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쟁 끝에 사령관은 철충과의 싸움을 끝낼 방법을 알아냈다.

그 것은 우주와 철충들을 잇는 통로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말로는 간단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본대가 주의를 끄는 사이에, 별동대가 철충들이 득시글거리는 영역 한 가운데에 침투해그 장치를 파괴하는 방법이었으니까. 그것도 철충들의 뇌파와 똑같은 뇌파를 가진 인물이 동행해야만 했다.


블랙 리리스는 흐릿한 안개에 싸인 건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주인님, 저는..."

"리리스, 걱정하지 마. 이 방법 하나뿐이잖아. 그러면 투덜대봐야 아무 소용이 없는걸."


사령관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경호대장에게 말했다.

사랑하는 주인의 미소에 리리스는 잠시 입이 멈추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만 했다.

이 작전은 미친 짓이다. 오르카 호의 전 병력을 다 쏟아붓고, 심지어 하나뿐인 인간인 그녀의 주인이 별동대와 함께 침투하는 정신나간 작전이다.

이 작전이 실패하는 순간 오르카호는 괴멸된다. 그리고 혹시나 누군가 살아남더라도 그녀들을 통솔한 사령관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걸고 하는, 희박한 확률의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입을 열 수 없었다.

눈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겁에 질린 사람 그 자체였다.

입술은 옅은 미소를 띠고 있지만 그 입꼬리는 계속해서 떨리고 있었고, 지난 밤 제대로 잠은 자지 못한 것인지 조금 퀭한 눈 밑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그 이상의 결의가 보이고 있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아니, 이길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단 한가지의 방법이었으니까.


이미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희생됐다.

시스터즈 오브 발할라는 그녀들의 이름처럼 명예로운 곳으로 떠났다.

무적의 용과 호라이즌, 그리고 그들의 함대는 여기까지 오는 길을 만들어주고 영원히 바다속으로 가라앉았다.

용맹한 호드와 그들의 대장은 초원에 잠들어 먼저 떠났던 자매들을 만나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메이와 그녀의 부대원들은 뜨거운 불꽃이 되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이들이 이 한가지 방법을 위해서 그들의 몸을 바쳤다.


사령관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분명 잘 될 거야. 그렇지, 이번 일이 끝나면 신혼여행이라도 가볼까? 서약하고 나서 외출한 거라곤 예전에 말했던 피크닉 정도 밖에 없었으니까. 한번정도는 자매들 말고 단 둘이 떠나는 것도 좋지 않겠어?"


그 자신조차도 확신할 수 없어 불안함에 떨리는 목소리.

하지만 블랙 리리스가 그 말에 대답할 말은 단 한 가지 뿐이었다.


"... 좋네요. 착한 리리스가 어디가 좋을지 미리 생각해놓을게요."


정말로 그 말을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는 것 뿐이었다.





"하아...하아..."


어두운 건물 속, 사령관은 조금 전 파괴한 장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오르카호의 본대가 시간을 끌고 많은 이들이 길을 뚫어준 결과, 그는 목표로 했던 장치를 파괴할 수 있었다.

조금 전까지 그를 죽이려 했던 철충들은 실이 끊어진 꼭두각시 인형들처럼 바닥에 엎어져 아무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해냈다.

죽어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철충과의 전쟁은 허무하리만큼 단 한번에 끝이 난 것이다.


"하...하하..."


메마른 그의 웃음소리가 적막한 건물 안에 울려퍼졌다.


"해냈어... 해냈다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페로! 이제 끝났어! 나와도 돼!"


그의 충실한 비서는 마지막까지 철충에게 단분자 클로를 박아넣은채로 잠들어 있었다.


"하치코!"


그녀는 방패 밑에 쓰러진 채 반응이 없었다.


"홍련!"


붉은 머리칼의 몽구스팀 리더는 전신을 그녀의 머리카락색으로 물들인 채 가만히 누워있었다.


"...리리스..."


그의 경호대장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호박색 두 눈은 멍하니 떠져 있었지만 눈동자의 생기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게 생긴 옆구리의 상처도, 이제는 붉게 물든 흰색이었던 머리칼도, 가슴에 생긴 총상들도

모두 그녀가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령관은 손에 든 통신기를 바라보았다.

통신기 너머의 오르카호 본대는 아까부터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급한 고함과 비명소리가 통신기가 마지막으로 전해준 그녀들의 소식이었다.


"......."


인류는 철충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사령관인 그는 패배했다.

더 이상 이 땅에 철충들이 존재하지 않아도, 그가 사랑했던 이들이 아무도 남지 않은 이 상황은 그에게 최악의 패배나 다름없었다.


"다... 끝났구나..."


그는 쉬어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당장이라도 쓰러질듯 비틀대는 발걸음으로 리리스에게 다가갔다.


마지막까지 방아쇠에 걸고있던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떼낸다.

한 발, 그녀의 총에는 단 한 발의 총알이 남아있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철충들을 없애고 그녀의 주인을 지키려한 그녀의 총에 남은 탄알은 단 하나뿐이었다.


사령관은 그녀의 총을 들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머리로 총구를 돌렸다.


메마른 소리가 적막한 건물 안에 울려퍼졌다.







"오빠!"

"각하!"

"사령관님!"


닥터와 불굴의 마리, 그리고 남은 생존자들은 숨을 헐떡이며 건물안으로 들어왔다. 

철충들이 망가진 것처럼 모두 힘없이 쓰러지자 그녀들은 망가진 통신기를 버리고 급하게 사령관과 별동대에게 달려온 것이다.

믿을 수 없을 승리를 자축하고, 그녀들의 주인을 찾기 위해서



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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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트는 보고나서 아직도 가끔 떠오르는 끔찍한 결말의 영화였음..




정보) 미스트는 2008년 개봉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