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모음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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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Day 121. PM 04:13

 

 작전 지휘실에서의 회의가 블랙 리리스의 말 한마디를 끝으로 흐지부지 끝나자 철혈의 레오나는 곧장 사령관실로 가는 길목을 향했다. 하지만 이미 그곳에는 블랙 리리스의 말마따나 성벽의 하치코가 방패로 길목을 막은 채 서 있었다.

 

“사령관을 만나고 싶어. 비켜줘.”

 

“으으..레오나님이라 해도 안되요오..언니가 아무도 들이지 말랬어요.”

 

 성벽의 하치코는 자기 덩치 만한 방패 너머에서 빼꼼히 머리를 내밀며 글썽거리는 눈동자로 답했다. 철혈의 레오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참고 다시 그녀에게 말했다.

 

“하다못해 사령관에게 내가 면담을 신청했다고 해 줘.”

 

“..리리스 언니가 사령관님이 들어와도 좋다고 할 때까지 저희도 근처에 가지 말랬어요.”

 

 평소의 활기찬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침울한 얼굴로 하치코는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그에게 가는 길이 어렵다는 것을 알자 철혈의 레오나는 하치코에게 아무 말 하지 않고 돌아섰다.

 

또각-또각-

 

 철혈의 레오나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공동 숙소구역으로 이동하며 그의 초창기 모습과 자신이 변화시킨 그의 모습 그리고 지금의 그를 생각했다. 사령관은 처음 이 오르카호에 왔을 때 사령관으로서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으로서도 한참 먼 인물이었다.

 

‘저..그 철혈의 레오나..양?’

 

 오르카함 함교의 사령관 의자 옆에 서 있는 자신한테 말 한마디를 건넬 때마다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그의 모습은 앞으로의 전황을 생각한다면 한참 자신감이 부족해 보였다.

 

‘사령관, 난 사령관이 좀 더 정진했으면 좋겠어.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도 그렇게 어려워하면 어떡해?’

 

‘그치만..’

 

‘그치만이고 뭐고 다른 애들한테는 그런 모습 보이지 마. 격 떨어진 모습을 자꾸 보이면 그녀들도 사령관을 믿기 어려워할 거야.’

 

 자신의 날 선 타박에 사령관이 크게 주눅 든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으나 그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저 무자비한 철충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도 자신도 더욱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일까, 사령관은 처음에는 잘 다루지도 못했던 홀로그램 스크린을 곧잘 사용하며 하루가 다르게 업무 속도가 늘어갔다. 하지만 그건 그의 위치에 당연한 일이었기에 철혈의 레오나는 그의 발전을 칭찬하기보다는 그의 부족한 점을 계속 메꾸고자 했다.

 

‘사령관, 훌륭한 지휘관은 어떤 사람인 거 같아?’

 

 한창 보급부대의 자원탐색 보고서에 사인과 도장을 찍던 그는 대뜸 날라온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부하들을 잘 챙기고..작전 지휘에 능한 사람?’

 

‘40점, 그 두 가지는 지휘관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사항이야.’

 

 그럼 어떤 사람인데? 하고 묻는 눈길에 자신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바로 나 같이 언제나 냉정하고. 카리스마 있으면서 신상필벌로 부하들을 구분 짓는 그런 사람이 바로 훌륭한 지휘관이지.’

 

‘..또 자화자찬하려는 거면 그냥 부관 바꿔버릴 거야.’

 

‘자화자찬이라니. 사령관, 난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것뿐이야. 그리고 내가 없으면 아쉬울 사람은 사령관 바로 당신이고.’

 

 그 말에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에게는 자신의 전술적 역량이 한없이 필요하다는 것을 본인 스스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음 이건 10점 추가.

 

‘하아..네 그런 점이 싫지는 않지만 때로는 너무 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거 알아?’

 

 홀로그램 보고서를 내려버리고 팔짱을 낀 채 자기를 올려다보는 그의 두 눈동자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 사령관실에 앉아 홀로그램 스크린에 깜짝 놀라며 외계문물을 처음 봐 신기해하는 원시인 같이 만지던 때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것 같았다.

 

‘사령관이 이곳에 오고 난 이후, 며칠이나 지났는지 알아?’

 

‘..한 20일 지났나?’

