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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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정리글



-새끼손가락에 걸린 생명의 실-

집이라고 하기에도 뭣한 작은 방에 들어온 그녀는 장판이 물에 젖는 것은 신경도 쓰지 못하고 애를 바닥에 눕힌다. 척 봐도 파랗게 질린 입술과 기절한 것 같은 데도 파르르 떨리는 몸은 아이의 몸이 정상이 아님을 알게했다.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구급차고 뭐고 자기 집에서 시체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 뭐지? 저체온증?”

가정의학 관련 지식이라곤 하나도 없는 그녀였지만, 최소한 바다에서 쓸려온 여성의 입이 파랗게 질리고 몸이 떨리는 걸 보니, 체온이 낮아졌단 것 쯤은 유추할 수 있었다.

당황해서 흔들리는 눈과 떨리는 손으로 한 칸의 욕실에서 수건을 있는대로 꺼내온다.

아이 씨, 이건 뭐야…”

얼굴과 머리의 물기는 간신히 닦아냈지만, 입고있는 전신 타이즈 같은 옷을 벗겨낼 재간이 없었다. 무슨 옷 인지 알 수는 없어도, 평범한 어린아이가 입을만한 옷은 아니었다.

한참을 소녀의 등을 뒤적이고 나서야 옷을 벗겨낼 수 있게 되었다. 지퍼 비스무리한 개폐장치를 벗겨내자 옷 안에 쌓여있던 물이 쏟아져나온다. 체온과 맞바꾼 미지근한 바닷물이 지금 그녀의 몸 상태를 알게 해주었다.

다른 속옷도 없이 이상한 슈트만 맨 몸에 입고있던 소녀의 몸을 수건으로 구석구석 닦아낸다. 물론 젖은 몸의 물기를 수건으로만 다 닦아낼 수는 없었다. 헤어드라이기의 전원을 켜자 금세 강한 바람이 날린다. 너무 뜨겁지 않게, 살짝 띄워서 아이의 몸을 말리기 시작한다.

물기를 날리면 날릴수록 떨림이 줄어드는 것이 눈에 보인다. 까무잡잡한 피부라 눈에 띄진 않지만 입술에도 혈색이 돌아오는 것이 보인다. 겨드랑이와 다리 사이, 엉덩이골과 그 앞까지, 물기가 있을만한 곳은 전부 말려내는데 5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체구가 작은 아이라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성인이면 배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했다.

아이의 몸에 자신이 쓰던 이불을 덮어주고 나서야 방 안이 물난리가 났단 사실을 눈치챈다. 아니, 애초에 자신의 몸이 빗물로 흠뻑 적셔져 있단 사실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젖은 옷 들을 바구니에 집어던져넣고는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고정된 샤워기에 물을 틀고 조용히 물을 맞는다. 따뜻한 물이 나올 때 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걸 아는데도 왜 인지 그다지 차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제서야 자신이 빗물에 적셔진 채로 꽤 오래 있었단 사실을 눈치챈다.

평소라면 이 좁은 화장실에서도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잠에 들겠지만, 오늘은 그럴 정신이 없었다. 누구라도 자신의 집 안에 죽어가는 꼬맹이가 있다면 그렇게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간신히 빗물만 씻어내고 몸을 닦으려 보니 선반에 남는 수건이 없다.

하아…”

세탁기에 젖은 수건이 몇 개 처박혀있겠지, 속으로 생각하며 미리 빨래를 해놓지 않은 자신을 욕한다.

뚝뚝 물을 흘리며 방으로 다시 돌아와 빗물을 잔뜩 먹은 수건과 옷으로 적당히 몸을 닦는다. 물기가 조금 남아있었지만 그냥 옷을 입고있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얇은 유리창에 비가 튀기자 흔들리며 큰 소리를 낸다. 2058년의 건물이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건물이었다.

아, 경찰에 전화해야지”

빨랫바구니에서 물에 젖어 무거워진 가디건을 꺼낸다. 주머니에 단단한 무언가가 잡힌다.

케이스와 액정에 물이 잔뜩 묻은 핸드폰을 티슈로 적당히 닦는다.

