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니아의 뱃속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음침한 목소리에 함교의 온도가 수 도는 내려간 것처럼 싸늘해졌다.


주인님이 자신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어이 티타니아를 복원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을 때부터, 레아는 이 상황을 마음 한구석에서 대비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개성 강한 대원들에게 휘말리는 것처럼 보이는 유들유들한 분이시지만, 그것 뿐이라면 오르카 호는 애저녁에 저 바다 밑에 가라앉았을 것이다.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단호한 수단도 서슴없이 쓰시는 분이셨고, 그러한 강단있는 선택들이 모두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다. 레아는 그런 주인님의 온화함 속에 숨어 있는 내적 강함에 더더욱 끌렸다.


하지만, 이건 너무 예상 외였다. 끊임없이 지휘관 회의에서 페어리 대원들의 의견을 취합한 설문조사지를 돌리면서까지 복원에 반대 의사를 보이던 레아를 장기 파견 임무로 밀어낸 사이에 날치기식으로 복원을 하시다니. 주인님께서 이렇게까지 과격한 수를 쓰실 줄은 전혀 몰랐기에, 레아는 일방적으로 자신을 증오하던 자매와 준비되지 않은 해후를 해야만 했다.


"처음 뵙겠다는 뻔뻔한 소리는... 안 하겠지? 너도 나를 알고, 나도 너를 알잖아? 그래서... 여왕이 고통뿐인 세상에 나오는 것을 반대한 거지?"

"아뇨, 저는..."

"너란 년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좋은 사람인 척 싱글대면서, 뒤로는 음험하게 여왕을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온갖 공작을 다 해댔잖아? 그리고 그것 하나도 제대로 못 해서 결국 여왕이 다시 살아나게 된 것도... 정말 마음에 안 들어."


앞뒤가 맞지도 않는 방향성을 잃은 폭언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레아의 표정은 적잖이 어두워졌다. 레아에 비해 불안정한 출력을 그녀에 대한 증오심으로 메꾸는 결여된 존재였기에, 티타니아는 항상 마음 속에 심어진 강박에 몸부림치며 비틀린 원망을 내뿜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레아는 고통받을 자매를 위해서, 무엇보다 그녀에게 휩쓸려 다치실 지도 모르는 주인님을 위해서 반대했던 것이었다.


"아뇨, 저는..."

"시끄러워. 어떤 소리를 해도... 다 의미없어. 네가 제대로 못 했으니... 여왕이 마무리해줄게. 네가 사라지건, 여왕이 사라지건, 아니면 둘 다 사라지건... 끝장을 보자."

"아뇨, 그러니까..."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티타니아가 보이는 행동은 분명 기록과는 상이했다. 지금 그녀가 느끼는 당혹감에는 갑자기 티타니아와 맞닥뜨린 것으로부터 오는 것도 있었지만, 티타니아의 언행으로부터 오는 괴리감이 더 컸다. 레아는 꼭 짚고 넘어갈 필요를 느꼈다. 시도 때도 없이 몰아쳐오는 서리바람 같은 티타니아의 적개심이 듬뿍 담긴 폭언에 맞서서라도 레아는 이 점을 분명히 지적해야만 했다.


쩌저적-


티타니아의 손에 냉기가 응집되며 날카로운 얼음 비수가 맺혔다. 그리고...


콩!


"아얏!"

"요 녀석, 레아랑 만나면 잘 해주라고 했지?"


...사령관의 무릎 위에 앉은 채로 얕은 꿀밤을 먹고는, 누그러져가며 칠칠치 못하게 풀리는 흐늘흐늘한 표정과 함께 칼날도 녹아서 사라져갔다.


그렇다. 지금까지의 레아를 난도질했던 기나긴 매도들은, 모두 주인님의 무릎 위에서 지조 없는 고양이처럼 엉덩이를 딱 붙이고 쓰다듬을 받으면서 퍼부었던 것이었다.