 

‘맞아. 사령관. 사령관이 여기 이곳에 온 지 이미 20일이나 지났지. 처음 왔었던 때에 비하면 괄목상대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성장한 건 맞아. 하지만 난 사령관의 그 소심함이 언젠가 크게 걸림돌이 될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사령관은 신상필벌이라는 원칙에 얽매이기 싫어하는 유형의 남자였다. 첫 전투에서 크게 다치고 돌아온 콘스탄챠를 보고 한걸음에 달려가 그녀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면서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하는 모습은 그가 다정한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이후에도 그는 소극적인 작전과 안전한 지역에만 부대원들에게 자원탐색을 보내었다.

 

‘작전에 실패한 아이들에게는 벌을 내리고, 작전에 성공한 아이들에게는 상을 내리는 건 부대원들 간의 경쟁력을 높여줘. 똑같은 모델의 아이들이라 하더라도 상을 받은 아이는 더 열심히 노력하고 못 받은 아이들은 받기 위해 노력한다는 소리야. 이해했어?’

 

‘..하지만 못했다고 해서 그 아일 심하게 타박하는 것도 좋지 못해. 네가 말한 대로 흘러가면 좋겠지만 오히려 자기 자신을 비난하며 스스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릴 수도 있다고.’

 

‘그런 점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우리들은 바이오로이드야. 목적에 맞게 생산되고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장점이니까.’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알겠어. 레오나. 네 생각이 틀리진 않은 거 같아. 앞으로 신상필벌에 대해서는 조금 더 생각해볼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애들을 타박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야.’

 

 그의 대답에 자기 자신은 답답함을 느꼈다. 생각보다 꽉 막힌 인간이구나 싶었다. 처음에는 부대 편성에도 애를 먹어 자신이 나서서 도와줬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 그는 브라우니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스틸라인의 양산형 모델인 브라우니들은 본래라면 그 목적에 맞게 ‘소모품’으로서 전장에 내보내야 했으나 그는 그마저도 싫다고 했다.

 

‘경험은 돈을 주고도 못 사는 거야. 넌 겨우 브라우니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녀들이 성장하게 된다면 불굴의 마리 4호가 합류했을 때 스틸라인의 인재들이 되어줄 거라고.’

 

 그는 작전을 지휘하다가도 작전 대원 하나가 중파 상태가 되면 곧바로 퇴각을 명했다. 중파된 대원을 인근 지원부대로 인계하는 과정까지 일일이 확인하고 새로운 대원을 차출해 그 빈자리를 메꾸게 했다.

 

‘사령관, 우리는 앞으로 얼마나 이 전쟁을 더 할지도 몰라. 10년이 될지. 100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그런데 계속 그렇게 소심하게 굴면 이 전쟁이 끝나기 전에 당신이 살아있을까?’

 

‘...그럼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이제는 할 말이 없다는 듯이 체념한 표정을 짓는 그를 보며 자신이 준비한 서류를 한 장 그의 앞에 두었다. 그는 전술과 전략에 대해 한없이 초짜였다. 부하들을 희생시킬 용기도 전장에 설 용기도 없었고 적의 정보를 수집하고 보급망을 구축하는 것에는 능했으나 전략을 구성하는 단계에서는 턱 막히는 남자였다. 전략을 자신의 도움으로 어떻게든 짜내어도 정작 실전에 들어가면 시시각각 바뀌는 전황을 파악해 구사해야 할 전술에도 초짜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이가 사령관 자리에 있다면 결국 다른 지휘관들에게 휘둘리는 봉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이 서류는 그가 사령관 자리에서 가져야 할 모습만이라도 완성 시켜 줄 것이라고 그때의 자신은 생각했다.

 

‘사령관이 그렇게 이 함 내의 바이오로이드들을 지켜내고 싶다면 사령관부터 바뀌어야 해. 지금 당장에는 그렇게 큰 무리를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앞으로 합류할 군단들을 이끌 능력이 당신에게 절대적으로 부족해. 이 서류에 사인해줘. 그렇게만 해주면 내가 당신을 완벽한 사령관으로 만들어 줄게.’

 

 그는 서류를 들고 읽기 시작했다. 점점 내용을 파악해가는 그의 얼굴이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그가 서류를 내려놓고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자신에게 고개를 돌렸다. 얼굴에는 이제 초연함까지 묻어져 나왔다.

 

‘이걸..지금 나보고 하라는 거야?’

 

‘거기에 서명만 한다면 사령관은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을 거야. 이 오르카함의 함장으로서도 저항군의 총사령관으로서도.’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으로서도 한 걸음 다가가겠지. 철혈의 레오나는 이 말을 굳이 내뱉지 않았다. 그는 다음 날 그 서류를 결재했다. 며칠 뒤, 몰라보게 차가워진 그를 보고 대다수의 바이오로이드들이 의구심을 품었으나 그의 변화에 대한 사실을 아는 건 자신과 그, 그리고 닥터와 블랙 리리스 이 넷뿐이었다.

