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한 사령관의 하루 (3)

 

 

 

 

언젠간 주인님의 그 완벽주의적인 성격이 자기 자신을 죽일지도 몰라요.

 - 다프네

 

 

 

 

8.

 

“주인님, 이제 일어나실 시간이신데 오늘 일정은-”


문을 열자마자 저는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피.

 

대량의 피가 책상에서 뚝뚝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창백한 얼굴로 책상에 엎드린 채 졸도하신 주인님이.

 

주인님.

 

“주인님!! 이, 이게 무슨-”


저는 일전에 주인님께서 만드신 비상용 구급키트를 꺼내 주인님께 달려갔습니다.

 

손가락으로 맥을 짚어보니 아직 살아계셨습니다, 다만 호흡이 좀 얕았습니다.

 

“주인님, 정신 차려보세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패닉에 빠져있을 시간은 없습니다. 저는 곧장 무전기를 꺼냈습니다.

 

“다프네 씨, 여기는 콘스탄챠! 주인님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계십니다. 그쪽으로

 

호송할 테니 즉시 치료 준비를 부탁드려요!”

 

‘네, 네!’

 

저는 주인님을 등에 업은 후, 전력을 다해 달렸습니다.

 

부디 제가 늦지 않기를-

 

 

 

 

 

9. 

 

“콘스탄챠, 각하의 용태는?”


“안정되셨어요. 다프네 씨가 나중에 자세한 검사 결과를 알려주실 거예요.”


평소보다 일찍 모인 정기회의의 분위기는 최악이었습니다.

 

느닷없이 주인님이 쓰러졌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오르카의 족속 자체가 위협받을지도 모르는 일.

 

모두가 어두운 얼굴로 서로의 눈치를 보았습니다.

 

“혹시 휩노스 병이나, 아니면 우리도 모르는 병에 걸리신 걸지도 모르겠소.”

 

용 대장이 말하자 레오나 대장이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런 게 있었으면 진작 알았을 거야. 사령관은 주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잖아?”


“어쩌면 우리가 찾지 못한 지병이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소?”


“가능성은 배제할 순 없겠네. 또 모르지, 우리 중 누군가가 사령관을 해쳤을지도.”


메이 대장의 한 마디에 모두가 입을 다물고 험악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내부의 배신자. 그 가능성을 자각한 순간이었습니다.

 

“바이오로이드의 특성상 불가능한 일이에요. 아시잖아요?”


눈치를 보던 리리스 씨가 말했습니다.

 

“아니……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다. 경우에 따라선 가능할지도 모르지.”


“예를 들면?”


“몇몇 바이오로이드가 명령을 제멋대로 해석할 수 있지 않나.”


일리 있는 말입니다. 확실히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만!”


칸 대장이 소리치자 모두가 움찔 몸을 떨었습니다.

 

“우리끼리 서로 의심해서 뭘 하자는 거지? 마피아 게임이라도 할 생각인가?”


“하지만 가능성이 있는 시점에서 그러한 경우에 대비할 필요는 있다고 보는데?”

 

“흠, 그냥 과로해서 그런 거 아닌가.”

 

“헛소리. 아무리 과로했다 그래도 피를 그렇게 흘리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어쩌면 식사에 독을 탔을지도 모르오.”


“그럼 소완이나 식사를 담당하는 애들을 심문해봐야 하나?”


각자가 각자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동안, 점점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삿대질과 고성이 오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으르렁거렸습니다.

 

“그러니까 배신자가 있으면 어쩔 거야! 또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서로 의심해봤자 부대의 단결만 해칠 뿐이다. 일단 진정하고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역시 과로가 분명하다!”


“아스널 자네는 입 좀 다물게! 그러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나저나 주인님이 걱정되는데 저 잠깐 갔다 와도 되나요?”
 
“여기선 아무도 못 나가.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으면 어쩔 셈이야?”


“잠깐 주군이 자리를 비웠다고 이런 개판이 될 줄이야…….”


