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탄 - 1

불발탄 - 2

불발탄 - 3

불발탄 - 4


옛날에 부대에서 덴세츠 사의 전쟁영화를 본 기억이 있다.


화려한 폭발, 난자하는 선혈...

같은 바이오로이드가 죽어나가는 모습은 끔찍했지만 그 장면들은 잊혀지지 않았다.

화려하고, 극적이며, 가슴안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연출이었다.


썩어도 덴세츠라는 걸까.

그들의 폭력에는 예술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 장면들이 지금 내 뒤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 ...!


등 뒤에서 터져나오는 폭발음들은 내게 잠시의 집중도, 일말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땅에서는 불기둥이 피어오르고 하늘에서는 폭죽같은 섬광이 불을 밝혔다.

곧 저녁노을이 질 시간임에도 불꽃은 오히려 노을의 색을 압도하겠다는 듯이 그 색을 뽐내고 있었다.


- 푸쉬이...


다음 발포 수류탄이 터졌다. 솟아오르는 콘크리트의 앞으로 달려가 몸을 숙인다. 이제 남은 거리는 500m.

발포 수류탄 없이 전력으로 달리면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오리진 더스트와 강화된 신체로 이루어진 몸은 인간님들께는 불가능한 능력을 가져다 주었다.

그 덕분에 이 거지같은 전장에서 죽지 않고 고통받으며 숨통을 이어가고 있을 수 있다.

인간님들 만만세.


노움이 다음 수류탄을 준비하는 사이 콘크리트 밖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33호 참호는 참담한 전장을 연출하고 있었다.

마치 하늘과 땅이 전쟁을 하는 것 같다. 저것을 보고 있자니 내 존재의 하찮음이 온 몸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가요!"


노움의 외침에 다시 고개를 돌리고 앞으로 달려나간다. 회색 연기를 내뿜는 콘크리트의 앞으로 돌아서고 다시 숨을 고르는 사이, 내 품에 있던 수류탄을 꺼내 그녀에게 건내자 노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곤 수류탄을 이어받았다.


약 450m 조금 너머에 깃발이 펄럭이며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제 절반이지 말입니다..."


브라우니가 아까보다는 나은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제조된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등병의 신분으로 참가하는 전투였으니 얼마나 무서웠을지도 이해가 간다.

아무리 전쟁을 위해 제조되어 전장에 적응되도록 신체와 정신이 설계되어 있더라도, 감정이 존재하는 한, 정신은 소모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시련에 적응하느냐 소모되느냐에 따라 정신은 단련될 수도, 금이 갈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홍수법은 아직 정신을 가다듬어 지지 않은 브라우니 23766에게는 버거울 것이다.


다시금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가 가라앉기 전에 발걸음을 놀린다. 이제 390m. 조금씩 깃발이 가까워진다.

브라우니가 허리춤에서 노란색 수류탄을 노움에게 건냈다.


"분대장님. 마지막 수류탄임다."


"고마워요."


익숙한 손놀림으로 핀을 해제하고는 다시 수류탄을 던질 준비를 하는 그녀를 보면서 허리에 남은 수류탄의 갯수를 세었다.


'남은 수류탄은 4개'


지금 던지려는 수류탄까지 합쳐서 총 5개. 깃발까지 도착하기에 충분한 숫자다.

달리기 시작한지 5분도 지나지 않았거늘 등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멀리서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를 보자말자 발이 먼저 앞서 나간다. 미끄러지듯이 발포 콘크리트의 앞으로 가 다시 전방을 살핀다.


이제 300m 정도. 이젠 정말로 깃발이 코 앞에 있다. 침착하게만 가면...


- 콰쾅!


우리의 뒤편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우리의 앞으로 연기가 쓸려나왔다.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러들고 시간이 멈춘듯 우리 세명은 몸을 정지시켰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나도 모르게 소리치듯 입을 열었다.


"뭐, 뭐에요?!"


"먼지 때문에 시야 확보가 힘들지 말입니다!"


브라우니는 급하게 고글을 쓰면서 후방을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철충의 눈 먼 포탄인지. 아니면 우리를 노리고 쏜 저격탄인지.

어느 쪽이든 이제 여기도 위험지대가 되었다.


"이제 정말로 한 걸음이에요! 발포 콘크리트 없이 그냥 달리세요!"