 

‘지금 와서..그걸 난 후회하는 걸까.’

 

 어느새 그녀는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 공동 숙소 앞에 도착해 있었다. 오는 복도에 어떤 이도 만나지 않았기에 평소보다 빨리 도착했다는 걸 알았다. 입구에 달린 스캐너가 그녀의 ID칩을 읽고 개폐문이 저절로 열리며 그 안에 들어서자 숙소 로비에 나와 있던 자매들이 그녀를 쳐다보고 달려왔다.

 

“대장님!? 대장님! 사령관님 괜찮아? 사령관님 많이 아픈 거 맞지? 알비스들처럼 나은 거야?”

 

“대장님! 사령관님이 방에서 안 나와! 사령관님 화났어?! 알비스들이 잘못해서 화나신 거야?!”

 

“아..알비스, 대장님한테 먼저 경례를..”

 

“됐어. 베라.”

 

 자신의 앞에 쪼르르 달려와 울먹이며 쳐다보는 알비스들을 내려다보고 있자 베라들이 달려와 아이들을 막으려 했다. 그마저도 철혈의 레오나가 손을 휘휘 내젓자 한발 물러섰다. 철혈의 레오나는 자기 앞에서 불안한 눈빛을 보내는 알비스들을 한 명 한 명 훑어보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다들 다친 곳은 다 나은 거 같구나.”

 

“응응, 알비스는 튼튼하니까..”

 

“사령관 각하께서 미리 결제해두셨더군요. 덕분에 고속수복재 총량이 꽤 많이 줄었다고 안드바리가 그러더군요.”

 

 알비스 무리 뒤에서 서 있던 샌드걸이 앞으로 나왔다. 평소에도 삶에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며 살짝 죽은 눈을 하던 그녀는 어느 때보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철혈의 레오나를 쳐다보며 물었다.

 

“사령관 각하는 이제 괜찮으신 겁니까?”

 

“..블랙 리리스 경호대장이 닥터의 검진 결과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알려줬어.”

 

“..그럼 왜 방에서 나오시지 않는 겁니까!”

 

 평소에 감정을 내비치지 않던 샌드걸이 화를 내자 다른 부대원들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녈 쳐다보았다.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샌드걸은 침묵을 유지하는 철혈의 레오나를 보고 말을 이었다.

 

“지휘관님들이 무슨 모의를 했든, 무슨 작당을 하려 했는지는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령관 각하를 저렇게 만들었다면..”

 

 샌드걸이 성큼성큼 걸으며 철혈의 레오나 앞에 다가가자 님프가 그녈 붙잡으며 말리기 시작했다. 만류에도 불구하고 샌드걸은 분노에 가득 찬 눈으로 철혈의 레오나 앞까지 도달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전 제 지휘관을 따르지 않을 겁니다.”

 

“...너도 많이 변했구나. 샌드걸.”

 

 샌드걸은 그 말을 뒤로하고 자기 숙소로 들어갔다. 싸늘해진 로비에 알비스들은 고개를 푹 숙이며 훌쩍거렸고 베라들은 연신 그녀들을 달랬다. 샌드걸이 들어간 방문을 보고 있던 님프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언니 말마따나 샌드걸도 참 많이 변했어요. 예전에는 내일이 올지 안 올지 어떻게 아냐면서 침울해 있던 아이였는데.”

 

“..그러게. 저 천성을 고쳐보려고 하는 건 나도 포기했었는데 말이야.”

 

“헤헤..다 사령관님 덕분이죠. 둠브링어의 밴시양도 그렇고 샌드걸도 그렇고..양산형인 저희는 언제나 다시 충원되는 그런 ‘소모품’에 불과했으니까요.”

 

 님프의 말 한마디가 철혈의 레오나의 가슴을 따끔거리게 했다. 자매들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우선으로 생각하기는 하지만 샌드걸 본인도, 자기 자신도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만약 희생시켜서라도 작전을 완수할 수 있다면 언제나 진행 시킬 각오는 하고 있었다. 그것이 ‘소모품’이고 그게 바이오로이드니까.

 

‘이젠 인정 할 수밖에 없네. 사령관, 당신이 옳았어.’

