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사령관의 하루 (2)

 

 

 



 

“쭈인님이요? 으음, 좋은 분이지만 대체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하치코는 모르겠어요…….”

 

성벽의 하치코

 

 



 

 

4.

 

주인님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전 8시에 깨어나시면 세안을 한 뒤 오전 9시까지 정기회의에 나가십니다.

 

정기회의에서 돌아오면 아침 식사를 하면서 업무를 보고, 그 다음 점심 식사도

 

저녁 식사도 그대로 쭉 일하면서 드십니다. 업무 중 쉬는 시간은 평균 3분 이내에요.

 

일이 많지 않으면 새벽 1시에 주무시지만, 보통은 새벽 3시에서 5시 사이에 취침하십니다.

 

즉 하루 평균 3시간에서 6시간만 주무신다는 뜻입니다.

 

‘보통 그렇게 생활하면 일주일 안에 뻗어버리겠지만…….’

 

평소대로의 아침, 저는 주인님을 깨워드리기 위해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콘스탄챠 S2, 좋은 아침입니다.”

 

그러나 주인님은 책상에 앉아 벌써 일하고 계셨습니다.

 

“어? 주인님, 벌써 일어나셨네요?”


“잠을 안 잤습니다. 의복 생산 계획의 세부 사항을 수정하느라.”

 

“주인님! 제가 잠을 꼬박꼬박 주무셔야 한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일이 남아있는데 잠을 잘 순 없지요.”


주인님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셨습니다.

 

“마침 잘 됐습니다. 오드리 드림위버가 시제품을 만들었으니 입어보시죠.”


“네? 서, 설마 진짜 만드신 건가요……?”


주섬주섬, 주인님께서 그 문제의 인민복……아니 생활복을 꺼내셨습니다.

 

실물로 보니 진심으로 입고 싶지 않았습니다.

 

주름 하나 없는 통짜 옷에, 색은 짙은 갈색이고 주머니가 잔뜩 달려있어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기괴함마저 느껴졌습니다.

 

“오드리 씨가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그거 만들고 나서요.”

 

“차라리 보석 알몸 수영복을 만들던 때가 나았다고 하더군요. 왜일까요.”


전 이유를 알 것 같네요. 으으, 정말 이걸 입어야 하나……?

 

“입고 평가해주시죠. 그 평가를 토대로 개선할 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 그럼 잠깐 화장실에서 갈아입고 올게요.”


“네.”


저는 옷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당장에라도 그냥 변기에 넣고 내려버리고 싶지만…….

 

“주인님을 위해서야. 콘스탄챠, 힘내. 넌 할 수 있어. 그냥 옷일 뿐이잖아?”


스스로르 타이른 뒤 인민복, 아니 생활복을 입고 다시 나왔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제 모습은……굳이 뭐라 설명하기도 싫었습니다.

 

“잘 어울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옷은 편리하게 느껴집니까? 행동에 제약은? 아, 내연성과 내마모성을 강화했는데

 

그러한 점을 자각할 수 있습니까? 뭔가 더 개선할 점은?”

 

“펴……편하네요! 네, 엄청 편해요. 진짜 너무 편해서 안 입은 것 같아요.”

 

거짓말은 아닙니다. 편한 건 사실입니다, 딱 거기까지지만…….

 

“특별히 문제가 없다면 다행이군요. 하지만 찾지 못한 문제점이 있을 수 있으니

 

입어볼 사람을 더 찾아봐야겠군요. 오늘 정기회의는 취소한다고 공지해주시길 바랍니다.”

 

저 말고 또 피해자를 만드실 생각이시군요. 끄응…….

 

제발 오늘은 아무도 방에서 나오지 않기를 간절히 빌었습니다.

 

 

 

 

 

5.

 

잠시 후, 저희는 오르카 호를 돌아다니면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인민복을 입혔습니다.

 

다들 보자마자 ‘망했다.’ 라고 말할 것 같은 표정으로 옷을 입었습니다.

 

“윽.”

 

그러던 도중, 저희는 메이 대장과 마주쳤습니다.

 

“멸망의 메이, 마침 잘 만났습니다. 시제품으로 만든 생활복을 입어보시지요.”


“나, 난 안 입어! 안 입을 거야! 그 흉물 저리 치우지 못해!?”


