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령관은 스스로의 책임감과 욕구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었다. 오르카의 사령관으로써 과거의 전쟁 기록을 탐구, 분석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효율적인 전략을 만드는 행위는 분명 대단하지만 본인에게는 몹시 힘든 행위다. 오늘 오전 일과 내내 전술만 본 사령관은 더는 못견디겠는지 모니터를 끄고 방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간 사령관은 따로 어딜 간다는 계획이 없었다. 그저 모니터를 보기 싫었을 뿐이다. 발 가는데로 걸음을 옮기던 사령관은 훈련장 앞에 마리가 서 있는걸 발견하고 훈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열 맞춰서 똑바로 뛰도록! 자기 열도 지키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령관님을 지키겠나?"


 "열 맞추라는 소리 안들리나 3분대 맨 뒤! 당장 열 안 맞춰?!"


 마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레드후드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불호령 이후가 두려워진 브라우니들은 방금 전까지 흐트러져있던 열을 최대한 맞추기 위해 속도를 높였다.


 "아, 각하 오셨습니까. 오실 줄 알았으면 미리 준비를 해 두는거였는데 죄송합니다."

 

 사령관은 마리의 경례를 받고 훈련장을 둘러봤다. 방금 전 마리와 레드후드의 불호령 때문인지는 몰라도 훈련 중이던 병사들의 열은 낙오자 하나 없이 완벽하게 맞춰져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사령관은 아무 생각 없이 한 마디 던졌다.


 "스틸라인은 병사들이 매일 훈련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마리 덕분인가?"


 "과찬이십니다. 제 덕이라기보단 병사들이 잘 따라주는 덕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리의 속에서는 이미 사령관에게 점수를 땄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급격히 기분이 좋아진 마리는 레드후드에게 훈련 마무리를 통보한 뒤 사령관을 데리고 훈련장을 나갔다. 


 "휴, 사령관님께서 갑자기 나타나 주신 덕분에 살았지 말임다. 오늘까지 훈련장 50바퀴 돌았으면 틀림없이 쓰러졌을검다." 


 "브라우니 2379, 엄살 좀 그만 부려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레프리콘 958호 역시 생활관에 들어가자마자 자리에 앉아 다리를 풀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보니 레후상뱀은 아까 사령관님께서 한 말 들으셨음까? 사령관님께서 우리 스틸라인이 제일 좋다셨슴다."


 "브라우니 2379도 그 소리 들으셨슴까? 저도 그 말 들었슴다."


 브라우니 2379의 한 마디를 시작으로 생활관 내의 다른 브라우니들도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가 자기들만의 이야기로 끝났으면 다행이었겠지만 군대에 비밀은 없는 법이다.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 스틸라인 내에는 '사령관이 마리는 물론 그녀의 부대원들 모두와 동침할 계획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문은 삽시간만에 오르카 전역에 퍼져 다른 부대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다음 날 아침에서야 소문을 들은 지휘관들은 자기들끼리 긴급 회의를 개최했다.


 "스틸라인 전체와 하룻밤만에? 역시 대단하군 사령관. 그런 빅 이벤트에 내가 빠질 수야 없지!"


 당장 군복을 벗고 속옷 차림으로 달려나가려는 아스날을 제지한 지휘관들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왜 사령관이 그런 소리를 했다는 소문이 퍼진거야 마리? 혹시 이번에도 자리를 이용해 술수라도 부린건가?"


 "미안하지만 난 아무것도 모를 뿐더러 각하께 그런 언질 또한 듣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언제 자리를 이용한 술수를 부렸단거지?"


 "하, 시치미를 떼시겠다? 알았어, 그럼 바로 사령관에게 찾아가서 물어보자."


 "소문이 돌면 진실로 덮으면 되기 마련이다. 나 역시 사령관을 찾아가는게 낫다고 보는데, 다른 의견이 있나?"


 칸의 말에 다른 지휘관들 모두 대답 없이 일어나 회의실 문을 열고 사령관실 앞으로 갔다. 사령관실 앞에는 블랙 리리스가 서 있었다. 리리스는 지휘관들을 보고 가볍게 경례를 보낸 뒤 마리를 째려봤다.


 "각하, 각 부대 지휘관들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마리의 노크에 '어.'라는 대답이 들렸고 지휘관들은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갔다.


 같은 시각, 사령관은 어젯밤 LRL과 같이 놀면서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권속이여, 그댄 사자와 호랑이 중 어떤 생명체가 더 강하다 생각하는가?"


아쉽게도 두 사람의 의견은 갈라졌고, 둘은 밤새 그 주제로 토론하다가 아침까지 결판을 내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지금 지휘관들이 하는 헛소리가 그에게 들릴 리 없었다.


 "그래서 사령관, 그 소문은 어떻게 된 거야? 말 좀 해봐."


 "어, 그러니까..."


 지휘관들에 더해 소문이 진실인지 궁금했던 리리스의 신경까지 집중되어 있던 그 때, 사령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래서 오르카에서 어떤 부대가 제일 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