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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기? 종목은?


아직 복원되지 않은 샐러맨더의 영향이 없다고 해도 워울프가 그런 이야기에 올라타지 않을 리가 없지.

사나운 웃음에 맞춰서 잿빛 동공이 한순간에 가늘어지는 모습은 위협적이라 하기에 충분했지만 사령관은 태연했음.

아니, 태연한 정도가 아니라-


- 사격.

- 호오. 진심이야?


오히려 기름을 부었지.


- 저기, 사령관. 워울프가 평소에 하는 짓이 나사가 빠져서 그렇지 솜씨는…….

- 아니, 한 번 두고 보지.

- 대장?!


역으로 불안해진 퀵 카멜이 끼어들려는 걸 칸이 제지하는 동안, 워울프들은 언제 늘어져 있었냐는 듯 코앞에 버려진 사격장에 우르르 달려들어서 단번에 정비를 끝내버렸음.


- 그래서, 누가 대표로 나갈 거야?


장난 같으면서도 - 혹은 장난이기에 더더욱 - 양보할 생각은 없는 워울프였으니, 당연히 그 중에서도 에이스 취급 받는 - S 승급까지 끝낸 - 워울프가 나오는 게 순리였지.


- 당여니~ 이 언니쥐이~! 딸꾹! 과녀억, 스무 개 정도느은 꺼미거든~?

- 과녁은 열 개야, 멍청아.


완전히 술에 개가 되어버리긴 하지만.

괜찮다고 강변하는 중사 워울프랑 차라리 자기가 나가겠다는 다른 워울프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사령관은 휴대하고 다니던 개인용 화기를 잠깐 꺼내놓고 보다가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는 워울프에게서 권총 한 자루를 빌려왔음.


- 익숙한 화기까지 포기하려는 건가? 아무도 참작해주지 않을 텐데.

- 이 편이 공평하잖아?


웃음기 섞인 추궁에도 당연하다는 듯 답하는 사령관을 흥미롭게 바라보던 칸이 다시 입을 연 건 탈론페더가 카메라를 설치하는 걸 마칠 즈음에서였음.


- 제 식구 감싸기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녹록하지는 않을 거다.

 모르지도 않을 테지.

- 당연하지.

- 자신이 있다고 이해해도 되겠나?


'심판'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완장을 (반강제로) 달고 낙담하는 카멜에게 가볍게 손을 흔들어서 위로해주고, 사령관은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음.


- 아니. 전혀?


*   *   *


이 분위기에서 엄격하게 종목별 룰을 지킬 리도 없어서, 승부는 천천히 10발, 빠르게 10발을 쏘는 식으로 마무리되었음.

점수도 제대로 채점한 게 아니라 그냥 일단 쏜 다음 탄착군을 비교하는 느낌이었고.

그리고 그 결과는-


- …이거, 판정이 되나?

- 미묘오- 허다?


급사에선 워울프가, 완사에서는 사령관이 좀 더 잘 쏜 것 같다- 같은 미묘한 느낌으로 무승부.

슬슬 술이 깬 워울프들이 몰려들어서 재경기를 하자, 그냥 퀵 카멜을 매수해서 우리가 이긴 걸로 치자(?), 비디오 판독을 하자 하면서 쑥덕이는 와중에, 승부의 당사자였던 중사 워울프는 그러게 술좀 깨고 하지 그랬네 어쩌네 하면서 또 왁자하게 싸우기 시작했지.


- 무승부니까, 적당히만 이야기해 줄게.


결국 사령관이 내건 중재안에 순식간에 빨려들 듯 모이면서 일단락이 나버렸지만.


- 그럼 질문! 첫키스는 언제 한 거야?

- 몸을 바꾸기도 전이었으니까… 지하철을 타고 연구소에 도착했을 즈음이었지?


젠장, 틀렸다! 내가 뭐랬어. 참치캔이나 내놓으셔.

잠깐 일던 소란은 다시 다른 워울프가 손을 들면서 멈췄지.


- 그럼 첫 경험은?

- 같은 날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분 휘파람을 송풍기 삼아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들불처럼 타올랐지.

