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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좀 웃긴 점은, 앨리스가 악의가 있어서 그렇게 반응한 건 아니란 거였어.

말 그대로 순수하게 "어째서 당신이 부관이죠?" 라는 의문을 품었을 뿐이니까.

물론 악의가 있건 없건 리제 입장에서는 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지.

그나마 초면에 대놓고 말로 꺼내지 않은 건 최소한의 양식 정도는 있기 때문일지, 아니면 동석한 라비아타의 체면을 생각해준 것일지.


살짝 골치가 아프긴 했지만 리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어.

어차피 앞으로 합류할 기인들이 한둘도 아니겠다, 나름 믿는 구석(?)도 있겠다.

빠르게 결착을 짓는 편이 차라리 편할 거라고.


그때의 리제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었음.

앨리스랑 다시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한참 뒤의 일이 되리라는 걸.


*   *   *


시작은 알바트로스 휘하의 드론이 전해온 정찰 결과였어.

철충이 수상쩍게 모여있던 시설에서 특이한 광물이 산출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었는데, 그전까진 AGS를 동원하더라도 돌파할 가망이 안 보일 만큼 빼곡히 들어차 있던 본대가 갑작스레 빠져나가면서 조사할 기회가 생겼다는 내용이었지.

그러니까 영원의 전장이었음.


속전속결이 중요한 만큼 자연스럽게 소수의 최고급 바이오로이드와 AGS, 그 중에서도 지휘 같은 대규모의 업무가 없는 개체 위주로 부대를 꾸리게 되었으니, 거기서 앨리스가 빠질 리가 없었어.

그 외에도 샬럿이나 네오딤, 레아, 로크 등도 있었고.

메타적으로야 참 무근본 조합이구나 싶긴 하지만 실제가 되면 아무튼 무지막지한 강자들이고, 사령관의 지휘도 있어서 무리 없이 목표지점을 돌파해 대량의 광물을 확보한 후 무사히 귀환하는 것에는 성공함.


앨리스 입장에서 보자면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어.

복원이 완료되고 채 사흘이 지나기도 전에 작전이 시작되어서 보름 가까이 진행되었으니까, 정말로 배틀메이드 자매와의 회포를 풀고 자신의 능력을 점검하자마자 나갔다 싶은 정도였거든.


딱히 힘들었다거나 하는 문제는 아니었어.

극한에 가까운 전투 모듈을 탑재한 자신이 보기에도 사령관의 지휘는 기묘할 만큼 훌륭했고, 철충들을 취향껏 짓이기는 와중에 위기다운 위기는 한 번도 겪지 않았으니까, 어느 의미론 능력을 선보이기에 딱 맞는 무대였다고 할 수도 있었지.

오히려 앨리스에게 중요했던 건 그 과정에서 함께한 멤버들이었음.


'세라피아스 앨리스'의 성격이 표출되는 방향성은 다종다양하지만, 그 근본에 있는 요소를 하나로 요약하자면 '프라이드'야.

수많은 배틀메이드 중에서도 가장 완벽한 병기로 만들어진 존재로서 하늘 아래 자신만큼 강력한 바이오로이드는 없으리라는 오만.

경호나 가사처럼 메이드에게 필요한 기능이 모자랄지언정 그조차 자신에겐 단점이 될 수 없다고 주저 없이 긍정할 수 있는 자부심.

이렇게나 우수한 자신이 누군가를 귀여워해 준다면, 마땅히 감사하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가학성.


하지만 그것이 타자의 역량을 판단하는 전술적인 식견까지 흐리게 만들었다는 건 아니어서, 앨리스는 그 나름대로 올바르게 그들의 역량을 평가함.

AGS인 로크는 논외로 치더라도, 메이와 함께 자신에게 비견되곤 했던 레아나 금속에 관해서라면 가히 신적인 힘을 휘두르는 네오딤도 충분히 자신과 견줄만한 개체라고.

그 중에서 살럿이 유독 눈에 밟히긴 했지만 - 거창한 무기도, 대규모의 능력도 없이 오직 극한에 달한 신체 능력과 전투 기술만으로 활약하는 모습이 존경하는 언니와 겹치는 점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 그것도 중요한 건 아니었음.


앨리스가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그 한가락 하는 멤버 전원이 리제의 위치를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지.

로크는 감정 모듈이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명령을 우선하는 AGS니까. 레아는 같은 페어리 시리즈의 자매니까. 네오딤은 아직 정신연령이 어리니까 그렇다고 쳐.

하지만 쓸데없이 가슴만 큰 금발 바보까지 그러는 걸 보자니, 역으로 자기가 뭔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나 싶어지는 거야.


결국 복귀한 후 재정비를 마치고 부관과의 면담 일정을 잡았을 즈음, 앨리스의 목적은 조랭이떡을 치우는 게 아니라 조랭이떡의 비밀을 풀어내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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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뎃 시기를 보니 영전이 처음 나온 시점이 딱 할로윈 직전이라 샬럿이랑 앨리스가 티격태격하기 시작한 게 거기서부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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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글(3) : https://arca.live/b/lastorigin/25048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