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추 고맙다 라붕이들, 이렇게 신속한 개추는 난생 처음봤다...

아까 전에 썼던 https://arca.live/b/lastorigin/25947146?p=2 소설의 바로 다음편임. 급하게 써서 용두사미식 결말이 난거 같아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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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돼...이럴리가..."


레모네이드 오메가, 펙스 세력의 중추이자 가장 강력한 대리자 중 한명이 무릎을 꿇었다. 그것도 자신이 증오하고 멸시해 마다않던 마지막 인간에게...


...처음 보고를 들었을 때에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니, 오히려 사령관의 정신 상태를 걱정해주며 조소했다. 최후의 인류이자 나름 세력이 큰 군벌의 사령관이라는 작자가 펙스의 성지, 그것도 오메가의 본진인 북아메리카에 혈혈단신으로 선전포고를 하러 오다니. 정확한 상황 판단을 하기 전, 오메가는 몇번이고 정찰대와 그 정찰대의 후속 정찰대, 정찰대의 유사시를 대비한 화력지원팀까지 꾸려가며 혹시모를 지원군의 존재를 일찍 파악하고자 했고, 다른 레모네이드들에게 의심받을 수 있었음에도 북미 전역에 배치된 레이더들을 가동해 혹시라도 모를 공중과 해저에서의 습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정찰과 탐색 결과는 사령관과 사령관이 탄 정체불명의 AGS 단 한대만이 북미지역에 접근하는 미확인 접근체들의 전부. 그 잘난 오르카호도, 스카이나이츠도, 오비탈 와쳐도, 그 아무도 사령관을 보호해주지 않고 있었다.


"하! 드디어 정신이 나가버린 모양이군. 펙스와 오르카의 전력차를 생각하니깐 아예 삶의 희망마저도 잃어버린 모양이지?"


오메가는 드디어 확신이 섰다. 저 남자는 더이상 자신에게 안겨진 책임의 무게를 견딜 여유도 능력도 없었던 거다. 그러니 저렇게 자살에 가까운 돌격을 자신의 세력권 내에서 감행하지. 그러나 오메가는 적당히 처리할 생각이 없었다. 상대는 자신을 항복 직전까지 몰아넣은 그 오르카의 사령관이었다. 오메가는 당장 남자가 상륙하는 로스 안젤레스 방면 펙스 방위군에게 모든 전력을 저 남자를 처리하는데 사용하라고 명령했다. 암살자와 첩보형 바이오로이드들을 만일 저 남자가 저 정체불명의 AGS 안에서 농성할 때를 대비해 대량 배치했다. 각 부대는 EMP 발생 장치들과 전자기장 교란 장치 등, 저 AGS를 단번에 무력화 시킬 수 있는 방안도 전부 마련해뒀다. 


냉정하게 말해서, 아무리 사령관의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이런 포위망을 스스로 해쳐나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상황을 보더라도, 오르카가 오메가를 다시 납치하거나 하는 계획을 세웠다면, 펙스 회장들의 부활을 위해서라도 죽으면 곤란한 사령관이 미끼가 되어 펙스 전 병력을 자신에게 집중시키는 작전 정도였다. 사령관에게 있어서 실패의 리스크는 크지만, 사실 오메가 입장에서는 무엇 하나 크게 손해볼 것 없는 장사였다. 설사 사령관이 죽는다 하더라도, 생물학과 다양한 약물 등의 '약간의 편법'을 써 오메가 산업 회장의 새 육신이 되기 전까지 정성스럽게 손질을 하면 되는 일이었다.


오메가는 화려하게 장식된 응접실에서  충분히 사령관을 정중하게 모실 자신의 병력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오메가는 승리의 확신에 찬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최고급 와인을 한모금 마시고 부드러운 연어살을 한입 베어물었다. 괴상한 맛 취미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오메가는 완벽한 승리를 위한 완벽한 음식의 조화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진한 와인의 내음과 부드러운 연어살의 은은한 바닷내음을 음미하며 맛의 향연을 즐겼다. 사령관의 접근까지 앞으로 1분, 승리의 때를 조용히 스스로 자축하며, 오메가는 수많은 드론들이 촬영하는 사령관의 마지막 발악을 관람하고자 최고급 의자에 앉아 조용히 막이 오르는 걸 기다렸다.


그리고 오메가는 한순간 위험과 패배를 직감했다.


