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055745


2편 : https://arca.live/b/lastorigin/30209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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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거짓말은 하지 않았사옵니다.



“저기.. 소완?”


“말씀하시옵소서.”


뭐가 기분이 좋은지 사령관 옆에서 콧노래를 부르며 무언가 달그락달그락 거리며 만들고 있는 소완에게 사령관이 말을 건다.

사령관은 소완이 달그락 거리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알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날 간호해주기로 했으니까 그.. 가만히 날 간호해주지 않겠어?”


“아니되옵니다. 다프네 양과 라비아타 양이 ‘꼭’ 주인께 약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셨으니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그 약이 뭔데..”


“후후, 주인을 위한 약이오니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똑똑, 개인 수복실 문을 누군가 노크한다.

사령관이 들어오라 하자 레오나가 또각또각 들어와 사령관을 내려다본다.


“연약한 남자네.”


“하하.. 실망했어?”


“그런 적 없어. 그냥 확인하러 온 것뿐이야.”


레오나는 자신의 말만 마치고 나가려다 소완의 어깨를 잡고 무언가 속삭이자 소완이 음흉하게 웃으며 알겠사옵니다. 라며 사령관을 쳐다본다.

사령관은 본인이 눈 앞에 악마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직접 본 기분이다.


"나가볼게 사령관. 할게 많아서 말이야."


"응, 레오나 수고해. 항상 고마워."


사령관은 밝게 웃으며 손짓하자 레오나는 받아주지도 않고 시선만 피하곤 몸을 휙 돌려 또각또각 나간다. 사령관은 오늘 컨디션이 별로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무안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레오나가 수복실에서 나와 문을 닫자 벽에 기대있던 그는 레오나에게 말을 건다.


“실망한 적 없다고?”


“그 말대로야. 기대하지 않았으니까.”


“어련하시겠어.”


자신에게 어깨동무를 하는 그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이거 놔,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라는 말을 차갑게 내뱉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그래, 들키면 안 되니까..”


큭 하고 웃음을 흘린 그는 레오나가 걸어온 길 그대로 따라간다.



#08.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호드의 지휘관실.

칸과 마리는 탈론페더가 설치한 도청기를 통해 레오나와 그의 대화를 듣고 있다.


“그런가, 레오나가 결국..”


마리는 몸을 소파에 기댄 후 양손을 올려 마른세수를 한다.

칸이 마리를 눈만 돌려 흘깃 쳐다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 새로 온 인간과 레오나가 자주 만나는 건 브라우니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그리고, 저 인간에 대해서는.. 너도 처음 보자마자 느낀 게 있었겠지?”


“…….”


마리는 침묵하며 커피잔을 들어 한잔 마셨다.

씁쓸하다. 혀 끝부터 퍼져가는 씁쓸함이 마리의 온몸을 감쌌다.


“각하께서는 되려 기대를 하고 있으셨지. 자신 말고 다른 인류를 찾은 거니까. 그래서 나도 조금은 기대를 했네. 어쩌면 각하께서 가지고 있는 부담감을 덜어드릴 수 있는 자가 아닐까 하고..”


“불안한 예감은 항상 빗나가지 않지. 그러나, 기대는 저버렸을지언정 모든 게 엇나간 것이 아니야. 그렇지 않나?”


“하하 놀랍도록 예상 대로라 되려 맥이 빠지는군.”


마리가 그래서 오히려 불안하다며 씁쓸하게 웃자 칸도 이해한다며 미소 짓는다.

칸은 철혈, 철혈의 레오나.. 이명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지었군.이라고 중얼거리며 자신의 패널을 켜 비밀문서를 연다.


“커피는 다 마셨나?”


“씁쓸함을 즐기려고 마시는 건데 다른 곳에서 다 느껴버려서 말이야.”


마리는 소파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쭉 켰다.


“가지. 우리도 할 게 있으니까.”


칸은 음 하는 소리를 내며 동의하곤 먼저 일어난 마리를 따라 일어난다.


"그나저나, 연기는 못하는 줄 알았는데, 깜빡 속았군.. 깜빡 속았어.."



#09 그치만..



쾅!

