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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 & 마리 외전이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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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카 호가 정박 중인 섬의 어느 해변.

태양도 폭발하고 기온도 폭발하는, 여름이라는 단어를 터지기 직전까지 눌러담은 날씨는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더위에 학을 떼는 사람과 한껏 즐거워하는 사람, 보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과 자연에 관심이 있는 사람.

각자의 취향대로 나뉘기 시작한 것도 한참 전의 일이 되어버린 지금, 각자가 즐기는 휴가의 교차점 - 즉 오르카 호의 갑판 위에는 두 명의 바이오로이드가 앉아 있었다.


불굴의 마리와 멸망의 메이.

후반 휴가의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스틸라인과 둠 브링어의 지휘관기이다.


큼지막한 차양이 드리운 그늘 아래에서 사복 차림으로 독서를 즐기는 모습은 누가 봐도 휴가 그 자체였으나,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로 일반병 - 특히 오르카 호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브라우니와 레프리콘 - 은 두 명의 주변에 얼씬도 하지 않았기에 환경음을 제외한다면 그저 고요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가 지났을까.


"오늘이던가?"


밑도 끝도 없이 나온 발언에도 마리는 당황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정확한 시간을 정한 건 아니지만, 각하라면 저녁 즈음엔 돌아오시겠지."

"하아…. 이 무의미하게 길기만 한 휴가도 겨우 끝이 보이는 거네."


차라리 마음껏 쏟아부었던 초반이 더 나았어. 숨길 생각이 없는 툴툴거림에 마리는 슬쩍 웃으며 선글라스를 들어올렸다.


"앞으로는 더 바빠질 테니, 귀관도 만족하겠군."

"글쎄, 그것도 '신참'들이 얼마나 쓸만한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아직 사령관의 결재를 받기 전이었으니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오베로니아 레아와 세라피아스 앨리스의 복원이 가시권에 들어온 것은 명백한 사실.

자신에 대해 절대적인 프라이드를 갖춘 멸망의 메이로서는, 옛 전쟁에서 서로를 억제했다는 개체의 등장이 거슬리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뭐, 그리 말해도 지금 메이의 신경이 곤두선 원인 중에 둘의 존재감은 덤에 불과했지만.


어느 선까지 접해도 괜찮을까.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던 마리에게는 의외롭게도, 본론에 먼저 접근한 것은 메이 쪽이었다.


"…신혼 휴가라니, 바보 같아."

"그만큼 리제 공을 반려로서 아낀다는 뜻이니, 미덕이 아닌가."

"아무렴 그러시겠지."


비아냥거리려는 의도를 이뤄내기엔 목소리에 지나치게 힘이 없다.

말 없이 해변에서 놀고 있는 병사들을 - 임펫의 주도로 족구 경기가 열리는 모양이었다 - 바라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질문이 들어왔다.


"…그 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타협점으로선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타협점?"


기묘한 표정을 짓는 메이는 어쨌든, 그 나름대로 생각하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마리의 대답에도 막힘은 없었다.


"멸망 전의 그 어떤 경우와 비교하더라도, 각하가 계신 위치와 지니신 능력은 비범해."

"마지막 인간이라는 건 어쨌든, 능력은…."

"그래, 비범하다는 단어로는 모자랄지도 모르겠군."


-기적적이라고 정정할까.

마음에도 없는 반박을 위해 우물거리던 입가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침묵하는 것으로 긍정을 택했다.

브라우니와 지니야 - 누구보다도 많이 생산되어, 누구보다도 많이 소모되어 온 두 기종.

그 둘을 이끄는 입장에서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내지 않았다'는 사실의 무게감을 이해하지 못할 리가 없다.

경험은 짧을지언정 총명한 그녀라면 더더욱.

솔직하지 못한 소녀가 간신히 납득을 끝마치기를 기다리고 나서야 마리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분께서 내리시는 총애와 권력이 호환하지 않을 리 없지."


총애를 받는 정도 자체가 권력이 되든, 권력을 사용해 총애를 얻으려 하든.

이번의 반론은 조금 더 날카로웠다.


"제 주제를 잊을 만한 멍청이를 동료로 둔 기억은 없어."

"물론 우리 자매 중에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지 않을 이는 없을 거야.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소임을 다한다는 조건만 지킨다면 상당한 재해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겠지?

우리는 AGS가 아니니까."


예를 들면 작전 수행 능력에 차이가 없을 경우의 부대 배치라거나.

쉬이 상상되는 광경에 메이의 미간이 알기 쉽게 찌푸려졌다.


"그 점에서 리제 공은 훌륭해."


냉정하게 말해서, 사령관을 보좌하는 능력에 있어서라면 리제를 고평가할 부분은 없다.

하지만 홀로 총애를 받으면서도 그것을 악용하거나 오만하게 굴어서 갈등을 일으키지도 않고, 오히려 항상 예의 바르게 구는 태도는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능력이라면 다른 자매들이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두 사람이 서로를 깊이 사랑한다. 그 이상 필요한 것이 있겠나?"


거의 모든 시간을 전선에서 보냈던 만큼 라비아타 휘하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리제에 대한 인상은 흐릿하다.

하지만 자매들을 지키기 위해 그 무시무시한 프레데터를 상대로 목숨을 내던지며 싸워온 희생정신과, 한결같이 보여준 사령관에 대한 흔들림 없는 믿음만으로도 신뢰하기엔 충분하다고, 마리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래서, 그냥 지금에 안주하겠다고?"


물론 자신의 결론이 반드시 상대를 납득시킬 수 없으리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굳이 더 깊이까지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휴가 중이니 조금은 풀어져도 괜찮겠지.


"물론, 각하께서 여자로서의 나를 원하신다면 기꺼이 응하겠지만."

"뭐어?!"


방금까지의 데면데면한 태도는 어디로 날렸는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몸을 기울여 온 모습에 쓴웃음을 짓고, 마리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만큼 각하께서 매력적인 분이라는 뜻일 뿐,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해.

지휘관으로서 각하를 모시는 지금의 관계에도 나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까."

"……."


불어온 바람에 맞춰 챙이 넓은 모자가 기울어지며 눈가를 가린다.

그 정도로 강한 바람은 아니었다는 점을, 마리는 굳이 지적하지 않기로 했다.


"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등 뒤로 스쳐 지나간 물기 섞인 중얼거림도, 쏟아지는 햇빛 속으로 흘려보내기로 했다.


좋아하게 되어 버렸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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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사령관이 리제 외길이라고 해서 삼얀 제외 전원이 사령관에게 연애적인 흥미가 없을 리는 없스빈다

외전 제목은 원작의 아토믹 러브에서 아토믹을 따왔고 쇼콜라는 작업용 브금 제목에서 따왔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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