우리의 분대장이 소리쳤다. 그녀의 말대로다. 만약 우리의 위치가 발각된 것이라면 이제와서 다시 엄폐물을 만들면서 전진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발포 콘크리트와 함께 산산조각 나는 결말을 맞이할테니까.


"가요!"


노움은 소리치면서 앞으로 달려나갔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나와 브라우니는 그녀의 등 뒤를 따라 달렸다. 

250m. 크게 두 세걸음만에 깃발과의 걸이가 좁혀져 간다.

200m. 울퉁불퉁한 지면 탓에 더 빠른 속도를 내기 힘들었다. 실수해서 여기서 발이라도 걸려 넘어졌다가는 아무도 구해주지 못한다.

150m... 깃발의 그림까지 선명히 보이기 시작하면서 몸 안의 아드레날린이 미쳐 날뛰는 것이 느껴진다.

100m...! 깃발이 코 앞까지 다가오자, 그제서야 무언가 찜찜한 점이 머리속에서 흘러나오듯이 스쳐갔다.

50m. 뭐지? 뭐가 이상하지?


노움이 손을 뻗어 참호의 안으로 달려드는 그 순간, 


- 탕!


어디선가 울려퍼진 총소리에 선두를 달리던 분대장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폭음이 들리는 전장에서도 그 흉탄의 소리만큼은 확실하게 울러퍼졌다.

소리를 듣자말자 몸이 먼저 앞서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설마, 설마 아닐꺼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은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노움 병장님!"


생각해보니 당연한 의미였다. 아까 브라우니는 캐미컬 칙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이미 서부전선도 철충들이 침범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우리는 대공포와 자동화기들에만 관심이 쏠려 철충들이 전선에 들어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었다.

마치 철충들이 하늘에 깔린 폭격기에 관심이 쏠려 우리를 간과하였듯이, 우리도 강력한 화기에 관심이 쏠려 철충들의 간과하였다.


그 대가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와 버렸다.


슬라이딩을 하듯이 날라가 노움의 몸을 살핀다. 우선 머리는 괜찮다. 머리에서는 따로 출혈이 보이지 않는다. 그 때 손에 축축한 느낌이 들어 손을 들어보니, 붉은 피가 팔뚝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이런..."


배가 관통당해있었다. 등부터 상복부까지. 깔끔한 관통이었다. 피가 멈출줄 모르고 쏟아져 나왔다.


"브라우니! 엄호하세요!"


나는 소리치듯이 명령을 하달하고 노움을 등에 업고 참호 쪽으로 달렸다. 

연사가 아닌 것을 봐서는 저격계열의 철충이다. 늦지 않는다면 참호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테니...!

가까스로 깃발의 아래에 도착하여 떨어지듯이 참호 안으로 들어갔다.

내려앉을때의 충격이 컷는지 등 뒤에 노움의 신음소리와 함께 어깨 아래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땅을 적시고 있었다.


"정신차리세요! 노움 병장!"


급한대로 그녀를 눕히고 상처를 살폈다. 생각보다 상처가 크다. 다행히도 우리 바이오로이드는 왠만한 상처로는 죽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상처로 전선을 가로지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어느샌가 내려온 브라우니가 호주머니에서 흰색 붕대를 꺼내들었다. 


"이리 줘봐요!"


어쩔 줄 몰라 당황하고 있던 그녀의 손에서 붕대를 빼앗듯이 가져와 그녀의 배에 둘렀다. 반쯤 사용하던 붕대였는지 길이가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급한대로 지혈은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윽..."


노움은 얕은 신음소리를 내며 상체를 일으켜세웠다. 그녀도 여기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뛸 수 없는 몸이다. 


끔찍한 선택지들이 내 앞에 놓여진다. 눈 앞이 어두워지고 머리속이 혼란스럽다.

옛날에 분대원들과 우스갯소리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트롤리 딜레마라고 했던가.

내 손에 그 빌어먹을 스위치가 올라오는 날 따위 상상하지도 않았다.


그런 생각들로 머리속이 가득한 탓에, 경계를 늦추고 말았다.


"앞에!"


브라우니의 외침에 순간적으로 고개를 올렸다. 그러나,


"분대장님!"


눈 앞에는 나를 향해 덮칠듯이 달려드는 노움과, 그녀를 찢어지게 부르는 브라우니의 외침, 그리고 지겹도록 들었던 머신건의 연사소리만이 소나기처럼 내게 쏟아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