서랍장에 기대어 핸드폰을 조작하던 순간, 핸드폰이 바닥으로 홱 하고 날아간다. 얼떨떨한 표정의 여성과 간신히 몸을 일으켜 핸드폰을 들고있던 여성의 손을 때리고는 그대로 무릎을 당기고 앉아있는 여성에게 쓰러진다.

상황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는 여성이 자신의 무릎을 살짝 벌려 소녀를 안는다. 알몸으로 누군가를 안다니, 스트리퍼인 그녀는 남자도 끌어본 적 없는데 이런 여자애를 먼저 끌어안을줄은 몰랐다.

경찰…안돼요…”

뭐?”

안…돼…”

간신히 남은 힘을 끌어모았던 걸까 아니면 정신이 오락가락 하기라도 하는걸까, 그대로 정신을 잃은 듯 한 소녀는 자신의 품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소녀를 다시 이불 아래에 뉘이고는 핸드폰을 쥔다.

분명 멀쩡한 사람이라면 경찰에 전화를 해야할텐데, 왜 인지 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눈동자에 담긴 감정이 너무 진실되어 보여서일까, 아니면 어린아이가 진심으로 호소했기 때문일까, 잠깐 망설이던 여성은 결국 전화를 건다.

스트립 클럽에 오늘은 통증 때문에 나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한 그녀도 그대로 바닥에 드러눕는다. 다리를 하도 벌려댄 탓인지 골반쪽이 뻐근하다.

죽은 듯 잠을 자고있는 소녀를 잠깐 바라보고는 자신도 눈을 감는다. 빗소리를 백색소음으로 듣는 사치스러운 인간들은 적응하지 못할 시끄러운 유리창의 타격음을 들으며 피곤함에 눈을 감는다.

 

비는 그칠 생각을 않는다. 기후변화 란게 이런 것일까, 4월말에 장마비가 찾아오다니 별일이다.

눈을 감았을 때가 6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는데, 시계를 보니 11시 반이다. 반나절도 못잤다. 하긴, 옷을 홀딱 벗을 채로 이불도 없이 5시간을 넘게 잔게 더 신기한 일이겠지, 몸을 일으킨 그녀는 눈 앞에 들어온 꼬맹이를 다시 본다.

꿈이 아니었다. 자기 집에 뭔지 모를 꼬마애가 잠들고 있었다.

이름이 뭐라 했더라…”

빗속에서 이름을 듣긴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일본어 이름은 아니었단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한기에 배고픔이 겹치자 갑자기 엄청나게 처량해진 기분이 든다. 평소라면 냉장고에서 아무거나 꺼내 먹었겠지만, 누워있는 꼬맹이를 보니 그럴수는 없겠구나 싶다.

폭우라고 배달이 전부 끊길 거란 걸 예상했지만, 그나마 배달을 해주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 꼬맹이를 집에 두고 나가기도, 그렇다고 데리고 나가기도 곤란했으니 말이다.

작은 탁상을 펴서 배달 온 음식을 내려놓는다. 눅눅해진 방 안에 음식의 뜨뜻한 향이 확 퍼진다.

라멘은 짜서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녀의 취향은 아니지만 최소한 따뜻한 국물이 있고 애도 먹을 만한 음식에 지금 이 폭우를 뚫고 배달을 해줄 만한 것은 이런 것 밖에 없었다. 연노랑에 가까운 국물을 마시자 마른 입 안에 짠맛이 확 퍼진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속은 비어있었다.

꼬맹이 앞에 음식을 두고 자신의 텅 빈 속을 채운다.

으…”

자신이 그릇을 거의 다 비워갈 때쯤, 꼬맹이가 몸을 일으킨다. 어린아이 같은 높은 목소리에 비해 생기 없어 보이는 눈동자의 대비가 꺼림칙하다.

일어났니?”

꼬맹이는 말이 없다. 잠에 취하기라도 한 걸까, 앉아서 멍하니 있는 아이를 굳이 부르지 않는다.

아, 네”

먹어”

감사합니다”

마른 목을 물 한 잔으로 축이고 라멘을 빤히 바라보기만 한다.

왜?”

그, 젓가락…못 써요”

하하…”

생각해보니 어린애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동양인 같아 보이지도 않는 외모를 보면 젓가락을 못 쓰는 것도 이상할 게 없었다.