“흉물이라니, 오드리 드림위버가 밤새 열심히 만든 작업물입니다.”


“알 게 뭐야! 아무튼 그 감자포대 얼른 치우란 말이야!”


“일단 입어보면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자아, 어서 입으십시오.”


“싫어! 싫다고! 나, 나애애애앤-!”


아, 도망쳤다.

 

주인님은 메이 대장이 달아나자마자 쏜살같이 그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른 입어주십시오. 지휘관급 개체의 피드백은 소중하니까요.”


“뭐 이리 빠른 거야!? 그러니까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아하, 낯선 물체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발동된 것입니까. 하지만 뭐든

 

익숙해지면 그만입니다. 일단 한 번 입어보면 다른 옷은 입지 않게 될 겁니다.”

 

쾅! 메이 대장이 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습니다.

 

“문이 잠겼습니다, 멸망의 메이. 문을 열어주길 바랍니다.”


“저리 가, 이 일중독 멍청이야! 하도 일만 해서 머리가 돌아버린 게 분명하다고 넌!”


“무슨 소리입니까. 전 하루 평균 19시간밖에 일하지 않습니다.”

 

“저, 주인님? 저렇게 싫어하는데 일단 물러나시는 게…….”
 
“안 됩니다. 신장이 작은 바이오로이드가 입었을 때에도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


“누가 신장이 작다고! 나 안 작거든!? 그리고 얼른 돌아가란 말이야!”


주인님이 문 앞에 서서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곤란하군요. 어떻게든 옷을 입혀야 하는데.”


“꼭 그렇게까지 해서 입히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는 경우이니 통풍구를 쓰겠습니다.”


“네?”


그렇게 말하며 주인님이 머리 위의 통풍구를 열어 그 안으로 기어 들어가셨습니다.

 

“거, 거기 통풍구가 있었던 가요?”

 

“전 오르카 호의 구조를 모두 외웠습니다. 이런 때 유용하지요.”


그 복잡한 걸 언제 또 외우셨을까요……잠시 후, 문 안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습니다.

 

“싫어! 가까이 오지 마! 그 커다랗고 징그러운 거 치우란 말이야!”
 
“전혀 아프지 않습니다. 처음엔 다들 싫다고 하지만 곧 좋아질 겁니다.”


“아, 안 돼……입혀져 버려……!”


그 후, 문이 열리며 인민복을 입은 메이 대장이 나왔습니다.

 

영혼을 잃은 듯 그 비참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동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됐습니다, 콘스탄챠 S2.”


“콘스탄챠, 보지 마……이렇게 더러워진 날 보지 말아줘…….”


그 고압적이고 기세등등한 메이 대장을 울먹거리게 만들다니……무서운 분…….

 

“이제 몇 벌 안 남았습니다. 어서 나머지를 입히도록 합시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네, 어서 이 일을 끝내야 통상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요.”


저는 그 뜻으로 말한 게 아니지만, 굳이 따지진 않았습니다.

 

이제 또 누가 희생될까, 저는 두려움에 떨며 주인님을 쫓아갔습니다.

 

 


 

 

 

6.

 

“어, 안녕 사령관.

 

“더치 걸 15호, 좋은 아침입니다.”

 

“내가 몇 호인지 알아볼 수 있어?”


“못 알아볼 이유가 있습니까?”


더치 걸이 눈을 깜빡거리며 주인님을 보았습니다.

 

몇 번 마주친 적도 없는 더치 걸을, 수도 많고 모두 똑같이 생긴 그녀들을

 

분간해내는 건 아무나 못할 일이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만든 옷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입어보시겠습니까?”


“옷……?”


더치 걸이 제가 입고 있던 인민복을 보자마자 사색이 되었습니다.

 

“저, 저걸 입으라는 거야?”


“네. 생산성과 편의성을 위해 시험제작한 옷입니다.”


“일단 알겠어…….”

 

가엾은 더치 걸. 저 귀여운 드레스를 벗고 이런 옷을 입게 되다니…….

 

그녀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건 꼭 예전에 입었던 작업복을 다시 입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잘 어울려? 하긴 잘 어울리겠지. 나야 이런 옷만 입었으니까.”


“편리함을 느낄 수 있습니까?”