“모두 그만! 다들 진정하세요, 지금 저희끼리 싸워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저는 열심히 싸움을 말렸지만, 이미 과열된 분위기를 저 혼자 어쩔 순 없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진짜 대판 싸울지도 모르는데……이제 어쩌면 좋을 까요……?

 

그 순간, 회의실이 문이 열리며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다프네입니다, 들어가겠습니다.”


“다프네가 왔군. 좋아, 다프네한테 들으면 확실하겠지. 누가 각하를 해한 거지!?”


“네?”


“우리들 중 누군가가 주군을 해쳤을 가능성이 있소.”


“저기, 그러니까…….”
 
“빨리 말해! 지금 당장 그 배신자를 잡아다 가죽을 벗겨버려야 하니까!”


“그……그냥 과로하신 건데요……주인님은.”


그 한 마디에 모두가 얼어붙었습니다.

 

딱 한 사람, 아스널 대장만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하하하! 거봐, 내가 뭐랬나! 역시 과로였다니까!”

 

대체 이게 무슨 헛짓거리였을까요.

 

아스널 대장의 웃음 소리가 꼭 저희를 비웃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10. 

 

“다들 오셨군요. 저는 멀쩡하니 각자 일보러 가셔도 좋습니다.”

 

수복실 침대에 누워 타블렛으로 일을 보시던 주인님이 말씀했습니다.

 

“몸은 괜찮으신가요? 그, 대체 그 많은 피는 뭐였던 건가요?”


“아, 그거 말이군요. 코피가 나는 걸 안 막고 계속 일해서 그렇습니다.”

 

“…….”


할 말이 없습니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나, 고민하던 제가 바보 같아지는 대답이었습니다.

 

“고작 나흘 밤 샜다고 이렇게 되다니,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잠깐, 나흘 동안 안 주무셨어요? 제가 분명 취침하시는 걸 확인했는데요?”


“콘스탄챠 S2가 나가자마자 다시 일했습니다. 속여서 죄송합니다.”

 

…….

 

안 돼, 참으세요. 제 안의 저, 아무리 화나도 주인님을 때리면 안 돼요.

 

저는 심호흡을 했습니다. 그러고도 화가 안 풀렸지만…….

 

“제가. 분명. 잠은. 꼬박꼬박. 주무시라고.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말씀드렸죠?”


“네…….”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시나요. 죄송하다고. 끝낼 일이. 아니랍니다.”


“콘스탄챠, 이마에 핏줄이 섰소.”


“그, 그래 콘스탄챠. 아무리 화나도 환자를 때리면 안 돼.”


“아직 안 때렸어요.”


“아직?”


휴……저는 분노를 겨우 가라앉힌 뒤 침대 옆에 앉았습니다.

 

“주인님이 쓰러지셔서 다들 정말 놀랐어요. 전 기절할 뻔했다고요.”
 
“죄송합니다…….”


“그러니 주인님의 부관이자 메이드로서, 주인님께 일주일간 금업(禁業)명령을 내리겠습니다.”


바이오로이드는 인간에게 명령을 내리거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단 오래 전에 주인님께서 두신 예외로, 자기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거나 그에 준하는

 

사태가 일어나면 저나 같은 권한을 지닌 다른 분이 주인님께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주인님이 폭주했을 경우를 대비해 만드신 예방책을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이야…….

 

“금업……설마 일주일이나 일을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까?”


“그 뜻이에요. 일주일 동안 절대, 죽어도, 꿈에서도 일하지 마세요.”

 

“안 됩니다. 그, 그것만은……제가 봐야 할 업무가 얼마나 많은지 아시잖습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에요. 그 업무는 저희가 나눠서 할 테니까 일주일 동안 푹 쉬세요.”

 

주인님이 풀이 죽어 고개를 숙이셨습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이대로 내버려두었다간 정말 죽을 때까지 일하실 게 뻔합니다.

 

“다프네 씨, 주인님이 일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해주세요.”


“하지만 저희가 주인님의 뜻에 반하는 건…….”


