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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론페더와의 협상이 일단락된 후에도 여전히 할 일은 많았음.

여전히 자신을 프린세스 취급하는 백토의 장단에 맞춰주면서 셀프로 손발이 오그라지리기도 하고,

백토 탐사대가 명목상의 목표였던 특수 오리진 더스트를 제법 수거해온 김에 페로 다음의 승급 대상으로 이래저래 힘써준 팬텀을 추천하기도 하고.

틈틈이 언니 노릇 하기에 여념이 없는 레아를 보면서 젊어 보이고 싶은 건지 나이 들어 보이고 싶은 건지 둘 중 하나만 해 줬으면 싶기도 하고.


그런 일정 사이에 끼어있던 것이, 어쩐지 오래간만인 것 같은 리리스-소완과의 삼자대면 티타임이었음.

딱 저번만큼 불편한 것이 차라리 내 집 같아 편안하다는 역설적인 감상을 품은 리제에게, 리리스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선언함.


- 저, 주인님을 사랑해요.

- ? 알아요.

- 푸흡!


어머. 실례하였사옵니다.

말과는 반대로 웃음기를 숨길 생각이 없는 소완에 리리스가 총을 꺼내들려고 하는 상황 속에서 역으로 당황한 건 리제였지.


- 새, 새삼스럽게 왜 그래요? 한참 전에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면서…?

- 겉으로 드러내는지 아닌지는 다르거든요? 완전히!


아니 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긴 하지.

이쪽도 자기 마음 인정 못 하고 세월아 네월아 삽질하던 적도 있었으니 남일 같지도 않고.

그렇긴 한데-


- 리리스 씨의 행동이 달라질 수는 있겠죠.

 그래도 그 정도로 그이가 리리스 씨와 거리를 두게 되지는 않아요.


까놓고 리리스 성격은 이미 꿰고 있을 테고.

전에 이미 말씀드렸잖사옵니까, 하고 뒤에서 리리스한테 이죽거리는 소완은 이쪽에서 봐도 참 재수 없긴 했지만, 아무튼.


- …그렇게 말하는 리제 양은요?

- 침실에 알몸으로 쳐들어오는 정도만 아니라면?

- …….


깊게 한숨을 내쉬고, 리리스는 그럼 마음대로 하겠다고 다짐하듯 말했어.

그리고 리제도 소완 때와는 달리 그렇게 동요하지는 않았지.

진즉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저렇게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성실함을 방증하는 것이라 일종의 신뢰(?)가 들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자신에겐 다른 바이오로이드가 사령관에게 어필하는 것에 일희일비하지 않을 여유 정도는 있다는 걸 자각했거든.


그걸 깨닫게 된 건 우습게도 탈론페더와의 사건이 계기였어.

일을 마무리하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리제"의 감정에 휘둘려서 에이미의 행동 하나하나에 질투했던 자신이라면 그렇게 선선하게 컬렉션 배포를 허가했을 리가 없었으니까.


인격이 감정에 승리한 것인지, 아니면 원작의 낙원 이후 급격히 순해진 리제처럼 원래 그런 메커니즘인지는 알 수 없었지.

하지만 중요한 건 원리 같은 게 아니었어.


당장 내일일지, 본편 진행 도중일지, 백 년 후일지, 천 년 후에도 찾아오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아마 사령관이 다른 바이오로이드 또한 사랑한다고 해도, 자신을 향하는 마음이 변치 않는 한 상처 받을 일은 없으리라는 것.

그 확신이야말로 오르카 호의 부관으로 살아가는 리제에게 의미 있는 것이었으니까.


*   *   *


한편, 리제가 그러는 동안 사령관은 통상 업무 이외에 뭘 하고 있었냐면―.


라비아타랑 가족계획... 이라고 할지, 바이오로이드와 인간 사이의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음.

신혼휴가에서 리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단순 코스트만으로도 질릴 정도라 그 이상 파고들 생각도 안 들었는데, 여유가 생기고 되짚어 보자니 설령 상황이 안정되어서 수술을 감당 가능할만한 인적/물적 자원을 확보하더라도 아이한테 주기적으로 칼을 대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별로 달갑지 않았거든.


해서 수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육아가 가능할만한 기술을 조사, 내지는 개발하고 싶은데 그래도 괜찮을 지에 대한 상담이었음.

물론 그 말을 들은 라비아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오히려 왜 아직까지 명령을 안 했냐고 되물었고.


- 아니, 나 혼자 결정해도 될 만큼 가벼운 일이 아니잖아.

- 주인님이 오르카 호에서 혼자 결정하지 못할 일은 없어요.


심각한 하자가 있는 결정이라면 의견 정도는 내겠지만 그것도 사령관에게 초보 티가 남아있던 시절에나 우려할 일이었고, 하물며 인류의 존속에 관한 문제라면야.

오히려 라비아타 입장에서는 리제가 그 건에서 소극적으로 나섰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갈 정도였는, 데.

사령관은 뚜렷하게 라비아타의 말을 부정함.


- 무슨 소리야? 중요한 일이면 당연히 같이 생각해야지.


참, 뭐라고 할지.

멸망 전에 봐 왔던 수많은 광경과 비교하자니 복잡하면서도 뿌듯한 심경이 들어서, 라비아타는 자기도 모르게 웃으면서 닥터한테 이야기해두겠다고 대답했다가 사령관이 잘은 모르지만 엄마 같은 표정을 지었다고 말하는 바람에 가슴에 상처 하나를 적립함.

적어도 누나라고 해 주지, 엄마라고 할 건 뭐람.


*   *   *


그렇게 여름도 끝나갈 즈음 해서, 마침내 세라피아스 앨리스의 복원이 완료됨.

라비아타는 그 시점에서도 좀 찜찜해하던 반면, 리제는 이후에 나올 수많은 별종 퍼레이드를 생각하면 앨리스 정도는 무난하다- 라고 편하게 마음을 고쳐먹은 상태였어.


그리고 앨리스를 만난 순간 좀 다른 의미로 자신이 틀렸다는 걸 알아챔.

사령관을 가볍게 훑다가 그야말로 육식동물 같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올린 앨리스가 자신을 소개 받는 순간 지은 표정이, 말이지.

사령관만큼 표정 읽기에 능숙하지는 못한 리제가 봐도 단번에 이해할 만큼 노골적이었던 거야.


'뭐야, 이 흑임자 조랭이떡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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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앨리스가 합류했스빈다.

이번 막간은 그리 길지는 않을 전망이빈다.


TMI : 리리스가 정정당당하게 본부인 앞에서 유혹 선언(?)을 한 이유는 본인 성격이 성실한 것도 있지만, 첫 승급이라는 영예(?)의 대상으로 페로가 뽑히는 것에 리제가 나름 영향력을 발휘해 준지라 일종의 빚을 졌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빈다.

물론 리제는 그런 거 모르고 그냥 쓰승급은 당연히 페로지! 라고 생각하고 골랐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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