사회자 워울프. 질문자 워울프. 청중 워울프. 속기사 탈론페더. 관심 없는 척 가장 열심히 듣는 깍두기 퀵 카멜로 구성된 사령관 청문회는 그렇게 시작되었음.


*   *   *


결국 자기들끼리 신나서 더더욱 술을 때려 박고, 게중에는 별로 마시지도 않았는데 분위기에 취해 쓰러진 친구까지 합쳐서 정말 시체의 산을 방불케 하는 상황이 되었을 즈음해서야 사령관은 호드의 집결지를 나섰음.

리제의 희망대로 디테일한 부분은 요령껏 넘겼달까, 중간부터는 그냥 아내 자랑이 되어버린 것도 같지만 재미있어 했으니 괜찮겠지.


단번에 그 정도로 오래 이야기를 한 건 오래간만이라 살짝 입안이 말랐구나- 하는데 기다렸다는 듯 물컵이 내밀어졌음.


- 고마워, 칸.

- 고마워해야 할 건 이 쪽이지. 수고 많았다, 사령관.

- 뭘, 이 정도로.

- 비행선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 응. 잘 곳도 준비되어 있고, 그 사이에 이동도 해야 하니까.

- 호위하지.


철충의 조각도 안 남긴 도시에 호위할 필요가 있겠냐만은, 사령관은 굳이 그 부분을 지적하는 대신 칸과 함께 느릿하게 밤거리를 걸었음.

거북하지 않은 침묵이 끝난 건, 세인트 오르카의 윤곽이 확실하게 드러날 즈음 해서였지.


- 유독 내기를 좋아하던 자매가 있었다.

- A-15 샐러맨더?

- 알고 있었나?

- 지식으로만 배운 거니까, 안다고 하기엔 부족할지도.

- 자신이 없단 말은 당당하게 하면서, 이런 데서는 겸손하게 구는군.


알다가도 모르겠다면서 가볍게 웃고, 칸은 고개를 돌려 밤하늘을 올려다봤음.


- ……복원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릴 거야.


호드는 전반적으로 개인기가 뛰어난 만큼 완편의 우선순위가 낮기도 하고.

미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말에 칸은 고개를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음.


- 언젠가는 합류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아.

 그저, 내가 기억하는 그녀가 이 광경을 봤다면 참 즐거워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 …….

- 미안하군. 분위기를 무겁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 아니.


짧은 호흡을 거치고 나온 말에는 다소 꾸민 듯한 장난기가 붙어 있었지.


- 칸은 오늘의 호드도 기억해 줄 거잖아?

- 물론.

- 그렇다면…….


망설임 없는 확답에, 사령관 또한 확신을 담아 답했음.


- 이 전쟁이 끝나고 주변을 돌아봤을 때― 칸이 기억한, 오늘의 대원 전부가 그 자리에 있게 해 줄게.

- ……흠.


짧은 침묵이 지나고.


- 내기에서 허세를 부린 것과 같은 날이라는 걸 잊을 수만 있다면 썩 멋진 대사였을 텐데.


칸은 말로 설명하기엔 지나치게 복잡했던 감상을 간신히 미소 하나에 눌러담을 수 있었지.


- 너무하네. 적어도 헛말은 하지 않았는데.

- 그러니까 더 믿음이 안 가는 거다.


딱 맞게 도착한 세인트 오르카에 오르는 사령관을 잠깐 올려다보다가, 칸은 미련 없이 돌아서서 등 뒤로 손을 흔들어 보였음.


- 메리 크리스마스, 사령관.

- 메리 크리스마스, 칸.


물질적인 무언가는 하나도 오고 가지 않았지만, 자신도 호드도 더할 나위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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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로 일단 호드 파트는 마무리이빈다.

사격 내기가 된 건 다른 게 아니라 원작 세인트 오르카에서 워울프가 유독 총쏘고 노는 장면이 많았던지라 그렇스빈다.

아마 스치듯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령관은 화기 다루는 법은 블랙 리리스한테서 배웠스빈다


다음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534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