 

 이번 작전에서 님프들이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복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금 서 있는 초창기 님프 덕분이었다. 전황이 악화되고 알비스들과 베라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 모습에 그녀는 철혈의 레오나의 지시도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적 앞으로 뛰어들어가 혼자서 전선을 유지했다. 방금 들어간 샌드걸 역시 초창기 발할라 멤버였지만 그녀로서는 비관적인 샌드걸들의 자폭에 가까운 공격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그녀들은 초창기 사령관의 모습을 알고 있었다. 작전에서 복귀해 병실에 들어가자마자 사령관이라는 인간이 직접 찾아와 안부를 물을 때 그녀들의 휘둥그레진 눈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님프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비관적으로 언젠가 모두 죽는다고 하는 샌드걸에게는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며 최대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런 그의 노력이 닿았던 탓일까 이젠 굳이 제 입으로 죽고 싶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언니..하지만 샌드걸의 말에는 어느 정도 저도 공감해요.”

 

 님프는 슬픈 눈빛으로 레오나를 쳐다보았다. 알비스들은 눈치를 보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고 베라들은 이제는 포기했다는 듯이 주저앉아 알비스들을 껴안았다.

 

“저희뿐만 아니라 이 오르카함의 바이오로이드 모두가 보고 들었어요. 사령관님의 외침을. 마지막 모습을 단말기를 통해서 모두 봤어요.”

 

 “..실망했니?”

 

 이제는 고개를 들 수 없어 아래로 내려버린 철혈의 레오나는 자신에게 날라올 비난에 대비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모를까 오랫동안 함께 해온 그녀의 비난을 맨정신으로 받아내기 힘들었다.

 

“아뇨, 언니. 전 언니에게 그렇게까지 실망하지는 않아요. 당장에 들었을 때는 혼란스러웠지만..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언니는 항상 사령관님이 먼저였잖아요.”

 

 의외의 대답에 철혈의 레오나는 다시 고개를 들어 그녀를 봤다. 님프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떠나기 위해 돌아섰다.

 

“전 언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그 누구보다 노력했는데 보상받지 못하는 건 슬프잖아요?”

 

 숙소 앞에 들어서기 전 님프는 싱긋이 웃으며 한마디를 더 보탰다.

 

“그리고 사령관님이 오랜만에 돌아오신 거 같아서 기쁘기도 해요. 화내는 모습도 정말 멋지시다니까요. 꼭 좀 사령관님을 잘 달래주세요. 언니.”

 

 그녀의 모습이 문에 가려 사라지자 철혈의 레오나는 이젠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누가 언니인지. 정말로..’

 

 님프까지 들어가고 나자 로비에는 알비스들과 베라들만이 남아 있었다. 베라들은 철혈의 레오나의 눈치를 보며 알비스를 한 명씩 데려 들어가고자 했으나 한 알비스가 묵묵히 서 있는 철혈의 레오나 앞으로 다가왔다. 철혈의 레오나가 그녀를 내려다보자 그 알비스는 탄입대에서 초코바를 4개 꺼내 철혈의 레오나 앞에 내밀었다.

 

“..난 괜찮아. 너희들끼리 나누어 먹으렴.”

 

 보통 때라면 한소리 했겠으나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기에 철혈의 레오나는 그 알비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곱게 돌려보내려 했었다. 그러나 그 알비스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내밀며 말했다.

 

“대장님..이 초코바는 내 것이 아니야..”

 

“..안드바리한테서 훔친 거니? 그러면 내가 잘 말해줄테니까..걱정마렴.”

 

 안드바리는 아직도 보급 창고에 앉아 있을 것이다. 언제나 성실한 그 아이이기에 사령관은 그 아이의 눈치를 종종 보기도 했을 정도니. 아마 작전이 끝난 후의 물자 보급과 현황을 확인하고 있겠지. 알비스는 그마저도 아니라고 고갤 저었다. 알비스의 눈망울이 글썽거리는 것을 보고 철혈의 레오나는 머리에서 손을 떼며 물었다.

 

“그럼 이건 누구거니?”

 

“이젠 없는 알비스들..걔들이 발할라로 가기 전에 남기고 간 거야.”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철혈의 레오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베라들은 자기 옆에 있는 알비스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죽은 알비스들의 머릿수와 베라들의 머릿수가 같은 건 우연이 아니였다. 알비스는 4개의 초코바를 다시 쭉 내밀며 말했다.

 

“걔들도 사령관님을 좋아하는 만큼..대장님도 좋아했어. 그러니까 이거 가지고 가서..사령관님이랑 화해하면..발할라에서도 알비스들은 좋아할 거야.”