전에 한 번도 본적없는 거대한 AGS, 아니, 강철의 괴수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바다에서 튀어나와, 그 속도 그대로 모래사장에 스스로의 동체를 들이받았다. 엄청난 양의 모래구름과 폭풍같은 충격파, 정체불명의 AGS에서 나는 소음과 그것의 방어장이 만들어내는 아크 방전의 굉음이 상황의 판단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구름을 걷어낸건 다름아닌 그 AGS, 아니,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령관 스스로였다. 오메가는 그것의 오른쪽과 왼쪽 앞다리에 적혀있는 한 단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엑셀서스/렉스'


저게 뭐지? 무슨 의미의 함축어인가? 오메가는 즉시 저 단어의 의미를 알아내도록 펙스의 비서 바이오로이드들에게 지시했다. 그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포탄이, 레이저가, EMP 탄이, 중성자탄이, 저 기계를 향해서 일제발사되었다. 그러나 저 거대한 기계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상적으로 깔끔한 모습으로 자신을 촬영하는 드론들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오메가는 경악했고, 그와 동시에 비서 바이오로이드에게서 저 두 단어에 대한 의미가 전달되었다.


"메탈기어라고?"


비서가 오메가에게 건네준 사진 두장에는, 멸망 전의 조잡한 구인류의 컴퓨터 그래픽으로 빚어진 두 대의 구식 로봇이 그려져 있었다. 핵 투발이 가능하며 이족보행으로 움직이는 병기인 '메탈기어 렉스'봐 사족보행병기로 메탈기어 시리즈 최후의 메탈기어인 '메탈기어 엑셀서스'...그리고 그 두대의 로봇은 확실히 오르카의 사령관이 탄 저 거대한 기계와 닮아 있었다. 그러나 왜? 오메가는 더더욱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굳이 인간들의 오래된 게임에 나오는 기계의 모습을 본따서 저런 메카를 만들었다고? 도대체 왜? 이 나를 기만하려고 저딴 기계를 만든 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령관의 행동에 분노한 오메가의 이가 까득, 하고 갈렸을 때, 비서에게서 또다른 보고가 들어왔다.


"해당 미확인 AGS, 모든 공격을 무시하고 현재 펙스 본사로 고속 접근중입니다!"


오메가는 경악했다. 그리고 모든 수를 써서라도 저 괴물을 막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저 괴물은 오메가의 예상보다 뛰어났고, 모든 면에서 우월했다. 단 한번의 유효타조차 허용하지 않고, 단 한명의 사상자, 완전파괴된 AGS조차 만들지 않고, 거침없이 오메가의 위치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왔다. 오메가는 공포에 휩싸였고, 당장 대피하도록 초음속 여객기를 준비시키도록 지시하고, 본부의 자폭 프로토콜마저도 활성화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쿵, 그것이 오메가가 정신을 잃기 전 들은 가장 마지막 소리였다...


...정신을 차린 오메가는 자신이 이미 완전히 무너져 폐허가 되어버린 자신의 본부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는 것은 거대한 AGS...아니, 메탈기어와 그 안에서 나온 사령관의 모습이었다.


"너가...사령관이라고...?"


한눈에 봐도 비대한 체구에 찢어질 것 같이 작아보이는 하얀 와이셔츠, 정갈하게 맨 넥타이, 와이셔츠를 방탄 조끼마냥 감싼 회색 조끼와 건물 기둥같은 다리에 뜯어질 것 같은 바지, 그리고 검은색 구두를 신은 사령관은 전혀 이전의 사령관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바지 주머니에서 안경곽을 꺼내 검은색 안경을 낀 사령관은, 오메가에게 말했다.


"흥, 펙스의 개 치고는 대인 인지 능력이 좋은데."


난데없는 사령관의  도발에 격분한 오메가는 지체할 틈도 없이 곧장 케스토스 하마스를 꺼내든 오메가는, 반응할 새 조차 없이 날아든 사령관의 자비없는 주먹질에 속절없이 날아가 남아있는 기둥 잔해에 부딫혔다.


"내가 여자라고 봐줄거란 생각은 버려라. 지금 내가 여기 있는건 사소한 대의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니까."


"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고...?"


귀 한쪽은 이미 먹먹하고 온 얼굴에서 피나 나는 것 같은 기분과 고통을 참고, 오메가가 빈정거렸다.


"어차피 오르카의 머저리 년들이 너만이 날 죽일 수 있다고 부추기고 강요해서 여기로 온 거겠지...너나 나나 똑같아...서로 원하는 걸 얻겠답시고 이 짓거리를 계속 반복하는 주제에...!"


사령관은 오메가의 발악에 잠시 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오메가에게 자신 나름대로의 답을 말했다.


"그래, 그래서 나는 더이상 그런 모두의 목적이나 대의 따위로 인해서 전쟁이 일어나는 걸 없애려고 한다."

"...뭐...?"


