자신이 설마 했던 것이 옳았음을 직감했다. 닥터의 눈초리를 견디기 힘들어 눈을 감자 이번에는 사령관의 고함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눈도 귀도 먹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놈으로만 보였어?! 네 년들이 수면 아래에서 뭔 짓거리를 하는지 일도 모를 줄 알았냐고! 입이 달려 있으면, 살아 있으면 변명이라도 쳐 해보라고!

 

 그는 구토물이 흐르는 입가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지휘관들을 가리키며 삿대질을 하였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자신 역시 왜 그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일은 벌어졌고 지금 눈앞에는 그의 ‘눈’과 ‘귀’를 담당하는 소녀가 있다.

 

“하..더 일찍 오빠한테 말했어야 했어. 그거 알아? 용 언니?”

 

“..무엇을 말이오?”

 

“오빠는 끝까지 언니들을 믿었다는 거.”

 

 달관한 표정을 짓는 닥터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무적의 용의 가슴을 찔렀다. 이제는 인정해야 했다. 자신들이 그 몰래 무슨 계획을 꾸몄었는지 그걸 왜 숨겼는지 그는 이미 080 기관 소속 바이오로이드들을 통해 모두 통보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소관은 더 이상 주군을 뵐 면목이 없구려.”

 

 무적의 용은 그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차가운 밤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기함에 올라온 흰색의 함장 제복을 입은 남성은 아무런 기색도 없이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음기도, 장난기도, 아니면 멸망 전 인류의 장성들과 같이 자신과 같은 바이오로이드가 이런 대함대를 이끈다는 사실이 불쾌하다는 표정도 그 어떤 감정의 기색 없이 자신을 호위하는 컴패니언 부대 일부와 부관인 철혈의 레오나와 함께 그녀의 앞에 섰다.

 

‘오르카 저항군 총사령관이자 오르카 1호 함장이다. 만나서 반갑다. 무적의 용.’

 

 표정에 어울리게 낮은 저음으로 짤막한 자기소개를 하며 그는 오른손의 장갑을 벗고 악수를 청했었다. 어쩌면 이때 깨달았어야 했다고 무적의 용은 자책했다. 단순히 자신의 함대를 보고 주눅이 들어 바이오로이드인 자신에게 악수를 청한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녀는 무덤덤하게 그의 악수를 받아들였다.

 

‘인류 최후의 함대 총지휘관 무적의 용이오. 앞으로 주군을 위해 싸우겠소.’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한다. 무적의 용.’

 

 인류가 남긴 최후의 함대 총지휘관과 최후의 인류와의 첫 만남은 불어오는 바닷바람만큼 서늘했다. 원격 지휘가 가능하다는 점과 직접적인 명령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오르카호에 탑승한 그녀는 다른 지휘관들과 만나기 전에 오르카호의 호라이즌 부대원들을 만나러 갔다. 지휘관들의 객관적인 평가도 좋겠지만 그녀는 이 함선에서 지내는 호라이즌들의 주관적인 평가에 더 관심이 갔다.

 

 ‘사령관님이요? 어..항상 차가운 느낌이 들지만 내심 따뜻한 마음씨를 지닌 거 같아요. 저만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 거에요.’

 

 임시로 오르카호 내의 호라이즌을 이끌던 세이렌은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인상을 가늠하기 힘들다는 듯이 그녀는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하였다.

 

‘사령관님? 네리 네리는 예전 사령관님이 더 좋았던 거 같아. 지금 사령관님도 멋지지만 처음 만났을 때보다 웃음이 없으니까 네리 네리는 조금 아쉬워.’

 

 네레이드는 웃다가 울상을 지으며 그의 인상을 평가했다. 처음부터 저런 모습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무적의 용에게 의구심을 품게 했다.

 

‘사령관님 말이에요? 매번 만날 때마다 주변에서 한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니까요~종종 안 그럴 때도 있는 것 같은데..아 테티스! 내 푸딩 먹지 마!’

 

 운디네는 대답을 하다가 말고 냉장고를 뒤적이는 테티스를 향해 뛰어갔다. 무적의 용은 그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하지만 최후의 인류인 그가 가면을 쓸 필요가 있단 말인가? 여기서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었을 텐데.

 

‘사령관이요~? 에이, 매번 장난을 치러 가도 반응도 없고, 오히려 저한테 귀찮다는 듯이 사탕이나 하나 쥐여주고 보낸다니까요? 참나. 내가 애도 아니고 말이야.’

 

 입가에 푸딩을 묻히고 운디네의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고 테티스는 재미없다는 듯이 틱틱대었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적의 용은 그가 쓰고 있는 가면 뒤에 숨겨진 그의 본성이 궁금하면서도 걱정되었다. 이야기만 들어 보았을 때는 딱히 그녀들에게 해코지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것만으로는 자신의 함대를 온전히 맡기기에 믿음이 부족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녀는 단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와 같은 바이오로이드들을 동일 선상에 올려놓고 생각하는 인간이라니. 그녀가 만난 혐오스럽기 그지없는 부류의 인간들이 아닌 멸망 전에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그저 풍문으로만 들은 소문에 불과한 그런 인간이었다.

 

 무적의 용이 말없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숙이고 있자 닥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오빠..’

 

 대형 스크린 한구석에 사령관실을 비추는 카메라 화면을 보며 닥터는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들이 상념에 빠져 있는 사이 닥터의 뒤로 중후한 기계음이 들렸다.

 

-드디어 음성모듈이 복구되었군요. 감사합니다. 닥터양.

 

“어? 로크!”

