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찾아온 그날.

아름답게 장식된 갑판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그녀의 앞으로 다가섰다.


드디어 날 특별 대우해줄 마음이 들었나보네?”


나를 기다리던 그녀, 메이가 여전히 퉁명스러운 태도로 말을 건넸다.


많이 늦어서 미안해.”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르카 호에 있는 모든 바이오로이드들과 결혼한다면서 마지막에 고르는 게 나인 게 말이 돼? 내 잘못도 있긴 하지만……


? 하핫, 미안해. 그만큼 더 잘해줄게.”


메이는 퉁명스럽게, 하지만 수줍게 머뭇머뭇 예쁜 손을 나에게 내밀었다.

메이의 손을 잡아서 반지를 껴주려고 하자 메이가 흠칫 놀랐다.


부끄러워?”


,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이 내가 부끄러워 할 리 없잖아? 빨리 해 바보 사령관!”


긴장이 풀린 메이를 바라보고 싱긋 미소 지으며 왼손 약지에 반지를 껴주었다.


반지를 껴주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흑


? 메이?”


드디어… 드디어 사령관이랑 이어졌어… … 있지 사령관, 나 솔직하지 못 해서 많이 답답했지?”


… 글쎄? 솔직하던, 솔직하지 않던 메이는 메이잖아? 난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내 말을 들은 메이는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며 기쁨과 슬픔이 섞인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나에게 달려와 안겨, 내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메이와의 서약이 끝나자 오르카호의 인원들이 일제히 나와 다시 축하해주었다.

그래, 철충과의 싸움, 별의아이와의 싸움이 끝나고

모두가 염원하던 평화를 얻고 나는 처음으로 오르카호의 인원들에게 한 가지를 선언했었다.

 

모두들 고생했어. 여기까지 나를 믿고 따라와 주었으니까 그것의 대한 보상으로 이제 철충은 없어. 별의아이도 없어. 그러니 모두에게 말할게.”

 

모든 인원의 시선이 나를 바라보았다.


나와 계속 같이 있고 싶다면 세상의 끝까지, 내 목숨이 다 하게 될 때 까지 함께 해줘. 만약 그렇지 않은 바이오로이드나 AGS는 오르카 호를 떠나서 따로 하고 싶은 걸 하며 지내도 좋아. 다만 건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지내도록 해.”


지금까지의 여정에 많은 바이오로이드들과 AGS들이 함께했다.

모두가 함께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제 위협은 없다.

각자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지내게 해도 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이번에 모두에게 말했다.


그런데 모두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저기… 얘들아?”


잠깐의 정적


… 푸하하하하!”


그 정적을 깬 것은 닥터의 쾌활한 웃음소리였다.


오빠! 그렇게 말하면 들어줄 언니 오빠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


닥터의 말에 이어서 다른 바이오로이드들과 심지어 AGS들 까지 기계음으로 웃음을 지어냈다.


저희 모두, 주인님에게서 떠나지 않아요. 주인이 주인님이시기에 저희 모두가 함께 따라가고 지금 상황을 이뤄낸 것이니까요.”


콘스탄챠의 말은 나의 심금을 울렸다.


다들 고마워.”


모두가 함께 이뤄낸 결과, 이 결과가 오기 까지 거쳐 온 여러 가지 일들을 회상했다. 그리고 또 하나, 결심을 했다.


그럼 다시 모두에게 말할게. 바이오로이드 전원!”


바이오로이드들이 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나는 너희 바이오로이드들과 전부 서약 하겠어! … 어린애들은 아니다?”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을 제외한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은 엄청난 반응을 보여줬다.


단 번에 탈론페더임을 알 수 있는 목소리가 성대하게 꺄앗 하는 소리로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을 시작해 바이오로이드들이 일제히 나에게 다가왔다.


AGS들이 나를 데리고 도망 다니면서 시끌벅적하게 하루가 지나가고,

날짜를 잡아 어린 바이오로이드를 제외한 모두와 서약을 올리기로 했다.

 

그렇게 되어, 메이를 마지막으로 서약이 끝났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고

또 흐르고 흘러 거의 약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서약식 날 당시에 순서를 가지고 몇 몇 바이오로이드들이 난리를 피었긴 했지만

서약식 때 순서 때문에 서로 싸우지 말자고 명령을 해놔서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만약을 대비해 AGS들도 대기 해놨었다.


아무튼 그 때 명령을 잘 지키고 있는지

몇 년이 지나도 오르카 호의 모두, 서로 서로 잘 지내고 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모두 계속 잘 지내고 있었을까?


사건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사소하면서도 행복의 결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불행의 씨앗.

