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카호에 부임한 최후의 인류인 사령관은
항상 바이오로이드에게 인기 만점이었음



그도 그럴 것이, 세상에 단 한 명 밖에 없는 복종해야 마땅한 조물주이자 이성이니까



심지어 사령관은 멸망 전 구인류와는 달리 바이오로이드들을 인격체로 여기고 아껴주었기 때문에

바이오로이드들의 호감도는 점점 더 올라갔음



그러나 신들린 지휘로 철충과의 싸움에서 무패를 기록하고

그 별의 아이와 레모네이드까지 격파하면서
승승장구해야 할 사령관과 오르카호의 분위기는

점점 이상해져 갔음



사령관은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을 마치 진짜 사람 대하듯,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면서도

자신이 이끌고 가야 할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음



바이오로이드들 역시 환경에 적응해버린 탓인지
처음에는 사령관에게 복종하다가
점점 사령관과 맞먹으려 하고

결국에는 사령관을 부려먹게 되고

사령관의 실패를 질책하는 수준까지 이르렀음




"하아... 주인님, 주인님의 지휘면 이 정도 규모의 철충 집단은 돌파할 수 있다니까요?

아니면 일부러 저희들의 안전을 챙겨주시는 척 해서
이미지 관리라도 하시려는 거에요?"



바닐라의 입에서 나왔을 것 같은 거친 말들이 콘스탄챠에게서 나왔고,



"그대에게는 왕으로서의 자질이 없다.

아무리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도 아랫 것들에게 휘둘려서야 써먹기 좋은 도구일 뿐이지."


라며 용에게도 질타를 받았음



이렇게 점점 지쳐가던 사령관이 폭발하게 된 건
어느 날의 지휘관 회의에서였음



전 날 몇 시간 후가 지휘관 회의라 빨리 자야 한다는 사령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령관이 거절하지 못 할 것을 알고 있는 아스날이
사령관을 강제로 착정한 거임



평상시의 과도한 업무와 바이오로이드들의 생체 딜도로 쓰여와 피로가 누적되어있던 사령관은

그만 지쳐서 평소보다 30분이나 늦은 시간에 기상하고 말았음



최대한 빠르게 준비해서 거지꼴로 참석했지만,
결과 사령관은 지휘관 회의에 10분 늦어 버렸음

반면 아스날은 끽해야 그 날 하루 정사에 임한 거라 제 시간에 회의에 참석해서 기다리고 있었음



회의에 늦은 사령관을 지휘관들이 질타하기 시작했음



"각하, 이래서야 쿠데타가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겠습니다.
상급자일수록 뭇 하급자에게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

영문도 모르고 깨어나니 뇌리에 남아있는 지식으로 무패의 승리를 견인하셨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지금까지는 그러했지만,
각하의 태만으로 병력이 소실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부하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계신 겁니까?"



마리의 서슬 퍼런 질책에 메이가 동조했음



"놔둬, 겉으로야 부하를 아낀다 어쩐다 해도,
인간님에게는 그저 허울 좋은 주지육림에 불과하니까.

부하 몇백 몇천 정도 죽어도, 신경도 쓰이지 않으시겠지."



"..."



여기저기에서 자신을 질책하는 소리가 점점 사령관의 귀에 맴돌았음



너희의 지휘관 동료에게 반 강간을 당하다가 지금 깨어났다.
 
라고 말한들

그들에게 이미 자신의 말을 들을 생각이 있기는 한걸까?



하염없이 질책당하며 땅만 바라보고 있던 사령관에게

레오나가 다가와 뺨을 올려붙였음.



-짝-



"이제는 아예 부하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구나 당신?

안전한 곳에서 지휘만 하는 당신은 전장의 아픔을 모르겠지.

그렇지만 최소한 부하의 신뢰를 얻으려는 노력 정도는 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

실망이네, 사령관."



바이오로이드가 인간을 때렸다의 문제가 아니었음



사람 대 사람으로
10분 늦었다고 한 시간의 질타를 빙자한 모욕을 당하고

부하에게 뺨까지 맞은 이 상황은 누가 자초한 것인가?