 

 그 말에 베라들은 아예 알비스 알비스..하며 통곡을 하며 울어대었고 알비스들은 그런 그녀들의 등을 두드리며 눈물을 삼켰다. 철혈의 레오나는 손이 떨리는 것을 참으며 초코바 4개를 받았다.

 

“그래..알겠어. 이제 들어가서 푹 쉬렴.”

 

 알비스는 철혈의 레오나가 초코바를 받자 글썽거리는 눈망울을 감추듯 웃으며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울고 있는 자신의 베라를 찾아가 꼭 끌어안으며 숙소로 돌아갔다. 베라들이 모두 알비스들의 인도를 받으며 방으로 돌아가자 발할라 숙소의 로비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난..대체 그와 이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철혈의 레오나는 벽에 기대며 천천히 발걸음을 자신의 지휘관실로 옮겼다. 머리가 벽에 문대지며 가지런히 정돈한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머리핀이 두피를 콕콕 찔렀으나 그녀는 신경 쓰지 못했다. 이윽고 로비에서 쭉 이어지는 복도 끝에 있는 지휘관실에 도착하자 문이 저절로 열리고 와인빛의 머리카락과 한쪽의 눈이 유난히 하얀 자신의 부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키리..”

 

“기다렸습니다, 대장님. 어서 들어오시죠. 밖이 춥습니다.”

 

 힘없이 자신의 대장이 자길 부르자 발키리는 대장의 한쪽을 어깨로 지탱하며 지휘관실 안으로 이끌었다. 대장을 지휘관실 내의 소파에 앉히고 곧바로 방금 탄 홍차를 꺼내왔다. 하지만 철혈의 레오나는 고개를 숙인 채 홍차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대장님. 홍차가 식겠습니다.”

 

“..너도 날 원망하니? 발할라..발할라 그렇게 노래를 부르면서 자매들을..그저 차가운 땅바닥에 눕혀놓고 온 날..”

 

 항상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자신의 지휘관이 상반된 모습으로 자신을 쳐다보자 발키리는 당황스러웠다. 철혈이라는 이명에 맞지 않게 자신의 지휘관은 후회와 피로를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아닙니다. 대장님. 전 대장님을 믿습니다.”

 

“..믿는다고? 너도 봤잖아. 내가 그녀들이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지 뻔히 알면서도 그걸 난 막지 않았어. 당연하게 우리가 이기는 싸움이라고만 생각하며 그녀들을 놔뒀다고.”

 

“하지만 그건..”

 

“그래, 맞아. 네가 무슨 말 하려는 지 알아. 그렇게 된 상황은 필시 내 탓이 아니겠지. 지휘관들이 그렇게 했던 것도 필시 그런 상황이 닥쳤기 때문인 걸 아니까.”

 

“..하지만 그걸 각하께 숨긴 것은 우리의 죄겠지요.”

 

“...”

 

 아직 네게 숨기는 것이 있단다. 나는. 그가 그렇게 변모한 것도 내가 계획해서 꾸민 일이고. 너는 내가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나는 그를 다른 년들한테 뺏기기 싫어서 방관했던 거야. 내가 키워낸 남자를. 내 옆에 설 사람을 그년들이 제멋대로 채가는 모습을 보기 싫었어. 이번 작전으로 확실하게 그 남자를 얻을 수 있다면. 나는 자매들이 발할라로 떠나도 괜찮다고 생각했었어.

 

 입에 담고 싶지만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목구멍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꾹 참고 철혈의 레오나는 홍차잔을 들어 한 모금 넘겼다. 따듯한 음료가 바짝 마른 입을 타고 목을 타고 내려가자 마음이 조금 진정되는 것을 느꼈다. 발키리도 자신의 상관이 홍차를 한 모금 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잔도 들어 조용히 마셨다.

 

“그렘린들은?”

 

“일부는 포츈과 닥터를 도와 AGS 정비를 위해 공방으로 떠났습니다. 일부분은 병실에 입원 중입니다.”

 

“안드바리는?”

 

“사령관을 기다리다가 지금은 보급 창고에서 물자를 정리하는 중입니다. 필시 각하께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달려가겠죠. 칭찬이 고픈 아이니까요.”

 

 유독 그는 변하고 나서도 LRL이나 알비스, 그리고 안드바리 같은 아이들에게는 한없이 상냥하게 굴었다.

 

‘권속이여! 이 사이클롭스 프린세스의 진정한 모습을 보아라!...헤헤! 사령관! 오드리가 선물해줬다! 이쁘지?’

