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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리제는 옆에서 부스럭거리는 기척에 힘겹게 눈을 뜸.

막 옷을 차려입고 방을 나서려던 사령관이 깨웠냐면서 걱정스럽게 물어봤어.

아니라고, 그보다 벌써 복귀하는 게 과로가 걱정이다고 되물었다... 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 나른함에 절어있던지라 중간중간 끊긴 웅얼거림이나 새어나왔지.

그걸 또 어떻게 알아들은 건지 자긴 무리 안 하고 있으니까 좀 더 쉬라면서 자세를 도로 고쳐주는 손길에 몸을 맡기다 보니 안심되는 느낌을 따라 다시 눈이 스르르 감김.

마지막에 사령관이 문 밖에서 뭔가 이야기를 하는 목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지만 오래지 않아 잠결에 밀려서 머릿속에서 사라졌지.


*   *   *


결국 리제가 완전히 눈을 뜬 건 첫날이랑 별로 다르지 않은 시간대였음.

예의 말 - 아이를 달라니, 이제 와 돌이켜보면 소름이 쫙 올라올 만큼 터무니없는 발언이었어 - 때문에 지난 번보다도 격했던 것 같은데 중간에 한 번 깨고도 정신 차린 시간은 비슷하니까, 자기도 나름대로 성장한 것일까 같은 하찮은 만족감을 느끼면서 대충 차림새를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가

바로 옆에서 소리도 없이 대기하고 있던 리리스를 발견하고 가뜩이나 힘이 없던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았지.


괜찮으냐는 질문과 함께 내밀어진 손을 얼결에 잡고 일어나니까, 키가 거의 비슷한 덕분에 정확히 시선이 마주 닿았어.

여전히 호불호를 알 수 없는 노란 눈을 바라보다가, 신음하듯이 물어보게 됨.

어째서 여기에? 라고.

사령관이 아니라, 가 생략되긴 했지만 리리스도 당연히 그 정도야 이해할 수 있었고, 대답까지의 간격도 길지 않았지.

주인님에게서 '리제 양'을 지켜달라고 부탁받았다고.


거의 동시에 그림처럼 걸리는 미소를 보고서야 리제도 이해할 수 있었어.

생산 직후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은 '착한 리리스'만 보고 있었구나라고.


*   *   *


한때 폐기까지 고려하게 만들었던 블랙 리리스의 정서적 문제가 추가적인 해결 조치 없이 출시된 것은,

고객들의 선호 운운하는 문제도 물론 있지만 그 이상으로 주인에 대한 집착 자체가 역할 수행에 매우 유리한 특성이었기 때문임.

소완처럼 주변을 배제하려고 할 만큼 파괴적이지만 않다면, 그만큼 주인의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하고 맞춰줄 수 있단 뜻이니까.

그리고 예의 '파악'에는 당연히 주인을 둘러싼 인간관계도 포함되어 있었지.


새로 생산되어 의식을 갖춘 리리스도 그리 다르지 않았어.

섬겨야 할 주인과 상황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생산 단계에서 어느 정도 학습했지만, 역시 실제로 보는 것과는 체감이 달랐고

부관으로 동행한 시저스 리제 모델에 대한 인식이 이루어진 것도 그 단계부터였지.

그리고- 멸망의 메이와 사령관이 이야기를 나누는 그 짧은 시간만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리리스의 판단력이 예리하기도 했고.


요컨대, 달랐어.


총애의 양적인 문제가 아니라 향하는 감정의 질적인 부분에서, 다른 어느 개체와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지.

원인은 알 수 없었어. 당연히 따라할 수도 없었고.

배제하는 건 주인에게 위해가 될만한 결과로 이어질 것조차 선명했으니

그렇게 예의 '리제 양'은 리리스의 안에서 "좋아할 수 없지만 싫어해서도 안 되는 존재"로 완결되어 버린 거야.


*   *   *


리제는 그 모든 것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어.


다만, 어디로 향하겠냐는 말에 해야 할 일을 몇 가지 꼽아보다가 그 대부분이 라비아타에 의해 처리되었음을 떠올리고

(가상 현실에 접속중일) 사령관의 곁에 있겠다고 대답한 후

리리스와 함께 사령관에게 도착해, 지난 밤 동안 자신을 마음껏 탐닉하던 그 손을 다시 잡을 때까지.


먹먹하게 차오른, 설명하기 힘든 소외감만큼은 쉬이 지워지지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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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지도 슬슬 후반부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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