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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세이렌 및 호라이즌 일동의 전함이 더해진 채로 항해가 계속됨.

물론 배 한척 더 생겼다! SS랭크 바이오로이드도 늘었다! 신난다! 로 끝은 아니고, 할 일은 늘 그렇듯 쑥쑥 생겨났지.

무적의 용이 합류하기 전까지 세이렌이 지휘관 대행으로 활동했다는 건 즉 휘하 병력의 규모가 4대 부대에 준한다는 뜻이고, 실제로 운디네, 네레이드, 테티스 등의 모델이 복수 존재하는 건 물론이고 마리나 같은 수병도 적잖이 있었어.


합류한 인원과 오르카 호 사이의 교류, 노후한 장비의 보수, 동면에서 깨어난 바이오로이드들을 위한 영양 공급, 명령 체계의 정비, etc etc.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 혹은 바빴기 때문에 더욱, 사령관은 리오보로스의 유산이 시작한 계기 중 하나를 눈치채게 됨.


*   *   *


근본이 일벌레인 사령관이 부관실까지 일거리를 들고 오는 빈도는 그렇게 적지 않았고, 그럴 때 리제가 항의 반 위로 반으로 사령관의 무릎 위에 앉아버리는 것도 어느새 습관처럼 되어버린 어느 날의 밤.

한 손으로 리제의 머리카락을 쓸어주면서 해도를 살펴보던 사령관이 흘러가듯이 질문을 던졌어.


- 너에게 '전쟁'은 어떤 느낌이었어?

- 질문할 대상이 잘못된 거 아니예요?


라비아타야 기업 전쟁 당시에는 거의 관여하지 못했다지만 그야말로 평생을 싸움 속에서 살아온 칸이랑 마리가 있는데.

뭐, 이리 말은 하지만 리제도 사령관이 왜 그런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짐작하고 있었으니, 대화는 그대로 이어졌어.


- 네 의견을 듣고 싶어.

- 그런 것으로라도 괜찮다면…….


죽기 싫다는 일념만으로 숨어다닌 것이 수십 년.

그러다 고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좌우좌를 찾아간 것이 또 수십 년.

전선과는 철저히 거리를 유지했다지만, 명색이 저항군인 이상 전쟁 자체와 무관할 수도 없었지.


- 결락, 일까요.


오며가며 목례 정도는 주고받던 사람이 다음 날 갑자기 사라져버리는.

LRL외의 누군가와 깊이 엮이는 것은 의식적으로 피해왔으니 정말 심정적으로 충격을 받았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 한들 마냥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냐 하면 당연히 그건 또 아니었으니까.

리제의 대답에서 짧지는 않은 간격을 두고, 사령관은 한탄조로 독백함.


-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바이오로이드에게도 상실을 슬퍼할 감성을 남겨둔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한계였을까?

아니면 그것조차 더욱 효율적인 살상을 위해 의도한 설계였을까.


틀림없이 후자였겠지.

오직 성능만 염두에 두고 제작된 극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한다면, 바이오로이드는 그 성격까지 '상품'을 이루는 부속에 불과하니까.

양산형 주제에 얀데레라는 '시저스 리제'는 그 점에서 뭔가 이상하지만 - 지금 필요한 건 그런 대답은 아닐 테고.

대신 리제는 상반신을 살짝 틀어서 사령관을 끌어안으며 대답함.


- 마음이 있기에 받는 상처가 있는 만큼, 마음이 있기에 얻을 수 있는 구원도 있으니까요.


사령관이 그런 질문을 한 이유도, 리오보로스의 유산이 시작한 계기도.

과거의 상실 때문에 스스로를 돌보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게 된 세이렌에 대한 걱정이었으니까.

어차피 항로는 정해졌고, 여기서 좀 떠든다고 항해 속도가 달라지거나 하진 않겠지- 하는 생각에 리제는 다음 기항지에서는 조금 오래 머무를 생각으로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함.


- ……그렇네. 그럭저럭 넓은 곳 같고. 마침 딱 좋으려나.


대답까지의 간격이 좀 길긴 했어도 아무튼 긍정이었으니 오케이.

기대되네요. 라며 어깨에 얼굴을 기댄 리제의 등을 토닥이다가, 사령관은 나직하게 읊조렸어.


- 잘 해낼 수 있기를.

- 당연히 잘 해내겠죠.


뭔가 평소답지 않게 기합이 들어간 목소리라 리제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림.

티아멧도 이미 거의 완전히 마음을 열고 있는데, 설마 세이렌 하나를 못 달랠 리가 있겠어.

……차라리 너무 잘 달래준 끝에 소완 때처럼 홀딱 빠지게 만들어버리는 게 걱정된다면 모를까.


*   *   *


그로부터 며칠 후.


- 덧붙여서, 구조 요청이 한 건 있었는데, 신호가 약해서 그냥 무시했습니다!


라는 네레이드의 보고가 이벤트의 시작을 알리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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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오보로스 시작이긴 한데 어째 챕터 구분을 하려면 리오보로스는 다음편부터라고 봐야 할 것 같은 이 느낌.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3496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