 

 LRL이 고스로리풍 의상을 입고 와서 사령관실에서 빙그르르 돌며 오드리가 선물해줬다고 꺄꺄 거리는 모습에 그는 하던 업무도 멈추고 그걸 지켜보며 살짝 미소를 지었고 알비스들이 작전이 끝나고 보고 하러 오는 발키리 옆에 달라붙어 사령관실에 들어와 책상 앞까지 와 부둥부둥 거리면 굳이 나가서 그녀들의 볼을 만져주었다. 안드바리 역시 매번 단말기를 통해 보고해도 되는 물자 정리 보고서를 종이로 뽑아 들고 올 때면 그는 일일이 일이 피곤하지 않은지 혹 누가 물자를 더 달라고 떼쓰지 않는지를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어봤고 안드바리는 평소에 짓지 않는 미소를 지으면서 하나하나 설명했고 그는 첫 번째 서랍에서 사탕을 꺼내주었다.

 

 얼굴만은 항상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그였지만 몸은 그렇지 못한 듯이 항상 그의 첫 번째 서랍은 사탕과 초콜릿 같은 것이 준비되어 있었고 그는 그걸 아이들이나 작전을 훌륭히 마친 대원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때문에 오르카호의 바이오로이드들은 차가운 모습과 상반되는 행동을 하는 그를 보며 갭이 넘쳐 오히려 더 멋지다는 소릴 하는 것을 자신도 들었다.

 

-윽! 머리가..머리가 깨질 거 같아..아아악! 아파아아!!

 

 한창 자신과 다른 지휘관들에게 욕설을 내뱉던 그는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아팠는지 흙바닥 위에서 굴러대었고 그걸 본 블랙 리리스와 지휘관들이 달려갔으나 자신만은 달려가지 못했다. 그가 아픈 이유가 자신이 조언한 '그것'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죄책감이 자신의 두 다리와 두 팔을 붙잡은 것만 같았다.

 

 이제는 외면해왔던 진실을 확인해야 할 시간이었다. 철혈의 레오나는 냉정한 평소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오며 초창기부터 자신과 함께한 부관에게 물었다.

 

“발키리..넌 그의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어느 쪽을 더 좋아하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발키리는 평소와 같은 무표정한 모습 위에 새빨간 홍조가 올라왔다. 한참을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사랑에 빠진 소녀라고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정말, 이래서 물어보기 싫었던 건데.’

 

“전..각하가 어떤 모습이라도 상관없다고..생각합니다. 그래도..굳이 고르시라고 하신다면 이전이 더 좋다고..”

 

“어째서? 그 우유부단한 모습이? 오히려 너나 나처럼 항상 냉철한 모습을 가진 것보다 더 마음에 들었니?”

 

 이 질문은 자기 자신에게 묻는 것과 같았다. 자기가 조언해 자기가 변모시켰지만 철혈의 레오나 자신도 이전의 그가 그리워질 때가 종종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종종 그가 말없이 자신을 볼 때면 오히려 시선을 피하곤 했다. 자신의 부관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까.

 

“..그저 감입니다. 사령관님은 항상 웃지는 않으셨지만. 종종 웃으시고 싶으셔도, 억지로 참는 것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 고마워. 답 해줘서.”

 

 발키리의 고백을 듣고 철혈의 레오나는 소파 위에서 일어섰다. 상관이 일어서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발키리 역시 평소의 냉정한 모습을 되찾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발키리, 다시 각 부대의 지휘관들과 부관들을 작전 회의실로 모아줘. 이번에는 사령관의 직할부대의 지휘관들도, 독립부대 역시 마찬가지야. 닥터와 블랙 리리스 역시 호출을 넣어줘.”

 

“..그렇게나 말입니까?”

 

“너도 따라와. 이젠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겠지.”

 

 이젠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그 어떤 비난을 듣더라도 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할지라도 한시바삐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 그를 두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 것이다.

 

‘사령관, 발할라로 가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당신이었는가 보네.’


 레오나는 오랜만에 웃으며 빠른 걸음으로 발키리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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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는 참 쓰면서 느끼는게 괴롭히기 딱 좋은 캐릭터네. 성격 갭이 심해서 좋아. 이래서 혐성밈이 활발했나 싶다.

떡밥은 뿌릴만큼 뿌렸고 다음 편부터는 사령관 시점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제 좀 풀어야지.

전 편 댓글에 누가 후회물 플룻이냐고 물어봤는데 그런 쪽은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