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 조금 이상한 오르카가 보고 싶다


모음집 링크 : https://arca.live/b/lastorigin/26141632


01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141408

02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403929

03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451320

04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486798

05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575575

06편 : https://arca.live/b/lastorigin/26609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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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 https://youtu.be/TpaFE6_nDJw]


 발키리를 비롯한 출정 인원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이게 어디까지나 천운에 의한 것임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알 수 없는 생명체, 알 수 없는 무기, 알 수 없는 적. 완벽한 미지의 사태를 상대로 이 정도 성과를 냈다는 건 기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무사히 살아돌아와 이겼다는 것만으로 들뜨는 브라우니들을 제외한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귀환한 이들을 가장 선두에서 반긴 건 하치코였다. 자신이 하마터면 동료들을 사지로 보낼 뻔한 셈이니 강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마 그걸 말할 수야 없었겠다만, 그래도 이렇게 직접 나와서 맞이하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모두들 무사히 살아돌아와서 다행입니다."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발키리는 하치코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럴 수록 하치코의 가슴 속에는 깊은 죄책감이 쌓여갔지만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지금의 사령관이 계속 유지되게 하려면, 불필요한 변수는 제외하는 편이 좋았다. 어째서 리리스 경호실장이 아닌 자신을 선택했는가는 그녀로서도 의문이었지만. 그리고 발키리와 그 부대원들은 전부 방독면이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리의 지시로 인한 것이었다.


 "그리고 저게...?"

 "예, 그 괴물들입니다. 닥터가 있었다면 바로 해부해서 알아볼 수 있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발키리의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닥터가 어떻게 죽었는지 뻔히 알고 있는 바이오로이드 중 한 명이기 때문이었다. 


 "꽤 끔찍하게 생겼군요. 나머지 시체는 곤죽이 되었다고요. 일부러 보관 용기에 따로 보관해두신 겁니까?"

 "예, 만에 하나 해부할 때를 대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미지의 바이러스 같은 것도 우려되니까요. 저희야 모르지만 사령관은 인간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멀쩡한 녀석은 하나 뿐이지만 거의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이 말입니다."


 하치코는 죽어 나자빠진 시체를 살피면서 말했고, 발키리는 자신이 느낀 바를 평가했다.


 "저희처럼 말입니까?"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게도 말할 수 있겠군요. 저희 역시 전쟁병기의 일종으로 태어나 똑같은 모습을 한 자매들로 이뤄졌으니까요. 그렇다면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뜻이 됩니다. 그 어리석은 사령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재해가 닥쳐올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저것의 압도적인 화력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위험합니다."


 발키리는 보기 드물게 인상을 강하게 찌푸리며 앞날을 걱정했다. 만약 발키리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바이오로이드의 군대를 상대하는 것과 비슷한 전면전을 치뤄야 할테니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화력만으로 따지고 본다면 이런 자그마한 무기에도 압도적인 힘을 담아서 사용하고 있다. 이게 캐노니어처럼 대구경 화기로 넘어간다면? 끔찍한 피해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


 서로 그런 예측을 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기에, 두 바이오로이드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사령관에게 보고해보겠습니다. 다른 지휘관 분들께 보고하는 건 발키리 님께 맡기겠습니다."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군요."


 발키리의 말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지, 하치코는 굳이 부연 설명을 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자신 역시 발키리의 처지였다면 똑같은 생각을 했을 테니까. 그렇기에 하치코의 머릿속은 한층 더 복잡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깊은 상념에 잠겨 발걸음을 옮기던 하치코는 어느새 자신이 사령관실의 앞에 도착했음을 깨달았다. 여전히 머릿속은 맑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치코는 자신의 본능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명령에 따르는 것.


 삐익-


 『누구지?』

 "사령관님, 하치코입니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사령관실의 문이 열렸다. 사령관은 소완이 태워다 준 커피를 마시면서 태블릿을 살피고 있었다. 그가 보고 있는 것은 발키리의 바디 캠으로 촬영된 전투 장면이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는 걸 보면서 하치코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적어도 이 사태를 허투루 보시는 분은 아닌 것 같아서 그녀의 마음은 차분해졌다.


 "발키리 양과 만나 전투 소견을 듣고 해당 괴생명체의 시체를 관찰하고 왔습니다."

 "어땠지?"

 "화력에 대한 우려가 가장 컸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저건 플라즈마니까."

 "예?"


 하치코는 무심코 반문했다.


 "저들이 쓰는 건 플라즈마 병기야. 현 인류의 기술로는 통제하기는 커녕 소형화도 불가능한 물건을 펑펑 써대고 있는 거지."

 "그걸 어떻게...?"

 "자세한 건 말해줄 수 없어. 어차피 너도 믿지 못할테고.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거다. 하치코. 현 바이오로이드 중에 저걸 막을 수 있을 만한 녀석이 누가 있을까?"


 하치코는 사령관의 질문에 자신이 품은 의문을 깊이 생각하는 대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리리스 경호실장과 마리 지휘관, 네오딤이 있습니다."

 "그 외에는?"

 "현 전력으로는 없습니다. 방어가 아니라, 순수하게 맞아서 버틴다는 개념으로 따진다면 원본의 저나 토미 워커, T-13 알비스, 코코 인 화이트셸, S5 기간테스, CT-103 포트리스가 있습니다. 허나 이들은 해당 화기에 피격당할 경우 중대한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즉, 살아는 오겠지만 사지 멀쩡하게 귀환할 수는 없다?"