 

서약 선언 이후 오르카 호 전원에게 철충에 의해 훼손, 파괴된 전 세계 지역들의 복구를 명령했다.

한 지역의 복구가 마치면 오르카 호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는 역시 평화 때문에 내 침실을 찾아오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많았다.


하루에 기본 다섯 명, 많게는 여덟 명 이상을 상대해야했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점차 입덧을 하는 바이오로이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 임신을 한 바이오로이드들이었다.


라비아타로 첫 시작, 리리스, 리제, 메이 등 계속해서 임신한 바이오로이드들이 나왔다.


바이오로이드들은 임신 상태임에도 각자 평화로운 오르카 호에서 맡은 일은 꾸준히 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배가 나오고 거동이 힘들어지면서 오르카 호의 업무는 점차 마비 되어갔다.


다행히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이 자기들이 할 수 있는 만큼은 거동이 힘들어진

바이오로이드의 일을 도와줘서 완전히 마비가 되지는 않았다.


AGS들도 도와줄 수 있는 것은 도와줬기 때문에 오르카 호 운영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해충, 음식 맛이 이상해. , 나랑 주인님의 아이에게 이상한 걸 먹이려했던 거지!”


소첩이 음식에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사옵니까.”


그럼 뭔데.”


주방 일을 지원해주는 어린이들과 AGS들이 무엇을 알고 있겠사옵니까? 당연, 소첩의 실력보다 떨어지니 맛이 이상하겠지요.”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당신의 그 괴변을 뱃속에 있는 소첩과 부군의 아이가 들어 악영향을 끼치면 어쩌려고 그러시옵나이까?”


거짓말 하지 마! 이 해충! 나랑 주인님의 아이가 더 유능할거 같으니까 미리 방해하는 거잖아!”


각자 뱃속의 아이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 싸움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소완, 리제. 둘 다 그만 싸워. 다른 바이오로이드들도 듣고 있어. 모두 악영향 받을 수 있으니 그만해.”


““…………””


그럴 때 마다 직접 나서서 싸움을 중재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바이오로이드가 임신한 상태이다 보니 건전한 환경이란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다.


죄송합니다. 부군, 실례를 범했습니다. 소첩 먼저 들어가 보겠사옵니다.”


소완은 많이 나온 배를 한 손으로 잡으며 천천히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해충! 어딜 도망 가!”


리제. 그만. 너도 돌아가서 쉬도록 해.”


……. 주인님, 알겠어요.”


리제도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하아.”


보통 싸움의 원인은 리제였다.

다만 리제도 처음에 임신 했을 때 지금보다 더 심했던 걸 생각하면 많이 나아진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더니 누군가에게 통신이 왔다.


무슨 일이야 로크.”


팔목에 찬 팔찌를 조작해 작은 통신 창을 띄우자 로크의 모습이 나타났다.


각하,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군요.”


로크의 말에 근처에 있던 거울을 바라보았다. 내가 봐도 좀 피곤해 보이긴 했다.


아니야, 피곤 한 건 나 말고 모두가 더 피곤하겠지. 그래서 할 말 있어?”


그래도 내가 할 일은 해야 하니 로크의 말에 집중했다.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순간 뇌에 엠프리스의 냉기 총이 그대로 박힌 것처럼 꽁꽁 얼어버렸다.


무슨… 말이야 그게?”


바이오로이드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인식명… 라비아타 프로토타입의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로크도 나에게 이 내용을 전달 할 때 고도의 고성능 A.I로 많이 계산 했을 것이다.

이 내용을 듣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할지, 어떤 표정을 짓게 될지.


……계속 보고 드리겠습니다. 함 바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시체를 발견했습니다. 현재 스파르탄즈가 시체를 오르카 호로 옮기고 있습니다.”


라비아타, 그녀는 과도한 오리진더스트 투여의 부작용으로 임신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예전의 몸을 다시 찾았음에도 부작용은 심하게 남아있어 어쩔 수 없었다.


다른 바이오로이드들이 임신을 해가고 있는데 자기만 임신을 못하고 있고,

라비아타는 예전에 나에게 잘못을 크게 저지른 적이 있었다.

그것에 대해 많은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 죄책감은 철충과의 싸움으로 해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철충도 없고, 별의아이도, 지켜야 할 사령관인 나도 평화롭게 지내고 있다.

가치가 없어진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이겠지.


일단 알겠어. 고생 했어 로크.”


몸조심 하십시오, 각하.”


로크와의 통신이 끝나고 잠시 뒤, 스파르탄즈가 라비아타의 시체를 가지고 왔다.


시체를 가장 먼저 보러갔다. 시체의 상태는 처참했다.

