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호수에 정수리까지 담그니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끓어오르던 체온은 순식간에 진정됐고, 혈관엔 냉기가 타고 흘렀다. 더위에서 해방된 쾌감에 몸을 부르르 떤 것도 잠시. 괜히 옆 사람 눈치를 봤다.


 “뭘 봐?”


 기다렸다는 듯이 싸늘한 눈길을 보내는 티타니아. 사령관은 변명하는 대신에 어색하게 웃었다.


 “너무 시원해서. 티타니아도 시원한 거 좋아해?”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해주는 건 잡담이고, 잡담은 캐치 앤 볼이다. 한 명이 던지면 다른 사람이 받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게 인간관계의 기본이었다.


 그래서 말을 끝낼 땐 무조건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봐야 한다. 단답형으로 끝내버리면 잡담도 거기서 끝나니까.


 “싫어.”


 그걸 의도한 건지, 아니면 몸에 배인 행동인지 티타니아는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사령관은 포기하지 않았다. 티타니아에게 얼마나 당했는가. 좌절할 단계는 이미 지났다. 그도 성장한 것이다.


 “물이 닿는 게 싫어?”


 컴패니언 패밀리의 페로와 포이의 반응을 기대하고 꺼낸 질문이었다. 페로는 부끄러워하면서 부정하고, 포이는 함께 씻자고 유혹했다. 티타니아의 반응이 궁금했던 사령관은 호기심에 그녀의 표정을 들여다봤다.


 그렇지만 티타니아는 아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얼굴로 되물었다.


 “대답해줘야 해?”


 잡담의 시작 중 최악의 유형이란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괜히 뻘쭘해서 손바닥으로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햇빛이 일렁이는 호수의 물결엔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딴짓하는 사령관에게 딱딱한 무언가가 날아왔다. 죽을 만큼 아프진 않더라도 이빨 사이에서 신음이 새어나오게 하기엔 충분한 고통이었다.


 날아온 방향을 바라보니 티타니아가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린 채 다른 한 손을 내밀고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가 범인이다.


 “대답해줘야 하냐고 묻잖아.”

 “싫으면 굳이 안 해도 돼.”

 “그래?”


 대답을 들은 티타니아는 눈을 한번 지그시 감았다가 아까 자세로 돌아갔다. 그녀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가벼운 공격을 날려올 정도면 일종의 항의가 아니었을까? 그녀 나름대로 잡담을 이어 나가려는 걸 수도 있겠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사령관은 황급히 소리쳤다.


 “아니!”


 급하게 소리쳐서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부끄러워할 틈도 없다.


 “궁금해. 물에 닿는 게 싫어?”


 빤히 바라봐오는 남자를 흘겨보던 티타니아는 다시금 눈을 감았다 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령관은 그녀의 표정이 아까보다 부드러워졌다고 느꼈다.


 “물은 좋아해.”

 “그럼 시원한 건 왜?”

 “내가 다루는 나노 머신 때문에 항상 추워.”

 “그럼 따뜻한 건 어때? 온천 같은 거.”

 “싫어. 레아가 생각나.”

 “그럼 따로 좋아하는 건?”

 “이 세상에 좋은 것 따윈 없어.”

 “그럼 싫은 것들뿐이야?”

 “그래.”

 “그럼 내가 더 노력해야겠네.”

 “뭐가?”

 “좋아하는 게 생길 수 있도록 같이 노력해야지. 이미 복원시켜놓고 할 말은 아닌데, 최소한 티타니아가 좋아하는 게 생길 때까지 옆에서 도와줄게.”


 겉치레 없이 담백한 사령관의 진심이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다면 반드시 은혜를 갚는다. 그의 기본신조였다. 오르카 호의 대원들이 괜찮다고 해도 굳이 나서서 행사를 주도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다. 남에게 받은 만큼 베풀고 싶고, 타인이 웃는 모습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 사령관은 바른 생활 교과서에 등장하는 사례와 똑같이 행동했다.


 자신의 진심이 타인에겐 부담스러울 수 있단 걸 경험으로 알고 있던 사령관은 아차 싶었다. 괜히 티타니아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황급히 옆을 돌아보자 커다란 파도가 사령관을 덮쳤다.


 호수에서 갑자기 파도가?


 허우적대서 물 밖으로 나온 사령관이 기침할 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음색이 들려왔다.


 “그래... 어디 한 번 여왕을 행복하게 만들어 봐.”

 “뭐?”


 귀에 들어간 물을 빼내던 사령관 앞으로 티타니아가 걸어나갔다. 육지와 가까워질수록 물에 가려졌던 부분이 드러나 어느새 쇄골 밑 부드러운 살색 곡선까지 눈에 들어왔고, 사령관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등 뒤에서 옷가지가 바스락대는 소리와,


 “갈 거야.”


 무심하고 차가운 말투.


 물에 나와서 들은 목소리가 거짓말인 것처럼, 대기를 찢는 굉음과 함께 티타니아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의도한 건 아닐 테지만, 날아가며 생긴 충격파에 수면이 뒤집혀 사령관은 한 번 더 물을 먹게 됐다.


 콜록대며 진단했다. 관계에 진전이 생긴 걸까?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사령관은 앞으로도 티타니아에게 다가갈 거고, 수없이 거절당할 것이다. 때때로는 울고, 슬퍼하고, 공부하고, 그녀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하겠지.


 실패는 실패가 아니다. 도전의 결과는 언제나 두 가지다.


 성공하거나, 배우거나.


 사령관은 오늘 얻어낸 작은 성공이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광대까지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며 천천히 물가로 걸어나와 돌아가려 했다.


 “아...”


 바닥에 벗어뒀던 옷가지가 보이지 않는다. 설마, 하며 뒤를 돌아보자 수면 위를 떠다니는 팬티와 20M 이상 되는 고목에 걸린 바지, 행방불명된 셔츠.


 충격파에 옷가지들도 휩쓸려 버렸다.


 “그래도 뭐, 어때.”


 사령관에게는 이 또한 즐거운 해프닝에 불과했다.


 호수 위의 팬티만 입고서 오르카 호로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은 어느 때보다 가벼웠다.








얼리 버드 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