"뭔가요. 이건?! 아니, 제 파견 기간도 그래봤자 이틀 아니었어요? 인격 재조율이랑 모듈 조정까지 끝났으면 주인님이랑 함께했을 시간은 딱 하루였는데!"

"...말 돌리지 마."

"말 돌리는 건 당신이잖아요!"

"...레아가 나 괴롭혀."

"아하, 아하하하... 그, 아직 너한테는 조금 까칠한 것 같지만, 하루만 더 주면 내가 잘 타일러 볼게."


부모님한테 이르는 아이처럼 사령관을 올려다보며 고자질하던 티타니아는, 주인님의 말에 한발짝 물러선 레아를 힐끗 보고는 사령관이 보지 못하는 각도로 쌤통이라는 듯이 혀를 삐쭉 내밀었다.


"하루, 라고요?"


레아는 어이가 없었다. 이 상황을 자신의 상식 선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어긋남을 지적하지 않고서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도 적잖이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레아는 깊게 심호흡하고는, 머릿속에서 넘쳐흐르는 질문들을 정돈해나갔다.


"후우우..."

"늙어서 호흡이 딸리는거야? ...꼴사나워."


하지만, 가라앉혀가는 감정을 티타니아가 컴플렉스로 살살 긁자, 그녀도 다시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시끄러워요!"

"...레아가 또 괴롭혀."

"저 여자가 진짜! 아니, 무의식 속에 각인된 본능같은 감정인데, 어떻게 하룻밤 새에 저렇게 될 수가 있죠? 아무리 인격 조율이 됐다고 해도 이건 상식 밖이죠! 주인님, 설마 기억에까지 손을 대신 건가요? 전극을 꽂고 뇌에 충격이라도 가하신 거예요? 그것도 아니면, 최면? 약물? 조교?"


사령관은 손사래를 치며 께름칙한 표정으로 레아를 보았다. 티타니아도 경멸하는 얼굴이었다. 레아는 왜 자신이 이런 시선으로 보여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니, 이 상황 자체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흉흉한 소리야... 그냥 진솔하고 깊은 대화를 좀 나눈 것 뿐이야.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궁금하다면, 레아한테만 살짝 알려줄까?"


사령관의 눈이 가늘어지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레아에게 보냈다. 평소에 그런 언질을 받았으면 레아는 좋다고 넘어갔을 정도로 매력적인 눈짓이었다. 무릎 위에 티타니아만 없었으면.


그리고 그 무릎 위의 티타니아는, 사령관의 목에 감은 손을 더 죄며 도리질했다.


"...싫어. 네가 괴롭히는 건 괜찮지만... 레아 앞에서는 싫어."


그렇게 주인님의 가슴팍에 볼을 부비며 자신을 남몰래 또 차갑게 쏘아보는 것이었다.


'꽁냥대거나, 저를 견제하거나, 하나만 하시라구요...' 


기록에 비해 한껏 귀여워진 자매의 견제를 받고, 레아는 맥이 탁 풀렸다. 잔뜩 긴장했던 근육이 이완되며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하아아..."


눈앞에서 대놓고 부비적대는 둘을 보니 모든 것이 부질없어졌다. 온갖 최악의 상황을 망상하며 주인님을 걱정했던 자신이 바보같아 보였다. 그렇게 끓어올랐던 의문과 분노는 사라지고, 허탈감만이 남았다.


"...괜찮으신 것 같으니까, 이만 물러가볼게요."


레아는 주인님에게 작게 기별하고는 몸을 돌렸다. 분명 기뻐야 할 상황인데, 마음은 더없이 복잡했다.


"응, 레아야. 임무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푹 쉬어~ 자, 티타니아도 안녕~ 해야지?"


티타니아는 주인님의 재촉에 마지못해 손을 흔들어주면서도 얼굴은 자신을 위협하겠답시고 잔뜩 힘주고 있었다. 레아는 그렇게 닫혀가는 함교의 문 너머로 티타니아의 입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너.한.텐.안.줄.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