자신이 가진 그 거대한 대검으로 깊숙하게 찔려 과다출혈로 죽은 것이었다.

피는 원래 새하얀 라비아타의 복장을 붉은색으로 다 물들 정도로 심하게 넘쳐흘렀다.


사령관. 시체의 주변에서 이것을 발견했습니다.”


스파르탄 캡틴이 무언가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서약 반지, 새빨갛게 물든 라비아타의 시체와 달리 반지는 흙먼지만 좀 묻었을 뿐 깨끗했다.


반지에 피가 묻지 않기 위해 뺀 것일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 할 겨를이 없었다.


라비아타가 죽었다. 이 사실은 오르카 호 전원이 알 수밖에 없었다.


라비아타 언니… 어째서, 어째서!”


잠시 뒤, 달려 온 콘스탄챠가 라비아타의 시체를 보며 울부짖었다.


콘스탄챠를 비롯한 모든 인원들이 라비아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이후 오르카 호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라비아타 사건의 영향을 받아 임신우울증을 겪고 있던 바이오로이드들이 차례차례 땅의 비료로 변해갔다.


평소 다투던 바이오로이드들도 비롯해서 잘 싸우지 않던 바이오로이드들끼리도 싸우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들을 막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문제에 내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들을 케어 하기엔 너무나 힘들었다.

오르카 호는 더 이상 글렀다. 나는 남은 기력으로 AGS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알바트로스, AGS와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을 데리고 떠나줘.”


그걸로 정말 괜찮은가, 사령관?”


. 내가 나중에라도 따로 찾아 갈테니까. 지금은 어린 애들 정서 관리 해줘야지.”


사령관의 의지가 그렇다면 따르겠다.”


어린 바이오로이드들에게는 잘 설명해서 오르카 호에 있지 말고 다른 곳에 가 있으라고 했다.


물론 반발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명령으로 무마 시켜버렸다.


그렇게 또 시간이 지났다.

몇 주의 시간이 한참 지났다.

오르카호의 가동은 일부분만 제외한 채 거의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


남아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오르카 호도 사실 상 완전히 고장이 났다.


원인은 메이였다.

점점 바이오로이드들의 감정 폭이 안 좋은 쪽으로 쏠리게 되면서 피 터지는 살해극이 시작됐다.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바이오로이드들 조차 거기에 휩쓸려 피의 축제를 일으켰다.

자신이 가해자거나, 피해자로서 휩쓸렸다.


거기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은 메이였다.

주변에서 계속 해서 터지는 피, 험담, 평화가 깨진 오르카 호 안에서

정신이 지칠대로 지친 메이는 자신의 핵을 오르카 호를 표적삼아 날렸다.


그렇게 핵이 오르카 호에 직격 하려던 찰나,

오르카 호, 정확히는 내가 걱정이 돼서 돌아온 알바트로스 덕에 핵이 적중 하는 것은 피했다.


알바트로스가 핵을 막았다하더라도, 여파는 심했다.

핵의 영향으로 유산 되어버린 뱃속의 아이들이 많아졌다.

이걸 참지 못한 바이오로이드들도 차례차례 잔해가 되어 물에 휩쓸리는 고철로 변해갔다.

그렇게, 오르카 호에는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이제 이 세계는 끝이다.


나도 너무 지쳤다. 하지만 다른 곳에 남아있는 애들과 AGS들이 걱정됐다.


그래도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차라리, 그 때.

바이오로이드들이 나를 따라오겠다고 했을 때.

나는 거기서 그녀들을 막았어야 했다.

아니면, 단 한 명만을 사랑했어야 했을까?

그렇게 됐으면 과연 이 지경까진 오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과연 어땠을까?

그런데, 지금 그런 걸 생각하면 무엇을 하리.

 

이것이 내 운명이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이젠 없는 모두의 서약 반지를 녹여 만든 날붙이로 아무것도 없는 왼손 약지를 잘랐다.


독이 점점 몸에 퍼져갔다.

과거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행복했던 일들, 슬펐던 일들, 힘들었던 일들.

계속 생각해내다가 더 이상 기억나지 않게 되었다.

내 방 침대에 누워 창문을 바라보았다.

바깥에는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보였다.

마치, 그녀들을 표현하듯 밝은 별들이었다.

나는 그 별들을 보며, 미소 지으며, 눈물을 흘리며, 그대로 그녀들을 따라 별이 되었다.

인류 재건이라는 사명(使命) 끝에 있는 것은 모두의 사명(死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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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임.

이거를 파혼대회로 올려야하는 지 전쟁후대회로 해야하는 지 헷갈리는데

일단 어쨌든 반지 껴줬으니까 파혼대회로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