“주인님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에요. 주인님도 옛날에 허락하신 거니까 괜찮습니다.”

 

“이런 식으로 쓰라고-”


“한 마디만 더 하면 진짜 화낼 거니까 얌전히 쉬세요.”

 

“코, 콘스탄챠? 너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메이 대장, 누구라도 주인님 밑에서 몇 년씩 일하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그 많은 아이들이 주인님의 부관을 해보고 싶다고 도전했다가 사흘도 못 견디고

 

도망친 이유가 있는 겁니다. 사실 지금도 처음보단 많이 나아지신 거지만…….

 

“그럼 저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주인님? 제발 부탁이니 푹 쉬세요. 제발요.”


“알겠……습니다.”


과연 그 고집 센 주인님이 이대로 순순히 포기하실까요?

 

그래도 저로선 이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11. 

 

2일차.

 

저, 페어리 시리즈의 다프네는 본래 정원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의료 업무를 봐줄 사람이 없었기에……저는 제작되고 지금까지 쭉 수복실

 

업무만을 보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투 한 번 나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제가 주인님과 같이 지낼 수 있다니……꿈만 같아요.

 

“주인님, 약 드실 시간-”


“마침 잘 왔습니다, 다프네. 종이가 있으면 아무거나 주시겠습니까?”


온 벽과 바닥에 글자와 숫자가 적혀있었습니다.

 

“주, 주인님? 이게 다 뭔가요?”


“제가 앞으로 처리해야 할 업무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종이가 없어서 벽지를

 

썼습니다만, 적고 보니 여백이 부족할 것 같군요.”

 

그럼 밤새 이걸 쓰셨단 건가요? 저는 어이가 없어서 눈만 껌뻑거렸습니다.

 

“주인님! 어제 콘스탄챠 씨가 말씀하셨잖아요, 일하면 안 된다고요!”


“일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해야 할 일은 정리했을 뿐입니다.”


“그것도 일에 포함되는 거예요! 환자는 안정을 취해야 하는 거 모르세요?”


“저는 이러고 있어야 안정됩니다만…….”


저는 주인님을 붙잡아 도로 침대에 눕혀드렸습니다.

 

“주인님의 젖산 수치가 천장을 찍었어요. 이대로 가면 진짜 돌아가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하지만은 없어요. 자, 이 약 드시고 푹 주무세요.”


어휴, 이제 주무시겠죠? 저는 방을 나와 제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4시간 뒤에, 저는 주인님의 상태를 확인하려고 방에 돌아왔습니다.

 

“주무시는데 죄송하지만-”


“안 잡니다.”

 

어? 제가 분명 수면유도제를 드렸을 텐데……?

 

“아까 수면유도제 드시지 않으셨나요?”


“먹었습니다.”
 
“근데 왜 깨어있으신 거죠……?”


“마침 좋은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수복실의 시설 개선에 대한 12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누워있으니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는군요.”


아, 이 분은 안 되겠네요.

 

저는 주사기를 꺼냈습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 그 주사기는?”


“안녕히 주무세요.”


“잠깐 기다-”


푹. 저는 주인님께 수면제를 주사해 재워드렸습니다.

 

“하아…….”


왜 콘스탄챠 씨가 그렇게 힘들어하셨는지 이제야 이해가네요.

 

“여태껏 힘든 싸움을 해오셨군요, 콘스탄챠 씨…….”

 

아무래도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걸로 주인님의 일중독을 고칠 수 있을지 확신할 순 없지만.

 

만약 이대로 내버려뒀다간, 언젠가 주인님은 자기 자신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간호사로서, 그리고 메이드로서 최선을 다해야겠죠.”

 

이리하여 남은 5일 동안의 사투가 시작 되었습니다-

 

 

 

 

 

 

 

 

 

 

 

 

 

사령관도 자기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자각하곤 있다, 자각만

그래서 콘스탄챠나 다른 애들한테 자기가 폭주하면 말려달라고 명령권을 일부 넘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