둠브링어의 철문이 벽에 쿵하고 부딪히며 소리를 낸다.


“대령, 이게 무슨 예의지?”


“예의는 다른 부대와 합동 임무 하는데 강제로 복귀시킨 대장한테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메이는 피식 웃으며 또각또각 걸어가 문을 살살 닫으며 벽을 쳐다본다.


“미안, 나는 대령이 화가 너~~ 무 나서 가슴을 쿵 치고 들어온 줄 알았지 뭐야? 근데 벽이 내는 소리였네? 납작한 대령의 가슴이 아니라?”


“네? 소리가 너무 낮은 곳에서 나서 잘 안 들렸거든요? 다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꼬맹이 대장?”


“싸우지…마시고…중요한건…사령관님…”


다이카가 천천히 말을 하기 시작하자 메이가 한숨을 푹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그래, 소식은 들었지? 우리 사령관이 또 수복실로 실려 갔대.”


“몸 상태는 많이 안 좋다던가요?”


“아르망이 예측 못 한 거 보면 몸 상태 문제는 아닐 거야. 자세한 건 더 알아봐야겠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그래요, 정말 안좋았으면 아직도 질질 짜고 있었겠죠.


메이가 인상 쓰며 나이트앤젤에게 패널을 신경질 적으로 건네자 나이트앤젤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대장, 대충 알곤 있었지만.. 이 계획은 잘못하면 너무 위험한 거 아닌가요?”


“둠브링어 대원 모듈에 잘못하다란 단어가 있었어, 대령?”


“사령관님을 오르카에서 내보낸다니.. 다른 지휘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죠?”


메이는 의자에 앉아 손으로 뺨을 몇 번 두드린다.

다들 알고는 있겠지만 마리, 마리는 고지식해서 위험하고, 칸은.. 잘 모르겠다. 지휘관 개체들은 알기 어렵단 말이지..


“.. 일단 나랑 레오나만 참여해. 흥, 당연히 둠브링어는 화려한 주연을 맡아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내겐 인간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 나만이 가능한 일이야.”


메이의 작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가 조금 떨렸다.

그래, 이건 모두 우리를 위한 행위다 라며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사적인 감정은 담지 않는다.. 사적인 감정은 담지 않는다..

애써 속으로 중얼거렸으나 사과처럼 달아오른 얼굴을 보고 나이트앤젤은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쓴 채 이마를 짚었고 다이카는 밝게 웃었다.



#10. 초롱이는 못 말려.



-닥터의 실험실-


“로크 오빠, 새로 온 인간 오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닥터는 로크의 날개 죽지에 있는 나사를 드릴로 박고 나서는 땀을 닦았다.


[바이오로이드들은 이해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질문을 종종 하곤 하죠. 당신이 저에게 ‘오빠’라는 호칭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로크의 안광이 번뜩였다.

닥터는 너무해~ 내가 고쳐줬는데~ 하고 투덜거리며 리프트를 조종한다.

리프트가 로크의 날개에서 내려가기 시작해 땅에 닿자 땅에 대충 던져둔 머그잔을 들고 의자에 돌아가 로크의 상태가 적혀있는 패널을 쭉 훑어보며 말한다.


“그러는 오빠도 비효율적인 행동을 많이 하잖아? 요즘 알프레드 오빠랑 ‘놀이’를 한다며?”


[…….]


“있지, 그램린 언니나 포츈 언니 정도 되면 AGS도 생명체라고 생각해. 그래서 포츈 언니나 그램린 언니가 봐도 오빠의 ‘놀이’가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하겠지만.. 난 개발자니까 조금 다르거든?”


닥터는 로크를 곁눈질로 쳐다본다.


“왜 ‘타이런트’를 건드리는 거야?”


[흥미롭군요. 늘 해맑게 웃고 다니길래 별생각 없을 줄 알았는데 허를 찔렸습니다.]


닥터는 의자를 빙글 돌려 오크를 올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이 어린 소녀는 다른 바이오로이드들, 심지어 사령관에게도 숨기는 것들이 있다.

가령, 다소 왜곡된 도덕적 잣대 같은 것들을 ‘어린아이의 순진함’으로 가려버리는 것처럼..