 

“응, 편해. 하지만 역시 지금 입고 있던 옷이 나은 것 같아.”

 

“어째서?”

 

“왜냐하면 이건 내가 좋아하는 옷이니까.”


설마 그 주인님한테 저렇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실 수 있다니…….

 

주인님은 말없이 눈만 껌뻑거리며 드레스와 인민복을 번갈아 보셨습니다.

 

“이 옷은 편리하고 생산성이 우수합니다. 그 드레스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거야. 하지만 늘 편하고 많이 만들 수 있는 게 좋은 건 아니야.”


“어째서?”


“세상은 효율로만 돌아가지 않으니까.”


그 말에 얼마나 많은 뜻이 담겨있는지, 전 알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효율만을 위해 만들어지고 소모된 그녀가 하는 말이기에, 그 무게가 다릅니다.

 

“……그래서 이 옷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응, 싫어.”


“알겠습니다.”


주인님이 그녀에게 드레스를 돌려주셨습니다. 

 

“확실히 제가 효율만 강조한 탓에 개개인의 취향을 무시한 것 같습니다.

 

그 점은 제가 잘못한 게 분명하군요. 제 사과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받아줄게. 그리고 사령관이 잘못한 거 아냐, 그냥 열심히 한 것뿐이니까.”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이번 사안은 재고할 필요가 있겠군요.”


더치 걸이 다시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싱긋 웃었습니다.

 

“어때, 내 드레스 예뻐?”


“잘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이 만족하면 그걸로 됐습니다.”

 

주인님께서 순순히 자기 뜻을 굽히다니,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습니다.

 

“돌아갑시다, 콘스탄챠 S2. 그 옷은 더 이상 입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근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또 이렇게 무언가를 배웠으니 그걸로 된 겁니다.”

 

이렇게 해서, 갑자기 일어난 오르카의 의류 혁명은 막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저도 때론 주인님께 직설적으로 말씀드리는 게 낫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7.

 

“콘스탄챠 S2, 잠깐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평소처럼 침실에서 작업을 하시던 주인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뭔가 명령하실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잠깐 잡담을 나누고 싶습니다.”

 

주인님이 일을 하다 말고 잡답이라니,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뜰 모양입니다.

 

“제가 일전에 옷을 바꾸겠다고 했을 때, 다들 제게 뜻을 확실하게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다들 보류해달라고 부탁하긴 했죠…….”


“전 그게 단순히 너무 급하게 일처리를 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님이 검지와 엄지를 비비며 말씀하셨습니다.

 

“왜 다들 제게 의견을 솔직하게 전달하지 못한 겁니까?”

 

“…….”


신뢰받지 못한다.

 

그것은 한 군대의 사령관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나 다름없습니다.

 

“솔직하게 대답해주십시오. 저는 부대원들에게 신뢰받지 못하는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니에요.”


저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습니다.

 

“저희 모두 주인님을 진심으로, 깊이 신뢰하고 있어요. 그것만은 거짓이 아니에요.”


“그럼 왜?”


“다들 곤란했다고 생각해요. 주인님께선 늘 저희 모두를 위해 일하시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그 노력을 무시하는 게 아닌지…….”

 

주인님이 말없이 저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한참 뒤에야 말씀하셨습니다.

 

“……어쨌든 전 신뢰받지 못한 겁니다. 저를 신뢰했다면 제가 잘못됐다는 걸

 

지적했을 테지요. 역시 전 사령관으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자책하실 필요는 없어요.”


“아무래도 저의 행동 지침을 수정하는 것을 고려해보아야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고선, 주인님께선 갑자기 제 머리카락을 보셨습니다.

 

“그나저나 다들 머리카락이 긴데, 삭발하면 더 관리하기 편할 것 같습니다.”


“삭발하라고 명령하셨다간 모두 여기서 달아날지도 몰라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효율적이지 못한데……효율을 높일 수 있을 텐데…….”


“안 돼요.”


“아아…….”

 

언제쯤 주인님이 여자들의 미(美)에 대해 이해하실 날이 올까요.

 

아마 평생 가도 힘들 것 같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만들어진 인민복은 오드리에 의해 소각되어 한 줌의 잿더미가 되었다.

그러나 남은 몇 벌은 미용 따윈 신경 쓰지 않는 고참 브라우니들이 입었다 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