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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만, 사령관이 취미 찾기 관련으로 있었던 이야기를 리제에게 전하지 않을 리는 없었지.

어디까지나 시험삼아- 같은 결정이었음에도 동행하던 호라이즌이 냉큼 대형 서점을 찾아 책들을 산더미처럼 오르카 호로 옮기기 시작해 버렸으니, 미안해서라도 다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영 자신이 없다.


슬쩍 웃으며 그래도 당구보다는 독서에 통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니 힘내라는 농 섞인 대답을 보내고, 짐짓 삐진 것 투덜거리는 사령관을 다시 사랑 섞인 말로 달래고.

둠 브링어 쪽에 들를 시간이 되어서야 일단 끊긴 문자를 살짝 아쉽다는 듯 바라본 다음, 리제는 방금까지 나눈 대화를 다시 되짚어봤음.


취미라.

라스트 오리진이라고 하기엔 솔직히 너무 까마득한 과거라 흐릿하기만 하고.

사령관과의… 그건 취미라기엔 너무 필사적인 무언가니까 넘기고.

그럼 역시 이거려나.


주변을 돌아보면 어딘가 깊이감이 어긋난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귓가에는 지상과는 이질적인 바람이 스쳐지나가고 있었지.

그러니까, 지금 리제는 정말 오래간만에 날개를 장비하고 주변을 날아다니고 있었어.


거의 세 분기만에 비행을 만끽하게 된 것에는 또 대단히 하찮은 이유가 있었는데, 어제 살짝 취한 바람에 소완의 떠보기에 넘어가서 술을 마신 사령관은 살짝 새디스틱해진다는 정보를 누설한 것이 리리스의 스트라이크 존을 제대로 관통해 버렸거든.

나름 새침을 떨던 평소의 태도는 어디로 내버린 건지 안광이라도 내뿜을 기세로 따라붙는 것에 기가 질려서 산책을 핑계로 하늘로 도망쳐 버린 거였지.

리리스도 쫓아오지 못할 건 없었지만 나름 진정한 건지 하늘까지 스토킹하지는 않았고.


아무튼 오래간만에 날아보는 것도 썩 좋은 기분이었어.

아무리 크다 해도 잠수함인 오르카 호에서는 느낄 수 없는 해방감도 있었고, 겨울의 찬 바람은 다프네가 챙겨준 보온 장비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고.


자신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는지, 시선을 돌려보면 비행 중인 바이오로이드도 그럭저럭 눈에 띄었지.

저 셋은 그리폰이고, 날아다니는 건지 떠 있는 건지 모를 저건 다이카. 저쪽에선 피닉스랑 임펫들이 급하게 날아다니고 있는 걸 보니 브라우니가 사고라도 쳤나?


포스트 아포칼립스 그 자체던 도시 치고는 저항군이 며칠 머무른 것만으로 퍽 생활감이 묻어 나온다고 생각하다가, 리제는 조금 이질적인 비행체를 발견했음.


검고, 크고, 번뜩이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 로크?

- 저를 지칭하는 이름을 바꾼 기억은 없으니, 옳게 보셨다고 해야겠군요.

 실제로 대면하는 건 오래간만입니다, 리제 부관.

- 네. 오래간만이네요.


로크는 출격의 용이함을 위해 합류 이후에는 호라이즌의 함선에서 대기할 때가 많았으니까, 확실히 오래간만이긴 했지.

신혼 휴가에서 자신을 옮겨줄 때와는 달리 서로 부유하는 입장에서 마주보니까 또 박력이 다르다고 생각하며 검은 동체를 바라보다가―


- …그게 다 뭐예요?


맹금류를 닮은 로크의 발이 단단하게 포장된 상자를 잡고 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음.


- 아아, 호라이즌 여러분이 책을 옮기는 것을 돕는 참이었습니다.

- 아.


이번에 호라이즌이 사령관의 호위를 맡게 되었다고는 해도, 컴패니언처럼 직접 경호하는 건 소수고 대부분은 세인트 오르카의 보조나 주변 경계에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압도적인 비행 능력을 지닌 로크가 같이 끼어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

그렇긴 한데…….


- 책이 아닌 것도 보이는데요?


반투명한 케이스 때문에 정확하게 보이는 건 아니지만, 실루엣 만으로도 책은 아닌 것들이 있다는 건 알 수 있었고.

그 질문에 로크는 태연하게 대답했음.


- 제 추천 도서나 영화도 끼어 있으니까요.

- 추천 도서나 영화.


뭔가 멍청해진 기분으로 되물은 리제의 반응은 어찌되었든, 로크는 어딘가 즐겁다는 듯 - 새삼스럽지만 웃기만 해도 수상쩍게 보이는 건 참 대단한 재주였어 - 웃어 보였지.


- 출격이 없을 때는 이런저런 매체를 즐기고 있는 바,

 이 분야에 있어서는 사령관 각하보다도 한 발 앞서나가 있다고 자부할 수 있기에.

- 하아.


과연 무슨 취향일까.

AGS가 책을 '감상'하는 것에는 단순히 데이터 입력과는 별개로 음미할 시간이 필요한 걸까.

이래저래 떠오르는 건 많았지만 제대로 된 결론이 나올 것 같지는 않아서, 리제는 그냥 잘 지내는 것 같으니 다행이다라고 결론을 내리기로 했음.


그 후에 로크가 리제도 같이 보는 게 어떻겠냐면서, 좀 건전한 데이트도 해 보라고 핀잔인지 걱정인지 모를 말을 해 줬을 때는 정말로 어이가 없어서 최대한 완곡하게 꺼지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지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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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크가 임무가 없을 때는 감정 연구로 이것저것 하며 논다는 설정도 있었고 하니 살짝 묘사해 봤스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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