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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고백은 아니었지만, 오해할 만큼 에두른 이야기도 아니었지.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사령관은 내심 고민했어.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바이오로이드에게 구애를 받은 게 처음은 아니었음.

아니, 소완이나 리리스, 다른 리제, 앨리스 등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이골이 났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지.

다만 그 경우는 리제와 모종의 합의가 있었으리라 짐작하는 부분도 있고, 거절 좀 당하는 정도로 좌절할 리 없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풍기고 있기도 해서 사령관도 그 나름대로 가볍게 받아치는 것이 일종의 루틴이 될 정도인 반면, 메이가 한 말은 그와는 결이 다른 것이 분명했으니 이 쪽도 진지해질 필요는 있었지.


- 지금으로서는, 그래.


적어도 입에 발린 소리는 하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이었고.

물론 솔직한 대답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고, 메이의 프라이드에 상처를 입힐 가능성도 적지 않았지.

그 경우의 뒷감당도 결국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내심 각오한 사령관에게 돌아온 것은-


- 언제까지?


의외로 흔들림 없는 대답이었어.


*   *   *


새삼스러울지도 모르는 소리지만, 메이는 전략가로서도 대단히 우수해.

비대칭전력을 다루는 입장에서 그 우수함에 과할 정도의 신중함이 포함된 것은 물론이고.

상호의 전력을 파악하는 건 그 중에서도 기본 중의 기본인 것도 당연한 소리일 거야.


그래서 무슨 소리냐면- 분명히 방금의 발언에는 충동적인 부분이 적잖이 있었을지 몰라도, 메이는 사령관에 대해 이미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야.

마리의 영향으로 즐기게 된 커피의 취향이라거나, 난감할 때 짓는 표정 같은 아기자기한 정도도 있기야 했지만.


좀 더 본질적으로.

사령관이 리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메이는 사무치도록 이해하고 있었던 거야.


소완과 유쾌한 친구들처럼 결과적으로 자기도 사랑받으면 된다고 결론지은 경우도 있지.

앨리스처럼 납득이 안 가니 교정하겠다고 결심한 경우는…… 드물긴 하지만 아무튼 있고.

키르케의 경우처럼 사령관을 향한 연심과 별개로 사령관과 리제의 관계에서 대리만족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 사령관, 나는 언제까지냐고 물었어.


메이가 택한 것은 기다림이었어.

제 마음도 가누지 못해 이도저도 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자신의 마음은 이 곳에 있노라고. 선전포고처럼 당당히 주장한 후의 기다림이었지.

미사일이 위력을 뽐내기 위해 반드시 발사될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

- 그래. 사령관의 짧은 생각으로 그리 쉽게 답이 나올 리는 없겠지.


과연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한 사령관이 곤란해하자, 메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이죽거렸음.


-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 생각도 없던 건 아니잖아? 

 주변 상황도 모르고 사는 눈뜬 장님은 아닐 테고.

- 그야 그 정도 눈치는 있어.

 적어도 여름 이후의 붉은 머리 지휘관의 낌새가 수상해졌다는 건 알고 있었을 ㅁ…….

- 시끄러워! 최악이네, 당신!


가벼운 반격 삼아 꺼낸 이야기가 좀 과하게 효과적이라 등짝에 주먹이 날아오긴 했지만 메이의 신체능력으로는 아픔을 느끼기도 어려울 정도라 사령관은 씩 웃어보이기만 했음.


- 솔직히 말해서, 지금은 여유가 없어.

 리제 하나만으로 머리가 꽉 차 있으니까.

- …아, 그러세요.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듣는 건 또 파괴력이 다르네.

메이가 파르르 떨리는 눈썹을 꾹꾹 눌러서 진정시키는 동안 깊은 호흡을 끝내고, 사령관은 말을 마무리지었음.


- 그러니까, 적어도 평화가 찾아온 후가 되어야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 흐응.


느릿하게 고도를 낮추는 옥좌 위에서, 두 명은 동시에 시선을 내렸음.


- 그러니까, 지구에서 철충들을 전부 몰아낸 후란 말이지?

- 응.

- 이 도시는 티끌로 보일 만큼 넓은 땅 전부를?

- 어렵겠어?

- 하! 지금 누구한테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결국 당장은 거절당했다는 현실에 대한 슬픔이나 화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그것까지 드러내는 것 만큼은, 자신의 프라이드에 걸고 허락할 수 없었으니까.


- 필요하다면, 나서주지. 그것 뿐이야.


메이는, 그저 오연하게 웃으며 선언하기로 했어.

자신의 옆에 있는 남자에게, 자기 자신에게.

어쩌면- 이곳의 모두가 맞이할 미래 그 자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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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안의 메이는 대강 이런 느낌이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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