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인류를 집으로 들여놓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펑소 바이오로이드에 대한 증오심으로 이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 A를 감시하는 사람은 없을뿐더러, 그가 사는 곳은 노동자 거주 구역의 바로 옆에 있는 곳이었기에 공안의 발걸음도 거의 닿지 않았다. 자유 세계의 사람들에게는 명백히 모순되는 말이었다.

 

 21세기 중반 이후로, 당은 노동자를 감시하는 것을 관두었다. 날마다 커져가는 자유 세계의 위협을 버티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그리고 무지는 곧 힘이다. 단순히 어리석은 것만으로는 모자랐다. 그들은 외부에 대해 모든 관심을 끊고,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상을 유지하면 됐다. 그렇게 공화국은 유지될 수 있었다.

 

 당은 노동자에게 배급을 제외한 모든 것을 배제했고, 노동자는 당에서 내린 목표량을 달성하기만 하면 되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노동자들이야말로 이 억압된 사회에 존재하는 유일한 자유인이자, 가장 부자유한 이들이었다. 어느 것도 손에 쥔 것이 없기에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들. 21세기 초반의 희망과 달리 지금의 노동자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배부른 돼지에 가까웠다.

 

 돼지를 사육하는 곳은 감시할 필요가 없다. 들개는 축사를 둘러싼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다가오지 못하고, 반대로 돼지 또한 벽에 가로막혀 나가지 못한다. 이따금 새들의 노랫소리가 벽을 넘어 소식을 전해주는 통에 소동이 일기도 하지만, 때가 되면 채워지는 여물통 앞에서는 무력했다. 이렇게 완전한 시스템을 구축한 곳에 어떤 감시가 필요하며, 또 어떤 관리자가 필요할까? 심지어 축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기 마련이다.

 

 아무튼 상기의 이유로 노동자 거주 구역과 그에 인접한 구역은 감시로부터 자유로웠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제 남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볼 차례였다. ‘느닷없이 찾아들면 어떡하지?’ 실험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면 된다. ‘허가서를 요구하면?’ 누락되었다고 말하면 된다. 20억이 넘어가는 인구 덕에 대부분의 서류는 지위와 인맥으로 대체할 수 있다. ‘입이 늘었다.’ A가 알고 있는 바에 따르면 유사 인류는 훨씬 적게 먹고, 적게 자고도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당장 떠오르는 문제들이 다 해결되는 바람에 더 이상 눈앞의 소녀를 내칠 수도 없었다. 앞으로 이걸 어떻게 대해야 할지 생각하는 도중, 무언가 따듯한 것이 팔을 타고 흐른다. 손으로 만져보니 피가 흐르고 있었다. 꽤 오랫동안 이어진 듯 바닥은 이미 검게 변한 선혈로 물든 상태였다. 뒷목을 너무 많이 긁은 모양이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A가 바이오로이드에 대해 생각할 때에는 기억이 나지 않을만큼 어릴 적부터 뒷목에 있던 흉터를 긁어댔다. 지금까지의 생각은 어떻게 유사 인류를 박멸할지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짧게 끝났던지라 붉게 부어오른 정도였지만, 지금은 너무 생각이 오래 이어진 탓에 피가 나버렸다.

 

 구급 상자를 찾아 선반을 뒤적거린다. 마지막 기억에 따르면 분명히 토마토 통조림 옆에 있었다. 부스럭. 천과 천이 스치는 소리가 난다. 반창고를 꺼내 연고를 바른 다음 상처에 붙인다. 몇 번 문질러 잘 붙었는지 확인한 후에 다시 더치 걸이 잠들어 있는 침대로 이동한다.

 

 A는 눈을 감은 더치걸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작업복과 붕대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 말랐지만 탄탄한 근육. 적당히 곱슬거리는 주황색 머리. 외형만 보자면 귀여운 소녀였지만 A는 본능적으로 이것이 바이오로이드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감상을 계속한다. 움찔거리는 눈꺼풀. 너무 규칙적인 호흡. 지나치게 경직된 팔다리. 더치 걸의 모든 신체 반응은 그녀가 자는 척하고 있다는 것을 가리켰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더이상 참지 못한 더치 걸이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그래.”

 

 짧은 인사 후에 이어지는 것은 어색한 침묵이었다. A는 더치 걸을 계속 바라보았고, 더치 걸은 그런 A가 부담스러운지 창밖을 바라보았다. 어색함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듯 시선을 돌린 곳이었지만, 난생 처음 보는 도로와 건물이 신기한 듯 그녀는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한참 동안 도시의 풍경을 즐기던 더치 걸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조금 당황한 A가 급하게 생각해본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라보았을 뿐이다. 바라보면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언가 기억의 파편이 돌아오지 않을까 생각하여 지켜본 것이다. 기능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더치 걸은 울면서도 계속 사과를 내뱉었다. 흐느끼는 그녀의 입에서는 띄엄띄엄 그 이유가 나왔다. 평생을 어둡고 탁한 갱도에서 일하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감독관이 팔에 놓은 주사기 속의 액체가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이제 끝인 줄 알았다. 그런데 눈을 뜨니 편한 침대에 탁 트인 시야가 소녀를 맞이했다. 너무나도 기뻐 눈물을 흘렸지만, 곧 은인께 실례가 된다는 생각에 사과한 것이었다.

 

 더치 걸의 사연을 듣고서도 A의 감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아니, 그녀가 조금 더 가증스러워졌다. 유사 인류가 사람인 척, 감정을 가진 척 해서는 안됐다. 심지어 이제는 더 이상 기억이 떠오를 것 같지도 않았다. 씁쓸함을 느끼며, A는 손을 들어 더치 걸의 눈에 가까이 했다. 조금이라도 깔끔한 편이 노동자들의 수고를 덜어줄 것이다.

 

 눈물이 손에 닿고, 주황색 눈동자가 A의 눈과 마주친다. 다시 한번 폭발적으로 기억이 살아난다. 팝콘, 모듈, 어머니. 이전에도 느꼈던 감각에 완전히 경도된 A는, 결국 더치 걸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다.



넘모 오래걸렸다. 늦어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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