바로 나였구나





사령관이 생각을 마치고 정신을 차리자,

어느새 지휘관 회의는 끝나 있었음



정말로 끝난 것일까

그냥 나를 욕하다 제풀에 지쳐 지휘관 회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도 나가버린 것이었을까



이미 사령관에게는 중요하지 않았음



결단을 내린 사령관이 회의실을 나가려고 할 때


레오나가 쭈볏쭈볏 다가와 사령관에게 말을 걸었음



"흠흠...! 다시 생각해보면, 사령관을 대하는 태도라기엔,

우리의 태도도 적합하지 않았던 것 같네...

그래도 당신을 때린 건 그래야 지휘관들의 분노를
빠르게 가라앉힐 수 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 한 거야.

물론 사령관이 빌미를 제공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심했던 것 같았는지,
혼자 남겨진 사령관에게 사과는 하러 왔지만

결국에 마지막을 다시 사령관의 탓으로 돌리는 레오나.



당연히 사령관 측에서 멋쩍게 웃으며 다시 사과할 거라고 생각하며
거들먹거리고 서있는 레오나에게 사령관이 말했음



"사령관 명령이다 철혈의 레오나. 가진 총으로 자결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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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실에서 들린 총소리에 달려온 인원들 눈에 들어온 것은

레오나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서있는 사령관이었음.



"왜 이렇게 웅성웅성 시끄러워. 비켜."



사령관이 그런 바이오로이드들 사이로 지나가려는 찰나,

멸망의 메이가 사령관을 가로막았음



"왜... 왜 그런거야... 정말 갈 데까지 갔구나 사령관..."



"... 누군가 했더니 모듈 하나 믿고 명령 불복종을 밥 먹듯이 하는 년이구만."



사령관은 옆에서 부들부들 떨며 서 있는 브라우니의 총을 빼앗아 메이를 쏴죽여버렸음



그리고는



"이 오르카에서 갈 데까지 간 건 누구인지,
대답해 볼 '사람' 있나?"



라고 말했음



갑자기 펼쳐진 상황에 그저 바이오로이드들 전부가 대답을 못하고 얼어있기만 했음



"... 내가 사람 대접을 해줬는데, 왜 대답을 안할까..."



주변을 둘러보던 사령관이
벌벌 떨고 있는 바닐라를 가리키며 외쳤음.



"그래, 오늘 아침에 근성이 썩어빠진 귀축 돼지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어서 불쾌하다고 한 너.

네가 말해봐라.

이 오르카에서 갈 때까지 간 게

나일까? 너희일까?"



바닐라가 대답을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으니,
사령관은 가차없이 바닐라도 쏴 죽여버렸음



"어디... 왕의 자질이 없다고 한 용이 있구나!
너는 어때 보이나?


이제는 왕의 자질이 좀 보여?

너희가 강제로 앉힌 자리에 난 이제 적응을 좀 한 것 같은데..."



용은 어두운 표정으로 뜨문뜨문 대답했음



"... 그렇군, 그래도 신하에게 존경받는 왕은 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소."



사령관이 조용히 용에게 총을 겨누었다가



"나에게 존경이란 것을 아는 신하가 없었던 거겠지."


라고 말한 뒤 다시 내리고 조용히 사령관실로 걸어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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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발견된 인간이 본 오르카호의 사령관은
바이오로이드들을 도구 이상도 이하로도 안보는
냉혈한 그 자체였음



폭거를 보다 못한 두 번째 인간이 바이오로이드들의 민심을 잡아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내 전 사령관실을 지키던 바이오로이드들의 민심도 돌아섰음



사령관실 진입에 성공하고



의자에 앉아있는 전 사령관에게 총을 겨눈 현 사령관이 물었음



"네놈의 폭거도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은 없나?"




통유리로 바다를 바라보던 전 사령관은
의자를 돌려 자신을 겨누는 바이오로이드들과 현 사령관을 바라보고 쓸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어 말했음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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