 "그렇습니다."


 하치코가 전투 영상을 보고 내린 결론은 그랬고, 지휘관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렉트로 사이킥을 사용해 뭔가 방어막 비슷한 걸 칠 수 있는 마리나, 로자 아줄을 사용해 방어 역장을 펼치는 리리스, 아니면 주변의 철을 끌어오거나 자기장을 사용해 튕겨내버릴 네오딤을 제외한다면 누구도 저걸 막을 수 없어보였다. 나머지는 튼튼한 몸통과 두꺼운 맷집으로 간신히 버텨내는 게 가능해보일 뿐이다. 아예 회피한다면 모를까, 저게 수십 단위로 화망을 구성해 뿌린다면 슬레이프니르 정도가 아닌 이상 회피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마리나 리리스를 내보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닐 테고..."

 "그렇습니다. 특히 마리 지휘관은 대규모 병력을 운용하는 지휘관입니다. 그녀가 부재한다면 스틸라인은 상당한 혼란을 겪게 되리라 예상합니다. 그리고 경호실장님은 저기..."

 "알아. 너를 대신해 내보낸다면 저들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겠지."


 하치코는 그 말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이 사령관은 알면서도 리리스 경호실장 대신 자신을 선택하는 것일까? 태생이 군인으로 태어난 하치코로서는, 아무래도 이해하기도 알아내기도 힘든 일이었다.


 "그렇다면 네오딤 양입니까?"

 "그래, 그녀와 면담을 할 필요가 있겠는데...그녀와 나의 관계는 어땠지?"

 "전혀 좋지 않았습니다."

 "그야 그렇겠네..."


 사령관은 예상했음이 분명한 태도를 보여주면서도 낙담한 모습을 숨기지는 않았다.


 "어째서 그런가, 이유 정도는 들려줄 수 있어? 하치코가 생각한 이유 말이야."

 "제가 들은 바로는 그녀는 누군가의 정신을 가지고 실험하는 일을 극히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령관님께서는 뽀끄루 양을 사용해 바이오로이드의 기억을 자주 만지작거리셨습니다."

 "아-, 그 영상들 말인가. 확실히,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그래도 만날 필요는 있으니 면담 일정을 잡아야 하긴 할텐데...만약에 그녀가 돌발 행동을 했을 때 막을 자신 있어?"

 "저 혼자서는 무리입니다. 리리스 경호실장님이라도 어렵습니다. 적어도 잠수함 바깥에서 만나신다면 모르겠습니다만."


 네오딤의 능력을 생각하면 이 잠수함은 말 그대로 네오딤의 독무대 그 자체다. 그녀가 고개를 가볍게 젓는 것만으로도 잠수함의 모든 금속성 물체가 흉기가 되어 날아든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가 손짓 한 번만 하면 대부분의 전자기기가 망가지고 이 잠수함은 말 그대로 바다의 금속 관덩어리가 되어 이 안에 타고 있는 모든 이들이 수장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 아무리 요인 방어에 특화한 리리스라 할 지라도 막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온 사방이 흉기요, 상대의 필드인 셈인데 영원히 방어 역장 안에 갇혀지낼 생각이 아니라면 버텨낼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갑자기 잠수함 바깥에 나간다면 의심받겠지?"

 "예."

 "골치아프네. 별 수 없나. 일단 면담 일정은 잡아두기로 하고...그보다 쓸만한 건 건져냈어?"

 "아직 자세한 건 모릅니다. 다만 삽살개 유전자를 베이스로 한 제 자매기에 관한 내용이 있다고 떠드는 걸 들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자료일 뿐이므로 유전 물질이 없다면 복원은 불가능합니다만, 이번에 실어온 장비에 들어있어야 가능할 겁니다."

 "그래? 어떤 녀석이려나."


 하치코는 그 말에 데이터베이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열심히 유미가 자료를 전산망에 실시간으로 업로드 하는 중이었기에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찾았습니다. 도베르만의 유전자를 섞어 만들어진 저와 달리 삽살개 유전자를 기반으로 했기에 공격성이 상당히 높아졌고 지능과 충성심이 비약적으로 높아진 개체라고 합니다. 다만 이 충성심이라는 게 처음으로 주인임을 인식한 상대만을 인정했기에 군용으로는 적절하지 않아 최종 양산 단계에서 폐기되었다고 합니다."

 "아, 그렇지. 군대는 조직에 대한 충성이니까, 사람에 대한 충성과는 다른 면이 있지."

 "다행히 충성심 하나만큼은 저보다도 대단한 개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만...복원하시겠습니까?"

 "없는 것보단 낫겠지.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그럼 복원하라고 지시해두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하치코는 가볍게 경례를 하고 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


 "아, 잠깐만. 하치코."

 "예? 무슨 일이십니까?"

 "수고했어. 이번에 나간 애들에게도 수고했다고 전해줘."


 사령관의 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하치코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그들도 분명 기뻐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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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ember, We will be watching.


그리고 기부받은 삽화. 다시 한 번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출처 : https://arca.live/b/lastorigin/26645151


5화에도 올려놓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