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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닥불처럼 작으면서도 따뜻했던, 일곱 명의 크리스마스 파티는 날짜가 바뀌면서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잠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칭얼거리는 LRL을 포츈이 안아들고 나간 것을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은 따뜻한 적막.

사령관은 안락의자에 깊이 몸을 묻고, 리제는 바닥에 앉아 그 사령관의 무릎에 머리를 기대어 - 두 명은 타닥거리는 소리까지 실감나게 재현한 가짜 벽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리제."

"네, 당신."


스며나온 부름에 당연하다는 듯 따라온 대답.

아직도 연인 같은 아내의 귓가를 가볍게 쓸어주며, 사내는 지금의 감개를 꾸밈없이 내뱉었다.


"행복해."

"그렇네요."


지금이라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야 세상에 인간이라고는 당신 뿐인 걸요. 실없는 농담을 한 차례 교환하고 사령관은 다시 시선을 벽난로의 불꽃으로 돌렸다.


"예전에, 리제가 레아를 만났을 때 말이야."

"네."

"마음에 드는 것이 가족이랑 다르냐고 한 적이 있었잖아?"

"그랬죠."


자매로서의 실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행여나 위화감으로 드러날까 우려되어 미리 이야기했을 때.

사령관은 오르카 호의 모두를 가족처럼 여기는 입장으로선 사이좋게 지내는 것 만으로 충분히 가족 다운 것이라 했던가.


"그때는 나도 아직 아는 것이 적었고, 조금 막연한 이야기였지만.

 지금은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 이 곳의 모두가 자신의 가족이라고.

진한 정이 묻어나는 말에 리제는 사내다운 말이라며 끄덕이다가, 슬며시 숨어든 부끄러움을 알아채고 가볍게 키득였다.


"그런 가족에게 이번 휴가에만 몇 번이고 사랑 고백을 받고 계셨죠, 우리의 가장 님은."

"여기서 또 그 이야기야?"


아프지 않게 볼을 꼬집는 손에 자신의 손가락을 감는다.

잠깐 멈칫하다가 별 수 없다는 듯 마주잡아 주는 크고 단단한 손이, 리제는 참 좋았다.


"당신이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저는 결코 부정하지 않겠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답을 해 주셔야 해요, 모두에게."

"응. 그렇게 할 생각이야."


놀림과 보복과 재보복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때에 비하면 확연히 차분해진 대답이라, 리제는 자기도 모르게 기대어 있던 몸을 일으켜 사령관을 향했다.


"물론 적어도 - '새 가족'이 충분히 자란 후의 일이 되겠지."

"……."


장난기 한 점도 묻어 나오지 않는 담백한 미소에 오히려 자신이 부끄러워지고야 말았지만.

붉어진 얼굴이 벽난로에서 일렁이는 빛에 가려지기를 바라며, 리제는 속삭이듯 되물었다.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닌가요?"

"글쎄. 적어도 아이가 근심 없이 자랄 정도는 된 후에 후일을 생각한다는 건 충분히 합리적이지 않아?"

"뭐에요, 그거. 첫째는 막 자라도 된다는 거?"


짐짓 따지는 듯한 말투긴 했지만, 하다못해 어조에서도 심통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도 그럴 것이.


"앞으로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아이를 지키는 것이 위험성을 더 늘리더라도."


그가 어떤 대답을 할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그 모든 것을 기꺼이 감내하겠다고 결심할 만큼, 너와의 아이를 원해."


물론 자신이 다시 할 대답도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뻐요. 아직 마주잡은 채였던 손등에 작은 입술을 맞추며 속삭인 말에, 사령관은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역시 자신은 행복한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   *   *


―그렇긴 한데.


"그래서, 지금부터 시도하게요?"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기술부에게 마감을 정해주는 꼴이 되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적어도 초읽기에 들어간 후에 생각하는 게 좋겠지?"

"그렇… 네요."


왜 이런 데선 이상하게 냉정한 걸까, 이 남자는.

물론 만에 하나를 생각해서라도 별의 아이와 조우하기 전에 아이를 가지는 일은 피하고 싶었던 리제로서는 굳이 이유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편하다고 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것과 납득은 서로 다른 것이다.


정확한 생각까지는 몰라도 대충 어떤 고민을 하는지는 꿰뚫어본 사령관에게는 귀엽기 그지 없는 반응이기도 했고.


"그러면-"


물 흐르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작은 몸을 가볍게 안아든다.

꺅, 하는 짧은 비명조차 사랑스러워 볼에 입을 맞추고, 사령관은 낮게 속삭였다.


"일단은, 연습이라도 해둘까?"

"……항상 하는 거랑 다를 것도 없으면서."


말로는 툴툴거리면서도 팔은 정직하게 감겨들어서, 사령관은 피식 웃고야 말았다.

아무렴, 크리스마스는 지나갔을지언정 - 밤은 사랑하기엔 충분할 만큼 길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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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내용이 길어져서 야스씬은 다음 화로 미루겠스빈다




그리고 2회 미스 오르카 투표에서 리제를 잘 부탁드리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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