 

 닥터는 대형 스크린 너머로 붉은색 안광을 내뿜기 시작하는 검은 강철의 날개를 가진 AGS, 로크를 향해 반색하며 쳐다보았다.

 

-얼굴색이 말이 아니군요. 닥터양.

 

 무적의 용은 이제야 닥터가 그렇게 열심히 두들기던 것들이 저 검은 AGS를 복구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았다. 불과 몇 시간 전 전투현장에 금빛 섬광을 내뿜으며 철충들을 일시에 소멸시키던 그 위풍당당한 자태는 어디 가고 하반신이 완전히 파괴된 채 날개 파츠에 걸어둔 케이블에 의지해 수리를 받는 로크의 모습에 그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문득 그 붉은 안광이 자신을 쳐다보는 느낌에 무적의 용은 자신을 소개했다.

 

“다시 만나서 반갑소. RF87 로크. 이미 한 번 만난 적이 있으나 다시 소개하겠소. 무적의 용이라 하오.”

 

-딱히 서로 자기소개를 할 필요는 없을텐데.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회답하는 로크의 짤막한 기계음성은 닥터를 향한 음성보다 더 차가운 감성이 묻어져 나왔다. 평소와 같은 존댓말은 온갖 데 없고 하대하는 어투로 바뀐 로크를 보며 닥터는 당황했다.

 

-내 전 주인께서는 널 아깝게 생각하셨지. 지금 상황을 보면 주인께서 널 잘못 판단한 거 같군.

 

“..그 남자 이야기는 딱히 하고 싶은 생각이 없소.”

 

 무적의 용은 이야기하기 싫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생각만 해도 역겨운 그 남자의 얼굴을 이제 볼 수도 필요도 없는데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역겨웠다.

 

-제깟 바이오로이드 암컷 주제에 도도하게 구는군.

 

“....”

 

 둘 사이의 안광이 맞부딪히며 누구 하나 물러날 기세를 보이지 않자 닥터는 이제는 아예 의자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 이럴 거 같아서 들여보낼까 말까 고민한 건데..’

 

-하지만 내 전 주인께서는 지금의 널 보면 꽤 마음에 들어 하실 것 같군.

 

“..뭐요?”

 

 로크가 침묵을 깨고 날린 말 한마디에 무적의 용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애머슨 법 이전에 만들어져 독립된 의사로 자기의 명령을 전부 거절해대니 결국 삼안의 라비아타와 자신을 바꾼 그 남자가 왜 지금의 자기를 마음에 들어한다 말인가.

 

-나와 같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인간을 위해 일 해야 하는 도구 주제에 인간의 명을 거역하고 자기의 의지를 고집하던 것이 스스로 나락에 떨어진 모습에 크게 만족하실 테지.

 

빠득-

 

 무적의 용은 지금 당장 검을 뽑을 기세로 이제는 로크를 째려보았다. 저 AGS는 지금의 자신을 대체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구려고 하는 것인가. 로크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너희 암컷 바이오로이드를 믿은 각하께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이 되어버렸으니 제깟 암컷이 분개해봐야 각하의 분함보다 더한 것인가?

 

 로크는 본래 작전 계획에 없던 전력이었다. 하지만 전투가 길어짐에 따라 부대 손실율이 크게 오르자 최후방에서 보급과 전황을 살피던 사령관이 직접 알바트로스와 로크를 대동하고 전선에 뛰어들었다. 뒤이어 램파리온형 강화장갑을 설치한 램파트부터 기간테스까지 합류해 전황을 바꾸기 시작했고 로크는 격렬한 전황 속에서도 각하의 명을 따르다 이렇게 되었다.

 

 그 사실을 되새긴 무적의 용은 이제 저 AGS의 비아냥에도 꿈쩍도 못한다는 사실에 비관하며 등을 돌렸다. 등을 돌린 그녀의 뒤에서 로크의 음성이 따라왔다.

 

-하지만 전 주인께서는 당신이 한 행동에 대해 더 불쾌하실 것 같군요. 도구로 다루어지던 것들이 인간을 도구로 다루려고 했다면서 말이죠.

 

 공방의 문을 열고 빠른 걸음으로 호라이즌 숙소로 향하던 무적의 용은 그녀가 그토록 혐오하던 남자의 기분 나쁜 음성소리가 따라오는 것만 같아 두 눈을 감고 양쪽 귀를 모두 막았으나 별 소용이 없었다.

 

 무적의 용이 떠난 공방실에서 닥터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로크를 쳐다봤다.

 

“꼭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잖아아..”

 

로크는 이제 가라앉은 듯한 음성으로 회답했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고, 각하께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전 그저 그녀에게 자신의 죄악이라는 것을 마주 보게 한 것뿐이지요.

 

무덤덤한 로크의 대답에 닥터는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오빠..좀 어떻게 해줘어..나 머리 터질 것 같아..”

 

-그건 곤란하군요. 닥터양. 그랬다가는 몇 안되는 AGS 정비공을 못쓰게 만들었다고 알바트로스가 절 귀찮게 할 것 같으니.

 

“야이씨..”

 

닥터는 짜증섞인 한마디를 내뱉고 그렇게 곤히 잠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오빠가 평소처럼 자길 반겨주길 바라며. 로크는 그런 닥터를 한 번 바라보고 쓸데없지만 말을 하고 싶었다.

 

-가면을 쓰고 철혈을 위장하던 각하께서 드디어 가면을 벗어버리셨군요. 이후의 일들이 기대되는군요.

 

 쇳소리와 덜컹거리는 소리만 울리는 공방의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