[요즘 ‘감정’이란 것에 대한 흥미가 생겼습니다.]


닥터는 로크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로크가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라고 중얼거리며 의자를 빙글 돌려 패널로 눈길을 다시 돌렸다.


“그래도 잠자고 있는 타이런트를 건드리는 건 그만둬. 알프레드 오빠가 없었으면 날개 파손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거야.”


[… 방금 당신의 질문에 대해 대답해드리죠. 저 역시 추기경에게 들은 것들이 있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상당히 위험한 계획이기에 추천하지 않았습니다.]


“위험하다고? 섬에 오빠를 두는게?”


닥터는 로크의 말에 고글을 이마로 올린 뒤 의자를 다시 휙 돌리며 로크를 올려다본다. 


“로크 오빠는 기계 몸을 가지고 있어서 모르겠지만, 우리 오빠는 인간이라 과로를 하면 건강에 안 좋단 말이야. 그러니까 오빠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휴식은 꼭 필요하고, 이미 안전이 확보된 섬이지만 만약을 위해서 요안나 언니가..”


[그런 말이 아닙니다. 두 번째 인간에 대해 하는 말입니다. 저의 이전 주인인 앙헬 공의 곁에서 전 많은 인간을 보았습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을 좋아하죠. 수많은 방법이 있지만 보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것은 자신의 발 밑에 같은 인간들을 두는 것입니다.]


“그게 오빠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인류가 멸망한 와중에 어떻게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그는 누구일까요? 모든 인간이 죽은 와중에 혼자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요? 닥터 정도의 지능을 가진 바이오로이드가 이것들을 ‘우연’이라고 생각 하시는건 아니겠지요?]


닥터의 얼굴이 빠르게 굳어가기 시작했다.

왜 그 생각을 하지 못한 걸까? 철충과 휩노스 병이 모든 걸 휩쓸 때, 안전할 수 있는 사람,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동면할 수 있는 사람.

그 정도의 인간이라면, 평균적인 인간으로 생각해선 안된다.


“아냐, 분명 과거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자신만 알고 있는 진실은 은폐하기 쉬운 법이죠. 만약, 그가 각하의 명령보다 우선시될 만한 지위를 가졌던 사람이라면 어떠겠습니까?]


닥터는 작은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아냐, 그럴리가.. 하지만 만약, 만약에라도..


“잠깐, 그렇게 중요한걸 왜 미리 말하지 않은 거야?”


[AGS와 바이오로이드의 차이점을 학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차이점?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아뇨, 그것보단 좀 더 추상적인 것입니다만, 저희 AGS는 정보 내에서 가장 합리적인 값을 도출해냅니다. 그러나 바이오로이드는 다르죠. 당신들은 사회적, 도덕적, 철학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행동합니다. 분명 효율적인 판단이 아님에도 그것들은 종종 정답이 되기도 하지요. 아시겠습니까? 가장 합리적인 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임을 학습했기 때문에 말하지 않은 겁니다.]


닥터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는 것을 로크는 가만히 지켜본다.

고뇌하는구나. 세포로 이루어진 생명체란 참으로 유약하고 복잡하게 설계되어있다.

정보를 얻을 때 집어넣기만 하면 이해할 수 있는 AGS와 달리 바이오로이드는 반드시 스스로 받아들여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얼마나 비효율적인 구조인가.

로크는 고개를 돌리곤 일어난다.


[하하, 단순히 말하면 추기경에게 설득당한 것이죠. 그래도 고민된다면 자비로운 리앤과 얘기를 나눠볼 것을 권장 드겠습니다.]


“음.. 아냐. 아르망 언니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그렇게 하시죠. 정비해주어 감사했습니다.]


“응, 오빠도 고생했어.”


자신의 실험실에서 나가는 로크를 쳐다보다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패널을 쳐다본다.

로크는 분명히 다른 AGS와 달라서 이야기를 나누면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곤 두 눈을 감는다.


“.. 역시, 오빠를 그냥 몸만 내보내는 건 위험하겠지?”


닥터는 고글을 다시 쓴 후 의자에서 일어나 패널을 들고 어디론가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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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로크는 쓰기 즐거우면서 어렵네요..

재밌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