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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더니 할 일이 사라졌다.

정확히 말해서 부관 지위에서 빠진 건 아니고 라비아타는 '자문'이라는 이름으로 일하게 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게 그거였던지라 리제는 내심 당황했음.

그야 원래는 꿀 빨고 싶어했으니까 일 줄어드는 건 좋은 일이고, 애초에 부관 일을 시작한 것도 사령관과의 내기 아닌 내기가 원인이었는데 그것도 끝났으니 굳이 유지할 필요도 없긴 했어.

업무 능력에서 라비아타가 압도적인 건 말 할 필요도 없고.

그래도 나름 열심히 했는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니 복잡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어쩐지 라비아타가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손을 잡아오면서 당신에게 모든 것이 걸렸다고 신신당부를 함.

뭐지? 정말로 추가로 더 해야 할 일이 생겨서 일을 분담한 건가?

정작 그런 것 치고는 딱히 알려주는 것도 없어서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었는데, 리리스가 새 부관실로 안내하겠다고 함.

내심 본격적이구나- 하면서도 일단 따라가기로 했지.


그리고 도착한 방에 있는 건 뭔가 어둑하니 야릇한 보라색 조명과 벽에 크게 박힌 침대였음.

뭘 어떻게 봐도 비밀의 방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머리 위에 느낌표를 수도 없이 띄우면서 고개를 돌렸는데,

리리스는 여전히 의도가 불분명한 미소로 그럼. 하고 문을 닫고 나감.


아하, 그렇구나. 사령관이 나한테 막대사탕을 주려고 하는구나.

일 리는 당연히 없었지.


당혹스럽게 문 쪽을 바라보고 있자니, 머잖아 재차 열린 문으로 사령관이 들어옴.

들어올 때는 살짝 상기된 얼굴이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더니 왜 책상도 없는 방에 왔냐고 의아해함.

여기까지 오니까 그야 대충 감은 잡혔어.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어제 라비아타랑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물어보니까 사령관은 당황하면서도 솔직하게 대답하고,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는 것에 깊이 유감을 느끼면서 리제는 잠깐 이마를 짚었다가 사령관에게 짐짓 농을 치듯 이야기함.

아무래도 라비아타는 내가 당신의 아이를 갖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한방 얻어맞은 얼굴로 딱 굳어버린 사령관을 보자니 지금 상황이 화도 안 나서, 리제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남.

아마 원래 방도 치워버리지는 않았을 테니... 하고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손을 잡혔어.


어라? 하는 기분으로 돌았더니 사령관이 무지하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함.

성급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갖고 싶다고.


어어어???


리제의 얼굴에서 묻어 나오는 당황을 어떻게 읽은 건지, 사령관도 조금 주저하다가 이야기함.

물론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 주어진 시간이 다 하기 전에 너와 사랑했다는 증거는 남기고 싶다고.

순간 뭔 소리래 소리가 턱밑까지 차올랐다가, 사령관이든 라비아타든 현 시점에선 육체 재생 장치에 대해서 1도 모른다는 것에 생각이 미침.

그렇구나. 이쪽 입장에서는 시한부 선고받은 막장 드라마구나.

근데 이걸 또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리제의 침묵을 어떻게 받아들인 건지, 사령관은 아련함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자기만의 생각을 강요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해.

그리고 그게 단번에 리제의 머릿속을 녹여버렸지.

상황은 어색하고 풀어낼 방법도 없지만, 아마 에바도 며칠 내로 접선할 테니까 자연스럽게 해결되겠지?

슬쩍 세어보니까 그때까지 정도면 아직 안전일 범위인 것 같고.

어느 의미로는 자기 때문에 사령관이 자신의 몸 상태를 일찍 깨닫게 되어서 고민에 빠진 거니까, 자기가 위로해줘야 할 의무가 없는 것도 아닌 것 같고.

뭣보다 당장 사령관이 이렇게 애태우는 눈빛을 하는 시점에서 자기가 거부할 수 있을 리도 없고.


시간이 갈수록 능숙해지는 합리화를 끝내고, 리제는 잠깐 힘을 줘서 사령관을 자기 품에 안았다 풀어준 다음 살짝 웃으면서 대답함.

당신이 그렇게 말해줘서 기쁘다고.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사령관이 조금 어색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리제는 벽에 달린 수납장을 뒤적이다가 원하던 걸 찾아냄.


테이프로 수상쩍은 틈새를 하나하나 막아가는 모습에 사령관이 당혹해하고, 벽 너머로 브라우니들의 절규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양보할 수 없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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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가... 몬가 쓰기 어려운 편이었다.

한 8할정도 지웠다가 다시 씀.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23600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