비닐봉투에서 플라스틱 포크를 꺼내 아이에게 건내주자 그제서야 면을 조금씩 먹기 시작한다. 조금 식어서일까, 아이인데도 무리없이 라멘을 먹는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는 것 있니?”

네?”

네가 경찰에 연락하지 말라고 해서 일단은 안했어, 하지만 최소한 네가 누군지는 알아야 내가 도와줄 수 있지 않겠니?”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쉬운 말로 이야기를 한다. 사실 무작정 호의를 베풀어 줄 이유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바닷가에서 쓸려온 꼬맹이를 내칠 만큼 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코코”

네 이름이야?”

네”

목소리는 천진난만한게 딱 그 나이대의 어린아이인데, 생기가 없다. 그 엄청난 괴리감이 여성을 소름끼치게 만든다.

그 무슨 일이 있었니? 왜 여기까지 오게 된거야?”

여긴 일본인가요?”

어? 응”

일상적이고 전혀 문제 없는 대화에서 여성은 순간 엄청난 위화감을 느낀다. 무엇이 원인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지만, 지금의 이 짧은 대화가 무언가 상당히 비틀려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너, 근데 왜 일본인 걸 아는거야?”

라멘 그릇에 적힌 한자가 일본어니까요”

얼핏 들으면 납득가는 말이지만, 저 꼬맹이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절대 정상적인 추리가 아니었다.

아니, 내가 지금 한국말로 말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애초에 자신이 이 꼬맹이와 정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이유는 단순했다. 서로 쓰는 언어가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여성의 모국어인 한국어였다.

전혀 동양인스럽게 생기지 않은 꼬마애가 현지인인 자신이 어색하게 느끼지 못할만큼 유창한 한국어를 쓰면서, 단순히 라면 그릇에 일본어가 쓰여있다고 여기가 일본이라고 판단한다는 건, 멀쩡한 사람의 생각 수준에서는 무리였다.

너, 정체가 뭐야?”

코코에요”

코코?”

네”

아니아니, 이름을 묻는 게 아니라…”

펙스 콘소시엄에서 만든 화성 개척용 바이오로이드에요”

바이오로이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여성의 머리가 새하얘진다. 사람이 아니다. 바이오로이드? 바이오로이드가 도대체 여기에 왜, 아니 애초에 화성 개척용 바이오로이드가 바닷가에는 왜 있었단 말인가

펙스가 바이오로이드 산업에 뛰어든단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은 있었지만, 화성개척이니 뭐니 하는 것은 그녀에게 너무 먼 이야기였다.

언니는요?”

나? 어, 유미…아니 천소아, 그게 내 이름이야”

순간 자신의 클럽 네임을 내뱉어 버린다. 어느새 스트립 클럽이 자신의 삶에 상당히 침투한 것 같아 속이 메스꺼워진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주겠니?”

어린아이가 먹기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라멘을 코코는 싹 비운다. 어지간히도 기력이 모자랐나보다고 생각하며 코코의 말을 들을 준비를 한다.

화성은 테라포밍이 진행되고 있어요. AGS인 에이다를 필두로 많은 바이오로이드와 AGS들이 거기서 일을 하고 있죠, 저 역시 화성에 가야하는 바이오로이드였어요. 그리고, 로켓에 타서 발사됐고…로켓이 터져버렸죠. 바로 어제 일이에요”

어린아이가 말한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또렷하고 생생한 표현, 소아는 그제서야 이 아이가 언어모듈이 이식된 바이오로이드라는 걸 납득하게 된다.

바다에 추락했는데, 그 바다에서 여기까지 흘러온 것 같아요. 물론 원래대로라면 모든 우주선의 부품을 회수해가겠지만…”

너는?”

그때 관제실에서 통신 한 마디가 들렸어요”

비어있는 그릇에 물방울이 맺힌다. 고개를 박고 우는 코코의 모습에 소아의 표정이 복잡하게 흔들린다

이 폭발에서…살아남을 수는 없으니 버려도 된다구요”

정신이 아찔해지는 코코의 한 마디, 저 어린아이가 저 한마디를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소아는 가늠할 수 없었다.

우주선의 폭발한 파편에서 유일하게 수거되지 못한 부품이, 그렇게 자신의 고백을 끝마쳤다. 


바닐라 이야기가 너무 해피엔딩으로 끝났어

원래 애매한 해피엔딩을 선호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