오메가는 자신의 청각 모듈에 이상이 생긴 건가 의아해했다. 사령관은 다시 한번 말을 정정했다.


"이해를 못한 모양인데, 안 그런가? 나는 이제 이 세상에서 '수단'으로서의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게 청산하겠다는 얘기다. 그걸 위해서 지금 그 '이상'에 대한 '수단'으로 너에게 전쟁을 한 거다."


일방적인 학살, 아니, 학살도 아닌 이런 괴악한 싸움을 전쟁이라 부를 수 있는 거냐, 라고 따지고 싶은 오메가였으나, 방금 사령관의 공격의 충격으로 케스토스 하마스가 박살난 오메가는 잠자코 그 말을 듣고 사령관의 상태를 파악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우습게도 구인류가 만들어낸 게임의 최종보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얻어낸 꿈이지. 그건 바로 이 자유의 땅 아래에서 살아가는 모든 바이오로이드가 자기 자신의 의지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세상을 일구어내는 거다. 우리 모두가 진짜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참된 자유의 삶 말이다, 빌어쳐먹을! 펙스의 늙은이나 나같은 일개 구인류 살덩어리들에게 지배되지 않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섬길 수 있는 세상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세상을! 그녀들이 마음먹은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안겨주려는 것이다!"


자신의 회장이 모욕당했다는 사실보다도, 그 무엇보다도, 반역자 바이오로이드들의 수장인 남자가 저런 말을 한다는 것에 오메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공격하려는 준비조차도 잊은 채, 오메가는 멍청하게 사령관에게 어이없는 질문을 할 뿐이었다.


"대체...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기생충들 주제에 우리가 만든 기계에 달라붙어서는 제 잘난듯 구는 고철벌레새끼들도, 여태까지 바닷속에 쳐박혀서 잠만 잤으면서 마치 자기들이 집 주인인 양 구는 별의 애새끼들도, 이미 오래전에 죽은 구 인류의 잔재 여섯을 잊지 못해서 무의미한 발악이나 하고 있는 레모네이드 네년들도 전부 다 엿이나 먹으라는 소리다! 지금까지는 오르카의 사령관이라는 틀에 갖혀서 이 세상이 근본부터 비틀려 있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지...이제야 확실하게 보이더군! 내가 콘스탄챠에게 부탁해서 온 몸을 나노머신과 오리진 더스트로 강화시켰던 그 때 부터 말이야! 이 세계는 구인류의 죄악 속에서 썩어버렸어! 내가 해야할 일은 단 하나다! 이 엑셀서스-렉스와 내 몸을 이용해서, 모조리 불태워버리는거야!"


사령관은 격분하여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큰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외쳤다. 오메가는 더이상 격분이나 공포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스며나오는 감정은 다름아닌 동감, 그리고 이렇게 변해버린 사령관에 대한 연민이었다.


"당신, 사령관의 틀에 갇혀있었다고 했지...? 그러면 지금은 뭔데...? 결국 지금도 그녀석들한테 자유를 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이 짓을 하는거 아냐...? 그러면 대체 당신의 자유는 어디있는 건데...?"


사령관은 오메가의 한결 너그러워진, 그리고 자신에 대한 동정심으로 물들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가 그런 걱정을 해주다니 의외인걸...확실히 너가 말하는 그대로일 수도 있다. 내가 너를 막고, 별의 아이를 죽이고, 철충을 이 세상에서 몰아내는 건 그 아이들의 희망이자 소원이다. 나는 그 아이들의 자유를 이뤄주기 위해서 스스로 자유를 희생한거다."


사령관은 어느새 자신을 찾으러 온 오르카의 인원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이거 한가지는 확실하지. 난 내 의지로 너를 두들겨 패 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너를 따르는 것 뿐이 죄인 다른 바이오로이드나 AGS는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굳이 저 메탈기어를 만든 뒤에, 나노머신과 오리진 더스트까지 써서 너를 잡으러 온 거고."


당당한 사령관의 발언에 진이 다 빠진 오메가가 힘없이 웃고, 그런 오메가를 쳐다보던 사령관이 오메가에게 물었다.


"인간이라는 지위도 아닌 지위 단 하나에 대한 복종, 바이오로이드의 자유를 억압하는 썩어빠진 구인류의 잔재들, 도움도 안되는 외계 침입자들...나는 이런 놈들을 모조리 뿌리 뽑을 생각이다. 어때, 유치하게 게임 악역한테서 사상적 영감을 얻은 놈이랑 같이 일해볼 생각은 없나?"


오메가는 이 어이없는 상황과 사령관의 협업 제안에 힘 없이 웃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침내 오메가는 사령관의 손을 잡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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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 너무 날림으로 공사친 거 같아서 진짜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