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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익숙한 느낌은 흐린 기억 속의 느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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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여. 나는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뭔데?"


"독사의 여자를 건드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 사실 앞으로도 잊지 마. 적어도 우리랑 협력하는 동안은."


"그러도록 하지. 아, 이제 다왔군. 어서와라! 황혼의 저택에!"


켈베로스에게 묶여 오르카 호 선내를 50바퀴 동안 돌고온 쉬라이크의 머리는 내 허리춤에 부적처럼 묶인 채 내게 속삭였고 콘스탄챠와 닥터의 호위를 받으며 다시 황혼의 저택으로 향한 수색대에게 황혼의 저택이 보이자 다시 기세 좋게 외쳤다. 약간의 소동이 있긴 했지만 여전히 저택은 반쯤 문이 열린 채 말없이 우리를 받아들였고 콘스탄챠가 주변을 살피다가 닥터에게 물었다.


"철충 반응은 없니?"


"...응. 아무래도 이 주변엔 철충들이 없는 모양이야. 우리 입장에선 다행이지. 언니랑 나만으로 철충을 상대하긴 힘들 수도 있잖아?"


"똑똑한 꼬맹이! 밤의 군주, 영광만으로 태양을 떨게 하는 나를 잊지 마라!"


"하지만 머리만 남은 채로는 아무 것도 못하잖아?"


쉬라이크의 항의에 묵직한 팩트로 답한 닥터는 신음소리를 내는 쉬라이크를 보고 장난스럽게 웃다가 나에게 말했다.


"히히. 이제 어떻게 할까?"


"일단 1층을 살펴보자. 리앤하고 시라유리랑 왔을 땐 저택을 샅샅히 수색하진 못했으니까 1층부터 차근차근 수색하는 게 좋겠어."


"뭐라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 저택은 많은 보물이 곳곳에 묻혔다고 생각해도 좋다. 다만 그걸 어떻게 찾고 봉인을 푸느냐는 별개의 문제겠지. 물론 그 일은 이 지혜로운 까마귀 군주에게 맡겨라."


"그래. 그럼 한번 시작해보자."


쉬라이크의 말을 들은 나와 콘스탄챠, 닥터는 저택 내부로 들어간 뒤 망가지고 녹슨 복도와 벽을 살피며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얼마 지나지 않아 닥터가 희미한 기계 반응을 감지했는지 반쯤 무너진 문 너머를 가리켰고 나와 콘스탄챠가 그 문을 치우자 그 안에서 꽤 낡았지만 어딘가 익숙한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걸 본 나는 예전에 리앤과 만났던 VR 기록을 떠올리고 말했다.


"이건... 왠지 익숙한데?"


"리앤 양과 만날 수 있었던 그 장치와 비슷해 보이네요. 좀 많이 낡긴 했지만..."


"쉬라이크. 이거 작동 되긴 할까?"


"흠... 인간! 저기 보이는 장치 윗부분에 나를 올려놔라."


쉬라이크의 말에 나는 먼지가 가득한 기계 윗부분을 대강 손으로 털어내고 먼지구덩이에 가려져있던 둥그런 구멍 부분에 쉬라이크의 머리를 끼웠다. 그러자 쉬라이크의 눈이 잠시 꺼지더니 이내 푸른빛으로 빛나기 시작했고 곧 장치가 켜지는 소리가 들리자 닥터가 감탄하며 말했다.


"우와~ 설마 이렇게 작동할 줄은 몰랐는데? 최소 수십 년은 전력이 끊겨있었을텐데 쉬라이크가 장착되니까 바로 작동되고 있어!"


"봤느냐! 이게 바로 황혼의 저택에 잠든 기술력의 극히 일부다! 수십 년간 전력이 끊겼더라도 작동될 수 있도록 황혼의 주인께서 어떤 방법을 적용시킨 것이 분명하다. 잠시 그 기술력과 앞을 내다보는 지혜를 찬양할 시간을 주겠다."


"찬양은 나중에 하자. 일단 이 장치가 그때 그 장치와 비슷하다면 사용법이나 주의사항은 똑같겠지?"


"그럴 가능성이 높아. 이 장치가 어떤 시대의 어떤 장소를 무대로 하고, 오빠가 누가 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 기본적인 뼈대는 같을 거야."


"그럼 콘스탄챠와 닥터는 추가적인 호위대와 수색조를 파견해줘. 나는 이 장치가 어떤 것을 보여줄지 확인해볼께. 물론, 여기 있는 쉬라이크와 같이."


키리시마 스캔들과 리앤을 다시 만난 것,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위협들까지 모두 어제일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던 나는 닥터의 말을 듣고 콘스탄챠와 닥터에게 지시를 내렸고 그것을 유심히 보던 쉬라이크가 말했다.


"인간치고는 신뢰받고 있군."


"인간치고는?"


"적어도 내가 봐온 인간들 중에서 이렇게 바이오로이드를 존중하고, 신뢰한 사람은 딱 두 명이었다. 애석하게도 기억 회로에 오류가 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 한가지 말해둘 게 있다. 가상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바이오로이드와 인간은 가상의 데이터로 구축된 존재이지만, 오직 나, 쉬라이크만큼은 진실된 존재로 존재할 것이다. 이 점을 명심하고 만약 네 휘하의 바이오로이드가 난입할 계획이 있다면 다른 이들과 구별할 수 있는 표식을 달고 오는 걸 추천한다."


"명심할게. 그럼 뒷일은 너희에게 맡긴다?"


나는 콘스탄챠와 닥터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예전처럼 가상현실로 다시 뛰어들었다. 곧 나의 의식은 다시 흐려졌고 정신을 차렸을 땐 홀로 황혼의 저택 입구에 서있었다. 다만 다른 게 있었다면, 폐허가 된 현실의 모습과 달리 지금은 아주 깨끗하고 호화로우며 동시에 정원와 저택 내부가 철저한 관리를 받고 있는 모습이었다는 점이었다. 별다른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한 내가 저택의 문에 손을 데려던 순간, 저택 문이 열리며 마치 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확인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들어와도 좋다고 하십니다."


"아... 그래. 잘 부탁할게. 그럼... 어?"


저택 안으로 들어온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콘스탄챠였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이 아닌 좀 더 어린듯한 인상에 평소 모습보다 약간 노출이 많은 복장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내가 잠시 놀란 반응을 보이자 콘스탄챠가 가까이 와서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야. 좀 익숙한 사람의 모습이 보여서."


"어머나, 저랑 닮은 분이 계시다니 이게 그 주인님께서 말씀하시던 도플갱어라는 걸까요?"


"콘스탄챠 S1! 황혼의 주인을 찾아온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라! 황혼의 주인의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


"내 정신 좀 봐...! 어서 3층에 가셔서 주인님을 만나주세요. 저는 이만 다른 일을 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때, 쉬라이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란 콘스탄챠는 나에게 간략히 안내를 하고 황급히 복도 저편으로 달려갔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3층으로 올라갔다. 저택 주인이 살았을 방의 위치를 기억하고 있던 나였기에 주인이 있는 방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고 곧 내가 그 방으로 가 문을 열자 지금처럼 개조된 모습이 아닌 멀끔한 외형을 한 쉬라이크와 그 옆에서 나를 보고 미소를 짓고 있는 중년의 남성이 나를 보고 있었다.


"친애하는 내 친구 디미트리. 어서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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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유입이 많아진 거 같아 소설이 관심 못받아도 아주 좋은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